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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 교황 방한, 남북관계 해빙되는 ‘ 8월의 크리스마스’ 될까 

 

한국가톨릭 관계자 “8월 18일 명동성당에서 교황이 깜짝 놀랄 만한 메시지 발표”…방한 기간 중 판문점이나 도라산 방문, 바티칸에 남북정상 동시초청 제안 가능성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한반도에 남북통일의 훈풍을 몰고 올지 기대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27일, 복자 요한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등 전임 교황에 대한 시성식을 마친 후 전용차에 올라 신자들의 환호에 손 흔들어 답하고 있다.




4반세기 만의 교황 방한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해빙되고 통일 논의를 활성화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한반도 평화실현에 관심이 많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방한때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올 메시지를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평화의 사도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의 크리스마스에 들고 올 선물은 뭘까?

이런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자. 교황 방한의 마지막 날인 8월 18일 오전 11시, 세계적인 이슈메이커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명동성당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다. 이날 미사에는 정진석·염수정 추기경 등 한국가톨릭의 고위 성직자는 물론 불교,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 등 한국의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해 ‘다종교 국가지만, 평화롭게 모든 종교가 공존하는 한국’의 모습이 전 세계에 중계된다.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많은 교황이 직접 봉헌하는 이날 평화기원 미사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정당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북한의 신자를 대표해 조선가톨릭교협회 인사들도 나란히 앉아 있다. 이들은 분단을 뛰어넘어 민족화해를 염원하고 평화통일을 함께 기도하며 일치를 이룬다. 신자들이 자리한 한쪽에는 전 세계인을 가슴 아프게 하며 안타깝게 죽음을 맞은 세월호 참사희생자의 유족들도 초청돼 아픔을 같이하고 위로하는 자리가 된다.

미사의 후반부, 전 세계 외신이 주목하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이 세계평화와 화해의 주역이 돼달라는 평화 기원 메시지를 발표하고, 분단으로 고통받는 남북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을 논의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남북한 정상을 바티칸으로 초청하겠다는 깜짝 제안을 내놓는다. 외신은 당장 명동성당발(發) 빅뉴스를 전 세계에 타전하고 이후 교황이 중재하는 남북정상회담 성사여부 등 한반도 관련 이슈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다.


▎5월 25일 팔레스타인 거주지인 서안지구의 베들레헴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리장벽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교황 방한, 남북한 화해 물꼬 틀 수도

4반세기만에 이뤄지는 교황 방한이라는 빅 이벤트가 이처럼 한반도 통일의 물꼬를 여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이 같은 상상이 현실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그중의 몇몇 이벤트는 벌써 내부적으로 소리소문 없이 추진 중이다. 교황 방문이 남북한 모두에 하나의 축복이자 함께 누리는 기쁨의 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가 커져가는 이유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북 화해의 물꼬를 여는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는 우선, 교황 본인이 최근 중동의 화약고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상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등 평화의 사도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13일 취임한 제 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럽이 아닌 남미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소외되고 고통받는 제3세계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이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할 정도로 취임 1년여 만에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뉴스메이커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분열이 있는 곳에서 일치와 화해를 추구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24~26일 중동 성지 방문 때는 세계 정교회 수장 콘스탄티노플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와 만남을 가져 50년 만에 동서교회 수장의 회동이 재현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중동 방문 때 전임 교황들처럼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거치지 않고 베들레헴으로 직행해 이스라엘의 승인 없이 팔레스타인 구역으로 들어가는 파격 행보를 보여줬다. 이는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임을 교황이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교황은 또 공개 미사 장소인 구유광장으로 이동하던 중에 예정에 없이 차에서 내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선인 ‘분리장벽(Security Wall)’으로 걸어가 ‘통곡의 벽’ 앞에서 이마를 벽에 대고 5분간 침묵 속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팔레스타인에 평화를’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는 이곳은 이스라엘에는 국가 안보를 상징하지만, 팔레스타인에는 ‘점령의 산물’로 인식되고 있는 곳이어서 교황의 예상치 못한 행동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환호하게 했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당시 이에 대해 “분리장벽에 기대 선 교황의 침묵 속에는 장벽의 의미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분명한 의사표현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5월 25일 자신이 집전하는 구유광장 미사가 끝나고 부활삼종기도를 드린 후 “예수가 태어난 이곳에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을 바티칸에 초대하고 싶다”고 발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역대 어느 교황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상을 동시에 교황청에 초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사에 참례했던 압바스 수반은 그 자리에서 교황의 제의를 수락했고, 페레스 대통령도 별도로 교황을 만나 초청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탁월한 외교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지난 6월 8일 ‘세계의 화약고’ 중동의 두 분쟁 당사국 정상이 바티칸 교황청에서 만나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함께 바치는 역사적 만남이 이뤄졌다. 성베드로 성당 뒤편에 위치한 바티칸 정원에서 교황과 두 지도자는 한마음으로 기도했고, 이 자리에는 유대교와 가톨릭, 이슬람교 신자들도 동참했다. 교황은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전쟁을 하는 것보다 더한 용기가 필요하다”며 자신이 제안한 회동에 응한 두 지도자를 격려했다.

교황과 두 정상은 이후 바티칸 정원에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나무를 심었다. 교황 자신은 이날의 회동에 대해 “협상을 중재하거나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며 단지 함께 기도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자신을 낮췄지만 “이날 만남이 화합하고 분열을 극복하는 새 여정의 출발이 되길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갈등과 분쟁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냈다.


▎8월 18일 남북화해와 통일기원미사가 열리게 될 서울 중구의 명동성당. 전 세계인의 이목이 쏠릴 예정이다.



북한 천주교 신자들 서울로 초청

이 같은 전례에 비추어 프란치스코 교황의 8월 14~18일 4박 5일 방한 때도 남북간의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는 빅 이벤트가 예상된다. 먼저 교황 방한에 맞춰 북한측 천주교 인사들의 방한이 추진되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한국의 가톨릭을 대표하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관계자들은 염수정 추기경의 개성공단 방문을 며칠 앞둔 5월 18~19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북측 조선가톨릭교협회 관계자들과 비밀리에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남측은 북측 천주교 인사들의 서울방문 의사를 타진했고, 북측은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뒤 참석 여부를 결정해 답변을 주겠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가톨릭계 주변에서는 8월 교황 방한 일정과 겹칠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의 일정이 조정된다면 북한의 천주교 인사들의 서울 방문이 이뤄질 수 있으리란 관측이 우세하다. 북한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이 올 경우 7월말에 추가로 실무 접촉이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북한 천주교 인사들의 서울 방문이 성사된다면 2003년에 이어 두 번째 서울 방문이 된다. 당시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 민족대회’의 일환으로 열린 명동성당 미사에 평양 장충성당 신자들이 참석한 적이 있다. 현재 평양에는 북한 유일의 성당인 장충성당에서 매주 200여 명이 미사참례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톨릭계에서는 북한의 천주교인은 최소 3천~1만 명으로 추정한다.

사실, 지난 5월 21일 염수정 추기경 일행의 개성공단 방문 때도 남북한의 가톨릭 인사 접촉설이나 8월 방한하는 교황과 염 추기경의 방북을 추진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재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하고 있는 염 추기경은 이날 아침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공단에 들어간 뒤 오후에 남한으로 되돌아왔다.

서울대교구는 개성공단의 천주교 신자 공동체인 ‘로사리오회’의 요청에 의한 ‘단순한 사목적 방문’이기 때문에 북한 주민이나 북측 관계자들과의 접촉은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교황과 염 추기경의 방북 가능성을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으로부터 확실한 답변을 받지 못해 북한 신자들을 서울에 초청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교황이 방한 기간에 판문점이나 북한의 개성공단으로 통하는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 등 상징적인 장소를 방문하는 일정도 비공식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중동방문 때 교황이 예정에 없이 차에서 내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선인 분리장벽으로 걸어 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듯이 한반도 분단의 고통을 상징하는 판문점이나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와 군사분계선을 방문해 고통받는 이들에 대해 기도하며 평화통일을 기원하고 북한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교황이 지난 5월 중동방문 당시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를 하고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쓴 ‘주기도문’을 벽 틈으로 밀어 넣은 뒤 유대교 랍비, 무슬림 지도자와 격한 포옹을 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교황의 주도로 전 세계인을 감동시킬 그 ‘무엇’이 이뤄질 수도 있다. 교황이 남북한 정상을 초청하는 제안 역시 성사 여부를 떠나 팔레스타인 방문에서 보인 파격적 행보를 볼 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국내 가톨릭단체들도 교황방한을 계기로 남북통일 논의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톨릭언론인협의회(회장 이상요)가 6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남북통일시대, 언론과 가톨릭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포럼에서 김병수 중국 석가장 신학대학 교수는 특별 발제문을 통해 “과거 독일통일 당시 민족화해가 인류적 대의명분으로 확고해졌을 때 주변국들이 통일을 수용했다. 이런 상황이 한반도에서는 교황의 방한으로 마련될 수 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오는 8월 교황 방한 때 판문점(위)이나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의 군사분계선 방문이 은밀히 추진되고 있다.
교황의 방한이 한반도 통일을 미국이나 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이 반대할 수 없도록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한 김 교수는 교황 방한 때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 수 있는 방법으로 “교황이 판문점에서 북한을 향해 미사를 봉헌하거나 평화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교황이 판문점에서 미사 봉헌해야”

이날 포럼에서 토론자로 나선 박창일 신부(예수성심전교수도회)도 “8월 18일 민족화해를 위한 미사가 교황방한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교황이 주재한 자리에 남북한 신자들이 함께 참석해 ‘민족화해를 위해 기도합시다’라며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 자체가 세계적인 뉴스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지난 20년간 북한을 수십 차례 방문했고,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던 박 신부는 “교황이 이스라엘 대통령과 팔레스타인 수반을 초청해 만남을 성사시켰듯이 남북정상을 바티칸으로 초청했으면 좋겠다. 양국 정상이 바로 만나는 게 부담스럽다면 교황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함께 초청해 4자회담을 가져도 좋다”며 “교황 방한까지는 아직 두 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교황청이 특사를 평양에 파견해서 실무적인 것을 협의해도 된다”라고 말했다. 바티칸당국과 천주교서울대교구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는 주문이다.

이와 관련해 교황 방한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조규만 서울대교구 총대리주교도 이날 격려사에서 “최근 이스라엘 대통령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교황청에서 교황의 중재로 만났듯이 남북정상이 교황의 중재로 로마든지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 꿈을 꾸어본다”라고 말했다. 예정된 사실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표현을 꺼리고 에둘러 말하는 가톨릭 고위 성직자 특유의 워딩에 비추어 한국 가톡릭계도 교황이 남북정상의 만남을 주선하는 제안을 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발언이다.


▎박 대통령이 3월 14일 염수정 추기경 등 천주교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과 관련해 범정부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대통령과 정부, 야당도 통일논의 적극적

이 같은 일련의 남북화해와 통일 이벤트가 가톨릭계와 박근혜 정부의 교감 속에 이뤄지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논의에 적극적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올해 초 ‘통일대박론’으로 이슈를 만들어낸 바 있다. 박 대통령은 3월 14일 염수정 추기경 등 천주교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교황 방한과 관련해 범정부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6월 11일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 자문위원 50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3월에 통일을 계기로 크게 발전한 동독지역을 방문해서 한반도 통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자 전 세계 인류에도 큰 기회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북한을 대화와 협력의 길로 이끌어내기 위한 드레스덴 구상을 재차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독일방문 당시 평화통일 방안으로 ‘드레스덴 3대 실천구상’을 내놓았는데, 이는 북한 주민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인프라 구축,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사회·문화 교류 확대 등 3가지다.

북한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을 독일식 흡수통일 방안이라며 깎아내리고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재에 나서고 미국과 중국이 보증을 선다면 북한을 움직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통령 역시 “독일통일 전례에서도 봤듯이 한반도 통일은 우리 정부와 우리 국민의 힘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과제다. 이웃국가와 국제기구, 국제NGO(비정부기구)들이 의견을 모으고 힘을 합쳐야 실질적 성과를 창출해낼 수 있다”며 교황과 주변국 등 국제사회 지도자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앞서 중국 석가장 신학대학의 김병수 신부는 “한국 정부가 교황의 방한을 단지 종교 내적인 문제로만 바라보지 말고 국가적 차원에서 그 중요성과 의미를 감지하고 이 시대에 한반도와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통일 과업에 대해 적극적이고 합당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물론 정부도 남북관계의 해빙무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통일부는 ‘5·24조치’로 남북관계, 민간단체의 북한 식량지원 등 대북지원을 전면 중단했지만 지난 6월 4일 민간단체의 북한 농업 지원을 승인했다. 경남통일농업협회가 신청한 딸기 모종과 소독약 등 3만2천 달러 상당의 물자 반출을 승인한 것이다. 이는 5·24 조치의 완화를 의미하는 해빙무드의 작은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임 국정원장 후보자인 이병기 주일대사도 전임 남재준 원장에 비해 대북정책에 우연성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북 관측통들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가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상황관리를 위해 남북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가 많다.

정부뿐만 아니라 가톨릭계로서도 남북통일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의 복음화를 위해서도 남북통일은 절실”하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전역과 평양을 포함하는 황해도 전 지역의 사목을 관할하는 천주교서울대교구의 조규만 총대리주교는 “교회의 첫째 사명은 복음화이고, 북녘 땅은 한국교회가 복음화해야 할 선교지다. 북한지역에는 평양교구, 함흥교구, 원산교구, 덕원자치수도구가 있다”며 “평화통일은 정치적으로만이 아니라 교회 입장에서도 분명 대박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정부의 통일논의에 힘을 보태는 발언이다.

가톨릭계에서는 교황 방한을 계기로 이후 염 추기경의 평양 방문이 성사된다면 염 추기경이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하고 있기 때문에 평양 장충성당을 방문해 북한 신자들에게 직접 세례를 베푸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염 추기경은 추기경으로 서임되기 전인 지난해도 꾸준히 방북을 타진해왔지만 여러 사정으로 무산됐고, 올해 5월에야 평양이 아닌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북한측 신자들은 염 추기경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의 천주교신자들로 구성된 조선가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위원장 장재언)은 2012년 염수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했을 때 “민족의 평화통일번영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서 사랑과 정의의 신앙적 유대와 신뢰를 두터이 하여 대주교님의 사목과 활동에서 긍정적인 성과가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다”라며 축하인사를 보낸 바 있다. 이런 기류를 감안해보면 염 추기경의 평양 방문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관측이다.

바티칸과 북한 수교 논의 재개 가능성

조금 섣부른 전망이긴 하지만 교황 방한을 계기로 북한과 바티칸의 수교도 미리 점쳐볼 수 있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고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바티칸과의 관계정상화를 요청했고 김 위원장도 긍정적인 의사를 보인 바 있다. 이후 교황청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해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방북문제 등 현안에 관해 논의했지만 교황청이 “수교나 교황의 방북을 위해서는 사제의 상주허용 등 여건이 성숙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진전을 보이지 못했던 전례가 있다. 사제 상주 문제가 해결되면 걸림돌이 해결되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야당도 남북화해 조성에 적극적이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14주년을 앞둔 지난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른 시일 내에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남과 북이 화합하면 엄청난 기회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라며 “남북 관계에서 우리의 미래와 희망을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박근혜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과도 이어지는 맥락이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우리나라만 적극적이라고 해서 통일논의가 진전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도 국제사회에 문을 닫고 있지만은 않다는 관측도 있다. 프랑스 뉴스 통신사인 AFP가 올해 안에 북한 평양지국을 설치할 예정이고, 영국의 로이터 통신도 북한정부와 평양에 지사 설립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북한이 미국 AP통신, 일본 교도통신에 이어 추가로 해외 언론사의 사무소 개설을 허용하는 것은 북한이 정상국가임을 외신을 통해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5월21일 염수정 추기경 일행의 개성공단 방문도 허용한 것이라는 게 국내 가톨릭계 일각의 시각이다.

지난 5월 중동의 성지와 예루살렘 방문 때 교황은 미사 집전 후 기다리던 중동의 고위 성직자 등과 식사하는 대신 가난한 기독교인 가족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의 만찬 초대를 사양하고 시리아 난민들과 식사를 함께했다. 차별받고 힘든 사람들, 가난한 이들에게 예수처럼 친구가 되어주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런 기류들을 종합해보면 바야흐로 한반도에 훈풍을 몰고올 ‘8월의 크리스마스’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동구권 방문이 독일 통일로 이어졌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천안함 폭침사건 뒤 정부가 5·24조치를 통해 모든 남북관계를 단절시켰지만 오는 8월 교황 방한을 계기로 경색된 남북관계에 해방기가 도래할 날이 머지 않은 것이다.

교황청과 북한간 적극적인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남북 화해와 협력에 대한 박근혜정부의 긍정적인 조처가 뒤따른다면 한반도는 지난 2000년에 이어 14년 만에 유례없는 통일 분위기에 휩싸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온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1407호 (201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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