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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 중국과 러시아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미·일동맹에 맞서 새로운 아시아 안보기구 결성 추진…에너지 동맹도 맺는 등 60여 년 만의 최고 밀월 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월 20일 상하이에서 열린 제 4회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손님을 잘 대해주는 중국을 찾는 것은 늘 즐겁다. 중국은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 중국과의 왕래를 확대하는 것은 러시아 외교정책의 우선적 방향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월 20∼21일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의(이하 아시아신뢰회의) 참석에 앞서 중국 언론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밀월관계를 강조한 내용이다.

푸틴 대통령은 방중기간 중·러 해상 군사훈련 개막식, 아시아신뢰회의에 각각 참석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올들어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 주석이 지난해 3월 국가주석에 취임한 이후 이번까지 15개월 만에 푸틴 대통령을 만난 것은 모두 7차례나 된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전면적 전략협력동반자 관계를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합의했다. 특히 두 정상은 다른 나라의 내정 간섭에 반대하고 일방적 제재정책과 타국의 헌법 질서 변경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두 정상이 발표한 공동성명은 25개 항목 5600여 자에 달한다. 공동성명 내용은 사실상 ‘동맹’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양국의 공동성명 내용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동·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양국이 힘을 합쳐 이에 맞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러시아는 동유럽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든다.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부흥’을, 푸틴 대통령은 ‘강한 러시아’를 기치로 내걸었다. 하지만 양국 모두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하는 과정에서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에 직면했다. 중국은 영유권 분쟁지역인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와 남중국해에서 미·일동맹과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깨는 에너지 동맹

푸틴 대통령이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 주요 국가를 방문한 것은 중국이 처음이었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 국가들과는 달리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반대해왔다. 푸틴 대통령도 미·일 군사동맹에서 맞서고 있는 중국에 힘을 실어 줬다. 푸틴 대통령이 중국이 추진해온 내년 제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 기념행사를 러시아와 공동으로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도 중국을 공식 지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은 2차 대전 결과를 수정하는 걸 용인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면서 “과거사 수정 시도가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으로 볼 때 일본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가 과거사 문제에서 중국 편을 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 주석도 “양국은 2차대전 승리의 성과와 전후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면서 “절대로 파시즘과 군국주의 야만침략의 비극이 재연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정상의 발언은 미국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노골적으로 반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양국은 미·일 군사동맹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재무장시켜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중국의 입장에선 미·일 군사동맹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이 절실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중국과 러시아가 손잡은 것은 국제질서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미·중·일·러는 그동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견제와 협력을 병행해왔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사실상 중국과 동맹관계를 맺은 만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세력 구도는 미·일동맹과 중·러연합으로 양분됐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밀월관계는 앞으로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를 깨뜨릴 가능성도 있다.

양국의 동맹관계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 분명하다. 첫째는 경제 분야의 긴밀한 협력이다. 양국은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대규모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회사인 가스프롬과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이 체결한 계약 내용을 보면 러시아는 2018년부터 30년 동안 중국에 연간 38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기로 했다.


▎중국은 석탄 의존도를 줄이고자 천연가스 수입선 확대와 태양광 발전설비 증설 등에 적극 나선다.
이는 중국 연간 가스 소비량의 23%, 가스프롬 연간 수출량의 16%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다. 전체 계약 규모는 4천억 달러(410조2천억 원)에 이른다. 러시아는 계약 이행을 위한 가스관 건설과 가스전 설비공사 등에 550억 달러를, 중국은 22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천연가스 공급

양국 정부는 2004년부터 천연가스 공급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여왔으나 공급가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양국은 러시아에 유럽 공급가보다 훨씬 싼 가격을 요구했고, 러시아는 국제 시장가격을 고수하며 줄다리기를 계속해 왔다. 그러다 이번에 양국이 합의한 것은 서로 전략적으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선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이 자국산 천연가스 수입을 단계적으로 줄일 계획이기 때문에 유럽을 대체할 수 있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확보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의 입장에선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에 대비하고 안정적 공급원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리나라도 한때 개발에 참여했던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의 코빅타 가스전과 야쿠티야 공화국의 차얀다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가스를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을 거쳐 동부노선 가스관과 연결해 중국 쪽으로 가스를 보낼 계획이다.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은 코빅타와 차얀다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가스를 태평양 연안의 극동지역까지 운송할 수 있는 총 연장 4천㎞의 파이프라인이다. 이 가스관은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극동까지 이어진다.

러시아는 이 사업에 이어 앞으로 서부 시베리아 알타이 지역으로부터 중국 서부지역으로 이어지는 서부 노선 가스관도 건설해 서부 시베리아 지역 생산 가스를 중국으로 공급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할 계획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계약기간이 무려 30년이고 엄청난 규모라는 점에서 볼 때 이번 계약 체결로 에너지 분야에서 동맹관계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대형계약은 동맹국이 아니면 체결하기 어렵다. 때문에 양국은 일종의 에너지 동맹을 맺은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에너지 동맹은 미국의 뒤통수를 친 격이 됐다. 미국과 지구촌 곳곳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확보 전쟁을 벌여온 중국이 에너지 수출국 러시아와 손잡고 미국에 맞대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치를 강화하려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가장 확실한 고객인 중국을 잡은 셈이 됐다.

중국의 에너지 수급 불안도 러시아와의 천연가스 공급 계약으로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에너지 사용량은 2000년 미국의 절반에 그쳤으나, 2009년 미국을 추월해 전 세계 최다 에너지 사용국이 됐다. 게다가 중국은 정세가 불안한 국가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해야 한다는 약점도 있다. 중국은 원유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페르시아만 산유국들로부터 들여오고 있으나, 이곳은 미국이 관할하고 있는 지역인데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에 따라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이라크와 오만, 아랍에미리트연합, 앙골라,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 중동·아프리카·남미 국가들과 원유 수입선을 확대하고 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석탄 대신 천연가스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 스모그 등 환경개선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2035년까지 석탄 의존도를 53%로 줄이고 천연가스 의존도를 11%로 높일 계획이다.


▎2012년 8월 중국과 대만 국기를 들고 센카쿠 열도에 상륙한 홍콩 시위대.



러·중 주도의 신용평가기관 설립

양국의 경제협력에 따라 교역 규모도 크게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양국은 2015년까지 교역 규모를 1천억 달러(107조5천억 원), 2020년까지 2천억 달러로 각각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양국의 지난해 교역규모는 888억 달러(91조 원)를 기록했다. 양국은 이를 위해 앞으로 위안화와 루블화로 무역거래를 결제하는 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중국이 러시아와 인접한 헤이룽장(黑龍江)성 쑤이펀허(綏芬河)시를 전국 최초로 루블화를 사용할 수 있는 시범지역으로 만들었다. 쑤이펀허시에선 러시아인들이 쇼핑하거나 택시를 타는 등 일상생활에서 루블화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중국개발은행(CDB)은 러시아 극동지역에 50억 달러(5조1975억 원)를 투자하는 계획안을 최종 승인했다.

러시아 극동개발부에 따르면 이 자금은 극동지역 경제특구와 대규모 인프라건설 프로젝트에 투자될 예정이다. 양국은 국경선인 아무르강(중국명 헤이룽장)에 2016년까지 철도 교량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 지역은 양국이 1969년 국경 분쟁으로 총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양국은 새로운 신용평가기관도 만들 계획이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부 장관은 “많은 국가가 신용평가기관의 객관성이 더 높아지기를 원한다”면서 “러시아와 중국이 독립적인 신용평가기관을 설립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국의 신용평가기관 설립 계획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미국의 세계적인 3대 신용평가사의 독점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실루아노프 장관은 “새 신용평가기관이 러시아와 중국간 협력 프로젝트와 투자사업을 평가하는 일부터 시작해 차츰 규모를 키우고 권위를 높이면서 다른 나라에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제적 수준의 기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국의 동맹관계에서 둘째로 주목되는 분야는 안보 협력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5월 20일부터 26일까지 창장(長江) 입구와 동중국해(이어도-센카쿠 열도 중간수역)에서 ‘해상협력-2014’라는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중국의 함정 8척, 잠수함 2척, 전폭기 9대, 헬기 4대, 특전부대가 참가했다. 러시아는 함정 6척, 헬기 2대, 특전부대가 참가했다.

러시아의 최신예 전투기 수호이-30, 중국이 자랑하는 젠(殲)-10 전투기도 동원됐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이 훈련의 개막식에 함께 참석해 양국 국가가 울리는 가운데 의장대를 사열했다. 시 주석은 “양국은 이번 훈련에서 새로운 위협과 도전에 대응하고, 지역의 안보안정을 수호하는 굳건한 결심과 의지를 표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도 “새로운 형세에서 양국 군이 협력을 강화하고 각종 위협과 도전에 대응하면서 세계와 지역 평화안정을 수호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번 훈련은 규모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이제까지 없던 양국간 여러 합동작전이 전개됐다. 특정지역 방어, 해상 돌격, 잠수함과 항공기 대항, 해상 호송과 수색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연합작전이 펼쳐졌고, 해상 실탄 사격과 공중 작전 합동훈련도 실시됐다.

양국은 이번 훈련이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양국 해군이 센카쿠 인근에서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번 합동군사훈련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통해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전략을 천명하자, 중국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이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다시 말해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센카쿠 열도가 미·일 안보조약 적용 대상”이라면서 일본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미·일 군사동맹에 사실상의 중·러 군사동맹으로 맞짱을 뜬 셈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4월 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센카쿠 열도는 미·일 안보조약 제5조의 적용 대상이라고 밝혀, 중국의 무력 침공이나 일방적인 조치가 있을 경우 미군이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었다.

4강의 군사력이 대치하는 센카쿠 열도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의 대결에 미국과 러시아가 가세하면서 이 지역은 4대 군사 강국들이 대치하는 무대로 변하게 됐다. 미국의 아시아로의 중심이동 전략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협력 관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이에 따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세력 구도가 ‘미·일 동맹 대(對) 중·러 연합’라는 패권 다툼 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최신예 무기들을 구입해 군사력 강화에 나설 계획이다. 물론 러시아는 중국에 무기 판매를 통해 돈도 벌고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다. 실제로 양국은 푸틴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최신예 전투기 Su(수호이)-35S 거래 계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Su-35S는 러시아가 그동안 기술 유출을 우려해 중국에 수출을 꺼렸던 전투기다. 중국은 Su-35S 24대를 도입해 현재 개발중인 제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젠-20(J-20)과 젠-31의 전력화가 마무리될 때까지의 공백기를 메울 계획이다. Su-35S는 최대 속도가 마하 2.25, 항속거리도 3600㎞다. 단좌 전투기인 Su-35S는 기수에 장착된 IRBIS-E 레이더를 통해 30개 표적을 탐지하고 적기 8대와 동시에 교전할 수 있다. 러시아 공군은 48대를 주문,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전 배치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에 필적하는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T-50을 개발 중이다. 러시아가 자국 내 실전배치도 채 끝나지 않은 Su-35S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중국이 Su-35S를 도입할 경우 센카쿠 열도에서 미국과 일본의 제공권을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다.

중국은 또 러시아로부터 최신예 방공시스템인 S-400을 들여올 계획이다. 러시아가 2007년부터 실전배치하고 있는 S-400은 적국의 전투기, 탄도미사일 등을 탐지해 요격할 수 있는 지대공 미사일이다. S-400은 사거리가 60∼400㎞로 중국 남부 푸젠(福建) 성 일대에 배치될 경우 센카쿠 열도와 대만 전역을 요격 범위에 둘 수 있다.

S-400은 현재 지구상에 배치된 지대공미사일 중 가장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중국이 S-400을 도입하면 미국 항공모함의 공격에 대한 방어와 공격 시스템을 완비하게 된다. 중국이 최근 실전 배치한 DF(둥펑)-21D 탄도 미사일은 미국 항공모함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으로 막기 어려운 고도로 비행할 수 있어 ‘항모 킬러’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양국은 이와 함께 아시아 안보기구를 창설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시 주석은 5월 21일 아시아신뢰회의(CICA) 기조연설을 통해 노골적으로 미국의 아시아 개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시 주석은 “아시아의 문제는 아시아 국가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며 아시아의 안보 역시 아시아 국가들이 수호해야 한다”면서 “제3자를 겨냥한 군사동맹 강화는 지역의 공동안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발언은 일종의 ‘중국판 먼로주의’라고 볼 수 있다. 먼로주의는 미국 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가 1823년 당시 유럽 열강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간섭을 막기 위해 “유럽과 미국은 각각 서로의 대륙 문제에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말자”고 선언한 외교 방침을 말한다. 이후 먼로주의는 미국이 중남미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하는 논리로 활용됐다.

중국이 미국의 아시아 개입 반대를 천명한 것은 미국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전략이 중국의 핵심이익을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류밍 상하이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중국은 과거부터 동·남중국해에서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과 영유권 갈등이 있었지만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했었다”면서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전략을 추진하면서 이에 고무된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에 대항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 중국 상하이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해군 순양함. 중국과 러시아는 5월 20일부터 1주일간 동중국해에서 합동해상군사훈련(해상협력-2014)을 실시했다. 2 중국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에서 착륙 훈련 중인 중국 젠-15 전투기.



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신뢰회의(CICA)

시 주석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와 함께 아시아 국가들을 결집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보였다. 시 주석은 “CICA를 아시아 안보 대화 협력의 무대로 만들어 지역안보협력을 위한 새로운 기구를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시 주석의 제안은 미국과 일본을 배제한 중국 주도의 독자적인 아시아 안보기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라고 볼 수 있다.

CICA는 아시아 지역 국가들 간의 상호 신뢰구축과 분쟁 예방을 위해 1992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주도로 만든 지역안보협의체다. 회원국은 중국, 몽골,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이란, 터키 등 24개국이다. 우리나라도 회원국이다. 미국과 일본은 회원국이 아니다.

올해부터 오는 2016년까지 중국이 의장국인 이 회의는 2002년 6월 첫 정상회의 이후 4년마다 개최돼왔다. 중국의 의도는 미국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전략과 미·일 안보동맹 강화에 맞서 아시아 국가들을 결집시켜 일종의 아시아판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시 주석의 이번 제안은 미국이 옛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결성한 것과 비슷하다. 미국의 전략을 거꾸로 이용해 중국이 이른바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의 제의에 적극 호응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도 기조연설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동등한 협력 원칙과 개방성을 가진 안보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새 안보기구는 2016년까지 아시아신뢰회의를 현재의 지역안보협의체에서 안보협력기구로 확대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상하이협력기구(SCO)와 서유럽의 동진정책에 맞선 러시아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통합한 형태의 새로운 안보기구가 만들어 질 수도 있다. CICA에 참석한 회원국들은 ‘상하이 선언’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은 이익뿐만 아니라 안보도 함께 추구하며 어떤 국가도 안보 문제에 있어서 자신만 생각할 수 없다”면서 시 주석의 제의를 실현시키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동쪽에 있는 CICA 회원국(한국·베트남·캄보디아·태국)과 서쪽에 있는 CICA 회원국(중앙아시아·터키·이라크·이란·이집트·팔레스타인·요르단·바레인)을 다른 한 축으로 삼아 동서 양쪽에 걸쳐 있는 러시아를 활용해 자국의 세력권을 확대해 가는 이른바 ‘유라시아 양 날개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중국의 전략의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베트남, 태국 등이 반미 전선에 합류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중국에 힘을 실어 줌으로써 새로운 안보기구가 탄생할 수도 있다.

중국과의 협력은 ‘양날의 검’

양국은 지난 6월 6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전략안보대화를 열고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안전보장회의 서기가 이끈 양국 대표단은 5대 세부사항에 합의했다. 5대 세부사항은 ▷전략적 소통과 협력 강화 ▷외교, 경제·무역, 국방, 반테러 등 분야의 실질적 협력 강화 ▷각종 위협과 도전에 대한 공동대응 ▷상호 자주권과 안보·발전이익 수호 ▷세계 및 지역 평화 안정 발전 촉진 등이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는 6·25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 이후 60여 년 만에 최고의 밀월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전신인 옛 소련은 1921년 중국 공산당 창당을 소련 공산당이 지원하면서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양국 관계는 중국이 소련의 요청으로 6·25전쟁에 참전하면서 밀월관계를 보였다.

당시 소련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대신 벌인 중국에 경제 부흥을 위한 자금과 기술을 지원했다. 양국 관계는 1960년대 수정주의 논란에 따른 이른바 ‘이념 분쟁’으로 금이 갔다. 소련은 중국과 국경분쟁 중이던 인도에 최신 무기를 팔았고, 중국이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양국은 향후 최소 10년간 신밀월 관계를 구축할 것이 확실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임기는 오는 2018년까지인데 연임할 경우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다. 시 주석의 임기는 오는 2023년까지다. 두 최고지도자의 임기로 볼 때 양국의 밀월관계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완전한 동맹관계를 구축할지는 분명하지는 않다. 러시아 일각에선 중국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옛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는 푸틴 대통령으로선 중국과의 협력이 ‘양날의 검’일 수 밖에 없다. 국제사회의 관심은 중국과 러시아의 신밀월 관계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며, 앞으로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의 대결 구도가 신냉전(New Cold War)으로 비화될지 여부에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407호 (201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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