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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이슈 - ‘저탄소차협력금제’ 시행 방침에 자동차업계 울상 

수입차엔 날개, 국산차엔 족쇄? 

부담금이 보조금 25배인 1조1090억 원, 경제위축 우려…글로벌 자국산업 보호 경쟁 속 환경부 ‘역주행’ 비판도

▎환경부가 2015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부과금을 매기거나 부조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현실을 도외시한 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울산항에서 수출용 차량들이 선적되고 있다.



‘저탄소차협력금제’가 자동차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환경부가 시행하기로 한 이 제도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부담금을 매기거나 오히려 보조금을 지원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자동차업계와 재계는 “국내외 경제 여건과 경영 상황을 도외시한 무리한 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환경부가 2015년부터 ‘저탄소차협력금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을 초과하는 신규 구매 차량에 최대 700만 원의 부담금을 매기는 대신 배출량이 적은 차종에는 부담금을 면제하거나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에 대해 국내 자동차업계와 재계를 중심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부담 증가 ▷수입차에 유리한 제도로 인한 국내 자동차산업 기반 약화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중복규제 등이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주된 이유다.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과정도 많은 뒷말을 남겼다. 환경부는 성급한 제도 도입으로 인한 문제점을 간과했을 뿐 아니라 자동차업계와 연계한 중장기 로드맵 등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환경부는 2012년 저탄소차협력금제도 시행안을 자동차업계와 합의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발표했다. 이후로도 환경부는 환경단체 등의 의견을 반영해 최대 부담금 150만 원을 300만 원으로 올린 데 이어, 얼마 가지 않아 다시 700만 원으로 올리는 등 1년7개월간 세 차례나 안(案)을 변경했다. 환경부는 제도 개선안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0g/㎞ 이하일 경우 보조금을 최대 700만 원까지 지원한다고 밝혔으나, 이에 해당되는 차종은 상용화·활성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전기차에 불과하다.

업계와 재계의 불만이 증폭되자 환경부는 최근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제도도입 재검토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도입 철회, 장기 유예 등 근본적인 조치가 아닌 보조금 및 부담금 구간 조정에 그칠 경우 한국자동차산업은 큰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자동차산업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산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제도 도입에 반대한다”며 “환경부에서는 소형차·친환경차를 보다 많이 유도하기 위해 ‘저탄소차협력금제’를 시행하자는 건데 한국 자동차산업이 해외시장에서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중·대형차, 프리미엄 차량 위주의 수출이 이뤄져야 한다. 만일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한국 자동차산업에 브레이크를 거는 거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경차 운전자 지갑 열어 수입차 운전자 지원?

저탄소차협력금제가 시행되면 국산 경·소형차를 구매하는 서민들의 부담은 커지는 반면, 고가 수입차 구매자들은 상대적으로 혜택을 누리게 된다. 1천만 원 안팎의 기아차 모닝과 한국GM 스파크 등 경차에는 보조금 혜택이 없다.

서민층이 다용도 차량으로 구매하는 기아차 레이 1.0과 프라이드 1.4를 구매하는 사람은 차량 가격이 10배나 비싼 BMW 730d 구매자와 마찬가지로 25만 원의 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반면 3천만~4천만 원대인 폭스바겐제타 1.6, BMW 320d ED 구매자들은 50만 원의 보조금을 받게 되며 BMW 520d, 벤츠 E220 CDI, 아우디 A6 2.0 TDI 등 가격이 6천만~7천만 원대에 이르는 고가 프리미엄 차량의 부담금은 면제된다.

결과적으로 부담금은 고스란히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몫이 된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돈을 아끼려고 1천만 원짜리 경차를 타는 사람이 수천만 원짜리 수입차를 타는 사람에게 돈을 보태주는 격”이라고 말했다.

환경부가 저탄소차협력금제의 모델로 삼고 있는 프랑스의 ‘보너스-맬러스 제도’는 당시 디젤엔진과 소형차에 강점을 갖고 있던 르노, 푸조 등 자국 자동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사실상의 기술적 무역장벽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2007년 프랑스 자동차시장에서 르노, 푸조 등 자국 브랜드는 전년 대비 0.2% 매출이 감소한 반면 수입차는 7.6% 성장했다. 하지만 보너스-맬러스 제도가 본격 시행된 2008년에는 프랑스 자동차시장에서 자국 브랜드는 전년 대비 2.1% 판매가 신장했지만 거꾸로 수입차들은 3.9% 감소했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프랑스시장에서 성장세를 보이던 수입차 브랜드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았던 중·대형차, SUV 모델의 판매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프랑스와 달리 국내의 경우 저탄소차협력금제가 시행되면 수입차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디젤차량을 앞세워 국내 자동차시장을 질주하고 있는 독일차의 판매량은 더욱 늘고 하이브리드카 부문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일본차의 ‘부활’도 예상된다. 유로화 통합에 따른 환율 효과와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른 관세인하 효과 등을 배경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독일차는 2013년 사상 처음으로 주요 국가 브랜드별 연간 국내 판매량 10만 대를 돌파했다.

자동차업계 한 전문가는 “국내의 경우 경유승용차 판매가 2005년에야 허용되는 등 역사가 짧아 선진국들과 기술격차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하이브리드차는 2009년에 최초로 출시됐으나 정책적 지원 미흡 등으로 아직 상업적 시장 형성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직격탄 맞게 될 국내 자동차업계는 볼멘소리

박근혜 대통령은 2월 19일 환경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호수에 돌을 던졌을 때 우리는 그냥 던졌지만 개구리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일이라는 우화를 기억하실 것”이라며 “현실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규제를 만들었을 때 기업을 죽일 수도 있다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제 막 회생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쌍용차와 생산량을 3분의 1 감축하면서까지 어렵사리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GM, 특히 군산공장을 두고 업계에서는 “박 대통령이 비유한 ‘개구리’가 바로 이 회사들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쌍용차는 2013년 전년 대비 20% 증가한 14만5649대를 판매했다. 2012년 2조8천억 원대였던 매출 역시 올해 3조4천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이런 회복세를 타고 쌍용차는 올해부터는 수출에도 집중해 내수 6만9천 대, 수출 9만1천 대 등 총 16만 대의 판매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쌍용차 평택공장의 생산능력 24만 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수치로, 추가 복직 대상자 1600명을 모두 수용하려면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저탄소차협력금제가 시행된다면 국내 자동차 제작사 차량의 과반수가 부담금 부과 대상에 해당되는 만큼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쌍용차와 함께 최근 군산공장 생산 감축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GM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로 인한 수출 물량 감소로 시간당 생산량을 35% 감축하기로 한 한국GM 군산공장은 생산차종이 모두 부담금 적용 구간에 해당된다. 한국GM 군산공장은 전북지역을 지탱하는 경제 중심축으로 100여 개의 연관기업과 1만1천여 명 근로자들의 고용불안 등 지역경제가 직격탄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물론 국내 시장의 국산차 점유율이 80%에 육박하는 현대기아차도 예외는 아니다.

중소 부품업체의 매출 손실도 현실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차종이 부담금 부과 영역에 속하는 국내 완성차의 경우, 저탄소차협력금제가 시행되면 판매가 감소할 것이고, 이는 협력부품업체의 손실로 이어지게 된다. 2012년을 기준으로 국내 1차 부품협력업체 887개사 가운데 중소기업의 비중이 76.9%(682개사)로 절대 다수다. 결국 부품업체는 영업이익 감소→연구개발 투자 감소→경쟁력 악화→매출감소의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월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14년도 환경부·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 업무보고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성급한 규제의 폐해를 설명하기 위해 ‘개구리’를 예로 들었다.



한·미간 통상 마찰 부르나

환경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탄소차협력금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문제제기 강도가 심화되면서 이 제도가 한·미간 통상 갈등의 이슈로도 부상하고 있다. 양국간 통상갈등이 심화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 및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참여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연방정부기관인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지난해부터 저탄소차협력금제도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한 데 이어, 최근에는 고위 관계자들이 잇달아 제도 시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한 브라이언트 트릭 USTR 한국담당 부대표는 환경부 고위 공무원을 만나 저탄소차협력금제도 시행에 강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트릭 부대표는 “부담금 부과 구간이 미국 업체에 불리하게 설계되는 등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며 제도 도입을 전면 재검토하거나 도입 시 충분한 유예 기간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웬디 커틀러 USTR 대표보도 ‘한국의 TPP 참여’를 주제로 미 워싱턴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2010년 한·미간 자동차 분야에서 추가적 합의 이후 여러 문제가 해결됐으나 아직도 FTA 정신과 관련된 남은 문제가 적지 않다”며 “특히 미국 자동차 업계는 한국이 조만간 ‘보너스-맬러스제도’(저탄소차협력금제)를 시행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USTR은 지난해 4월 발간한 연례보고서인 국별무역장벽(NTE) 보고서에서도 자동차 분야 저탄소차협력금제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USTR은 한국 정부가 이 제도에 대해 미국 정부 및 미국 자동차업계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2015년 저탄소차협력금제도가 시행되면 상대적으로 배기량이 높은 미국 차량들이 한미FTA 이전의 세금보다 더 높은 부과금을 물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통상 전문 매체 <인사이드 US 트레이드>에 따르면 미 주한상공회의소(암참)가 최근 한국 정부와 USTR에 보낸 보고서에서 미국산 자동차 구매자는 대당 평균 504만1천 원의 부담금을 내야 하지만 한국산은 108만5천 원, 일본산은 146만6천 원, 유럽연합산은 176만4천 원을 부담한다고 분석했다.

환경부가 밝힌 안대로 저탄소차협력금제가 실시되면 지난해 1774대로 가장 많이 판매된 미국차 포드 익스플로러는 235g의 탄소를 배출, 시행 첫해부터 700만 원의 부담금을 내야 한다. 포드 토러스 2.0은 300만 원, 크라이슬러 지프 차량들은 300만~700만 원의 부담금이 적용되고, 친환경차인 포드 퓨전 하이브리드조차 중립구간에 해당되는 만큼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부과기준이 배기량을 기초로 한 것이 아니며 세금과도 성격이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미국 측은 고배기량 차량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만큼 사실상 배기량에 따른 조세라고 재반박했다.


▎3월 2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14 오토모티브위크’에 ‘미래형 전기차’가 전시돼 있다.
이 제도를 유일하게 시행하고 있는 프랑스도 저탄소차로 ‘전이효과’를 높이기 위해 제도시행 초기 재정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찍’보다 ‘당근’을 주는 정책을 시행했다. 특히 15년 이상 노후화된 차량 폐차 후 신차를 구입하는 사람에게는 추가로 지원금을 주는 ‘슈퍼보너스’(Super Bonus) 제도도 운영해 자동차 내수시장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해나갔다. 업계에서 내년도 저탄소차협력금제 시행을 시기상조로 보는 또 다른 이유다.

온실가스 감축 기대효과도 미미

오는 2020년 국내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1억t으로 예상된다. 저탄소차협력금제 도입을 통해 기대되는 2020년 한 해 온실가스 감축량은 약 15만8천t으로,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0.15%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국내 자동차산업계에 지각변동을 몰고 올 저탄소차협력금제의 실효성이 매우 적다는 방증이다.

국내의 대표적 중형차인 쏘나타의 경우 저탄소차협력금제가 시행될 경우 75만 원의 부담금이 붙게 되지만, 1년에 2만㎞씩 10년간 운행 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유럽연합의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으로 환산하면 19만 원밖에 안 된다. 19만 원어치 탄소를 배출하는 데 75만 원이라는 소비자 부담을 지우게 되는 셈이다.

아울러 2010년 실제 배출량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490t)의 1.4%인데 반해 2020년 기준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는 전 세계 감축 예상치의 3~8%에 달해 세계적 추세 대비 과도한 감축 목표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무리한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에 따라 기업의 비용 부담이 늘어날 경우 생산활동의 축소는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이나 외국인 투자기피로 이어지는 등 경제활동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차 구매 시 소비자들의 부담 증가도 현실적인 문제다. 제도가 시행될 경우 신차 구매자들이 내야 할 부담금이 받을 수 있는 보조금보다 최소 1조 원 이상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국내시장에 판매된 신차 중 저탄소차협력금제 대상 차종 126만여 대(국산차 및 수입차)에 환경부의 탄소배출량 구간 및 금액을 적용해본 결과, 신차 구매자가 받을 수 있는 보조금 총액은 443억 원인데 반해 부담금 총액은 1조1090억원에 이른다.

이는 차종별 탄소배출량과 지난해 판매 대수를 감안해 보조금과 부담금의 누적금액을 계산한 것으로 부담금 총액이 보조금의 25배가 넘는다. 신차를 구입한 소비자들이 낸 부담금으로 다른 소비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도 남는 돈이 1조647억 원이나 된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2015년 제도 시행 이후 순차적으로 탄소배출량 구간 규제치를 강화해나갈 계획인 만큼 신차 구매자들이 내야 할 부담금 총액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김현철 교수는 “환경부가 저탄소차협력금제를 도입하려는 취지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현실을 외면한 채 환경이라는 하나의 기준만 적용하려는 게 안타까울 뿐”이라며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자동차 선진국이라는 미국·일본·독일에서는 왜 시행하지 않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어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앞으로 전기차 등 친환경차로 플랫폼이 바뀌어야 할 뿐 아니라 수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형·프리미엄 차량의 수준도 높여야 한다”며 “그런 관점에서 봐도 환경부가 추진하려는 제도는 한국자동차산업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되레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405호 (201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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