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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初心)으로 돌아가는 포스코 

 

정치적으로 외면받은 ‘창업자’ 박정희, 빈자리로 돌아오다…창립기념일에 박정희·박태준 두 창업주역 묘소 참배도

▎지난 4월 1일 포스코 창립 46주년을 맞아 권오준 포스코 회장(사진 가운데)과 경영진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포스코 경영진의 공식참배는 처음 있는 일이다.



포스코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혼이 깃든 곳이다. 박 전 대통령은 제철소 건립을 국가 부흥의 기반이라고 여겼다. “철은 산업의 쌀이요, 쌀을 만들어야 밥을 지어 먹지 않겠나.” 박 전 대통령의 철학이 여기에 녹아 있다. 연인원 4천만 명이 동원됐고, 4반세기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밑그림과 전폭적인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대역사였다. 박태준의 뚝심이 없었다면 박 전 대통령의 한과 함께 흙 속에 묻혔을 신화였다. ‘영일만의 기적’ 포스코는 두 사람의 열정과 온 국민의 피와 땀이 집약된 산업화의 심장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포스코의 역사에서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은 한 발 뒤로 빠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제철소 건립 업적을 말하는 것조차 군사정권에 대한 옹호로 낙인 찍히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포스코 스스로도 박 전 대통령을 ‘실질적인 창업자’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국가적 역량이 총 집약된 태생의 특성상 정치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 가려지니 나머지 한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포항제철소 창업신화’는 그렇게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 개인의 입지전과 동일시되다시피 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박 전 대통령의 포스코 창립 업적에 대한 재평가 목소리가 높아졌다.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포스코의 입장에 변화가 감지된다. 모처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새 경영진이 들어선 뒤 가리워진 역사를 드러내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도 포스코는 정치적으로 확대해석 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이 작업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새로운 ‘제철 대역사’가 될 수도, ‘민간기업’ 포스코를 다시 정치권과 이념논쟁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4월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대통령 묘역에 검은색 예복을 갖춰 입은 조문객 20여 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조문객들의 얼굴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고인에 대한 애도의 감정보다 뭔가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듯한 표정이 얼굴에서 묻어났다. 박 전 대통령 묘소에 헌화한 이들은 묵념한 뒤 국가유공자 3묘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011년 타계한 박태준 명예회장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박 명예회장의 묘소에는 미망인 장옥자 여사가 조문객을 마중 나와 있었다. 조문객들은 장 여사의 안부를 물으며 정중히 예의를 갖춰 인사를 나눈 뒤 돌아갔다. 이날 현충원을 방문한 조문객들의 행보는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은 지난 3월 14일 포스코의 새 수장이 된 권오준 회장과 임원들이었다.

4월 1일은 포스코 창립 46주년 기념일이었다. 초대 사장이었던 박 명예회장 타계 이후 역대 포스코 경영진이 그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바로 옆 묘역에 잠든 박 전 대통령을 참배한 적은 있지만, 창립기념일에 최고 경영진이 공식적으로 박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것은 포스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포스코 측은 권 회장 취임 후 창립 정신인 ‘제철보국’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에서 박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다고 밝히고 있다.

‘포스코 더 그레이트(Posco the Great)’를 기치로 내걸고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한 새 회장의 경영 방침 구현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새로운 출발을 위한 다짐’이란 것인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원론적 수준의 설명이다. 이런 부족함을 채우려면 한 가지를 추가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자성’이 그것이다. 새 경영진의 이번 참배가 단순한 각오 다지기 차원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포스코 창업의 주역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1970년 4월 1일 포항제철 1기 설비 종합착공식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가운데)과 박태준 사장(왼쪽), 김학렬 부총리가 발파 버튼을 누르고 있다.
박정희, 서거 전까지 제철소 현장 13차례나 방문

포스코는 1968년 대일청구권자금을 들여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로 문을 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과업을 수행할 적임자로 그의 군 후배인 박태준을 선택했다. 박 전 대통령은 후에 포스코의 창립 정신이 된 ‘제철보국(製鐵報國)’이란 휘호와 함께 전권을 TJ(박태준의 이니셜)에게 맡겼다. “나는 임자를 잘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나는 고속도로를 감독할 거야. 임자는 제철소를 맡아.”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도록 ‘종이마패(박 전 대통령이 직접 서명해 전권을 부여한 박태준의 건의서)’를 쥐어주며 임무를 독려했다. 1979년 서거하기 전까지 제철소 건설 현장을 열세 번이나 직접 찾을 만큼 박 전 대통령은 포항의 종합제철소 건설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와 아버지의 연이은 서거로 졸지에 고아가 된 근혜·근령·지만 3남매에게 포항제철 초대 사장이 된 TJ는 가장 든든한 후견인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동생 지만 씨가 어엿한 기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된 것도 TJ의 배려 덕분이었다. 지만 씨는 포스코의 협력업체인 ㈜EG의 회장이다. EG는 포스코의 냉연강판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산화철을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박 명예 회장 내외가 박 대통령 남매를 친자식처럼 여기며 각별히 애정을 쏟았다”고 전했다.

포스코에서 박 전 대통령의 기억이 희미해진 건 TJ의 정치적 몰락과 궤를 같이한다. 박 대통령의 서거 후 포스코는 정치적 바람막이를 상실한 채 정권의 파도에 휩쓸려왔다. 전두환·노태우 신군부는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TJ가 정치에 입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자서전을 통해 “포스코의 바람막이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TJ는 1992년 10월 3일 박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다. 25년에 걸친 포항제철 대역사를 종합 준공한 다음 날이었다. 그는 제철소건설의 특명을 내린 ‘주군’에게 준공보고 형식으로 예를 갖췄다. 이후 TJ는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원치 않는 유랑길에 오르면서 포스코는 다시 선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도 포스코에서 희미해져 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로도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조심스런 화제였다. 박 전 대통령의 치적을 언급하면 사회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정권의 낙하산 인사가 연이어 수장으로 내려오면서 권력을 쥔 정치권의 속박이 포스코를 더욱 옥죄었다.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은 ‘제철보국’, ‘창업정신’, ‘영일만의 기적’과 같은 용어로 추상화됐다.





▎지난 3월 취임한 권오준 포스코 회장(가운데)은 ‘위대한 포스코(Posco the Great)’를 기치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말하는 초심이 박정희-박태준의 공동창업 정신에 있음을 포스코도 부인하지 않는다.
정치적 부채 없는 권오준 신임 회장의 자신감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도 그동안 정치적인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에는 권력의 정통성 문제로 ‘박정희 시대’를 거론하는 게 금기시됐다. 이어 들어선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박정희식 산업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제철소 건설에 기여한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이 축소되거나 외면당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과거 정부에선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업적을 말하면 군사정권을 옹호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포스코의 역사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포스코 창업주’라는 명성은 자연스럽게 TJ에게로 돌아갔다.

지난해 가을 포스코는 역사관을 개관한 지 10년 만에 새로 꾸몄다. 전시관이 시작되는 2층에서 창업기를 소개하는 첫 공간(제철보국의 꿈)에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을 내세웠다. 박 전 대통령과 박 전 총리의 남다른 인연을 강조하는 전시물들도 눈에 띈다. 새 단장 후 달라진 모습이 라고 한다. 박 대통령 취임 후 포스코가 스스로 성의를 보인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다만 포스코 측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내부 단장을 새로 한 것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포스코 창립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사내·외에서 확산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 권 회장이 취임 직후 박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적 부채가 없다 보니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평가하는 것에 대해 권 회장 스스로도 꺼릴 게 없다. 오히려 그의 거침없는 행보야말로 선임 과정에서 정치적 개입이 없었다는 반증이란 주장도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권 회장이 정권을 등에 업고 자리에 올랐다면 정치적 부담을 의식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떳떳하기 때문에 그동안 쉬쉬해온 박 전 대통령의 과업을 제대로 기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포스코 이사회가 권오준 회장을 선택한 과정을 보면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이사회의 고민이 엿보인다. 지난 1월 15일 이사회가 차기 회장 후보 5명을 발표했을 때 청와대와 사전 교감설이 파다했다. 공교롭게 이날 박 대통령이 인도와 스위스를 방문하기 위해 출국한 터였다. 정치권과 인맥이 닿는 특정 후보가 낙점됐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이사회는 하루 만인 16일 권오준 당시 기술총괄 사장을 차기 회장으로 내정해 발표했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이어서 사전 교감설을 일축하는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이사회의 결정은 명분과 외풍 차단을 동시에 챙긴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이공계 우대 방침에 부합하는 인사를 선택함으로써 향후 있을지도 모를 정치적 외압을 차단하는 안전장치인 셈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입버릇처럼 ‘이공계 우대’를 말해왔다. 2012년 12월 8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강연에서 자신이 당선되면 이공계 출신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겠다고 공약했다. 박 대통령은 “제가 이공계 출신이니 뭔가 DNA가 다르지 않겠습니까?”라며 ‘뼛속까지 이공계 출신’임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과학입국 기술 자립’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철학이기도 하다.

“최근 변화는 잘못된 역사에 대한 고해성사”

권 회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피츠버그 대학에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8년 동안 포스코에 근무하면서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포항기술연구소 등 연구개발(R&D) 부문의 외길을 달렸다. 대부분의 근무 이력을 포항과 광양에서 쌓았다. 서울에 올라온 건 비교적 최근이었다. 정치권 인맥이 거의 없는 이공계 출신의 연구자형 리더다. 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이공계 우대’와 ‘낙하산 근절’ 방침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포항제철 창립사를 그린 TV드라마도 4월부터 방영을 시작했다. 종합제철소를 건립하려는 박 전 대통령과 박 전 총리의 열정을 그렸다. 포스코가 드라마 제작을 후원하고 있다. 당초 KBS가 2012년에 방영하려다 정치적 논란 때문에 취소했던 드라마 <강철왕>의 대체 작품이다. 예전과 달리 이 드라마를 정치적 목적으로 의심하는 분위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월 5일에는 포스코 창설요원들의 친목 모임인 ‘창철회’ 회원 10여 명이 창립 45주년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어 포항제철소 1기 준공 40주년 기념일인 7월 3일에도 다시 박 전 대통령과 박 전 총리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사를 낭독한 여상환 전 포스코 부사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불 같은 집념, 13차례에 걸쳐 모래바람 부는 건설현장을 찾아준 관심과 격려에 힘입어 일관제철소 건설에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고 동참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포스코 창설요원들이 지난해 발족한 포스코창립회 안병화 회장(전 포항제철 사장)도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동안 포스코 창업과 관련해 박 전 총리에게만 초점이 맞춰졌으나 제철소 건설의 특명을 내렸던 박 대통령의 집념과 의지도 조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6년 5월 31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맨 앞)과 박태준 사장이 공사를 마친 포항제철 2고로에 불을 붙이고 있다.
“우리 초심은 박정희-TJ가 남긴 ‘영일만 정신’”

이런 움직임들을 사전에 계획된 합의로 볼 수는 없다. 적당한 시기가 왔기 때문에 터져나오는 현상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포스코 입장에서 본다면 ‘비로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포스코는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진 이제야 말로 부족했던 창업 역사를 제대로 채우게 됐다고 자평한다.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의 실질적인 창업자가 박정희 대통령이란 사실은 포스코 일원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박태준 명예회장도 이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정치적인 분위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했다. 최근 변화한 태도가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대한 고해성사인 셈이다.

권 회장은 취임사에서 ‘초심’을 강조했다. ‘제철보국’의 창립정신을 되새기자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초심’이 ‘TJ정신’만 말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문어발식 사업 부문을 정리하고 본원 경쟁력을 강화해 철강 명가의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개혁 구상은 역사에 대한 재평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정권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게 없으니 특정 정치권력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는 게 권 회장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런 자신감이 최근의 포스코 역사의 재평가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포스코에 역사 재정립은 민감하고 부담스러운 과제다. 자칫 ‘TJ 폄하’로 비춰질 경우 원로 그룹의 반발과 직원들의 결속력을 헤쳐 새 경영진의 개혁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외적으로는 정권을 향한 ‘코드 맞추기’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뜻하지 않게 이념 논쟁에 빠져들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정치적 풍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양날의 검을 들고 있는 셈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한쪽을 깎아내려 다른 쪽을 높이는 게 아니다”라며 “이념을 떠나 그동안 미뤄왔던 제철 역사에 대한 박 대통령의 순수한 업적을 정당하게 평가할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화에 기여한 업적은 민주화나 이념적 평가와 별개로 진행돼야 한다. 그동안 차분하게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는데 이제는 분위기가 많이 무르익었다. 포스코의 이러한 논의가 포스코의 미래를 위해서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405호 (201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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