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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윤고은의 호기심 취재파일 - 요즘 젊은이들이 꿈꾸는 ‘연애의 기술’ 

교감능력 키우고, 나만의 은유 만들라! 

윤고은
헌팅학원에서 재회전문학원까지 각종 연애술 가르치는 비즈니스 활황… 그러나 결국 사랑을 체화해서 싹 틔우는 이는 자기자신

▎독창적인 연애의 기술을 익히지 못한 젊은이들을 상대로 ‘연애 코칭’비즈니스가 번창한다. 결과에 집착하는 연애는 더 이상 연애가 아니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취업이니 연애니 다 똑같아요, 다 한통속이니까 알아서 들어요, 나는 이 꼴인데 친구들은 하나씩 거래처를 잡고, 2년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애들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애들이 줄어들고 있다니까요, 다들 계약직이라도 된다 그거죠, 2년 이상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든가, 아니면 자르든가, 둘 중의 하나로 결판이 나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필자의 소설 <해마, 날다>에서 술에 취한 여자는 이렇게 투덜거린다. 여자가 하는 말은 취업의 어려움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이 여자는 직업이 있다. 여자가 고민하는 것은 직장이 아니라 연애다. 거래처란 곧 사귀는 누군가를 의미하는 거고,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는 건 결혼을 의미한다.

이 여자는 2년간 사귀던 남자에게서 어떤 결말도 보일 기미가 없자, 결국 제 발로 ‘사표’를 쓰고 나왔다. 헤어졌다는 말이다. 이제 여자는 서류전형을 몇 군데 넣어두었고, 이번 주 주말부터 줄창 면접을 보기로 했다. 면접은 소개팅쯤으로 해석하면 된다. 생각해보면 취업과 연애의 과정은 상당히 닮아 있다. 좋은 연인도 결국 좋은 직장의 요건과 비슷하지 않은가. 안정감, 호감, 가능성, 안목, 책임감, 존중 기타 등등 많은 덕목이 겹친다.

실업을 겪은 이들에게 몇 달간 실업급여가 나오는 것, 이상할 것 없는 얘기다. 그렇다면 실연을 겪은 이들에게 몇 달간 실연급여가 나오는 것은 어떨까? 돈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사랑으로 다친 이들이 몇 달간, 자립을 위한 보호막이 필요하다는데 야박하게 굴 사람들이 있겠는가. 문제는 그 보호막을 누가 만들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가가 좀 해주면 안 돼? 국민이 힘들다는데!” 이별로 몸살을 앓았던 한 친구의 주장이다. 친구는 국가아니면 유엔에라도 실연급여를 청구할 기세다. 누구에게나 이별이라는 행위는 억울하다.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갑자기 부당해고를 당한 것처럼 초라해진다. 지금 내 나이가 몇이지, 따져보다가는 급기야 헤어진 상대를 악덕업주나 사기꾼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직장상사? 혹은 보험회사? 막 꽃다운 연애를 시작한 친구들? 대체 누구한테 이 허탈감의 보상을 청구해야 하나.

연애에 ‘소질’ 같은 것은 없다

주변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실연급여’ 제공은 결국 일시적인 것이다. 술 한잔 사주거나,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소개팅을 주선하거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 이상 또 뭐가 있단 말인가. 친구는 한동안 <스님의 주례사>를 읽으며 마음을 비우려 애썼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그동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내가 연애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 자꾸 반복해도 실패하는 걸 보면 말이야. 안 그러니?”

연애에 소질이 없다는 말은 좀 슬프지만, 연애에 소질이 있다는 말도 생각해보면 칭찬인지 잘 모르겠다. 연애와 소질은 나란히 늘어놓기에 좀 어울리지 않는 조합 아닐까. 그렇지만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연애사에는 조언하는 자와 조언을 듣는 자, 그리고 조언을 듣고도 잘 못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었다. 주변에 연애코치가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많지 않던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마이클럽’과 같은 인터넷 공간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그 안에서 연애부터 결혼생활까지 수많은 고민을 주고받던 ‘선영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가끔은 여성들의 솔직한 답이 궁금하다며 끼어드는 남성들도 보였다. 지금도 ‘레몬테라스’와 같은 인터넷 카페는 모르는 여성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지식이 오가는 곳이다.

지식의 출처란? 모든 개개인의 경험담과 생각들이다. 물론 여성들만 이렇게 온라인상에서 떠들고 노는 건 아니다.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한때 ‘지식in’과 같은 포털사이트의 열린 공간에 연애상담을 하는 이들이 정말 이해되지 않았지만, 고백하자면 내 연애사에서도 ‘인터넷 검색’은 큰 몫을 했다.

책 또한 오래된 연애코치다. 독서는 좀 고전적인 접근방법이랄까.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은 연애를 일단 ‘글로’ 먼저 배우려 한다. 그게 아니고서야 서점가에 저렇게 많은 연애 관련 서적이 있을 리 있겠나? 한국에서 1993년에 출간되었던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이미 전설 속의 바이블일 뿐, 요즘 십대들은 그 책이 정말 외계행성의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연애관련 서적들은 훨씬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제목을 갖고 있다. 연령대별로 상황별로 데이트코스별로 읽을 만한 책도 세분화되었다. 그렇게 맞춤형의 연애서적들이 있는가 하면 좀 더 우회적으로 연애능력에 영향을 끼칠 것 같은 책도 있다. 세월을 고스란히 통과해온 고전들 말인데, 이를테면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멕 라이언이 200번 이상 읽었다고 고백한 <오만과 편견>같은 책을 예로 들 수 있다.

결국 그 영화 속에서 멕 라이언은 <오만과 편견>의 결말을 따라가지 않던가. 친절하게도 요즘 서점에는 고전소설들의 연애 스타일을 분석해놓은 책도 나와 있다. 최근에 발견한 책은 <제인 오스틴의 연애수업>. <오만과 편견>뿐 아니라 <위대한 개츠비>라든지 <위대한 유산> 같은 31편의 고전소설 속의 연애사를 분석한 책이다.

영화를 통해서도 연애를 배운다. 타인의 연애를 보는 동안 우리의 연애는 무탈한지 반성도 하게 되고, 공감하기도 하고, 영화와 다른 현실에 더 상처받기도 한다. 나는 종종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애가 무엇이었는지 묻기를 즐긴다. 정답이나 오답이 따로 있을 리 없는 질문, 설령 내가 모르는 영화가 언급되더라도 나쁠 것 없는 그런 질문일뿐더러 영화 속 연애는 어떻게든 현실의 우리에게 쓸만한 대화의 재료가 되니까.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사랑 영화 말이죠. “미스터 히치.”


▎강남 소재의 한 연애학원에서 강습을 받는 20대 후반의 여성. 코치들은 “연애수업은 본인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한 달에 100만 원 들여 하는 연애수업

혹여 이런 대답이 나오면 나는 다음 얘기를 이어갈 수 있겠지. 아아, 윌 스미스가 연애코치해주는 거요? 그거 현실에도 있는 거 아세요? <미스터 히치>가 개봉된 2005년, 이미 미국에서는 데이트 코치가 존재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에도 연애학원이 등장했다는 뉴스가 났다. ‘아니, 연애를 무슨 돈 주고 배워?’ 하고 놀랐던 것도 이미 한참 전의 일이다. 2007년이 시작이던가.

2010년 이후로 연애전문을 내세운 학원들이 번식했고, 2014년 이제는 연애학원의 세부 분야가 더 다양하다. 결과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갈래가 나뉘는데 단지 ‘연애’라기보다는 데이트, 헌팅, 원나잇스탠드 등 학원마다 구체적인 목표를 내건 곳도 있다. 이성을 유혹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픽업아티스트’가 유행처럼 등장하는가 하면, 그 픽업아티스트의 수업을 들은 이들의 체험담도 인터넷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스킨십, 섹스 등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되는 수업의 경우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늘 따라다닌다. 인터넷에 떠돌던 한 스킨십 수업의 진도표를 보면 상대의 속옷을 어떻게 벗겨야 하는지 같은 것도 등장한다. 물론 모든 연애학원이 섹스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분석이나 치료와 연계해서 수업을 진행하는 곳도 있고, 데이트매너를 가르치는 곳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요즘 가장 핫한 건 재회전문학원이라고 한다. 영화 <시라노 연애 조작단>을 떠올리면 될까. 그렇게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헤어진 애인이나 배우자와 다시 만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이다. 특정대상이 정해져 있고, 그 상대를 붙잡으려는 마음이 절실한 사람들은 기꺼이 재회 전문 연애학원을 찾아간다.

나는 강남역 부근에 위치한 연애학원 한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2007년 국내최초란 수식을 달고 등장했던 ‘카르마(KARMA)’다. 이곳은 ‘나답게 살자, 러브트리’ 라는 모토로보다 확장된 의미의 라이프코칭을 하고 있다. 김은영 헤드코치는 연애 역시 결국은 자기 자신과 당당하게 만나야 시작될 수 있는 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스스로와 만나는 법을 터득하도록 돕는다. 왜 재회나 헌팅, 스킨십을 다루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걸 목적으로 하는 건 연애의 본질과 좀 동떨어진 것이어서 다루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는 정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길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처음 이 학원이 강남역 부근에 문을 열었을 때, 찾아온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궁금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전화를 걸어오거나 직접 찾아오고도 “정말 이런 곳이 있었느냐”며 놀라던 사람들. 친구와 술 먹고 내기를 걸어서 오거나,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찾아온 이도 많다.

그러나 요즘 이 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많이 다르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많은 업체를 비교한 후 발걸음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연애 전문가가 하나의 직업일 수 있다는 걸 안다. 연애컨설턴트라는 직업이 존재하고, 연애코칭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장 많은 고객층은 30대 남성. 그러나 40대 이상이나 20대도 적지 않다. 여성 고객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고객이 찾아오면 일단 컨설턴트와 1대 1 상담을 거치게 되는데, 상담 후에 수업에 등록하는 비율은 80% 정도다. 수업은 1대 1로 진행되다 보니 학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과외에 가깝다. 학교나 기업 등 단체를 대상으로 한 연애강의도 한다. 요즘에는 이렇게 단체에서 연애특강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원 수업료는 주1∼2회 기준으로 2개월에 200만 원. 작지 않은 금액이지만 300만 원을 내고 3개월 정도 수업을 듣는 이도 많단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1회 상담료가 10만 원인데, 그 상담을 세 번 연속으로 받은 사람도 있었다. 상담을 통해서도 자신의 연애 고민이 조금 덜어지는 것 같아서라고 했다.

최근에 연애학원에 등록한 30대 여성 A씨는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신붓감 1위라는 교사라는 직업에, 빠지지 않는 외모, 대인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어본 적도 없는데 이런 자신이 왜 연애를 못해서 학원까지 다녀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녀의 사연이 그리 안타깝게 여겨지지 않는 건 내 주변에만 해도 그런 사례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한다. 세상에 이렇게 괜찮은 여자가 많은데, 정작 그들에게 어울릴 만한 근사한 남자는 부족하다고 말이다. 남자들은 거꾸로 괜찮은 여자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늘 기근에 시달리는 이유는 뭘까. 결국 동선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김은영 코치는 일단 연애를 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하죠. 집에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서 운명의 상대가 알아서 찾아와주진 않잖아요.”


▎연애는 결코 의무가 아니다. 연애를 마음에서 내려놓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누군가가 내 마음속으로 뚜벅뚜벅 다가오기도 한다.



사랑은 변화의 파노라마… 일단 움직여라

“그런데 거의 대부분 늘 동선이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자들은 새로운 사람을 잘만 만나던데, 실제는 그렇지 않잖아요. 학교나 집, 혹은 직장과 집,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그래서 보통 동호회나 학원과 같은 프로그램을 시작하길 권합니다. 중요한 건 개개인의 성향과 관심사예요, 누군가를 만나겠다고 전혀 흥미도 없는 집단에 들어가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되니까요. 요리학원이라든지 댄스동호회의 교육프로그램, 골프클럽, 영어스터디 같은 걸 예로 들 수 있겠죠. 고정적이고 주기적으로 계속 타인과 얼굴을 보게 되는 그런 형태잖아요. 그런 활동마저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휴대폰 앱을 이용한 소셜데이팅이라도 하라고 말씀드리죠. 주로 싱글 남녀가 몇 가지 정보를 입력해두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어울리는 상대방을 매일 소개해주는 앱이에요.”

30대 여성 B씨는 홍대와 강남 모두에 거점을 둔 댄스동호회에 등록했다. 물론 연애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원래 춤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꼭 춤에 관심이 있는 사람만 모인 건 아닌 것도 같았다. 동호회 안에서 첫 수업이 시작되던 날,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동호회는 결혼 성사율이 높은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9년 동안 모두 여덟 커플이 결혼했어요. 춤을 추다 보면 사랑도 싹터요.”

동호회 회장은 그렇게 말했다. 9년 동안 여덟 커플이 결혼을 했다면 9년 동안 깨진 커플은 얼마나 될까? A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A는 그 동호회가 정말 많은 커플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격했다. 그녀는 연애에 휘말리지 않았지만, 춤은 그녀의 취미로 건재하다. 이런 게 동호회의 매력이다.

이제 곧 서른을 앞둔 B는 최근 교회를 옮겼다. 이왕이면 또래가 많은 곳을 선택하고 싶어서 집에서 두 시간 거리의 교회를 선택했다. 규모도 크고 분기마다 청년들을 위해 연애와 결혼에 대한 세미나를 열기도 하는 곳이었다. 교회 안에서 좋은 사람들을 짝지어주는 매칭 프로그램을 갖기도 한다. 단 교회 다니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다 보니 항상 남자 수에 여자를 맞춰야 해 안타깝다고.

“그 세미나가 있는 주에는 출석률이 확 높아져요.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배우는 게 많거든요.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아무나 만날 수 없는데 현명하게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는 안목도 기르게 되고요. 그 프로그램 때문에 이 교회에 등록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해요.”

B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오래전 과외수업으로 만났던 한 고등학생이 떠올랐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그녀는 여대생이었던 내게 연애조언을 해주곤 했다. 그중에 하나가 어디에 있는 무슨 교회에 다니라는 거였다.

“일요일이 되면 거기 주차장에 외제차가 쫙 깔린다니까요? 돈 있는 유학파가 다 모인대요. 선생님, 미래를 생각해야 해요, 미래를.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니까요. 인연은 만들어가는 거죠! 전 대학만 가면 이 동네는 뜰 거예요, 운동도 미용실도 산책도 잘나가는 동네에서 해야지!” “지금 그 오빠는 어쩌고?” “에이, 선생님도. 그건 연습이죠. 사랑도 해봐야 잘 한다고요!”

문제집 앞에서는 극도로 소심해지는 그 아이의 활달한 조언이 내겐 좀 쇼킹했는데, 그 아이의 말 속에는 사실 연애에 관한 정답들이 초코칩처럼 박혀 있었다. 인연은 만들어간다는 것, 사랑도 해봐야 잘 한다는 것!

돈을 내고 ‘소설 쓰기’를 배우러 온 대학생들에게 물었다. 연애학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부분은 재미있긴 하나 본인들과는 상관없는 정보라는 표정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연애를 못해서 고민인 경우도 이해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연애를 해도 고민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잡코리아가 446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별과 학년을 막론하고 가장 큰 관심사로 ‘돈(30.7%)’을 꼽았다. 그 다음이 ‘장학금(10.2%)’, ‘연애 및 이성관계(8.5%)’ 순이었다. 참고로 꼴찌는 ‘정체성, 자아성찰(2.2%)’이 차지했다. 새해 소망을 묻는 질문에서도 연애는 4위를 차지했다. 1위는 당연히 취업! 연애는 로또 당첨과 A학점의 뒤를 이었다.

자존감 회복이 성공의 제1조건

생존과 직결되는 가치는 아니라는 게 연애를 미루는 대학생들의 의견이다. 대학생 C는 “연애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올인한다고 해도 자기관리를 제대로 해놓지 못하면 졸업 후 연인에게 뒤통수 맞는다”고 했다. 연애를 하면서 들어가는 시간, 금전, 체력, 정신에너지를 아깝게 느끼는 이도 많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요즘 말로 ‘썸남’, ‘썸녀’라고 하던가. 잠깐의 호감이 빚어내는 관계들은 많지만 ‘썸’ 이상의 관계, 그러니까 책임감과 안정감, 또는 부담이 따르는 관계를 원치 않는 청춘도 많다. 생존경쟁으로 바쁜 이들에게 연애는 사치라는 것이다. 평생 연애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자꾸 미루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연애가 사람들의 타이밍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원할 때 좋은 연인을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지금 여기, 연애학원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도 단지 연애를 미뤘을 뿐인데 너무 오래 혼자인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저희 학원에 찾아오시는 분들 중에는 지금까지 연애를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는 분도 많아요. 요즘 말로 모태솔로죠. 한때는 취업준비에 애쓰느라, 또 취업하고서는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경 쓰느라 연애를 놓친 거예요. 그러다 마흔이 가까워지면 결혼하라는 압박이 들어오고 하니 소개팅도 해보고 결혼정보회사 통해서 사람도 만나보고 하는데, 만남이 잘 안 되고 불편한 거죠. 그래서 찾아오시는 분이 많아요. 이미 연애에 대한 압박감으로 마음이 한참 무거워진 분들이죠.”

그렇게 압박을 느끼며 찾아온 이들은 서둘러 연애 대상을 찾으려 한다. 이미 결혼이라는 과제가 전제된 만남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은영 코치는 결혼을 목적으로 한 연애를 서두르면 더 큰 상처를 받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결과에만 집착하는 연애는 이미 연애가 아닌 것이다.

김 코치는 고학력, 고소득의 남성일수록 수동적 연애를 하는 확률이 높다고 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힘들어하고 상대가 거절하면 어쩌나 겁을 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처 입을 것을 지레 두려워하면서 어찌 사랑이 가능할까.

“제가 화술이 좀 약해서요.” 이런 고민을 호소하는 이들은 거의 남성이다. 유머러스한 남자가 인기라는데 자신은 유머러스하지 않아서 어쩌느냐, 재미있는 이야기를 몇 개 외워 다니는데도 소용이 없다, 화술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등의 고민이다. 그러나 긴장한 티를 내는 것만큼 역효과가 나는 게 또 있을까. 김은영 코치는 이렇게 긴장한 남성들이 그 자리에서 상대방의 말에 무조건 ‘예스!’를 외칠 확률도 높다고 한다.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다는 강박이 지나친 나머지, 예스맨이 되었다가 뒤늦게 연애가 이어지는 과정 중에 더 큰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키도 마찬가지예요. 키가 작은 남성분들의 경우 특히 자신이 연애를 못하는 이유가 키 때문이라고 못박아두시는 분도 많은데, 사실 원인은 키가 아니죠. 주변에 키가 작아도 연애를 잘만 하는 인기남이 얼마나 많습니까? 외모, 학벌, 연봉 그런 스펙이 연애를 결정짓는 게 아니거든요. 사실 연애가 힘들다고 호소하는 분들의 가장 큰 원인은 자존감이 낮다는 거예요. 그걸 회복하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에요.”

1대 1 상담 때 늘 강조하는 것이 자기 자신만의 연애관을 정립하라는 것이다.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잘 통하는 사람과 같은 막연한 기준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연애란 어떤 것인지, 내가 원하는 연애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연애관을 세워놓는다고 해도 누군가를 만나면, 연애는 공식이 아니기 때문에 부딪치고 다툴 수 있어요. 실패할 수도 있죠. 그렇지만 연애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상대와 조율할 능력이 있거든요. 무턱대고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보다 훨씬 즐겁고 현명하게 연애할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그렇게 연애관을 세워놓는다고 해도 누군가를 만나면, 부딪치고 다툴 수 있다. 그러나 연애 철학을 정립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높다는 설명이다.


▎연애특강은 학교나 기업체에서도 인기다. 김은영 코치는 “연애가 정체성 형성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닌 만큼 십대 시절부터 수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식 외기보다 연애철학을 정립하라

그러면 연애를 배우러 온 사람들은 모두 연애를 시작하게 되는 걸까? 당연히 아니지만, 연애를 시작하게 되지 않아도 다른 것을 얻게 된다. 아이비리그를 나왔던 한 20대 남성은 처음엔 꽁꽁 속내를 가둬놓은 듯했지만 수업을 계속 받으면서 결국 자기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나중엔 평소 복용하던 우울증 약도 끊게 되었다고 한다.

외과의사로 일하는 30대 남성은 표정을 되찾았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웃지 않는 얼굴이었는데, 수업을 계속 듣는 과정에서 점차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무표정 뒤에는 너무 권위적이어서 마냥 어려웠던 아버지와 경직된 직장생활이 있었다.

어떤 일을 해도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자 늘 주눅이 들었고, 의사 사회에서는 주눅들지 않기 위해 표정을 숨겨야 했다. 여자를 만날 때도 무의식적인 긴장상태는 풀어지지 않았다.

몇 달간의 수업을 통해 그가 얻은 건 표정이었다. 설익은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가 연애를 시작했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에게 편안해 보인다고 말해주었다.

김은영 코치는 연애에 대한 환상이 너무 큰 사람들에게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러브픽션>이라는 두 편의 영화를 추천한다. 이 영화들은 연애의 환상을 싹 걷어낸 일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연애라는 게 결국은 정말 두 인간 사이의 ‘교감’이란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코치에게 최고의 연애가 등장하는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이다. 그 영화 속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헤어진 연인의 기억을 모두 지운 사람이 등장하지만, 두 사람은 기억이 없이도 또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순간순간 잊는다는 것, 그래서 사랑엔 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건 그가 믿는 사랑의 본질에 가깝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이 연애코치의 연애는 과연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슬쩍 물어봤더니 ‘문제투성이’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든 연애는 고유명사로 다가온다

“요약하자면 ‘혹독하고 다양하게?’ 전 좀 애정결핍이 있었거든요. 만나는 남자에게 사랑을 확인하려고 애썼어요. ‘날 사랑 한다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이런 말들 있잖아요? 그 폭풍같던 연애가 지나간 후 30대 중반에야 비로소 깨달았어요. 아, 원인은 내게 있었는데 다른 데서 위로받으려고 했구나, 하고요. 그때 내 문제를 가지고 공부를 하다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요즘 연애를 일부러 거세한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 연애학원에서 물어본 마지막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연애는 인간이라면 꼭 해야 하는 걸까, 하는 것. 그 물음에 돌아온 연애코치의 답은 조금 의외였다. ‘연애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연애도 결국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중의 하나일 뿐, 다른 방식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연애코치는 연애학원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수업 첫날, 연애는 결코 의무가 아니라는 말을 건넨다. 신기하게도 연애를 마음에서 내려놓는 순간, 어딘가 또 하나의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은 조금 더 편안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누군가가 뚜벅뚜벅,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오기도 한다.

영화 <일 포스티노>에도 연애코치가 등장한다. 우편배달부 마리오에게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연애코치인 셈이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시인을 동경하던 마리오는 네루다를 따라다니며 묻고 또 묻는다. “시가 뭐죠?”, “은유가 뭐죠?”

“난 내가 쓴 시 이외의 말로는 시를 설명하지 못하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지. 마리오,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뿐이네.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살펴보게. 그럼, 은유를 알게 될 거야.”

마리오는 스승의 조언대로 해변을 걷고 또 걷는다.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지는 해를 관찰한다. 온몸으로 은유를 배우려던 마리오에게 저만치 시가 걸어오기 시작했고, 그 시보다 조금 더 빨리 사랑이 다가왔다. 감정표현이 부족하던 마리오는 짝사랑하던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이렇게 열정적으로 구애하기에 이른다.

“당신의 미소는 장미요, 땅에서 움트는 새싹이요, 솟아오르는 물줄기입니다. 순결한 여인과 함께 있는 것은 파도가 부서지는 백사장에 있는 것입니다.”

멋들어지게 은유를 구사한 마리오는 마침내 자신만의 완벽한 은유를 구사하게 된다. 그건 스승인 시인 네루다도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마리오 스스로 체화해낸 무엇이었다. 마리오는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말로 “베아트리체!”를 외친다. 그렇게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으로 ‘은유’를 구사하는 한 사내를 보며 관객은 연인의 탄생과 동시에 또 한 명 시인의 탄생을 목격한다.

이 영화에서 마리오가 시를 배워나가는 과정은 결국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닮아 있다. 조언자는 어디에나 있다. 조언자는 때로 필요하다. 그러나 조언자는 조언자의 몫을 할 뿐, 시든 사랑이든 결국 그것을 체화해서 발아하듯 밀어 올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 시의 언어가 그렇듯, 사랑의 언어에 있어서도 정해진 공식은 없다.

그리고 정말 멋진 시와 사랑은 때로 멀쩡하던 공식과 규칙, 예측 가능한 리듬을 쓰나미처럼 무너뜨리면서 다가온다. 그때 우리는 그 이름을 부르면 된다.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그 말, 누군가의 이름. 모든 연애는 그렇게 고유명사로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404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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