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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연구 - ‘안보실세’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파워 

“극한상황이 반전 기회를 낳는다”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천안함 폭침 이후에도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필요성 제기한 ‘안보라인의 1인자’…국정원장을 비롯한 외교·안보 관계 장관들도 NSC 상임위원장인 김 실장 아래 편제돼

▎올 초 신설된 NSC 상설조직을 총괄하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올 들어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부서는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지난해까지 막강 정보력을 과시하던 국정원이 간첩사건 증거 조작으로 벼랑끝으로 내몰린 반면, 국가안보실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설조직을 접수하는 등 승승장구한다. 안보라인의 정점에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서 있다.

지난해 상반기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국회 국방위 소속의 한 새누리당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군관련 인사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졌다고 진단했다. 이때는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육사 28기)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낙마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김병관 카드’에 대해서는 측근이라도 견제토록 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대항마’로 그를 낙점했다는 분석이었다. 이 의원은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 고려된 김병관 카드가 무산되면서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김관진 국방장관이 유임된 만큼 새 정부에서 신설된 국가안보실의 김 실장이 안보 실세로 군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 전문가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지난해 7월 정치 전문가 및 정치부 기자 등 100인을 상대로 박근혜 정부 실세가 누구인지를 묻는 조사에서, 김 실장이 6위에 이름을 올렸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8위에 그쳤다. 군 출신 인사로는 김 실장이 가장 앞선 것이다. 1~5위에 올라 있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허태열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김무성 의원이 모두 쟁쟁한 친박계 실세인 점을 감안하면 김 실장의 높아진 위상을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다.

정권 출범 1년이 지난 요즘 김 실장의 파워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 양상이다. 지난 1월 신설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이라는 모자를 하나 더 썼다. 헌법상 대통령 직속 외교·안보자문기구인 NSC의 상임위원장은 국가안보 정책을 총괄한다. 상임위는 국가안보실장을 위원장으로 현안 외교·안보 정책을 상시 주 1회마다 조율하고 대책을 수립해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대통령 지침에 따라 필요시 NSC를 개최하게 된다. ‘김장수=국가안보실장+NSC 상임위원장’이 된 셈이다. 또 국가안보실의 1차장(차관급)과 정책조정비서관은 각각 NSC 사무처장, NSC 사무차장을 겸임하게 됐다.

대통령의 철학, 의지와 함께하는 NSC 사무처

이를 두고 기무사령관은 지낸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은 “NSC 사무처 신설 이후 김장수 실장의 약진이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김 실장의 육사 동기(27기)생이기도 한 송 의원은 “박 대통령이 NSC 상임위원장에 국가안보실장을 앉혔다는 건 대통령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NSC 상임위 및 사무처 신설의 최대 수혜자가 국가안보실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라는 뜻이다.

NSC가 뭐길래 이렇게 중요시되는 걸까? NSC는 1963년 제정된 ‘국가안전보장회의법’에 따라 항상 있어온 조직이다. 이 법에 따라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대외정책·군사정책 및 국내정책의 수립에 관해 대통령을 자문한다. 법에 따르면 NSC는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국무총리·외교부장관·통일부장관·국방부장관 및 국가정보원장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위원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위원’으로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운영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안전행정부장관·대통령비서실장·국가안보실장·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참여한다. 결국 NSC 멤버는 대통령을 비롯해 총 11명에 이른다. 김 실장은 그저 11명 중의 한 명이 아니라는 건 그 다음에 나오는 편제에서 확인된다.

박근혜 정부 들어 NSC가 대폭 보강되는 쪽으로 법이 개정됐다. 이를 테면 NSC에서 위임한 사항을 처리하는 ‘상임위원회’와 NSC 회의 운영지원 등 사무를 처리하는 ‘사무처’를 새로 만들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운영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상임위원회는 국가안보실장이 위원장을 맡고, 6인의 위원을 둔다. 6인의 상임위원에는 외교부장관·통일부장관·국방부장관·국가정보원장·NSC 사무처장 및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참여한다. 김 실장이 NSC 상임위원장으로서 안보관련 장관들과 국정원장을 상임위원으로 두는 모양새다. 대통령이 의장으로 참여하는 NSC는 예전부터 있어온 비상설 조직의 성격을 갖는다면 신설된 NSC 상임위는 국가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상설조직으로 기능한다. 그 조직의 수장이 김 실장인 셈이다.

NSC 상임위와 사무처는 이명박 정부에 없던 조직이다. 이명박 정부에는 NSC 운영지원 사무를 처리할 간사 1명만을 뒀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 위기관리가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2년 대선 당시 여야 후보들이 청와대에 국가안보실 설치를 경쟁적으로 공약한 것도 이의 반작용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당시 청와대 지하 벙커의 위기관리상황실에서 안보관계장관회의를 개최했다. 이때도 NSC는 열렸으나 이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상임위나 사무처 같은 상설기구의 뒷받침을 받지 못해 NSC가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NSC가 상설조직을 가지고 안 가지고는 기능에 큰 차이가 있다. 상설조직 없는 NSC는 사안이 터지면 이명박 정부에서 보듯이 안보관계장관회의나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등의 형식으로 열린다. 이는 장관 중심체제이며 협의기구일 뿐 조정기능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안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또 장관 중심체제라서 부처 이기주의가 알게 모르게 작동하게 된다.

반면, NSC가 상설조직을 갖추면 평소에도 청와대가 중심이 돼 대외정책·안보정책을 총괄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각 부처의 자율권은 제한되고 청와대 조정기능이 강화된다. NSC 사무처는 대통령의 철학과 의지를 굳이 묻지 않아도 잘 아는 이들이 모여 대통령의 의중을 담는 안보정책을 마련하게 된다.

NSC 상설조직의 부활은 김 실장 작품이라기보다는 박 대통령이 개인적 소신의 결과물 가능성이 크다고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에서 일한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이 말했다. “박 대통령이 과거 이명박 정부가 NSC 상설조직을 없앤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는 전언이고 보면 NSC 상설조직 부활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박 대통령이 주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NSC 상임위는 그에 걸맞은 권한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NSC 위상을 기억하는 이들은 NSC를 사실상 장악한 국가안보실의 권능이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으리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참여정부 시절 NSC 상임위는 국정원을 능가할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실세 정동영·이종석 통일부장관을 상임위원장에 앉혔다.

그 즈음 국정원은 홀대까지는 아니라도 견제와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됐고 그 역할의 일정 부분을 NSC가 담당했다는게 참여정부에서 일해본 이들의 전언이다. 참여정부에서 기무사령관을 지낸 송영근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의 NSC는 지금보다 규모가 작았음에도 NSC 사무처장이 모든 걸 좌지우지한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송 의원은 “심지어 사무처장이 각종 인사에 깊이 관여한다는 얘기까지 들렸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지난 3월 공개한 NSC 상임위원회 회의 모습. NSC 상임위원장인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오른쪽에서 셋째)을 비롯한 윤병세 외교장관·김관진 국방장관·류길재 통일장관·남재준 국정원장·주철기 외교안보수석·김규현 NSC 사무처장 등이 참석했다.



국가안보실, 편제상으론 국정원 제어 가능

상대적으로 국정원은 맥을 못 췄다. 한국 정치의 속성상 국정원장의 힘은 대통령과의 거리에 비례한다. 대통령과의 면담 횟수, 그중에서도 독대(獨對) 여부는 국정원장의 위상을 재는 잣대로도 통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독대를 허용하지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민주당 의원은 “노 대통령은 국정원장의 보고를 수시로 받았으며, 비서실장이나 민정수석을 항상 배석하게 했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에서 독대란 대통령 측근 실세 관련 비리를 직보하는 통로 역할도 해왔다. 과거 정부에서 대통령 독대를 해본 전직 국정원장은 “아주 예민한 정보의 경우 보고서에 올리지 않고 따로 메모를 해뒀다가 대통령과 단 둘이 있을 때 구두로 상신했다”면서 “옆에 누가 있으면 천하의 국정원장이라도 뒤탈을 의식해 직언하기가 어렵다”고 돌이키기도 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이 국내 인사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 자체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국가정보원법은 국정원의 직무를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 정보 수집으로 국한한다. 국내 보안 정보란 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으로 명시하고 있다. 유 의원은 “국정원이 국내의 개인 비리 정보를 수집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며 “대통령이 국정원으로부터 불법으로 수집된 국내 정보를 보고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독대도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에서 국정원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현격하게 추락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된 국정원 보고서가 나중에 해당 수석실에 넘겨져 청와대 참모들이 공유하게 된 것도 당시 NSC 상임위와 사무처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NSC는 김 실장이 주도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그랬듯이 NSC나 국가안보실이 국정원을 제어하는 게 가능할까? 가뜩이나 지금의 국정원은 간첩사건 증거조작으로 인해 남재준 원장은 경질론에 시달리고, 조직의 신뢰도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편제상으로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앞서 보았듯이 NSC의 상임위원장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6인의 상임위원에는 외교부장관·통일부장관·국방부장관·국가정보원장·NSC 사무처장 및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참여한다. 김 실장이 남 원장 위에 있다.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등을 피감 기관으로 하는 국회 운영위 관계자는 “국가안보실이 안보정책의 컨트롤타워인데다 NSC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박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므로 국정원도 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국가안보실과 국정원 관계를 풀이했다.


▎지난 2월 성사된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는 국가안보실이 남측 대표로 나섰다. 2월 14일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왼쪽)이 남북 고위급 접촉과 관련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고 있다.
물론 국정원은 법에 의해 지위를 보장받는다. 국정원법 2조는 ‘국정원은 대통령 소속으로 두며,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 원장이 김 실장과 안보 관련 협의는 하겠지만 보고라인에 있지는 않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연유다. 유인태 의원은 “국가안보실이 국정원을 견제할 수 없으며 양쪽이 협업을 하는 정도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실장의 공인가, 안보 프레임 덕인가?

지난 2월에는 북한이 국가안보실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줬다. 북한 국방위원회가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남북 고위급 접촉을 제안해왔다. 북한이 과거 남북대화 채널이던 통일부를 제치고 NSC를 대화 상대로 점찍었던 것이다. 결국 남측 수석대표로 김규현 NSC 사무처장 겸 국가안보실 제1 차장이 나섰다. 북한마저 어디에 힘이 실리는가를 고려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가안보실이 지난 1년 동안 비교적 업무를 잘해온 점도 김 실장 발언권이 커지는 저변이 된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북한발 안보위기에 대처를 잘했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집권 초부터 시작된 북한의 3차 핵실험, 개성공단 폐쇄조치, 북한의 주한 외국인 철수권고 엄포 등 악화되던 안보정세 속에서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기반한 원칙적 대응 자세를 견지, 결국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북한은 남북당국회담 추진, 북미 고위급 회담 제안, 남북이산가족 상봉 등 일련의 유화공세로 전환했다.

2014년 1월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대통령 리더십 평가 여론조사에서 ‘국가 위기상황에서 대처를 잘한다’는 데 59.7%가 동의했다. ‘대통령이 원칙에 입각해 소신 있게 일한다’는 응답도 64.1%에 달했다. 박 대통령이 비교적 안정적인 국정지지율을 기록하는 데는 김 실장의 기여도 적지 않다고 하겠다. 국가안보실도 지난해 11월 국회 운영위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에서 “새 정부 출범후 북한의 도발과 위협 및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에 대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입각해 원칙과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을 견지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를 김 실장 개인의 공로로 돌리기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안보 프레임’이 가져다준 반사이익이라는 시각도 있다. 외교·안보 전문가인 길정우 새누리당 의원은 “보수 대통령이 집권한 초기에 북한이 미사일과 핵실험으로 판을 흔들려는 구태의연한 시도를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단호하고 원칙적인 대응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그런 안보 프레임을 만들어 준 까닭에 청와대는 운신의 폭이 제한되면서 원칙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 길 의원은 “안보 위기 대처에 대한 평가에서 김장수 실장, 남재준 원장은 자기 할 일을 한 정도”라고 평가했다. 김 실장의 안보위기 관리의 실질적인 기여도와는 별개로 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는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지난해 12월 15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외교·안보 분야의 정책결정 시스템 정비를 촉구한 적이 있다. 당시 정 의원은 “헌법상 국무총리가 외교부·국방부·통일부 등 외교·안보 관련 부처를 통할하게 돼 있지만 실제로 총리가 외교·안보 분야의 조정 업무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면서 “그렇다고 정부 내에 별도로 외교·안보 분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결정하는 기능을 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자를 임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틀 전인 12월 13일 오전 장성택 전 북한 노동당 행정부장의 처형소식이 알려진 긴박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관련 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연 사실을 거론했다. 정 의원은 보도자료에서 “청와대 안보실장이 안보관련 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면서 “안보실장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보좌관일 뿐 외교·안보를 책임질 법적 권한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결론적으로 “대통령을 보좌해 외교·국방·통일 정책을 총괄할 실질적 책임자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대통령훈령인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라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를 개최하고 의장을 국가안보실장으로 뒀다. 그런데 이 규정은 모법에 위임되지 않은 규정인지라 정 의원이 ‘법적인 권한’이 없다고 문제삼은 것이다.

이튿날인 16일 박 대통령은 외교·안보 관련 장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NSC 운영강화를 위한 상설 사무조직 설치 등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법’과 ‘국가안전보장회의 운영 등에 관한 규정’을 고쳐 김장수 실장이 NSC 상임위원장을 겸임하는 길을 텄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일지는 몰라도 박 대통령은 정 의원의 지적이 있은 지 하루 만에 안보실장의 자격 논란의 여지를 일소하는 지시를 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NSC 상임위원장은 정부조직법 제26조의 장관 서열에 따라 외교부 장관이 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현 정부 들어 개정된 ‘국가안전보장회의 운영 등에 관한 규정’은 NSC ‘상임위원장은 국가안보실장이 된다’고 못을 박았다.


▎지난해 12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현안을 보고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며칠 뒤 NSC 상설조직 신설을 지시했다.



김 실장, 휘어지지 부러지지는 않아

이로써 국가안보실은 명실상부한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컨트롤타워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 국가안보실이 하는 일은 국회에 제출한 업무현황에 잘 나타나 있다. 국가안보실은 외교·통일·국방 분야를 통합한 국가안보 분야의 중장기 정책전략을 기획·조정·관리한다. 나아가 국가안보 관련 제반 정보의 융합 및 국가위기 관련 상황의 관리 등 국가안보에 관해 대통령을 보좌한다. 국가안보실은 지난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비롯해 외교안보장관회의(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국가안보실장 주재)와 실무조정회의(외교안보수석 주재) 등의 회의체도 운영해왔다.

그가 이처럼 외교·안보 라인에서 이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배경은 뭘까? 박 대통령과의 인연(박근혜 대선 후보 선대위국방안보추진단장, 18대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도 인연이지만 그의 캐릭터와 업무 스타일이 박 대통령의 눈에 쏙 들었으리라는 관측이다.

육사 동기생인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은 그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조용한 리더십’이라고 정의했다. “김 실장은 조용하게 자기 할 일을 챙긴다. 또 굉장히 세심하다. 박 대통령도 자기일도 아닌데 나서는 사람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대통령 본인도 일처리가 아주 세심하지 않나. 박 대통령의 세심함을 받쳐주는 세심함을 김 실장이 지니고 있다. 대통령을 보좌하기에 적임이다.” 한마디로 코‘ 드’가 서로 통한다는 뜻이다.

참여정부 시절 김 실장과 함께 군인사 관련 업무를 해본 한 관계자도 김 실장을 일러 “그는 휘어지는 사람이지 부러지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대인관계에서 먼저 말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누구하고도 잘 어울리며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없이 말하는 유형이라고도 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최대한의 재량권과 발언기회를 부여한다. 참모의 건의도 많이 받아들이는 이른바 ‘화합형’에 가깝다. 하지만 관료직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정적이라도 찾아가서 잘해보자고 협조를 구하면서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측면에서 탁월하다.”

그런 그가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김 실장은 집권 1년차 대부분의 시간을 국가안보실 야전침대에서 보냈으리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일에 파묻혀 산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 출범 직후 북한발 안보 국면이 조성되자 두 달 넘게 청와대 주변을 벗어나지 않고 비상대기 했다고도 한다. 1996년 1군사령부 작전처장 시절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이 터졌을 때도 상당 기간 귀가하지 않고 작전을 지휘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언급한 ‘미생지신(尾生之信·미생이라는 젊은 사람이 비가 많이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애인을 기다리다 결국 익사했다는 고사)’의 고지식함이 김 실장에게서도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런 면모가 박 대통령의 호감을 산 듯하다. 박 대통령의 용인술은 ‘그 자리에서 일을 잘 할 수 있나’,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로 집약된다고 청와대의 한 참모가 말했다. 이 참모는 “대선 당시에는 몰랐는데 의도하지 않게도 박근혜 후보 주변에 호남 출신 인사가 많이 몰렸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그중의 한 사람이 김장수 실장인데 대통령은 배경을 떠나 그 직책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발탁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이 일도 잘하고 대통령이 신뢰한다는 의미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꼿꼿장수’라는 별칭을 안겨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김장수 국방장관의 악수 장면.
지위가 오를수록 보는 눈이 많아지고 입방아에도 자주 오른다. 지난해 하반기 군 장성 인사에 김 실장이 입김을 불어 넣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김 실장의 현재 위상이 국방과 안보 라인에서 거의 독보적이다 보니 특정 인사를 민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그가 고문을 지낸 군 관련 연구소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병무청장 등 고위직을 배출하면서 그에게 또 시선이 몰렸다.

이념 대결의 한가운데 선 국가안보실

김 장관은 지난해 11월 <월간중앙>과의 전화통화에서 항간의 소문이 사실무근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군 인사에서도 김 실장 파워가 세다는 소문이다.

“어휴, 나는 진짜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 어느 신문인가에 그런 기사가 났던 데 일일이 대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야. 누가 인사의 ‘인’자만 꺼내도 내 방에 찾아오지 못하게 한다. 그게 군이건 어디건. 그런데도 엉뚱한 소리가 들린다.”

군에서는 꼭 그렇게만 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장관을 그만둔 지가 6년째다. 내가 늘 하는 얘기지만 군인사 라인은 통수권자-국방장관-육군참모총장 라인 외는 없다. 계선 밖의 사람들이 군인사에 개입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게 내 소신이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공연한 오해를 산다는 하소연이다.

김 실장은 앞으로 치열한 이념 대결의 한가운데에서 국가안보실을 이끌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불거진 인사난맥상이 그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새해 들어 NSC 사무처장을 겸임하는 국가안보실 1차장과 국가안보 비전을 마련하는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에 누가 기용될 것인가에 관계부처의 이목이 쏠렸다. 청와대는 각 부처에 후보 추천을 요청했다. 그 결과 김규현 외교부 1차관이 국가안보실 1차장, 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이 안보전략비서관에 내정됐다. 통일부는 현정부 들어 정통관료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청와대 안보라인 고위직에 진출한 천 실장의 발탁에 희색이 만면했다.

그런 천 실장이 1주일 만에 내정 철회통보를 받고 남북회담본부 상근대표로 가버렸다. 그 누구도 설익은 인사 해프닝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질 못하고 있다. 통일부에서 꼭 필요로 하는 핵심 인력이라 돌려보냈다는 청와대의 어설픈 해명은 의혹만 증폭시켰을 뿐 그 과정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청와대에 포진한 군 출신 인사들이 천 실장을 밀어낸 것 같지는 않다는 게 관측통들의 견해다. 이번 인사의 책임자인 김장수 실장이 자신이 ‘OK’한 인사를 백지화하는 건 본인에게도 이로울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외부의 압력에 의해 인사 파동이 제기됐으리라는 관측이 그럴 듯하게 나온다.

통일부의 에이스급 공무원인 천 실장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남북 협상의 일선에서 뛰었다. 2007년 정상회담 이후 열린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 통일부에서는 당시 팀장급이던 천 실장이 파견됐다고 한다. 회담에서는 서해 공동어로구역을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를 두고 남북의 의견이 엇갈렸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장성급 회담에서 타결의 기미가 안 보이자 우리 국방부는 NLL사수를 이유로 판을 깰 듯한 태도를 보였고, 통일부는 당시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국방부를 자제케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결국 회담 과정을 지켜본 보수 강경파의 눈에서는 천 실장이 그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했으리라 여겼을 법하다. 결국 천 실장은 NLL 포기 세력의 일원으로까지 간주될 수도 있는 구조라는게 김 편집장의 분석이다. 그는 “사실 천 실장은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정책실장 등 남북관계 업무를 도맡아 해온 공무원으로 안보전략비서관으로는 적임자”라면서 “보수 진영의 반발과 이의 제기가 낙마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풀이한다”고 말했다.

천 실장 인사 파동은 경위야 어떻든 ‘안보 실세’ 김 실장의 앞날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이다. 김 실장은 그 스스로는 매파(대북 강경파)도 비둘기파(대북 온건파)도 아닌 올빼미파라고 했다. 대통령국가안보실장 내정자 시절이던 지난해 2월 그는 언론에다 “매파는 힘의 논리만 믿는 주전파로 패권주의를 지향하지만 나는 올빼미파”라고 말했다. 매파의 힘의 논리와 비둘기파(온건파)의 대화 전략의 장점을 취하는 제 3의 전략으로 해석됐다.

위기의식을 공유할 때 발전이 온다

그는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수록 반전의 기회는 넓어진다는 신념의 소유자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이 일어날 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던 김 실장은 기자와 만나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이 핫라인(Hot lime)을 개설한 때가 19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 위기 직후다. 그때 실제로 핵전쟁의 위험이 있으니까(1963년 미국·영국·소련이) 핵실험을 그만하자는 합의도 봤다. 없었던게 생기니까 관계가 진전된 것이다. 서로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이래선 안되겠다고 공감할 때 발전이 온다.”

당시 그는 남북관계에도 이런 논리 적용을 하고자 했다. 그때는 천안함 폭침 이후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시점으로 대화론자의 입지가 극도로 위축됐었다. 그럼에도 그는 “남북간에도 위기를 공유하면 그게 가능하며, 이명박 정부에서도 더 고차원적인 정책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 한 예로 남북 정상회담을 꼽았다.

그는 “지금은 쑥 들어갔지만 현 정부(이명박 정부)도 남북 정상회담을 하려고 했지 않느냐”고 되묻고는 “진보와 중도, 보수를 아우르는 의제를 선정한다면 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결론을 맺었다. 그는 대치국면에서도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져야 하는 국가안보실장이다. 그래서 국내 진보와 보수 모두로부터 공격받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

201404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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