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긴급대담 | 책임총리 아니라면 폐지해야 vs 대통령 인식전환이 우선 

“총리 임명이 정치 갈등 불러오고 국정 난맥상 가중시켜” vs “총리는 대통령 보좌하는 자리지만 견제 기능도 있다” 

글·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사진·지미연 기자,정리·안신정 인턴기자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왼쪽)과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는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고정불변의 상수(常數)로 여겨졌다. 제1공화국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총리가 국가 권력구조에서 빠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정국은 ‘이 나라에 총리가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고,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국가는 그럭저럭 작동했다. 오히려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국회 제출을 둘러싸고 정치권은 피아(彼我) 구분 없는 정쟁에 돌입하고 국론은 분열됐다. 대통령의 총리 지명과 청문회가 국정운용의 걸림돌이 되는 듯했다.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정홍원 총리를 자리에 주저앉힘으로써 두 달여간 온 나라를 들쑤셔놓은 국무총리 인선 문제는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대통령은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고, 이를 지켜보던 국민도 맥이 풀렸다. 총리제 무용론에 입각한 행정학자와 총리제 유지를 지지하는 헌법학자의 대담을 통해 총리제의 현 주소와 미래 진로를 살펴봤다. 대담은 7월 13일 오후 <월간중앙> 회의실에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사회자(박성현)_ 올 상반기 정치권은 국무총리 인선 문제로 아주 시끄러웠습니다. 두 명의 총리 후보가 낙마했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사의를 표명한 총리가 유임됐습니다. 보는 사람도 답답했고 뭔가 뒤죽박죽 돌아간다는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이 정도면 국무총리라는 존재가 한국 정치의 질곡으로 작용한 것 아닌가요?

홍성걸_ 일련의 총리 후보자 지명 및 검증을 둘러싼 파동은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입니다. 총리제와 관련한 제도적 측면, 정치적 측면, 개인적 문제가 뒤엉킨 것이죠. 정치권과 국민은 이를 분리해서 보지 않고 뭉뚱그려보니까 혼란이 가중된 듯도 합니다. 국무총리는 힘이 실리기도 하고, 안 실리기도 하는 그런 자리입니다. 대통령이 총리에게 권한을 허용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박 대통령이 국정을 도맡아 하다시피 하는 현 정부에서는 총리가 별로 할 일이 없을 겁니다.

김종철_ 문제는 제도보다는 운용에 있습니다. 헌법은 총리에게 헌법적 기능과 권한을 보장하는데도 대통령과 정치권, 나아가 국민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파열음이 납니다. 국무총리제에 대한 기본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헌법 정신에 맞게 총리제를 운용하려는 노력 자체를 기울이지 못하는 겁니다.

헌법이 총리에게 준 권한과 지위, 역할을 제대로 숙지해야 합니다. 특히 총리를 지명하는 대통령은 헌법정신을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박 대통령이나 역대 대통령 모두 아쉬움을 남깁니다. 정리하자면 제도를 탓하기에 앞서 총리제를 잘 운용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회자_ 총리제가 한국적 현실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제도인가요?

홍성걸_ 최근의 사태만 놓고 보면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의 문턱도 넘지 못하고 낙마했습니다. 일부 여론이 일방적으로 재단하고 뒤흔든 결과입니다. 이는 국력 낭비입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상당수 행정 조직의 장관·국장·과장급까지 비어 있는 국정 공백상태가 지속됩니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국무총리 제도 자체를 재고해봐야 합니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총리가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총리 임명에 이렇게 소란을 떨고 국력을 낭비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어요. 우리 정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재구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총리제’는 헌법제정 당시 타협의 산물

김종철_ 앞서 홍 교수께서도 지적했듯이 총리제와 관련해서는 제도의 문제와 정치적 운용의 문제가 뒤섞여 있습니다. 제도는 제도로,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합니다. 제도와 운용에 대한 각각의 진단이 옳다고 해도 해법이 서로 엉켜서는 안 됩니다. 총리제를 없애자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도로서 총리제가 갖는 장단점이 있지만 우리 헌정사에 오래된 총리제는 국민에게 이미 친숙하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홍성걸_ 헌법 86조 2항은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규정합니다. 이는 대통령의 어떤 명령을 주느냐에 따라 총리의 권한이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헌법 규정 자체가 모호한 거죠. 게다가 우리 헌법은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면서도 내각책임제에 유래하는 국무총리를 두고 있습니다.

대통령제와 총리제의 결합은 1948년 헌법제정 당시 정치적 필요에 따른 어정쩡한 타협의 산물입니다. 당시 한민당이 마련한 내각책임제 요소와 이승만 대통령의 대통령중심제 요소를 혼합한 결과물인 셈이죠. 대통령중심제를 시행한다면 총리제 요소는 헌법에서 진작에 솎아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과 같은 ‘의전총리’, ‘바지총리’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요?

김종철_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 헌법은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도 매우 분권적인 장치를 두고 있어요. 그건 총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야 하므로 대통령의 의사에 따라 총리가 좌지우지될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대통령은 직접 행정권을 행사하기보다 총리로 하여금 중앙행정기관인 행정부를 통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총리는 국무위원 제청권을 가집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총리를 통하지 않고서는 행정부 운용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국무총리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 임명할 수 있습니다. 국회가 지지하지 않으면 대통령도 인사를 함부로 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최근 총리 지명에 따른 정치권 파동이 잘 말해줍니다.

홍성걸_ 대통령의 총리 임명은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지만 해임은 어떤가요? 총리 해임은 대통령이 아무 때나 원하면 하는 겁니다. 그런 총리에게 무슨 힘이 있을까요?

김종철_ 총리를 해임하면 새 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는 총리 해임도 함부로 못하는 거죠. 대통령이 정부수반으로서 행정권을 최종 책임지는 국가기관이기는 하지만 헌법상 행정권 담당자는 대통령 1인이 아니라 대통령을 포함해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국무회의, 행정 각부 등으로 구성되는 ‘집단적’ 기관인 ‘정부’입니다.

대통령이 혼자서 행정권을 운용하지 말고 각종 심의, 보좌하는 기관을 통해 행사하라는 뜻이죠. 그래서 헌법은 매우 분권적이며, 그 분권의 핵심은 국무총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대통령의 행정권 오용을 막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국무총리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공간을 내주지 않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5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 중인 박근혜 대통령. 당시 사퇴의사를 밝힌 정홍원 국무총리 자리는 비어 있다.



민생·내치 주도하는 총리 나올 수도

홍성걸_ 대통령은 반기를 드는 국무총리를 언제든 해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행정권이 정부에 있다고 하셨지만 그 정부의 수반이 대통령이기에 사실상 대통령에게 행정권이 있는 것이죠. 1987년 개헌된 현행헌법이 대통령 변형제를 표방한다면 지금까지 그 정신에 따라 운용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위헌소송을 내지 않았어요. 아니 위헌소송 제기 가능성이 없는 것이지요.

헌법에 총리의 역할이 어떻게 명시됐든 간에, 헌법이 무엇을 규정하든 간에 대통령은 총리를 필요에 따라 임면할 수 있습니다. 국회 동의를 얻느냐의 문제는 정치력의 영역일 뿐 그게 대통령중심제의 근간을 흔들지는 못할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 헌법은 독자적 권한을 행사할 총리제를 뒀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김종철_ 총리는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을 대신해 정치적 책임을 감당하기도 합니다. 헌법상 대통령은 국회에 출석해 발언할 권한은 있으나 국회에 직접 응대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대신 국회는 국무총리를 불러 질의하고 대통령에게 총리 해임을 건의하는 방법으로 정부를 통제하고 의회민주주의를 구현합니다. 따라서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기도 하고 견제하기도 합니다. ‘바지총리’, ‘방탄총리’를 방지하는 장치가 많음에도 그런 측면은 간과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헌법이 대통령중심제라는 고정관념에 너무 사로잡힌 탓이겠지요.

사회자_ 현행 헌법 하에서도 책임총리가 가능할까요?

홍성걸_ 대통령이 허용하는 선에서만 가능합니다. 결국은 대통령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죠. 책임총리를 시킬 것인지 아닌지는 대통령이 알아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안 시켜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총리가 제 역할을 하자면 반드시 개헌을 해야합니다. 명실상부한 대통령중심제로 가든지, 아니면 내각책임제로 가든지 양단간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김종철_ 헌법 86조 2항에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부를 통할한다고 했기에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는 것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가능성은 있지요. 대통령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야권과 연정을 한다거나 새누리당 같은 국회 다수파 의견을 반영해 총리를 임명할 수도 있는 겁니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는, 민생과 내치는 총리가 주도한다고 하면 책임총리도 가능하죠. 그게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견지에서 헌법 위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죠. 헌법이 정치적 선택지로 허용하는 범위에 있으니까요.

사회자_ 그러면 우리 헌정사에 ‘책임총리’가 있었던가요?

홍성걸_ 김영삼 정부 시절의 이회창 총리도 책임총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반기를 든 정도였죠.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총리도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위임해둔 것에 불과합니다. 왜? 민주화 운동의 대선배이기 때문이죠. 집권층 내부의 역학관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책임총리를 구현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김종필 총리를 총리에 지명하고 싶어서 했을까요?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합의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자 했지만 김종필 총리가 절대 안 된다고 해서 못한 겁니다. 이때는 총리가 책임성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여집니다.

대통령에게 ‘노(No)’ 할 수 있는 총리 있나?

사회자_ 결론적으로 제도에 큰 문제는 없는데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이 헌법 취지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은 건가요?

홍성걸_ 만약 우리 헌법에 총리 역할과 권한을 명확하게 못박아서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따르게 했다면 지금 체제로 가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헌법 86조와 같이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는’ 직책이므로 대통령 마음먹기에 따라 총리의 권한이 달라집니다. 총리의 모든 권한을 대통령에게 위임해놓은 것과 같아요. 그래선 안 되는 거죠. 총리제 취지를 살리려면 정·부통령제로 가거나, 내각책임제로 돌아서자는 겁니다.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이 언제든 경질이 가능하고, 헌법도 대통령 명을 받으라고 하는 상황에서 총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이 제청하라는 국무위원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나요? 거부하면 옷을 벗길 텐데 말이죠. 김 교수께서는 헌법상 총리가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보세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김종철_ 물론 대통령의 고려가 있어야 책임총리가 가능하지만 대통령이라고 해서 다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의 법률적 행위는 반드시 문서로 해야 하고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이 반드시 부서해야 합니다. 주요 국정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으 성되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보좌하면서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제도적 장치는 있습니다. 다만 경질·해임·겁박 같은 정치적 압력에 의해 무력화될 뿐이죠. 그렇다고 꼭 개헌을 해야 한다고 보진 않습니다. 지금 제도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여소야대 국회가 되면 책임총리, 동거정부가 가능하잖습니까? 게다가 마음에 둔 총리를 임명하지 못하고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킨 걸 보면 경질도 함부로 못합니다. 또 지금은 대통령은 국회 동의를 얻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핵심적 정책 결정은 다 국회에서 이뤄지죠. 대통령은 국회가 결정하고 만든 것을 집행하는 일을 할 뿐입니다. 대통령은 국회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며, 총리 임명건도 예외는 아닙니다. 박 대통령이 여야 의견을 수렴해 새 총리를 임명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논란을 빚었습니다.

홍성걸_ 결과보다 과정이 문제죠. 물밑 접촉이나 일정한 공감대를 이룬 상태에서 총리 후보자를 지명해야 하는데 박 대통령은 그러질 않았습니다. 대통령제에서 국무총리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습니다. 옥상옥의 행태를 보입니다. 총리실에서뭔가 정을 밀어붙이고자 하면 당장 청와대에서 제동을 겁니다. 총리가 사표를 쓰는 길밖에 없지요. 이제 이런 문제는 헌법 개정으로 명확히 한쪽 방향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생전인 2010년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헌법상 총리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국민이 ‘정책총리’(이명박 정부 당시의 표현으로 요즘의 책임총리)를 바란다면 헌법에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규정하든가 아니면 내각책임제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대통령의 명령이나 찬의(贊意)가 없으면 불가능하고 ‘무사안일’로 가면 방탄용이라는 말을 듣는 자리가 총리라는 이유에서다. 남 전 총리는 “그럴수록 역할 분담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성걸 교수



국무위원 제청권에도 실권 주어져야

홍성걸_ 경질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뜻을 어떤 총리가 거스를 수 있을까요? 책임총리를 하자면 개헌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권력을 나누자는 얘긴데 누가 그러고 싶겠어요? 헌법의 명시적 규정이 아니고는 책임총리, 정책총리는 불가능합니다.

김종철_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합니다. 책임총리를 할 거면 대통령을 왜 직선하겠어요? 내정은 총리가 다 하는데….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권한을 주는 것이고 그걸 견제하라고 총리를 두는 것입니다.

홍성걸_ 기본적으로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에요. 대통령은 삼권분립 제도가 견제하는 겁니다.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라고 있는 것이고요. 여러 기능을 총리에게 주는 것은 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아서 통할하도록하는 것일 뿐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김종철_ 대통령이 독재 내지는 제왕적 권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어 우리 헌법에 총리를 두는 겁니다. 보좌도 하고 견제도 하는 이중적 기능을 부여한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총리임명을 왜 국회 동의를 받도록 했겠어요. 삼권분립만으로 대통령 견제가 안 된다는 게 헌법학회의 기본 견해입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게 국무총리 같은 행정부 내의 견제장치입니다.

홍성걸_ 총리에게 주어진 부서 기능은 대통령 견제용이 아니라 내각 통할용입니다. 궁극적으로 총리가 대통령을 원활하게 보좌하라고 주는 권한입니다. 우리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역할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대통령 견제는 삼권분립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사회자_ 헌법이 규정한 총리의 제청권의 범위는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대통령이 정해놓은 인사안에 형식적으로 서명만 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총리 의견을 국무위원 인사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라는 취지인가요?

홍성걸_ 제청은 언급한 모든 것을 다 포함합니다. 결국은 대통령이 원하면 총리에게서 추천을 받을 수도 있고 논의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총리에게 ‘사인만 하시오’라고 요구할 수도 있고요. 총리 입장에서 ‘이게 아니다’ 싶어도 대통령의 뜻을 받든지 아니면 사표를 내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김종철 교수
김종철_ 헌법에는 제청·동의·승인 등 여러 법률행위를 두고 있습니다. 제청은 제청권자(총리)가 이니셔티브를 쥐는 것이죠. 법원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할 때 헌법재판소와 논의하지 않습니다. 국무총리의 제청권은 제안하고 청하는 권리입니다. 다만 대통령이 정부수반이기에 일방적으로 하는 것일 뿐 헌법정신은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국무총리가 그걸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박 대통령 ‘권력분점’ 싫어하는 게 문제

사회자_ 박 대통령은 총리의 제청권을 존중하는 편인가요?

김종철_ 원칙적으로 비판할 여지가 많다고 하겠습니다.

홍성걸_ 헌법정신에 따르면 총리가 제청권을 주도적으로 행사해야 합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그렇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헌법이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해석이 되기도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제청권을 포괄한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기본적 형식은 제청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는 게 맞지만 대통령이 해임권을 가진 마당에 그게 잘될까요?

사회자_ 다시 총리제 존폐 문제로 귀착되는 것 같습니다.

홍성걸_ 저는 총리제를 없애는 게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총리, 없어도 됩니다. 대통령 유고시 국무총리가 없어도 서열에 따라 국무위원이 국무회의를 주재할 수 있습니다. 총리실 기능도 사라지지 않아요. 각 부처에 분산되지만 행사는 됩니다. 총리가 없어서 국정이 마비된 것도 아닌데다 오히려 총리 임명이 갈등을 불러오고 국정이 올스톱되는 상황이라면 굳이 총리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김종철_ 대담 모두에 말했듯이 총리 임명 논란은 제도와 운용으로 분리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제도가 비록 완벽한 건 아니지만 운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제도의 단점은 운용을 잘하면 보완이 됩니다.

사회자_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운용을 제대로 안 하면 무용지물입니다. 역대 대통령이 총리제를 제대로 운용하지 않았다면 이 참에 제도를 바꾸는 것도 한 방법 아닐까요?

김종철_ 제도부터 고치고 보자는 방법론에는 회의적입니다. 새로 만든 제도가 현행 제도보다 더 낫다고 볼 수도 없는 거니까요. 대통령이 독선적이라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게 잘못입니다. 합리적 여론마저 무시되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결국 제도 운용의 문제죠. 총리제를 없앤다고 그런 불합리성이 제거되지는 않을 겁니다.

홍성걸_ 개헌은 현상에 변화를 줘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바꾸는 과정이라서 합의 도출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국민이 개헌에 동의한다면 총리제를 어정쩡하게 운용하기보다는 없애는 것이 나을 겁니다.

사회자_ 총리제가 폐지된다면 방패막이가 사라진 대통령에게 책임과 부담이 몰리게 될까요?

홍성걸_ 총리를 없애면 없애는 대로 각 부처로 부담과 책임이다 분산됩니다. 오히려 책임 장관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대통령이 만기친람하면 모든 부담을 져야 합니다.

김종철_ 총리제의 존폐를 떠나 관건은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이 효율적인 정치를 하지 않아서 탈입니다. 지금처럼 국회를 존중하지 않고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스타일을 고집한다면 총리제를 폐지한다 해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거예요. 총리제는 오히려 대통령에게 융통성을 부여하는 효과도 있어요. 총리를 내세워 국회와 소통케 한다거나 말이죠. 지금 대통령이 그걸 안 하니까 할 말이 없네요.

사회자_ 박 대통령의 총리관은 어떤 것 같나요?

김종철_ 아버지 시대의 국무총리 관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권력 분점을 싫어하잖아요. 정치는 기본적으로 분점입니다. 미국 대통령도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합니다. 총리 제도가 문제라기 보다는 대통령의 자세와 스타일, 총리 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문제입니다.

홍성걸_ 역대 대통령과 특별히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다만 대선 과정에서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 시행하겠다고 약속해놓고는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요. 총리 임명과정에서 여론이 악화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책임총리 한다고 했으면 해야죠. 아예 그런 소리를 하지 말든가요.

낙하산인사만 해도 대통령이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던가요? 민주주의에서는 낙하산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안 그러면 누가 선거운동을 해주겠어요? ‘낙하산인사는 하겠는데 과거 정부보다 덜 하겠다’고 하는 게 더 현실적이죠. 낙하산인사를 아예 안 하겠다고 선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말 해놓고 낙하산인사하니까 더 들끓는 것입니다.

김종철_ 낙하산인사가 보상의 측면도 없는 건 아니지만 책임정치 구현, 정치 세력화의 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국정운용과정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에게 주요 직책을 맡기는 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거기에다 ‘낙하산’이라고 이름 붙이면 나쁜 게 되는 거지요. 그게 과도해서 엽관제로 흐르면 민주주의가 혼탁해집니다. 그것을 막기 위한 장치로 임기제를 둔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임기가 보장된 자리마저 갈아치우는 일도 빈번한데 그것도 법치의 관점에서는 잘못된 관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6월 19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자신이 쓴 안중근 의사 관련 칼럼을 손에 들고 사퇴 여론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2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5월 28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후보직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정치인 장관 후보자에겐 관대한 청문회

박 대통령은 7월 10일 여야 원내대표단과의 회동에서 “현행인사검증 시스템에서 새 총리 후보자를 찾는 것이 너무 어렵다.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이미 경질을 예고한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언급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금과 같은 엄격한 인사청문회 관문을 통과할 인재를 쉽게 찾지 못했다는 하소연이기도 했다.

사회자_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제도를 놓고서도 정치권에서 말이 많습니다. 사람에 따라 검증의 잣대가 들쭉날쭉하다는 지적인데요.

홍성걸_ 지금의 인사청문회는 야당은 공격, 여당은 엄호하기에 여념이 없어요. 인사청문 위원 중에는 공직후보자보다 나을 게 없는 경우도 있는데 마구 소리 지르고 마치 자신이 포청천인양 행동합니다. 그래도 인사청문회는 없는 것보다는 나아요. 민주주의적 통제 기재의 하나니까요. 국회에 의한 행정부 견제와 균형의 수단으로는 좋은데 철저히 당리당략에 따라 운용된다는 점이 문제죠.

인사청문회 제도 강화를 추진한 당사자는 지금의 여당인 새누리당입니다. 박 대통령도 야당 대표시절인 2005년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을 전 국무위원과 공정거래위원장, 금융감독위원장, 방송위원장 등으로 확대하고 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추진했습니다. 다 자업자득입니다.

김종철_ 원칙은 분명합니다. 국무총리 임명은 국회의 동의를 받게 돼 있습니다. 인사청문회 과정도 없이 동의를 받겠다는건 헌법정신에 어긋납니다. 검증에는 크게 자격 검증과 능력 검증이 있습니다. 자격 검증은 지명단계에서 끝냈어야 합니다.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걸 탓해야지 인사청문회 자체를 도마에 올려서는 곤란합니다.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자격이나 전문성 검증보다는 ‘신상털기’식도덕성 검증이 주를 이뤘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그건 인사권자가 사전에 제대로 검증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최근 진행된 국무위원 인사청문회를 봐도 문제가 없는 이들은 청문회를 통과하지 않습니까? 일단 지명 절차에서부터 충실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일부에서 신상문제와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자고 하던데 그건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도덕성은 인선 단계에서 철저하게 검증해 청문회에서 쟁점이 되지 않도록 해야죠.

현 정부에서 개헌은 물 건너갔다

홍성걸_ 인사청문회의 고유 목적을 달성하려면 도입 취지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당은 눈앞의 이익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기준이 고무줄인 거죠. 2005년 국회 인사청문회 때 퇴직 후 5년간 60억 원의 소득을 올려 전관예우라는 비난을 받은 전직 대법원장은 청문회를 통과하고 전관예우로 11억 원을 번 안대희 전 대법관은 청문회에 서지도 못하고 중도하차하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능력 검증은 뒷전이고 도덕성 검증에만 혈안이죠.

이러다 무능력한 사람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물론 사전 자격 검증은 청와대에서 철저히 해야겠지만 청문회는 공개와 비공개로 나눠 진행했으면 합니다. (논문 표절, 부동산 투기 등) 시대상을 반영하는 분야에서는 기준을 재설정하는 문제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청문위원도 검증이 필요하다는 말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정치인 출신 장관 후보자에게는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가요? 청문회를 국회에서 하는 게 바람직한지 아니면 제3의 위원회를 둬서 진행케 하는 게 타당한지 따져볼 문제입니다. 물론 인사청문회가 국회 고유 권한이기는 하지만요.

김종철_ 검증의 기준과 잣대를 돌이켜볼 때입니다. 과거 민주주의 이행기에 있던 시절 부동산 투기나 표절 같이 사회적으로, 관행적으로 이뤄진 행위에 대한 기준은 재검토 내지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자기 표절의 경우 인문사회계에서는 논리모순입니다. 자기 것을 훔친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죠. 전문가적 관점에서 가이드라인의 재설정이 요구됩니다. 합리적 기준과 대중의 눈높이를 서로 조율하는 것이죠.

사회자_ 총리제도 개선은 개헌과 맞물립니다. 개헌 가능성은 아직도 유효할까요?

홍성걸_ 현 정부에서 개헌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봅니다. 개헌 논의는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니까요. 박 대통령도 대선 전에는 4년 중임제 개헌의 필요성을 얘기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아요. 대통령 되기 전과 후가 다른 게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입니다.

김종철_ 현행 헌법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제도보다는 권력의 오남용, 제도의 운용에 잘못이 있습니다. 정치관계법이 국민의 정치 참여를 과도하게 제약하고, 대의제가 국민의 대의성을 상실한 게 우리 정치현실입니다. 선거제도는 국민들이 원하는 대표를 선출하지 못하는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대의제와 국민주권 간의 괴리가 심화되고 비효율이 우려됩니다. 개헌보다 정치관계법 개정이 더 시급합니다.

홍성걸_ 우리나라는 성문헌법 체계라 사회발전 수준과 조응하지 못하는 조항도 있습니다. 그리고 선거를 너무 많이 해요. 지난 6월 지방선거만 해도 조 단위의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민주주의가 경제적 요소는 아니지만 최소화할 필요는 있지요. 앞서 말했듯이 권력 구조도 고쳐야 하고…. 국민의 기본 인권과 관련해서도 손봐야 할 게 많아요. 분명히 개헌은 필요합니다. 2004년 전격적으로 타결된 이른바 ‘오세훈법(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 개정안)’이 그랬듯이 개헌 환경이 무르익는 날도 올 겁니다.

김종철_ 우리 선거법이 소선거구제를 택하고 있어 양당제로 가고 있습니다. 양대 거대 정당이 정치적 기득권을 행사하는 통에 정치과정이 효율적으로 운용되지 못하는 거지요. 다양한 계층의 대표가 더 많이 입법부에 진출하는 제도 개선도 요구됩니다.

201408호 (2014.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