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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 고졸채용 ‘찬밥’ 정권 따라 오락가락 

 

박근혜 정부 들어서 금융권·공기업의 ‘고졸채용’ 대폭 축소돼…특성화고 취업지도와 신입생 모집에도 적신호 켜져

▎2년 전만 해도 ‘고졸채용’에 적극적이었던 금융권과 공공기관들이 정권이 바뀐 뒤로는 채용 규모를 크게 줄였다. 정권에 따라 취업 정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특성화고 학생들의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주연(19·가명) 양은 2012년 한 대기업 계열 증권사로부터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다. 친구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취업을 하게 된 그를 부러워했다. 증권사, 은행 등 금융권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복지 혜택이 많아 특성화고 학생들 사이에서 ‘꿈의 직장’으로 불린다.

김양 역시 평소 들어가고 싶었던 직장에서 일하게 돼 첫 출근 때는 가슴이 뛸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말 그는 회사를 그만뒀다. 금융권의 경영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구조조정의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경영실적 악화를 들어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권유했다. 김양도 결국, 그 물결에 휩싸였다. 취업한 지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김양을 지도했던 고교 선생님인 이준우(가명) 교사는 “회사 내부사정은 잘 모르지만 전해듣기로는 끝까지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대로 회사에서 남았다가는 대기발령이 나거나 퇴출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때문에 결국 희망퇴직을 신청하기로 결정한 걸로 알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회사를 나온 김양이 최근 학교를 찾아와 들려준 얘기다. 이 교사는 “다른 직장을 알아보긴 해야 하는데 이미 졸업한 상태라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돼 놀란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이 교사에 따르면 김양은 학교성적도 우수하고, 교우관계가 좋았다. 이 교사는 “성실하고, 똑똑한 아이를 어린 나이에 뽑아놓고 이렇게 빨리 내치는 회사가 원망스럽다”며 “경기가 좋지 않아도 대기업이라 안정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양이 다녔다는 증권사는 지난해 김양과 같은 ‘고졸공채’ 직원을 포함해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고, 특정한 직급을 줄이기 위한 구조조정은 없었다”며 “해당 직원들을 배려해 희망퇴직 위로금을 대폭 확대해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졸공채’ 출신들의 희망퇴직자 수를 묻자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김주연 양은 요즘 다시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금융권보다 연봉은 적어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한다”고 말했다.

최근 3년여 동안 취업시장의 최대 화두는 ‘고졸채용’이었다. 2011년 말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고졸채용’ 붐이 일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한 시중은행을 찾아 고졸사원을 격려하면서 “나도 야간상고 출신이다. 고졸채용을 늘리겠다”고 말한 이후 금융권 전반으로 고졸 채용 움직임이 확산됐다. 2011년 8월 이 전 대통령이 주재한 ‘공생발전을 위한 대기업 간담회’에서 국내 30대 그룹은 사상 최대 규모인 12만4천 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특히 고졸 인력은 2010년보다 13% 증가한 3만5천 명을 신규 모집할 의사를 밝혔다.

금융권도 이에 호응했다. 2012년 금융위원회는 5개 금융관련 협회와 ‘일자리 창출 추진현황 점검 간담회’를 열고,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는 2천 명 규모의 고졸사원 중장기 채용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합격하고도 2년째 출근 못한 경우도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고졸채용’ 바람은 잠잠함을 넘어서 아예 찬바람으로 바뀌는 추세다. 공공기관·금융권·기업들이 정권이 바뀌자 채용 규모를 크게 줄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금융권의 ‘고졸채용’은 지난해부터 확연히 줄었다. 2013년 11월 금융감독원이 이상직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금융사 고졸채용 현황’에 따르면 은행권과 금융투자업계, 보험사 등이 올해 3분기까지 채용한 고졸자(예비졸업자 포함)는 1487명이다. 당초 계획(2409명)보다 61.7% 줄어든 수치다. 은행 18곳과 증권사·선물회사 등 69곳, 생명보험·손해보험사 42곳이 대상이다.

금융투자협회는 당초 증권사 등에서 2013년 고졸자 408명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선발 인원은 91명(계획대비 22.3%)에 불과했다. 18개 은행이 2013년 목표한 고졸채용 인원은 996명이었다. 2013년 3분기까지 757명(76.0%)을 뽑았다. 여기다 고졸 경력직 등을 빼면 실제 신규 고졸채용 인원은 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익성이 악화돼 채용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회사들의 입장이지만 일단 채용계획을 높게 잡고 나서 홍보효과를 높이는 데만 치중했을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 295개 공공기관의 고졸 채용인원은 모두 1900여 명으로, 지난해보다 23%나 줄었다. 공공기관 고졸자 채용 비율을 2016년까지 40%까지 늘리겠다는 지난 정부의 약속은 공염불에 그친 셈이다.

대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전까진 정부의 방침이 있어서 굳이 채용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해왔던 측면이 있었다”며 “앞으로는 고졸 채용을 확대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부푼 꿈을 안고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한 ‘고졸 인재’들의 설 자리가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합격통보를 받고 2년 넘게 출근을 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특성화고 졸업생인 윤성희(19·가명) 양은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2년에 한 증권사에 직원모집에 합격했다. 그는 재학 내내 임원을 도맡아 할 정도로 리더십이 뛰어나고, 학업 성적도 좋았다. 윤양의 오랜 꿈은 증권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TV에 보면 증권사 직원들이 나와서 주식시황을 설명하잖아요. 그 모습을 보는데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일종의 ‘로망’이 생긴 거죠. 그래서 금융권 취업을 목표로 공부를 했어요. 펀드투자상담사, 증권투자상담사 등 자격증도 11개나 땄고요. 그렇게 오래 준비해서 합격을 하니깐 정말 기뻤죠.”

하지만 합격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원래 윤양은 지난해 10월부터 정식 출근을 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이상하게도 정확한 출근 날짜를 알려주지 않았다. 윤양을 비롯한 합격생들이 기다리다 못해 회사에 전화를 걸어 문의하면 “회사 사정상 지금 당장은 출근을 할 수 없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윤양은 “한 명이 여러 번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면 민망해서 합격자들끼리 돌아가면서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로부터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출근 날짜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합격생들은 기다림에 지쳐갔다.


▎지난해 7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린 ‘청년희망 채용박람회’. 고졸 이상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이 박람회에는 400여 명의 특성화고 학생이 참가했다.



“경기 악화로 어쩔 수 없다” 답변만 돌아와

11월이 되면서 대부분의 친구가 취업해 학교에 나오지 않으니 불안한 마음은 더욱 커졌다. 윤양은 무엇보다 부모님에게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집안형편이 넉넉지 않아 얼른 취업해서 부모님을 돕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님께서는 제가 속상해 할까 봐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괜히 잘못된 결정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다리다 지친 윤양은 결국 이 회사의 입사를 포기했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는 “2학년 때 취업해 2년 동안 제 회사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다”며 “길거리에서 회사 간판만 봐도 얼마나 마음이 설레였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보다 불안감의 힘이 컸다. 졸업하면 더 취업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윤양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부터 ‘백수’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어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윤양은 다른 기업에 취업해 일하고 있다.

그는 회사의 대응 방식에 섭섭한 마음을 내비쳤다. 이렇게까지 입사가 늦어질 것 같으면 조금만 더 일찍 이야기해줬더라면 다른 대책을 세울 수 있었는데 마냥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한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사가 출근 날짜를 미루는 동안 학생들은 다른 곳에 취업할 기회마저 잃게 됐기 때문이다.

윤양의 취업지도를 담당했던 서주은(가명) 교사는 “학교 입장에서는 다른 기업에서 추천 문의가 들어올 경우 성희처럼 이미 합격이 된 친구들을 제외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우선적인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며 “꽤 규모가 큰 증권사라 이렇게 학생들을 무작정 기다리게 할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희처럼 성적이 좋은 학생은 그 사이 더 좋은 기업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됐다”며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과 기회는 보상해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라고 반문했다.

이 증권사는 올해 3월에야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해당 합격자들의 오리엔테이션을 가졌다. 이 회사가 이들 신입사원에게 제시한 대안은 세 가지였다. 증권사가 아닌 다른 계열사로 입사하거나 올해 8월 1일까지 기다렸다 증권사에 입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은 입사 포기였다.

윤양과 함께 합격한 이지원(19·가명) 양은 결국 7월 말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증권사에서 연수까지 마쳤는데 이제 와서 계열사를 옮겨 입사를 하면 적응하기가 어려워질 것 같아서다. 이양은 “오히려 준비할 시간이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자격과 영어 공부를 하며 4개월을 보낼 예정이다. 밝은 성격을 가진 이지원 양에게도 이 상황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점은 좋지만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양은 언제 입사를 하게 될 지 몰라 그동안 아르바이트도 하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 최소한 3개월 정도는 해야 하는데 혹시 일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아니면 곧 출근하라고 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이양은 출근 전까지는 자신의 용돈은 스스로 벌어 써야 하는데 어떻게 남은 기간을 버텨낼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는 “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니깐 힘이 빠지고, 허무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8월에는 꼭 출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회사의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미안하지만 워낙 상황이 어려워 어쩔 수 없다”며 “회사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가 달려 있어 ‘고졸 공채’ 친구들에게 이해해주길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졸 공채’ 직원들이 8월엔 정식 출근하게 될 것”이란 입장도 덧붙였다.

기업들의 상황이 이렇다 돌아가다 보니 특성화고의 취업 지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 교사는 “작년, 재작년과 비교했을 때 입학 문의를 하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정부에서는 ‘고졸채용’ 규모가 많이 늘어나 학생들이 우수한 기업에 취업을 잘했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해도 입사하기 힘든 금융권, 공공기관에 입사하는 특성화고 학생의 수가 증가하면서 중학교 내신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특성화고에 많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 들어서 고졸채용이 이전과 같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는 신입생 모집에도 어려움이 생겼다고 했다.


▎2012년 기업은행이 실시한 ‘고졸 행원 공채’에 합격한 신입 행원들. 연봉이 높고, 복지혜택이 좋은 은행·증권사 등 금융권은 특성화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직장’으로 꼽힌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고졸 채용

전문가들은 고졸채용 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림대 사회학과 박준식 교수는 “정권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고무줄 채용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권이 바뀌어도 일자리 정책만큼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용 문화는 단기간에 바꿀 수 없으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기업을 대상으로 ‘고졸채용’ 현황을 조사했던 한 정부기관의 연구원은 “이 정책을 반가워하고, 지지하는 기업도 있었지만 불만이 있는 곳이 더 많았다”며 “일단 정부가 밀어붙이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곳이 상당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몇몇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사견임을 들어 고졸 채용이 얼마나 실효가 있겠느냐고 말하더라고요. 정부가 하라고 해서 하는데 길어야 2~3년 하다가 말 거라는 말도 했어요. 규모가 있는 대기업, 금융권이면 사람을 뽑을 때 회사 사정을 전망한 로드맵이 있어야 하잖아요. 경기가 어려운 것은 이해하지만 이런 식으로 입사를 미루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그만큼 준비도 없이 고졸채용을 늘리겠다고 홍보해놓고 정권 바뀌니까 ‘나 몰라라’ 하는 거죠.”

전문가들은 ‘고졸채용 정책’이 그 취지에 맞게 운영되려면 채용 후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노동연구원 김향아 연구원은 ‘최근 고졸채용확대 현황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기업들이 고졸자를 뽑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 맡길 정확한 직무를 미리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고졸 취업 확대정책은 대졸 고학력 청년층의 일자리를 고졸 청년층의 일자리로 메우겠다는 목적이 아니다. 고졸학력만으로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직무를 발굴해 이에 적합한 인재들을 활용하고 각 산업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자는 게 취지다. 그러므로 기업 입장에서는 고졸 출신의 우수 인재들을 뽑아 그에 걸맞은 업무를 맡기고, 맞춤형으로 육성할 때 ‘고졸채용 정책’의 취지가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김 연구원의 의견과는 사뭇 다르다. 최진우(19·가명) 군은 2012년, 한 시중 은행의 자회사에 취업했다. 그곳에서 최군은 은행, 펀드와 관련된 전산업무를 맡았다. 최군과 함께 이 회사에 입사한 동기는 모두 6명이었다. 이 중 2명은 회계 업무를, 최군을 비롯한 4명은 시스템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이들 중 현재까지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은 2명뿐이다. 전산업무를 맡은 4명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최군은 “특히 세 명의 친구가 업무에 적응을 못해 매우 힘들어 했다”고 전했다.

컴퓨터 전공인 최군은 전산 시스템을 만지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나머지 3명은 전산 쪽 전공이 아니었다. 특성화고 출신이긴 해도 전공이 아니면 전산시스템 업무를 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군은 “친구들이 많이 혼났다”며 “매일 울고,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빨리 현장에 투입해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이 친구들은 그렇지 못하니깐 관리자들도 답답해했다는 것이다. 최군은 “아마 회사랑 친구가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채용을 진행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군의 말에 따르면 3명의 동기는 하루에 3~4시간 밖에 일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머지 시간에 외부기관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현업에 투입돼 일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그중 한 친구는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정신과에 입원을 하기까지 했다. 일이 너무 안 맞아서 상담을 받았는데 의사가 입원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최군은 “상사가 병원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너는 언제 그만둘 거냐?’라고 말해 더 큰 상처를 받았다”며 “2주 동안 입원했다가 결국 퇴사했다”고 말했다. 회사를 떠난 이들은 모두 대학에 진학했다.

“취업률 높이기보다 일자리 질 높여야”

서울의 한 특성화고교에 근무했던 조경은(가명) 교사는 “기업이 학생들을 채용할 때 전공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 뽑는 것도 문제지만 학교도 일단 취업률을 올리고 보자는 식으로 학생들을 취업시키는 데만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성화고의 취업률은 사기에 가깝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은 조 교사의 이야기다.

“일반 교사들은 아이들을 취업시킬 때 근로조건도 좋고, 아이들이 업무를 잘 감당할 수 있는 곳에 보내고 싶어해요. 하지만 교감·교장선생님들 같은 경우는 오직 취업률에만 신경을 써요. 교육청이 학교에 지원금을 줄 때 취업률이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거든요. 당연히 취업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가서 맡게 될 직무, 기업의 상황 등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일단 취업부터 시키고 보자는 식으로 밀어붙일 때가 많아요.”

학교 측의 ‘밀어내기식 취업전략’의 희생양이 된 학생들은 졸업 후 수개월 안에 직장을 그만두는 지경에 내몰린다. 취업 지도에서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특성화고 졸업자 취업유지 현황’을 보면 상황이 꽤 심각한 수준이다.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 26개 특성화 고교의 2012년 2월 졸업자 6041명 중 3154명(52.2%)이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했다. 그러나 6개월 후에는 2013명으로 줄면서 취업자의 3분의 1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6개월 간 동일 직장 취업 유지자비율도 52%(1651명)에 불과하다. 당초 취업자의 절반가량이 6개월 만에 퇴직하거나 이직을 한다는 것이다. 졸업 후 6개월 간 취업률이 가장 크게 덜어진 학교의 경우 졸업 당시(1월) 취업률이 86%였으나 8월에는 절반(42%)에 불과했다. 취업자 3명 중 2명이 졸업 후 곧바로 첫 직장을 떠나는 것이다.

유기홍 의원은 “많은 학생이 생애 첫 직장을 불과 몇 개월 만에 그만둔다”며 “정부와 학교가 취업률 성과에 급급하기보다 학생 개인의 적성과 전공에 맞는 진로지도로 취업의 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04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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