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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 ‘ 외화내빈’ 산업단지, 지방경제 발목을 잡다 

 

유길용·최재필 월간중앙 기자
MB정부 시절 공급과잉, 5년 동안 1.5배 늘어나…용지 미분양, 미착공 장기화로 지자체의 재정 위협해

▎지역 산업단지가 이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떠나는 기업은 늘어나고 들어오는 기업은 없다. 안산 시화·반월산단의 폐업한 공장 입구를 잠근 쇠사슬이 녹슬어있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의 전곡항에 가면 바닷가에 정박된 크고 작은 수십 대의 보트와 요트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전곡항은 경기도가 지난 7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해양산업의 전초기지다. 매년 이곳에서 세계 보트쇼와 국제요트대회가 열린다.

해안도로 맞은 편에는 바닷가의 정취와 어울리지 않는 넓은 황무지가 펼쳐져 있다. 갯벌에 흙을 부어 개간한 곳이다. 1.6㎢가 넘는다. 여의도 면적(2.9㎢)의 절반이 넘는 넓이다. 이곳은 경기도와 화성시가 해양레저산업의 육성을 위해 조성한 복합산업단지다. 정식 명칭은 ‘화성전곡해양산업단지’. 이곳에는 보트·요트의 제조와 수리, 판매, 연구개발 기능을 갖춘 업체들이 입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바다낚시용 보트를 빌려주거나 관리해주는 소규모 업체 몇 곳만 들어와 있을 뿐이다.

해양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목한 경기도와 화성시는 머쓱함을 넘어 참담해졌다. 분양을 시작한 지 4년이 되어 가지만 분양률이 10%에 머물러 있는 탓이다. 분양가를 5% 이상 낮췄는데도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당장 화성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곡산단의 지분 65%를 보유한 화성도시공사는 당초 투자비 3490억 원 중 1375억 원을 빚을 내 쏟아부었다. 아직 원금 회수는커녕 지난해 말 분양대금 목표치(분양률 40%)인 300억 원을 확보하지 못해 심각한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중이다. 도시공사의 부채는 화성시의 재정압박으로 이어진다. 전국 기초자치단체들 중 재정자립도가 7위로 꼽히는 화성시는 2007년 이후 전곡산단을 비롯한 대형 개발사업이 연달아 실패하면서 부채가 세 배 이상 늘어났다. 직간접적 부채가 5천억 원을 넘는다.

결국 화성도시공사는 2018년에 해체될 운명이다. 안전행정부의 경영진단 결과 시설공단으로 전환하라는 경영개선명령을 받은 것이다. 화성시는 이런 권고를 받아들여 도시공사의 도시개발기능을 폐지하고 시설관리공단으로 전환키로 했다.


▎3490억 원을 들여 조성한 경기 화성시 전곡해양산업단지가 수년째 빈 땅으로 방치되고 있다. 4년째인 최근까지 분양률이 10%대에 불과하다.
산업단지 실패가 시 재정위기 불러

화성도시공사의 운명은 전곡산단의 실패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화성도시공사는 2009년에 창립했다. 해양산업단지의 흥행을 겨냥해 기존의 화성시 시설관리공단에 부동산 개발 기능을 넣어 확대 개편했다. 창립 첫해 부채비율은 179%였다. 해가 갈수록 사업이 늘어가면서 부채비율은 대책 없이 치솟았다. 2011년 341%, 2012년 334%로 급등했다. 화성시가 7차례에 걸쳐 현물 출자를 하는 등 긴급 수혈을 했지만 여전히 부채가 3천억 원에 달하고 부채비율은 350%를 넘어 역대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화성도시공사가 문을 닫으면 전곡산단의 운명도 예측이 불가능해진다. 분양되지 않는 빚더미 땅을 계속 유지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화성시는 전곡산단의 용도를 전환하는 문제를 내부 검토 중이다. 경기도와 협의가 선행돼야 하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용도변경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화성도시공사는 입주 업종을 해양산업 이외에 다른 업종도 포함하는 방안과 산업시설용지 일부를 지원시설용지로 변경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경기도는 아직까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화성도시공사 관계자는 “화성시는 억울한 면이 있다. 전곡해양산단과 마리나항 개발계획은 경기도가 주도한 사업인데 실패 책임을 대부분 화성시가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전곡항 마리나항 개발과 해양산단 조성은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의 핵심 공약이었다. 김 전 지사의 최대 치적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경기도 관계자는 “김 전 지사의 측근 중 조선·해양업계와 연줄이 있는 이를 통해 업계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전곡산단의 주력 업종을 ‘항공산업’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오고 있다. 김 전 지사 때 몇몇 실무 공무원 사이에서 대안으로 제안됐던 내용이다. 레저용 경비행기 이착륙장이 있는 시화호와 가깝고 김포항공 산업단지의 기능을 일부 나누면 지금보다 경쟁력이 있으리란 판단이 깔려 있다.


▎화성시 장안외국인전용산단이 빈 땅으로 방치돼 있다. 미분양이 늘어나자 지자체끼리 기업 유치를 위한 출혈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분양률 60% 밑도는 산단 ‘수두룩’

김 전 지사 재임 중에는 경기도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채택된 해양산업을 포기하기에 부담이 커 이런 대안이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곡산단의 실패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기능 전환의 필요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새 도지사(남경필) 취임 이후 기존 사업의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갈 수 없다는 인식이 실무자들 사이에 넓게 퍼지고 있다”며 “어떤 식으로든 전곡산단 기능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제 기능을 못하는 산업단지의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몸살을 앓고 있는 산업단지가 적지 않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이 조성하고 관리하는 지방산업단지의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의 미분양 산업단지 면적은 19.8㎢(2014년 5월 기준)에 달한다. 지구 지정 이후 사업성 부족 등의 이유로 착공조차 못한 단지가 116곳, 100㎢다. 사업기간이 길어지고 분양이 늦어질수록 사업을 담당한 공기업과 지자체의 재정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국토교통부는 “현재 산업단지의 미분양율은 낮은 수준”이라는 주장을 편다. 전국 산업단지 분양대상면적 503㎢ 대비 미분양면적이 19.8㎢로 3.9%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7월 9일 발표한 자료를 통해 “2008년 이후 산단 개발과 공급이 늘어나면서 미분양 면적이 증가했으나 이는 지정물량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단기적 현상”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해석은 다르다. 서울에 있는 C부동산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국토부의 해명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국토부 논리를 아파트 시장에 적용해 보자. 전국의 아파트 가구수는 867만 가구이고, 이 가운데 미분양 물량은 6만3천여 가구다. 분양율이 99.3%이고 미분양비율은 고작 0.7%에 불과하다.

“국토부의 주장대로라면 아파트 미분양 문제도 괜한 엄살이란 것”이란 게 이 관계자의 지적이다. 그는 “산단 지정 후 착공하지 못한 단지 면적도 상당한데 이런 문제는 쏙 빼고 분양 대상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문제를 희석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산업단지의 미분양 면적이 늘어난 것은 지난 정권에서 산업단지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 도입한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특례법’이 산단 개발 경쟁에 기름을 부었다. 2008년에 정부는 산단을 조성하는 데 민간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특례법을 만들어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통상 2~4년 걸리는 인허가 기간이 6개월로 단축됐다.

그러자 기업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운 지자체장들의 치적성 산단 개발사업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국토부와 홍의락 의원(새정연·대구 북구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때(2008~2012년) 지정된 신규 산업단지는 343곳으로 2008년 이전까지의 전체 산단(650곳)보다 53%나 늘었다. 신규 지정 면적만 145.5㎢에 이른다. 여기에 쏟아 부은 예산도 3조6800억 원(2009~2012년)에 이르러 연평균 9200억 원이 투입됐다. 같은 기간 기존 산업단지에 투입된 예산(4111억 원)의 9배나 된다.

이처럼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이고도 신규 지정 산단의 절반 이상인 186곳은 아예 착공조차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6년 8.8㎢에서 2008년 3.6㎢로 줄었던 미분양용지도 덩달아 2009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분양을 시작한 산단도 미분양율이 39.2%나 된다. 국가산업단지의 평균 미분양율 9.4%의 4배에 이르는 수치다. 홍 의원은 “MB정부의 산단 정책은 4대강사업 못지않은 무책임한 난개발과 예산낭비란게 드러나고 있다”며 “수요자 측면에서 생각지 않고 땅을 파고 도로 깔기에만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안산 시화·반월산단 뒤로 아파트 단지가 흐릿하게 보인다. 산단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입주기업들은 심각한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특례법을 폐지하는 게 규제 강화로 비춰질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류승한 국토연구원연구위원은 “상당수 산단이 국가산단이 아닌 지방산단인데, 민간은 수익성에 따라 개발을 포기하기가 쉬워 국가산단보다 리스크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MB정부 때 규제 풀어 ‘공급 과잉’

급증한 산업단지가 국가경제에 기여한 성과는 그리 크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산업단지 경쟁력 강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으로 가동 중인 국가산단 34곳에 4만2303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이들의 생산효과는 680조 원이고, 수출액은 2674억 달러에 달한다. 107만 명의 고용을 발생한다. 반면 지방산단은 497곳 중 255곳만 가동 중이다. 입주 업체도 1만9987개로 국가산단의 절반에 못 미친다. 생산액과 수출액도 각각 309억 원, 1510억 달러 규모로 국가산단의 절반 수준이다. 고용은 66만 명에 그친다.

경기도가 2010년 2300억 원을 들여 조성한 평택 오성, 화성 장안2, 파주 당동 외국인투자지역 산업단지의 경우 준공한 지 4년이 지나도록 기업 입주율이 30%대에 머물고 있다.

평택항으로부터 12㎞가량 떨어져 있는 평택 오성산단의 경우 35만3900㎡ 크기의 단지 안에 일본의 브이텍스㈜ 등 4개 업체만 입주해 가동 중이다. 입주율은 9.6%로 나머지는 텅 비어 있다. 경기도는 금융위기의 여파를 원인으로 꼽지만 산단의 과잉공급이 원인이란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이 때문에 산단을 지어놓고 입주 기업을 찾지 못한 지자체들끼리 출혈경쟁도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경기 이천시와 인천시가 벌인 기업 유치경쟁이 대표 사례다. 두 지자체는 이천SK하이닉스 단지에 있던 반도체 전문기업 스태츠칩팩코리아를 두고 유치경쟁을 벌였다.

연매출 7천억 원, 종업원 2500명 규모의 중견 기업인데 이천에서는 하이닉스에 이어 둘째로 큰 기업이었다. 업체가 빠져나가면 이천시로서는 지역경제에 타격을 입을 게 뻔했다. 그러나 업체가 요구한 부지 무상임대와 세제 혜택 조건을 맞추기가 불가능했다.

결국 업체는 인천 영종도, 충북 오창, 충남 천안 등을 놓고 저울질을 하다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인천행을 택했다. 연간 20억 원의 세금 수입 감소가 예상되는 이천시로선 허탈할 뿐이다. 이천시 관계자는 “인천시는 외국기업 투자유치에 성공했다고 자랑하지만 실제론 국내에 있던 기업을 빼간 것에 불과하다”며 “전국에 빈 산업단지가 많다 보니 지자체끼리 특혜에 가까운 혜택을 제시하며 기업을 빼가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산업단지가 기업들의 투기 목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기업들은 산업단지 내 용지를 분양받은 뒤 공장을 짓기 전에 부지를 되파는 수법으로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긴다.




산단용지 분양받아 ‘땅장사’하기도

국내 최대 산업도시인 울산에서는 이 같은 방법으로 이득을 챙긴 업체가 수십여 개에 달했다. 울산시가 추진한 중산·매곡·모듈화·길천1차 등 4개 일반산업단지에서다. 이들 4개 산단에서 용지를 최초 분양 받은 업체 130곳 중 25곳이 공장도 짓기 전에 양도양수를 한 사실이 2011년 11월 울산시 경제통상실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밝혀졌다. 당시 문제를 제기한 김진영 울산시의원(산업건설위원회)은 “법의 맹점을 이용해 고의 부도와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매각하는 수법의 산업단지 부동산 투기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울산에서 산업용지의 경우 산업집적 활성화와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초 분양 후 3년 내 공장을 지어야 하고 공장 완공 후 5년이 지나야 매각이 가능하지만, 부도나 경영악화 등의 요인이 있으면 매각도 가능하다는 조항을 악용해 일부 기업이 사실상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이다.

실제 A사는 2008년 6월 모듈화산업단지 부지 1만 6661㎡를 3.3㎡당 약 73만원(총 36억여 원)에 분양받은 뒤 2011년 8월 3.3㎡당 164만원(총 82억여 원)에 팔았다. 이 업체는 러시아 해외투자를 이유로 산업용지를 되팔면서 3년여 만에 투자금의 2배가 넘는 45억여 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또 B사는 2007년 12월 길천1차 일반산업단지 1만 8352㎡를 34억여 원에 분양받아 2011년 1월 44억여 원에 매각, 4년여 만에 10억 원가량의 이득을 챙겼다.

게다가 일부 업체는 등기부 등본에 거래가액을 표기하지 않아 부동산 투기 의혹뿐 아니라 공인중개사 업무 및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률까지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 성서산업단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대기업 계열사 C사가 ‘땅장사’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대구시는 옛 삼성상용차 용지(47만2998㎡)를 1천억여 원의 세금으로 사들인 뒤 성서산업단지를 조성해 기업들에 분양했다. C사도 2004년 땅을 분양받았다. 대구시는 당시 산업단지 조성 비용이 1㎡에 45만 원을 넘었지만 절반에도 못 미치는 22만 원에 10만㎡가 넘는 땅을 팔았다. 특별분양인 셈이다.

3년 내 공장건립 및 생산라인을 가동하지 않을 경우, 대구시에 환매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업체는 8년 동안 시설투자를 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생산설비 대신 야구장을 건립했다. 대구의 경우 기업이 산업단지에서 터를 분양받으면 관련 법규에 따라 7년 동안 매매와 임대 등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지만 이 기한이 지나면 처분이 가능하다. ‘땅 투기’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한 지역 상공인은 “현재 시세는 특별분양가보다 5~6배가 넘는다. 설비투자를 차일피일 미루고 쓸데없는 야구장을 만든 것이 시세차액을 노린 것이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며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시세차액은 대략 계산해도 600억~7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지역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지역의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분양이 완료됐는데도 공장을 짓지 않고 방치하거나 공장 건립이 지연되는 것은 투기를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업체들의 고의 부도나 미등기전매 등을 적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산단도 위기에 봉착하긴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단지의 노후화와 인력 공동화다. 산자부에 따르면 착공한 지 20년 이상 된 노후 단지는 102개로 전체 단지(993개)의 10%에 불과하지만 생산 및 입주 기업수는 각각 전체의 80%, 88%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그러나 시설이 오래돼 편의 시설이 부족하고 환경과 교통편이 열악해 개선이 시급하다.

산업단지공단이 지난해 6월 일반 대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분의 2 이상이 산단 내 입주업체의 취업을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임금을 이유로 꼽은 응답자는 12.6%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산단의 부정적 이미지와 편의시설 부족, 환경오염 등 비경제적 요인을 기피 이유로 꼽았다. 때문에 산단 내 기업들의 청년 인력난은 만성적인 문제로 자리 잡았다.

산업단지공단의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산단 전체 인력 중청년층 수요 비중은 29.1%인 반면 공급은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6.7%밖에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견디다못한 기업들은 해외로 생산라인을 옮기거나 아예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 산단 입주기업 4곳 중 1곳은 이주를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산업단지인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의 기업들은 다양한 복지시설을 갖추고 자유로운 근무형태로 청년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게임업체 넥슨의 사무실에는 자리마다 이색 캐노피가 펼쳐져 있다.
국가산단의 휴폐업 부지는 2012년 3월 54만9천㎡에서 이듬해 3월 86만7천㎡로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도 진작부터 구조고도화, 재생사업 등 노후산단의 리모델링을 추진해왔지만 부처별 혼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까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구로공단의 변신에서 돌파구 찾아야

물론 산단의 미래가 마냥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과거 ‘공단’으로 불렸을 당시의 어두침침한 이미지를 걷어내고 기업과 인재가 몰려 드는 특성화단지로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파주 출판도시’로도 불리는 파주출판산업단지가 대표적인 예다.

국가산업단지였던 파주 출판산단은 출판사와 인쇄소 등 ‘책 공장’이 몰려 있는 공단에 불과했다. 주거는 물론이고 이렇다 할 문화·휴게시설도 갖추지 못했다. 그러다 2008년 2단계 산단 개발사업이 본격화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입주기업들이 먼저 협동조합 방식의 운영기구를 만들어 외형적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나섰다. 다양한 디자인의 사옥들이 들어서면서 단지의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다양한 문화공연과 북카페가 속속 들어서면서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굴뚝공단’의 대명사였던 ‘구로공단’의 탈바꿈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1964년 국내에서 첫 산업단지(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로 지정된 산단 역사의 시초였다. 한때 국가 전체 수출의 10%를 차지하며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구로공단의 변신은 1997년 수립된 ‘구로단지 첨단화 계획’에서 비롯돼 2000년대 들어 본격화했다.

정보통신기술(IT) 산업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떠오르던 시기다. 생산 중심적인 산업단지의 개념을 생산·업무·연구·교육 등을 포함하는 혁신적인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게 계획의 핵심이었다. 조립금속·섬유·인쇄 중심이었던 공단 구조를 고도기술·벤처·패션디자인·지식산업 등 첨단업종으로 재배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우선 구로공단의 명칭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꿨다.

매캐한 연기를 뿜어대던 굴뚝이 솟은 2, 3층짜리 공장 대신 100여 개의 지식산업센터(아파트형 공장)가 세워졌다. 강남 테헤란로에 몰려 있던 IT 벤처기업들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공단 노동자들의 숙소였던 3평 남짓한 일명 ‘벌집촌’은 고층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대신했다. 군청색 작업복 일색이었던 근로자들의 모습도 와이셔츠에 정장 차림이나 캐주얼복으로 세련됐다.

열악했던 의류 봉제 공장들이 문을 닫은 자리에 마리오아울렛, W몰 같은 대형 패션타운이 조성됐다. 동대문 패션타운과 함께 서울의 양대 쇼핑타운으로 꼽힌다. 박용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구로공단의 부활’이란 보고서를 통해 “구로단지의 성공은 기업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군 역할을 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도 파주출판도시와 구로공단의 변신에서 산단의 혁신 방안을 찾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해 11월 21일 파주출판단지에서 산업단지 혁신 대상단지 공모설명회를 열고 노후 산단 혁신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안산 반월·시화, 인천 남동, 경북 구미, 전북 익산 등 9곳을 선정해 구조 고도화를 진행하기로 했다.

2015년부터는 지방산단까지 대상을 확대해 매년 5개 안팎을 선정해 혁신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파주출판도시와 판교테크노밸리처럼 기존 공단의 이미지를 벗은 형태로 가야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며 “정부 지원이 중요하지만 입주 기업들의 자발적인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201408호 (201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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