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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낭만적 음식기행 | 이탈리아에서 만난 한국식 프라이드치킨 

물결무늬 ‘옷’에 매운맛까지 그대로 

박찬일 ‘인스턴트 펑크’의 주방장
바삭거리는 껍질과 튀김의 고소함에 사로잡힌 한국은 치킨 공화국?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이 마침내 이탈리아에도 상륙했다. 이탈리아의 심장부인 밀라노의 치킨집 주인이 전기구이 방식으로 통닭을 굽고 있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닭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것 두 가지를 발견했다. 우선, 이탈리아에도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이 상륙했다는 것이다. 밀라노 중심부의 대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 치킨집을 발견했다. 지하철 1호선의 핵심 역 중 하나인 로레토(Loreto)역 가까이 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한국식이라고 명백하게 밝혀놓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유행하는 물결무늬 ‘옷’을 입은 치킨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한국식의 매운맛 치킨도 있었다.

한국과 문화가 달라 먹는 방법은 조금 특이했다. 닭을 마리로 파는 게 아니라 1인분씩 종이상자에 담아 팔고, 밥을 곁들여줬다. 한국식의 무는 제공되지않았다. 이런 치킨집이 심지어 프랜차이즈로 번성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미국에서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한국식 치킨을 아주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분자요리를 연구하는 ‘모더니스트 퀴진’이라는 집단의 홈페이지에 가면 아예 ‘코리언 프라이드치킨’이라고 쓰고, MSG를 넣어 만드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나와 있다. 한국에서 치킨 요리법이 엄청난 비밀인 것처럼 요리법을 전수하는 데 큰돈이 오가는 것에 비하면 거저먹기다.

전기구이 방식은 일본이 원조?

그 요리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설탕과 MSG가 큰 몫을 차지한다. 간장과 마늘을 넣는 것도 한국에서 전파된 비법이다. 어쨌든 프라이드치킨은 원래 KFC에 의해 세계화됐지만 지금 가장 ‘핫(Hot)’한 나라는 한국이고, 여기서 세계로 퍼져 나갈 기세다.

맛은 전통이고 뭐고 가장 매력적인 것이 일등을 하게 마련이다. 맛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바삭거리는 껍질이 주는 물리적 쾌감, MSG가 주는 감칠맛, 튀김이 주는 고소한 맛, 도파민을 생성시키는 ‘마약’ 같은 매운맛, 여기에 주머니 사정까지 만족시키는 싼 맛. 우리는 이것을 잘 팔아서 이익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이탈리아의 닭에서 본 또 다른 흥미로운 발견은 바로 전기구이 통닭이다. 우리는 ‘통닭’을 전기구이로 시작했다. 1963년 문을 연 명동의 영양센터 통닭이 그것이다. 당시 신문에 이 업소가 대대적인 광고를 하고 있다. “野外 소풍 가실 때… 단체주문 배수… 서울 충무로 1가42 사보이호텔 후문”이라고 쓰고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 그림을 실었다. 당시 야유회에 고기요리를 가져가는 풍습이 있었던 것 같다. 이 가게는 프라이드치킨의 공세 속에서도 지금도 성업 중이다.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낸 40~50대들은 기억한다. 아버지가 밤늦게 사가지고 오시던 갈색 봉투의 영양센터 통닭. 고소한 기름내가 가득히 번지고 닭기름이 번진 갈색봉투를 뜯으면 갈색의 닭이 먹음직스럽게 자태를 뽐냈다. 다리를 하나 쭉 뜯으면 게 눈 감추듯 입 속으로 사라졌다. 아삭아삭한 무는 어찌 그리도 맛있던지.

그런데 이 전기구이 통닭의 유래는? 일본 전래설이 유력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이 요리를 봤다. 가리발디(Garibaldi)역 근처,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10 Corso Como’ 옆에 있는 한 유명 식품 전시장에서 전기구이 통닭이 팔리고 있었다. 커다란 전기구이 오븐에서 빙글빙글 돌며 닭이 구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탈리아에서 요리 공부를 했는데, 로스트 치킨은 많이 봤어도 이런 닭 구이법은 금시초문이었다. 물어보니 오래전부터 유행하던 요리법이라고 한다. 결국 전기구이 통닭은 전 지구적인 요리법이라고 해도 되겠다.

한국은 닭 공화국이 된 지 오래다. 아니, 시중의 언어로 하면 ‘치킨 공화국’이다. 닭이란 우리 고유어와 나란히 쓰인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치킨은 ‘배달하는 것’이고 닭은 ‘엄마가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맞다. 치킨은 닭의 영어가 아니라 배달해주는 튀긴 닭을 의미한다.

여러 통계에 따르면 국내 한 해 닭고기 소비량은 4억 마리 정도다. 하루 평균 100만 마리가 넘게 출하된다. 1인당 소비량은 2011년 기준 11.4㎏, 2001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시장 규모는 4조 원 내외다. 어마어마하다. 불황에도 닭 요리, 엄밀히 말해 치킨 소비는 늘고 있다. 가장 만만한 외식이자 배달요리다.


▎바삭거리는 껍질이 주는 쾌감과 튀김의 고소함은 프라이드치킨의 마력이다.



2차대전 중 전투식량에서 유래

치킨 때문에 중국집 배달이 줄었다는 말이 있다. 같은 돈이면 치킨이 더 푸짐하고 매력적이라는 얘기다. 2만 원이 안 되는 돈에 닭 한 마리를 온전히 튀겨서 배달해주는 건 정말 사람들을 중독시킬 만한 요소가 있다. 그것도 ‘통닭’ 아닌가? 그래서 프랜차이즈와 외식산업에서 대표적인 레드오션이라고 하는 치킨시장이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브랜드가 생긴다. 프랜차이즈 외식업에 종사하는 후배가 있다. 그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브랜드 여럿을 히트시켰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으로 꾸는 꿈이 있다. “치킨으로 하나만 터뜨리면 된다. 다른 메뉴 100개를 합친 것보다 크다. 치킨은 모든 프랜차이즈 시장의 갑이다.”

프랜차이즈 박람회를 가보면 알 수 있다. 치킨이 가장 많다. 이렇게 된 것도 아픈 역사가 있다. 바로 ‘IMF 효과’다. 졸지에 직장을 잃은 아버지들이 차린 게 닭집이었다. 이후 명예퇴직이 지속되면서 가장 진입하기 쉬운 시장이 됐다. 분식집을 하려고 해도 칼질과 불 조절은 배워야 한다. 그러나 닭은 상대적으로 쉽다. 본사에서 정해준 매뉴얼대로 튀기면 된다.

닭도 다 염지(브라인)해서 가져다 주고, 튀길 때 바르는 파우더도 공급한다. 그저 닭을 꺼내서 파우더를 묻힌 후 가열된 기름에 넣으면 요리가 완성된다. 곁들이는 소스와 양념 무는 물론, 판촉물까지 일괄로 공급받아 편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본사의 이익이 극대화되고, 가맹점은 주머니를 털어야 한다는 게 문제다.

한 은행계 연구소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치킨집은 3만 개 가까이 된다. 비(非)프랜차이즈를 합치면 5만 개다. 인구 1천 명당 한 개씩이다. 세계에서 단연 톱이다. 10년 전에 비해 3배 정도 늘었다. 늘어도 너무 늘었다. 폐점도 엄청나다. 포화상태에 이르러서 생기는 것만큼 사라진다.

프라이드치킨이 가능하게 된 건 닭의 대량 공급이 이뤄진 때문이다. 원래 이렇게 튀김용의 여린 닭을 브로일러라고 부른다. 왜 ‘굽는다’는 뜻의 말이 닭에게 붙었을까? 바로 미국에서 2차대전 중에 군인의 전투식량을 쉽게 공급하기 위한 연구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당시 미군은 구운 로스트 치킨을 즐겨 먹었다. 이에 가장 싸고 빠르게 닭을 기르는 법을 연구하던 차, 사료는 적게 들고 효율적인 사육이 가능하게 된 닭을 ‘구이에 적합하다’고 해 브로일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너른 들판에서 모이를 쪼던 닭의 본능은 이렇게 대량 밀집사육의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항생제가 발달하고 비타민D의 발견이 그 배후에 있다. 밀집사육을 견디도록 항생제를 투여했고, 햇빛을 보지 않아도 병이 생기지 않도록 비타민D를 사료에 섞어 투여했다. 그래서 닭은 ‘고기 제조기’라는 별칭을 듣게 된다. 적은 사료로 효율적인 단백질을 인류에게 공급하게 된다.

프라이드치킨은 사실 슬픈 역사의 요리다. 원조인 KFC의 K는 코리아가 아니라 켄터키다. 미국 남부 흑인의 역사다. 노예제 시절, 켄터키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면화와 사탕수수농장이 많았다. 당연히 흑인들이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들도 먹어야 했는데, 백인 주인들은 닭을 구워 살코기만 먹었다. 포크와 나이프로 발라먹기 힘든 날개는 노예들 차지였다. 여기에 목뼈와 갈비 등을 섞어 먹었다. 그냥 먹자니 뼈가 많아 힘들었다. 튀기면 뼈가 부드러워져 씹혔다. 그것이 프라이드치킨의 효시였다. 우에하라 요시히로가 쓴 <차별받은 식탁>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일본말이라는 이유로 닭도리탕 대신 닭볶음탕을 쓰고 있다. 하지만 도리가 순우리말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기서 기름이 문제였는데, 면화를 작업하고 나면 씨가 흔했다. 이것을 짜면 면실유가 나왔다. 기름이 흔하니 튀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한국도 관련이 있다. 한국은 오랫동안 기름이 아주 귀한 나라였다. 과거에는 한식에서 튀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식품사학자도 많다.

식용유 등장으로 보편화돼

해표식용유의 등장(1971년)이 튀김 전성시대를 열었다. 해표는 미국 콩으로 만드는 기름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을 공략하기 위해 마케팅을 활발하게 벌였다. 학생 가사실습에 무상으로 식용유를 제공하고, 주부들에게도 무료 견본을 나눠줬다고 한다. 이렇게 생겨난 식용유 시대는 튀김을 가능하게 했고, 프라이드치킨에 익숙하게 된 계기가 됐다. 프라이드치킨은 초기에는 동물성 쇼트닝을 사용하다가 급격히 유행을 타던 시점에는 건강 바람의 영향으로 식용유로 바뀌었다. 그 후 올리브유를 쓰는 브랜드도 생기는 등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한반도에서 오래전부터 육식을 했던 것은 여러 기록에 나타난다. 그중 닭이 으뜸이었다. 소는 농경에 써야 하는 축우이고, 돼지는 충분한 먹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닭은 먹이를 적게 줘도 잘 자랐고 스스로 먹이를 구할 줄도 알았다. 무엇보다 다른 육류는 자주 잡을 수 없었다. 귀하고 소중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에 대한 요리법이 더 자주 등장할 정도였다. 개고기는 궁중에서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보통 조선시대에 생산된 요리서적에 고기 요리법은 대개 중국 책을 인용한 것이 많다. 그러나 닭은 우리 고유의 것이 많다고 식품영양학자들은 말한다. 중국 책에는 오히려 거위·오리·기러기 요리법이 더 많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고기의 경우는 요리법이 자세하지 않으나 닭은 상세한 편이다.

유명한 가정상식 서적 <규합총서>[1809년, 순조 9에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엮음]에는 “닭을 잡아 거꾸로 매달아 반나절을 해야 피가 다 빠지고 맛이 좋되, 닭내를 맡으면 지네가 반드시 오기 쉬우니 조심하라”고 적고 있다. 근대적인 도살법을 적고 있는 것이다.

또 <임원십육지>[1835년쯤 서유구가 지은 생활백과. 16장 255책으로 돼 있으며 제8장 정조지(鼎俎志)에 식품의 종류, 저장, 가공방법을 기술했다]에는 “노계를 삶자면 산사나무 열매 몇 알갱이나 백 매를 넣으면 쉬 무른다”고 쓰고 있다. 일종의 연육법이다. 이런 요리법은 실제 현대에도 적용해볼 가능성이 있다. 이런 각종 전래 요리서나 생활백과에는 닭 요리법이 매우 다채롭게 등장한다. 물론 튀김은 없다. 닭찜·닭국·닭볶음 정도다.

닭볶음 이야기를 하니 여담 하나가 떠오른다. 언론인 출신의 윤덕노 작가가 쓴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라는 단행본에 나오는 내용이다. 닭도리탕이라고 언중이 부르는 말이 일본어라고 해 닭볶음탕으로 교정해서 쓰고 있는 건 다 아실 것이다. 도리가 일본어의 새, 닭을 뜻하므로 잘못됐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윤 작가에 따르면 그 근거가 희박하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에 발행된 잡학책 <해동죽지>에 도리탕이라는 요리가 나온다. 그런데 한자로 桃李湯이라고 적었다는 것이다. 윤 작가는 “만약 일본어에서 새나 닭을 뜻하는 도리(토리)라면 새 조(鳥)라는 한자를 놔두고 일본어 발음인 ‘토리(とり)’를 다시 한자인 ‘도리(桃李)’로 음역했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도리란 말은 우리말에 ‘살점 등을 잘라내다’는 뜻이 있으니 우리말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윤 작가 주장의 핵심이다. 어쨌든 닭볶음탕이라는 말도 좀 이상하기는 하다. 볶음이면 볶음, 탕이면 탕이지 볶음탕은 또 무엇인지.


▎영계백숙에 인삼을 넣어 끓인 삼계탕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닭고기 먹고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

닭은 인류와 가장 친숙한 가축이다. 그래서인지 관련된 설화도 많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와인 중에 키안티 클라시코가 있다. 독자들도 몇 번쯤 마셔봤을 것이다. 이 와인의 생산자는 아주 많아서 라벨이 다 다르다. 그러나 통일된 양식이 하나 있다. 병목에 빨간 원과 검은 수탉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 와인이 탄생한 전설을 담고 있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지역 이름인데 토스카나의 피렌체와 시에나라는 두 거점 도시 사이에 있다. 두 도시는 아주 앙숙이어서 자주 다퉜다. 지금도 두 도시가 축구경기를 하면 경찰이 대거 출동하고 난리가 난다. 어느 한 도시에 가서 다른 도시가 좋다는 말을 하면 거주민들이 크게 화를 낼 정도다. 이렇게 사이가 안 좋으니 전쟁도 잦았다.

어느 날, 두 도시는 이런 제안을 하게 된다. 피 흘리며 싸우지 말고 닭을 한 마리씩 준비해 아침에 먼저 우는 쪽이 승리하는 것으로 약조하였다. 그런데 피렌체는 닭을 굶겼고, 시에나는 배불리 먹였다. 당연히 배고파 잠을 일찍 깬 피렌체의 닭이 먼저 울었다. 그 닭이 검은색이었다고 한다.

피렌체가 시에나에 비해 도시가 더 크고 번성하고 있다. 시에나는 팔리오라고 부르는 유명한 경마경기로 알려진 도시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검은 닭을 오계라고 부른다. 천연기념물 265호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논산에 지정 농장이 있어서 이 닭을 보호하고 있다. 흔히 오골계라고 부르는데, 일본계 품종이다.

나폴레옹과 관련된 닭 요리도 있다. 한국에서도 파는 집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치킨 마렝고다. 마렝고(Marengo)란 이탈리아 서쪽에서 밀라노로 가는 중간이 있는 마을이다. 포(Po)강이 흐르는 너른 벌판이다. 이곳에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군과 싸우던 1800년의 일이다.

전장에 음식 재료가 부족해서 전속요리사는 골치를 썩였다. 최고급인 샴페인과 쥬브레 샹베르탱 와인을 즐겼다는 말이 있지만, 나폴레옹은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요리 재료가 너무도 부족했다. 그래서 버터 대신 이탈리아에서 구하기 쉬운 올리브유에 닭을 요리해서 냈더니 나폴레옹이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다.

이때 나폴레옹은 절체절명의 위기였는데, 자신의 장수인 루이 드제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고 치킨 마렝고를 먹으러 갔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드제는 전사했지만, 나폴레옹은 이 전투의 승리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치킨 마렝고는 행운의 음식으로 유럽에 전해지게 된다.


▎피난지에라는 푹 삶은 닭볏에 콩과 채소를 넣고 식초로 맛을 낸 이탈리아의 토속적인 요리다.
삶은 닭볏에 채소 곁들인 피난지에라

이탈리아 서북부 피에몬테의 전통음식으로 필자가 다니던 요리학교 앞 작은 식당의 마리아 아줌마가 이 요리를 잘했다. 닭을 토막 내고 화이트와인과 양파, 마늘, 버섯과 자두를 넣은 요리였다. 특별하다고 느끼기엔 모자란 평범한 요리 맛이랄까? 오히려 이 아줌마의 특제 요리는 피난지에라(Finanziera)라는 닭 요리였다.

닭볏을 넣어 만드는 요리다. 푹 삶은 닭볏에 콩과 채소를 넣고 식초로 맛을 낸다. 아주 토속적인 요리로 입맛을 돋운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이 식당을 들러 다시 한 번 피난지에라 맛을 볼 수 있었다. 마리아 아줌마는 많이 늙었지만 손맛은 여전했다. 학교 다닐 당시 다섯 살이었던 아들이 턱수염을 의젓하게 기른 채 손님을 받고 있어서 놀랐다.

닭 요리를 말할 때 삼계탕을 빼놓을 수 없다. 전통요리로 알고 있는데, 조선시대의 문헌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영계백숙은 1795년에 임금의 수라상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나온다. 이 영계백숙에 인삼을 넣어 끓인 것을 삼계탕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그 역사가 오래되지는 않았다. 다만 영계백숙은 오래전부터 먹어왔던 것이다. 진의종 전 국무총리는 한 수필에서 영계백숙에 대해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여름철의 별미로서 영계백숙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담백한 고기 맛이 자양분까지 풍부하고 보면 한여름의 일미라고 아니할 수 없다.… 오이소박이라도 곁들이게 되면 어린 시절의 향수까지 한 가닥 느끼게 된다.”

삼계탕의 원조는 서소문에 있는 고려삼계탕(1960년 개업)이다. 그런데 이 이름은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다. 신문기사를 보면 1960~70년대까지는 계삼탕과 삼계탕을 혼용해서 썼다. 그러다가 삼계탕이 우세어가 되면서 굳어지게 된 셈이다. 삼계탕은 현대인의 욕망에 부합하는 요리다. 보신탕을 먹기에는 도시생활에 뭔가 꺼림칙하고 보양에 대한 욕망은 여전했던 현대인에게 적합하게 개량됐다.

우선 뚝배기 크기에 맞는 닭이 공급됐다. 뚝배기에 온전히 닭 한 마리가 다 들어가야 보양이 된 듯한 기분을 완벽히 충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찜이나 튀김에 적합한 닭은 뚝배기에 들어가지 않았다. 업자들은 3주 정도 기른 닭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현재 튀김용은 40일 미만을 주로 쓴다. 삼계탕용은 4주 미만, 500g 안팎의 닭을 쓴다.

닭이 어려서 맛이 여리므로 노계의 뼈를 고아 국물에 섞는 집도 있다. 일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삼계탕은 한국의 효자 관광음식이다. 일본인들은 줄을 서서 이 음식을 먹는다. 인삼에 대한 신비함이 더해진 것이다. 무라카미 류라는 유명한 작가가 쓴 <달콤한 악마가 내 안에 들어왔다>에는 삼계탕을 육감적으로 칭송하는 글이 있다. “생명을 그대로 입 속에 넣는 느낌”이라고 썼다.

유명한 만화 <맛의 달인>에도 등장한다. 삼계탕은 분명 매력적인 요리다. 그러나 이미 보양을 따로 할 필요가 있을 만큼 우리 영양상태가 나쁜 것도 아니다. 작은 인삼과 몇 주 기르지 않은 닭이 변변한 보양효과를 보일 리도 없다. 삼계탕은 그래서 우리 식문화의 살아 있는 화석인지도 모른다. 국물을 넉넉히 내어 여럿이 나눠 먹을 수밖에 없었던 궁핍의 기억에 보양에 대한 열망이 합쳐진 일종의 신화적 음식인 셈이다.

201406호 (201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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