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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 ‘진정한 승자’ 릴레이 인터뷰② 재선 성공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대통령 혼자 나라 못 바꿔…정당정치가 안정돼야 한다” 

사진 지미연 기자
■ “김대중·노무현의 역사를 잇는 민주당의 장자 되는 게 정치적 꿈” ■ “도지사로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했더니 따르는 사람들 많이 생겨” ■ “4년 동안 반대자 앞에서도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 배웠다” ■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공정함과 국민과의 신뢰 형성” ■ “진보의 영원한 가치는 휴머니즘… 민족해방·반외세·반기업은 진보 아냐”

▎안희정 지사는 재선에 막 성공한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 신중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기회가 오면 국가를 경영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안희정(49) 충남지사는 야권의 ‘잠룡(潛龍)’으로 불린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소장파 의원들이 ‘안희정 리더십’에 대해 세미나를 열 정도로 그는 6·4지방선거 이후 주가가 상승했다. 그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재선에 막 성공한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 신중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기회가 오면 국가를 경영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7월 9일 오후, 충청남도의 새 중심지로 개발 중인 홍성군 ‘내포(內浦) 신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충남도청 신축 청사를 찾았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 50분 거리에 위치한 청사 안에 들어서자 1층 로비 중앙에 ‘이달의 추천도서’가 추천자의 이름과 함께 놓여 있었다. 안희정 지사가 공무원들의 자기계발을 위해 책 읽기를 권장하면서 매달 도청 간부들이 돌아가면서 추천도서들을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안 지사는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했다.

안 지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있다”고 했다.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서일까? 성(聖)과 속(俗)을 망라하고자 하는 열망과 균형감각이 느껴졌다. 안 지사는 “읽는 속도가 느리다. 한 구절을 읽고 나서 그 뜻을 음미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생각을 발전시키려다 보니 진도가 늦더라”고 했다. 지혜를 얻기에는 다독(多讀)보다는 다상량(多商量)이 좋은 법이다. 공손하게 손깍지를 끼고 질문을 기다리는 안 지사에게는 가벼운 인사부터 건네는 게 좋을 듯했다.

내포신도시로 오는 길이 도로 포장도 시원하게 잘돼 있고 전망도 탁 트여 있더라.

“여느 수도권 신도시처럼 왁자지껄하지 않고 풍광이 좋지요. 여기 있다가 서울에 한번 가면 도무지 복잡하기만 하더라고요.(웃음) 충청남도의 중심지가 될 내포 신도시는 300만 평의 넓은 땅에 조성되고 있지요. 우선 충남도청과 도의회, 도교육청 등 행정타운을 중심으로 도로가 시원하게 나 있고, 앞으로 명품신도시로 발전할 겁니다.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작은 도시들이 잘 조성돼 있는데, 우리나라 도시처럼 떠들썩하지 않고 쾌적하고 여유가 느껴지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번잡하고 왁자지껄한 도시에서 익명으로 사는 데 익숙하죠. 하지만 저는 그게 20세기 도시문명의 독약이라고 생각해요. 익명(匿名)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서로가 오순도순 실명(實名)으로 사는 게 좋지 않은가요!”

사람 사는 재미를 느끼신 것 같습니다.

“여기 도청 주변에 어린이집이 있는데, 제가 이제는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익숙해져서 ‘어! 김 주사 딸이구나’, ‘박 과장 아들이네’ 하면서 제법 알아보게 됐어요. 우리 전통의 삶의 방식은 이처럼 누구든 이름을 알고 불러주는 것이잖아요. 인간은 실명의 관계망에서 서로를 느끼며 살아가야 건강해지는데, 인공으로 만들어진 도시에서는 자꾸 익명성 속에 숨으려고만 하죠.

저는 실명에 근거한 전통적인 삶의 방식, 전통적 규범문화를 개선해 오늘의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내포신도시가 번잡하지 않은 소도시라야 제격일 것 같아요. 그래야 인간관계가 잘 형성되고, 그 관계망이 사람들을 살맛 나게 하겠지요.”

여간해서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충청 사람들이지만 안 지사에 대해서는 인간미가 있고, 예의 바르다는 말들을 자주 한다. 안 지사가 민선 6기를 공정하게 펼치겠다고 다짐했다는 7월 1일의 취임사 내용에도 비슷한 대화가 등장했다. 도민들과 도지사 간에 오간 대화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아버님?” “이제까지 해 왔던 대로 쭉 그대로만 혀.” “이대로 했던 것이 뭔데요?” “어디 치우치지 말고 공정하게만 혀, 합리적으로, 예의 잘 지키고, 그러면 돼.”

이날 취임사에서 안 지사는 민심을 얻었으니 자신 있게 도정을 펼쳐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민선 5기, 많은 도민 여러분께서 민주화운동가, 좌파라고 불리어지는 386정치인이 도지사가 돼서 도정이 얼마나 시끄러울까 염려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4년이 지나 보니 ‘사람 합리적으로 괜찮더라,’ 아마 이래서 저를 도지사를 한번 더하라고 시켜주신 거 아닐까요?” 그 자신감의 이유를 듣고 싶어졌다.


1 ‘현장행정’을 즐기는 안희정 지사. 지난 1월, AI 확산을 막기 위해 논산시 강경읍에 설치된 방역초소를 찾아 공무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2 여간해서는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충청 사람들이지만 안 지사에 대해서는 인간미가 있고, 예의바르다는 말들을 자주 한다.



공직자들부터 먼저 공정해야

취임사를 읽어봤습니다. 재임하는 동안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하니까 사람들이 따라주더라는 말이 인상적이더군요.

“저는 지난 4년 동안 충남도가 수행하는 농업정책, 중소기업 정책, 다문화정책 등 각종 정책과 관련한 부분에서 공정함이라는 정의의 가치를 늘 생각해서 그에 맞는 정책들을 채택해 왔습니다. 비유하자면, 정의는 둥근 축구공과 같아요. 공이 땅에 떨어질 때마다 닿는 면이 다르죠. 정의라는 축구공이 통통 튕기면서 시대라는 땅과 접촉한 면이 그 시대의 정의라고 봅니다. 그럼 우리 시대의 정의의 가치는 뭘까요? 제 생각에는 공정함입니다. 그게 국가와 연결될 때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로 나타나죠.

우리 몸이 혈액순환이 잘 안되면 몸이 아프고, 성장이 잘 안 되잖아요. 국가나 지방정부도 우리 몸과 같은 유기체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정함이라는 가치를 지켜가야 합니다. 우선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치단체와 국가는 공직자들부터 공정해야 합니다. 물론 저와 충남도의 공직자들이 나름 공정함을 추구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 도(道)도 여전히 크고 작은 갈등도 있고, 1인시위도 하고, 집단으로 데모도 하고 그래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도 재선에 성공한 데는 공정함을 위해 애써온 것을 도민들이 평가한 것이 아닐까요?

“제가 노력한 게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신뢰를 잃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공직과 관련해서 특히 신뢰는 ‘공적 권력’의 공정함으로 나타납니다. 법과 제도의 영역에서는 더 공정함이 필요하죠. 대법원 로비에 양팔 저울을 들고 있는 여신상을 세워둔 것도 그런 의미가 있지요.

예전에 제가 쓴 〈담금질>이라는 책의 서문에도 나오는 얘기지만 ‘출렁이는 뱃전에 앉아 수평자 눈금을 보는 것’이 공정입니다. 그렇게 어렵다는 거예요. 공정함은 상대적 개념이기도 하고, 또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사실은 공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도 필요한 겁니다. 법과 제도만으로 안 되기 때문에 정치라는 영역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되지요.”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충남도민들은 지방정부는 진보 성향인 안 지사에게 맡겼지만 도의회는 보수 성향의 새누리당을 선택했다. 충남도의회는 현재 새누리당 30석, 새정치연합 10석이다. 게다가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6석, 예결위원장을 모두 새누리당이 가져갔다. 안 지사가 4년 동안 절름발이 집행부의 수장이 되지 않으려면 특단의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어떤 리더십으로 이 문제를 풀어갈까?

반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재임기간 동안 리더십을 발휘한 영역은 무엇이고, 또 부족했던 것을 느낀 게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제가 가장 많이 배우거나 경험한 것은 제 마음을 평화롭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도지사로서 두 달에 한 번씩 도의회 단상에 서게 됩니다. 그때 (도의원들이) 저를 고의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비난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고, 저와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저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그 자리는 도지사인 제가 공개적으로 ‘너, 잘못했어!’, ‘너, 지금 잘못하고 있어’, ‘너, 옳지 않아’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저는 제가 옳지 않고, 제가 잘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어떻게 수용하면서 ‘나를 비판하는 저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 상황에서 내 마음을 평화롭게 유지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한다면 굉장히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데 이르게 됐지요. 왜냐? 대부분의 사람은 맞받아치기 바쁘거든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 너는 잘한 것 있어?’ 이렇게 싸우기 십상이죠”(웃음)

그럴 때 어떻게 대처했나?

“제 경험으로 보면, (반대자들의) 비판적인 견해나 문제제기는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인정하는 게 맞아요. 내 생각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상대방에게 그렇게 보여졌다는데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웃음) 그러면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상대방에 그렇게 보여진 것이라면 서로 합의해서 풀면 되죠.

잘 들어줘야 하는 문제라면 그 자리에서 잘 들어주면 되고, 대안이나 해결책이 필요한 데 내가 답을 제대로 못했다면 집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되는 겁니다. 현장에 가서 확인해야 답이 나오는 문제는 현장에 갔다 와서 대책을 마련해서 문제를 풀면 되는 일이고요. 이처럼 제 마음을 훈련시키거나 극복하고자 했던 일이 제가 4년 동안 가장 많이 한 일이었습니다.

제 마음의 갈등, 이를테면 (도민들로부터) 박수를 받고자 하는 설렘이나 또는 공격받을 때 느끼는 분노 같은 마음의 출렁거림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냉장고의 정격전압이 100볼트라면 그 전압을 꾸준히 유지해야지 100볼트였다가 220볼트였다가 왔다갔다하면 냉장고가 다 타버리게 되죠. 정격전압으로 꾸준히 가야 인생도 편하고 내가 하려고 하는 모든 정치행위를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겁니다.

제 경험으로는 그게 잘 안 되는 것은 많은 경우 내 이해타산이나 내 욕심을 따졌을 때 안 되기도 하지만 더 궁극적으로는 불안과 초조, 분노, 설렘 등으로 자기 맘이 출렁거릴 때 안 되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니 무슨 도 닦는 얘기 같죠.(웃음) 그런데 이게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예요. 모든 정치행위의 핵심이 사실은 이거예요.”

정치적으로 반대진영에 있는 이들의 비판적 견해나 문제제기는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경청과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것, 설렘이든 공격받을 때 느끼는 분노든 마음의 출렁거림을 없애야 한다는 안 지사의 경험담은 사실 오불관언(吾不關焉)하며 독주한다는 여론이 일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안 지사가 들려주는 고언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위로하는 노란 리본이 달린 양복을 입고 기자를 맞았던 안 지사가 본격적인 인터뷰가 진행되자 와이셔츠 차림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곧 있으면 충남도의 추경 예산안이 도의회에서 통과돼야 하는데, 이걸 풀어가는 게 쉽지 않아요. 쉽게 말해 도의 예산은 100원 밖에 없는데, 여기저기서 몇 천 원씩 요구해서 모두 1만 원을 편성해달라고 요구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어떤 정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갈등이 빚어지거나 나중에 주민들의 민원으로 표출되게 됩니다.

그렇게 정책을 선택할 때 내 친소(親疎)관계나 내 마음속 갈등의 어둡고 밝은 면에 따라 선택하다 보면 추경 편성이 어떻게 되겠어요? 도지사가 평상심을 가지고 지역, 주민 간 갈등에 대해 적절하게 휘슬을 불어주면 축구장의 선수들이 제가 부는 휘슬에 존중하고 따르게 되지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휘슬을 불거나 말거나 자기들 마음대로 드리블해서 골을 넣어버리는, 어렸을 적 동네축구처럼 되겠지요.”(웃음)


▎지난 2월 내포신도시에서 열린 충남도청 개청식에 참석하기 위해 헬기에서 내린 박근혜 대통령을 마중나온 안희정 지사. 안 지사는 박 대통령이 국정원의 대신개입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평상심 유지하면 내게 큰일 맡겨질 것”

도지사는 축구 경기의 공정한 심판의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겠군요?

“월드컵 경기 시작하기 전에 심판들이 모여서 그 대회와 관련해 룰 셋팅을 하잖아요. 골을 더 많이 내는 흥미진진한 게임을 하려면 어떤 부분에 어드밴티지를 줘야 할 것인지 결정하겠죠. 또 관중들 눈높이에 맞는 경기를 위해 지루하더라도룰을 엄격하게 적용하기도 할 것이요. 월드컵 경기의 룰 셋팅을 국가나 자치단체에 적용한다면 시대에 맞는 정책과제를 선택하는 문제와 같아요. 제 말은, 시대와 역사에 맞는 지도자의 역량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지금은 산업입국을 말하거나 성장지상주의와 개발을 강조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죠. 한마디로 우리가 밥 굶는 것은 면했지요. 과거 시대의 역사적 과제와 지금의 과제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다르고 또 달라야 합니다. 월드컵 경기 때는 4년마다 한번씩 룰 셋팅을 합니다. 한 국가나 자치단체의 룰 셋팅도 달라진 시대에맞춰 조율해야 돼요.”

4년 재선 임기를 이제 막 시작했는데, 룰 셋팅을 바꾸고 평상심만 잘 유지한다면 국가경영도 잘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럼요. 더 큰 (비판의) 목소리와 더 큰 폭풍이 닥치더라도 제 마음의 평상심만 유지할 수 있다면 제게 더 큰일이 맡겨지겠죠. 지금은 (충남도지사는) 무대로 치면 지금은 소극장이고….(웃음) 지방자치시대라고 하지만 도지사가 하는 일의 80%가량이 이미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사무에 불과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집행하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정해져 있으니 그걸 가지고 제가 이렇게 바꾸겠다고 약속하기가 어려워요. 현실이 그렇습니다.”

안 지사는 자신의 주장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드러내는 스타일이다. 2010년 충남도지사 선거에 처음 나설 때도 “충청도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꿈, 국민통합의 깃발을 다시 세우겠다는 소망, 분권과 균형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각오로 출마하게 되었다”라며 “충청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높이고 그 자부심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해 대권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인구 200만 명에 연간 6조 원의 예산을 움직이는 광역자치단체의 수장일 뿐이다. 국가경영은 또 다른 정치와 행정의 영역이다. 우선 그가 4년 동안 충남도청의 공무원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궁금했다.

책 읽기를 권유하는 것도 그렇고, 선진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충남도공무원들을 엘리트로 만들어가는데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데요?

“저는 정보(업무전산화와 전자정부)분야에서 충남이라는 지방정부가 공정하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면서 유능하게 일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거버넌스(정부부문과 민간부문 간 협치)와 전자정부 등 공무원들이 일하는 시스템을 개선하도록 독려해왔지요. 쉽게 말해 ‘지식경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집단지성이 만들어질 수 있는 행정업무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충남 지방정부가 효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도민들의 참여를 통한 민과 관의 협치(協治)를 강조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도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도민들에게 정보가 공개돼야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충남도는 세입·세출에 대한 실시간 정보공개가 도청 홈페이지(www.chungnam.net)를 통해 이뤄지고 있어요. 국회에서 충남도의 실천사례를 바탕으로 지금 법률안이 추진되고 있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보공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행정전산화를 최대한 이용합니다. 충남도는 공무원이 보직을 변경할 때는 전산화된 틀로 관련업무와 인적자료를 후임자에게 인계하도록 돼 있어요. 도청 직원들이 수행하는 3800건의 모든 업무를 과제목록으로 정해서 전산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주민들과 관련한 다문화정책이라면 여성가족부나, 노동부, 지식경제부 등 관련 부처가 주문하는 업무가 각기 다르더라도 관련 공무원이 행정포털에 공개되는 정보를 통해 업무협조를 받을 수 있죠.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도청 간부들이 공문서를 회람시키고 다 읽었는지 서명하도록 강요했지만 지금은 행정포털을 통해 타 부서에서도 내용 공람과 검색, 과제 목록 정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업무전산 프로그램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융·복합행정, 민과 간의 협치행정,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정보 축적을 통한 공무원의 지식혁명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이 성과를 이뤄내 언젠가는 나라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관과 민이 협치를 하고 있다는데 충남도민은 어떻게 도정에 참여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민(民)은 자기의 욕구나 이해관계가 있을 때 참여하는 경향이 있지요.(웃음) 그런데 우리의 살아가는 삶이 따지고 보면 이해관계가 아닌 게 없습니다. 출생신고, 육아지원, 학교급식, 도로정비, 청소서비스 등등 모든 게 정부의 공공 행정서비스와 연관돼 있죠. 그럴 때 민은 공개된 정보를 통해 행정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공무원 입장에서 민의 개입은 처음에는 업무에 대한 방해이고, 귀찮은 일이겠지만 조금 지나면 주민 참여가 되니 오히려 더 좋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학교 급식에 대해 학부모가 문제제기를 하면 그분에게 ‘급식위원회’를 만들어 개선해볼 테니 참여해서 함께 해결해보자고 제안하면 됩니다. 그러면 학부형도 위원회에 들어와서 자신이 주장하는 것만큼 책임을 지게 되고 문제를 개선하는 데 적극 참여하게 되지요. 이게 협치행정입니다. 이것을 잘 이끌어내는 일이 공무원 역량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거죠.”

관과 민의 협치 이뤄내

그 과정에서 도지사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중요한 얘기입니다. 민의 민원과 개입에 대해 (정치)지도자가 그냥 내버려두면 협치가 되지 않습니다. 민의 ‘권리의식’을 적절한 자기의 ‘의무의식’으로 전환시켜내기 위한 지도자들의 노력이 필요하죠. 국가의 지도자이건 작은 자치단체 지도자이건 모든 민주주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자기 권리주장만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그 권리가 공동체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수반하도록 하는 권리로 인식되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정치지도자들이 역할을 해야하는데, 그 핵심은 공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을 수사한다면 측근이 아니어도 감옥을 가야지요. 그런데 그게 공정해야 합니다. 내 것(한나라당을 지칭한 듯)은 놔두고 상대방 것만 수사하자? 그건 공정하지 못한 것이죠. 권력을 가진 쪽이 자기에게 더 엄격하게 하고, 야당과 상대에게는 더 많이 정상을 참작하는 것이 공정함이 아닐까요? 1/N로 똑같이 중학생과 초등학생 밥그릇에 밥을 퍼주는 것은 공정이 아니죠.”

안 지사의 화두는 예의 공정성(fairness)의 문제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지만 ‘2002년 대선자금’과 관련해 불법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됐던 아픈 전력이 있다. 그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던 그는 참여정부 내내 공직에 나서지 못했고, 정부의 중요한 정책결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큰 손실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도지사로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두루 경험하고 있네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와서 이 공정성이 너무 약화됐습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든 전직 대통령 비망록(국정원의 NLL 회의록 공개사건을 지칭) 사건이든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안돼요. 저는 솔직히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저 정말 몰랐는데, 국가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것을 저는 알지도 못하고 선거 때 야당의원이 국정원 직원을 감금했다고 얘기했네요. 야당에 정말로 부끄럽고 죄송해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정말로 고민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책임자를 문책하겠습니다.’

이렇게 정리했어야죠. 그런데 이 말씀을 안 하고 계시니 우리 사회의 정의감, 신뢰가 막 무너져가는 겁니다. 공동체의 신뢰가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요? 2003년 뉴욕대정전(停電) 때처럼 세계적인 도시에서도 약탈과 방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저는 그런 신뢰의 붕괴를 가져온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게 굉장히 아쉬움을 느낍니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사회정의에 입각해 국민과의 신뢰형성의 순도를 단 1도라도 더 높이는 것입니다. 원전 수주가 큰 일이 아니에요. 그건 그냥 놔둬도 기업인들이 다 알아서 할 겁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역사를 잇는 장자가 되고 싶은 것이 꿈인 안희정 지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했다. 사진은 2008년 안 지사의 고향인 충남 논산의 딸기 작목반을 찾은 노 전 대통령 부부.



나라발전 위해 정당정치 안정시켜야

기자는 1994년 여의도의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을 돕던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사실 ‘정치인 안희정’을 본격적으로 담금질한 것은 1994년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하면서부터였다. 그는 평소 “노무현이라는 큰 스승과 함께하며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한 신념과 가치를 재정립할 수 있었다. 진보개혁주의자로서 제2의 자각을 거쳤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도 20년의 세월은 그의 생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재선 단체장이면 이제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 정치인이다. 여전히 노무현의 적자, 친노(親盧) 진영의 정치인으로만 불리는데 대한 아쉬움은 없나?

“민주당의 역사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역사이고, 저는 그 민주당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역사를 잇는 장자(長子·맏아들)가 되고 싶은 것이 꿈이에요. 그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가 똑같이 간직해온 것입니다. 386민주화운동 세대로서 제 세대에 마무리지어야 할 몇 가지 시대적 임무가 있습니다.

첫째는, 민주주의 핵심인 정당정치를 안정시키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정당이 급조됐다가 사라지는 일이 잦아지면 국민에게 정치불신만 야기시키게 됩니다. 둘째, 국가운영에서 지방자치를 정착시키는 일이죠. 그 다음은 한반도에서 분단과 대립상태를 조금이라도 극복하는 일이고, 마지막으로는 20세기 양극화로 진행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중병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병원에 가면 암을 치료하는 것이 모든 의사의 숙원사업이듯 이 시대 정치인들은 이 과제를 풀어내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요?

“제가 정당정치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 하나 대통령 된다고 해서 우리 시대를 못 바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국가를 운영한다고 하지만 실제 대통령이 권력을 행사하는 기간은 3년입니다. 1년은 우왕좌왕하다 보내고, 나머지 1년은 다음 정권은 누가 되느냐 하고 공무원들이 눈치 보게 되니까 실제 일하는 기간은 3년도 제대로 안됩니다. 그 권력으로는 대한민국을 못 바꿉니다.

청와대 문패가 어떻게 바뀌든 정당정치가 안정돼야 정당의 정책 기조가 그대로 유지됩니다. 그래야 어떤 정책적 흐름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운영한다고 하는지 알게 되니까 그게 상수(常數)가 됩니다. 그러지 않고 지금은 다 변수(變數)가 되어버리니까 시장의 행위자들인 기업과 가계, 이익집단들은 그때그때 만들어졌다가 없어지는 권력을 향해 줄을 서거나 패를 묻기에 바쁘죠.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그 패를 바꿔버리려고도 하고요.

저는 대한민국이 처한 오늘의 위기 원인이 이것이라고 봅니다. 그걸 해결하려면 정당정치가 제대로 뿌리내려서 국정을 책임 있게 운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정당들은 권력교체기마다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으니 도대체 누가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민주당, 진보진영의 정당정치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 겁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닌 민주당을 여전히 고집하는 안 지사의 발언에서 현재의 야당에 대한 그의 불만이 느껴졌다. 임석규 <한겨레> 논설위원은 최근 한 칼럼에서 “지금 야권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다. 야권은 두 거목, 김대중과 노무현 이후 권위 있는 리더십을 세우는 데 실패했다. 리더십의 공백기를 채운 건 고만고만한 중간보스들이다. 안철수와 김한길, 손학규, 정동영, 그리고 문재인과 정세균, 박지원 등 중간보스들의 군웅할거는 야권을 너무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중략)

중간보스들의 세력균형이 허물어질 때 비로소 야권의 권위있는 정치리더십이 세워질 수 있다. 누구든 ‘강한 놈’이 출현해 무림을 제패해야 야권에서 집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 효율적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사람이 누구든,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 또는 막강한 ‘킹메이커’가 될 것이다”라고 예견한 바 있다.

시대에 맞게 보수와 진보 업그레이드해야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안 지사는 스스로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 또는 킹메이커를 자처한 셈이다. 무릇 대권을 꿈꾸는 주자라면 깊이 있는 식견과 균형 잡힌 사고, 행동거지가 투명해야하는 법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이념적 지향이 궁금해졌다.

정치인과 자치단체장을 거치면서 그간 사상이나 이념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저는 우선, 지금의 진보와 보수진영이 아주 잘못된 주제를 가지고 싸우고 있다고 봅니다. 보수주의의 가치는 반공이 아니라 자기 책임성, 그리고 시장의 자율성입니다. 진보의 가치는 민족해방이니 반외세·반미·반기업·반세계화 등 계급적 투쟁의 개념이 아니죠. 진보의 영원한 가치는 휴머니즘이고 우애와 연대입니다. 그런 가치를 가지고 진보와 보수가 이 시대의 과제를 풀어줘야 합니다. 저는 중도주의자라기보다는 21세기에 맞는 보수와 진보를 업그레이드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보수와 진보는 원수가 아닙니다. 선과 악의 개념으로 싸울 필요가 없어요. 견해가 다를 뿐이죠. 20세기까지는 선악의 싸움이었습니다. 식민지 청년은 침략자와 견해가 다른 게 아니라 물러가라고 싸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지금처럼 전 세계적인 자유무역 시장의 질서인 WTO 등으로 제도화가 끝난 상태에서의 갈등은 선악의 개념으로 풀면 안 됩니다.

기업가 없는 노동자 없고, 노동자 없는 기업가 없습니다. 서로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 각자 존중해줘야지요.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싸움은 더 이상 안 됩니다. 그렇게 정치행태를 바꿔보자는 것, 20세기 낡은 정치의 내용을 바꾸자는 노력을 저는 촉구하고 있고 그걸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안 지사의 말소리는 낮았지만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면이 강한 사람은 역사의 위기상황에서 리더로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정치의 극심한 대립을 끝내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정치적 ‘발톱’을 숨기지 않았다. 새누리당이 원희룡 제주지사, 남경필 경기지사를 당선시키면서 차기대선주자군에서 세대교체의 희망을 품었듯이 안희정 지사 역시 야권의 잠룡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역사를 잇는 장자가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이 현실로 이뤄질지 지켜볼 일이다.

201408호 (201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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