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집중취재 |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합당 막전막후 

야권 통합신당 쇼크! 대박일까 도박일까 

안철수, 독자신당 포기하고 제1야당 공동대표로 ‘취업’ 성공…‘비주류 수장’ 김한길은 안철수 스카우트해 당권 연장 노려

▎3월 2일 정치권을 놀라게 한 김한길-안철수 통합신당 발표는 고요한 일요일에 벼락같이 다가온 깜짝 뉴스였다.



제1야당의 당수인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야권의 대선주자 ‘1순위’ 안철수 의원이 통합을 전격 선언하고 통합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을 출범시켰다. 안 의원은 정치권에 ‘안철수 현상’이라는 팬덤문화를 만들어낸 스타 정치인이다. 김 대표는 ‘탁월한 전략가’로 2007년 대선 때 대통합민주신당을 이끌어냈던 ‘창당 전문가’다. 두 사람이 만나 의기투합하자 한 달도 안 돼 의석 130석의 거대 야당이 뚝딱 만들어졌다. 정치권에 태풍을 몰고 온 ‘金-安 연합’은 과연 정치권을 바꾸는 대박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김한길-안철수 통합선언으로 야권의 인수·합병(M&A)이 현실화되면서 의석수 130석의 거대 야당의 출범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를 넣느냐 마느냐로 진통을 겪던 통합신당 명칭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정해졌고,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은 공동창당위원장이 되어 3월 26일 창당대회를 치르기로 했다.

두 세력은 3월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창당준비위원회 발기인대회에서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소득과 이념 등 사회 전반에 만연된 격차의 악순환을 해소하고,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를 아우르는 국민통합을 위해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통합신당에는 126명의 민주당 의원 전원과 새정치연합 송호창 의원, 무소속 박주선 의원과 강동원 의원이 발기인으로 합류했다. 가까이는 6·4 지방선거와 7월, 10월로 예정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멀리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겨냥한 야권의 본격적인 덩치 키우기가 시작되자 여의도 정치권에는 대선 못지않은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지난 3월 2일, 고요한 일요일 아침을 벼락치듯이 깨운 김한길-안철수 통합의 충격파는 정치권에 일대 격랑을 예고한 전주곡이었다. 5년마다 대통령 권력이 바뀌는 한국 정치사에서 ‘집권 2년차’는 그나마 정부 여당이 일할 수 있는 유일한 해나 다름없다. 국민도 2년차에 접어드는 1년 정도는 청와대와 여당의 독주를 묵인해주는 분위기가 이어져왔다. 하지만 김한길-안철수 연합군의 신당 창당이라는 A급 태풍이 발생하면서 그 충격파가 정부 여당에까지 밀려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창당위원장을 맡아 쌍둥이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붙어 다니는 두 사람. 3월 10일 한국노총 창립 68주년 기념식 및 후원의날 행사에도 함께 참석했다.
통합신당의 출범은 의석 156석을 보유한 새누리당도 결코 안심할 수 없게 하는 정치적 위협이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잠시 내려놓았던 박근혜 대통령도, 내심 지방선거에서 3자 대결구도에 따른 어부지리를 기대하며 마음을 놓고 있던 새누리당도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신발 끈을 고쳐 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권을 놀라게 한 金-安 연합

‘金-安 연합’은 새누리당을 바짝 긴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6·4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등 접전 지역이 오차범위 내 양자대결로 압축될 조짐을 보이자 새누리당 지도부는 머뭇거리던 중진들을 차출해 가차없이 지역으로 낙하시켰다. 비주류 출신 첫 원내대표를 노리던 5선의 중진인 남경필 의원은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던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심복’인 유정복 안정행정부 장관도 인천시장 탈환을 선언하며 사표를 냈다.

金-安 연합은 재야에 숨은 야망가들의 권력욕도 자극했다. 야권 일각에서 잠룡으로 거론돼온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교육감 3선을 포기하고 경기도지사 도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배낭여행을 하며 짐짓 여유를 부리던 여권의 잠룡 원희룡 전 새누리당 의원도 당 지도부의 권유에 마음을 다잡고 제주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차기 대선을 노리고 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여의도 복귀를 위해 재보궐선거에 나설 지역구 물색에 나섰다. 청와대의 독주에 밀려 있던 여의도 정치권에 활기가 돌고 멈춰 있던 잠룡들의 대권 시계가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김한길-안철수 통합선언은 6·4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상하며 풀이 죽어있던 야권 지지자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강한 촉매제가 됐다. 실제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선언 직후 실시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통합신당 지지율은 35.9%를 기록해 새누리당(40.3%)에 바짝 다가섰다. 대선 패배 이후 실망에 빠져 있던 야권 지지자들에게 ‘한번 해볼 만하다’는 희망을 갖게 해줬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을 한바탕 뒤집어놓은 金-安 두 주역은 통합선언 이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화기애애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요한 행사가 있는 곳이면 두 사람이 쌍둥이처럼 붙어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3월 12일 오전 10시, 서울 인사동에 있는 천도교 본부인 수운회관 10층 회의장에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예의 트레이드마크인 백발을 드러내며 성큼성큼 들어섰다.

5분 뒤 안철수 의원이 진을 치고 있던 취재진 사이를 뚫고 씩씩하게 걸어 들어왔다. 두 사람이 서로 반갑게 악수를 건네자 좁은 회의실을 점령하다시피 한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가 번쩍번쩍 터졌다. 평소 기자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는 정치권 스타인 안철수 의원은 통합선언 이후 뒤따르는 기자가 더 늘었다.

통합신당의 방향성을 자문하게 될 ‘새정치비전위원회’의 첫 회의가 열린 이날, 안철수 의원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안 의원은 이날 새정치비전위원장으로 선출된 백승헌 전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등 위원들에게 “죽비(竹篦)가 돼달라. 과감한 개혁안을 과연 신당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안(案)을 달라”고 당부했다. 안 의원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한길 대표는 “요즘 들어 안철수 의원이 늘 먼저 말씀을 다 하시니 제가 할 말이 없다”며 푸념해 좌중을 한바탕 웃겼다.

김 대표는 이날 “통합신당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에게 배우는 새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통합 선언 이후 두 사람이 함께 참석하는 행사가 부쩍 늘면서 민주당 당직자들은 “당 안팎에서 활력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통합 선언이 가져온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金-安 두 사람의 전격적인 통합의 배경에는 안 의원의 멘토 역할을 해온 김 대표의 오랜 인내와 노력이 숨어 있다.


▎안철수 의원과 통합에 합의한 뒤 의원총회 현장에서 박수를 받는 김한길 대표. 그의 통합신당 추진은 비주류 수장으로서 그동안 겪었던 설움을 한번에 날려버린 ‘거사’였다.



김한길 눈물의 의미

金-安의 통합선언 직후 민주당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는 ‘김한길의 눈물’이 한동안 화제였다. 통합을 선언한 다음날인 3월 3일, 김한길 대표는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안철수 의원과 통합을 선언한 데 대해 뒤늦게 배경설명을 하면서 통합 추진을 추인받기 위한 자리였다.

김 대표가 “저는 1여 2야의 정치구도를 1대 1 구도로 바꾸지 못하는 한 우리 미래를 꿈꿀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라며 통합 배경에 대해 이해를 구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오랜만에 한 목소리로 축하하며 박수를 쳤다. 김 대표는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 때문에 최대 3만 명의 당원이 탈당해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두 번이나 눈물을 쏟았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선거를 오랫동안 준비한 당원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비주류계의 수장으로서 당 대표를 맡은 이후 서울시청 앞에서 노숙까지 하는 장외 투쟁을 벌인 일이며, 주류인 친노계와 486강경파 등의 반발을 묵묵히 감수해야 했던 그간의 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을 법도 하다.

김 대표는 본래 감성적인 사람이다. 소설가 출신인 그는 대통령의 외동딸과 평범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소설 <여자의 남자>로 300만 부를 팔아치운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김한길과 사람들’이라는 TV토크쇼를 통해 방송인으로도 이름을 날렸고, 1995년에는 배우인 최명길 씨와 결혼해 연예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런 그가 정치인이 된 것은 한마디로 ‘팔자(八字)’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선친은 김철 전 통일사회당 대표다. 김철 전 대표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기초로 한 통일사회당 결성을 주도했지만 박정희 정권의 방해로 많은 좌절을 겪었다. 1970년에는 대통령 후보로 나온 적도 있다. 하지만 막판에 야권 주자이던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지지하며 후보에서 흔쾌히 물러난다. 김한길 대표의 현실정치 입문은 바로 그의 선친과 연관이 있다.

1995년 당시 DJ가 총선을 앞두고 그를 불러 “아버지가 70년 박정희 대통령과의 대선에서 나를 돕기 위해 후보를 사퇴했다. 그 이후 옥고를 치르며 고생하셨다. 넌 내 아들과 같다”고 말하면서 그를 16대 총선 비례대표로 공천했다. 그는 DJ가 집권한 이후에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에 오르면서 승승장구했다.

소설가들은 늘 머릿속에서 등장인물들을 그렸다 지웠다하며 ‘밑그림’을 그리는 데 능하다. 김 대표 역시 기획력이 뛰어나 타고난 전략가 기질을 숨기지 못했고, 이는 탁월한 협상력으로 이어졌다.

사실 김한길 대표에게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신당 창당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데자뷰다. 김 대표는 지난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협상의 협상대표를 맡아 노무현으로 단일화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그 후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한 열린우리당에 몸담았고 열린우리당에서 원내 대표까지 지냈다. 하지만 강경파들이 득세하는 주류 친노들과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는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 우리당 비노(非盧) 의원들의 집단 탈당을 주도하며 ‘중도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한다.

이후 대선승리를 위해 친노세력과 다시 합쳐 ‘대통합민주신당’을 출범시켜 정동영 의원을 후보로 내세웠지만 대선에서 패배한다. 그는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겠다며 18대 총선에 불출마해 4년간 야인 생활을 했고, 2012년 서울 광진갑 지역구에서 재기했다. 국회 입성 이후 민주당 대표에 도전했다가 당시 친노의 수장인 이해찬 전 대표에 밀려 한 차례 고배를 마셨지만 지난해 당 대표에 당선돼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김 대표의 이런 과거사를 보면, 그가 안철수 의원과 손잡은 이유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김 대표는 평소 친노 강경파 세력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그가 끊임없이 안철수 의원에게 손을 내민 것도 민주당의 활로를 찾기 위해 ‘판을 뒤엎는’ 신당 창당을 오랫동안 고민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전당대회 때 친노 진영은 “김한길이 대표가 되면 안철수와 신당 만든다”는 논리로 김 대표를 비판했다. 공교롭게도 그 루머가 현실화됐다. 안 의원을 염두에 둔 김 대표의 ‘야권의 재구성’ 구상이 실현된 셈이다.

金-安이 이뤄낸 전격적인 이번 통합신당 선언과 관련해 김한길 대표의 기획력과 전략에 또 한 번 놀랐다는 이가 많다. 민주당을 10여 년째 출입하고 있다는 K일보의 정치부 기자는 “김한길 대표의 진면목을 봤다. 정치논리로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김 대표의 ‘정치적 상상력’이 야권 지지자들을 감동시켰다”고 놀라워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부분의 기자는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이 ‘야권연대’나 ‘정책연대’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126석의 거대 야당인 민주당과 의석 2석의 새정치연합이 50대 50의 지분으로 신당에 참여하는 것이라든지 ‘헤쳐모여’를 통해 제3지대에서 별도의 신당을 만들어 통합하자는 ‘기획’은 기성 정치논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혁신적인 구상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프로젝트’는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2일 아침까지 불과 사흘 동안에 전격적으로 감행된 ‘거사’였다. 협상 과정도 핵심인사 몇 명만 알았을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두 사람을 통합의 길로 이끈 공통의 화두는 표면적으로는 ‘기초공천 폐지’라는 현안이었다. 당시 협상 과정에 참여한 인사들에 따르면, 2월 28일 오후 김한길 대표가 국회 본회의 와중에 여의도의 한 호텔로 최고위원들을 긴급히 불러 모았다고 한다.

이날은 김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초공천폐지에 대한 입장표명을 요구한 최종 시한이었다. 최고위원 회의에서 무(無)공천 주장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자 김 대표는 “이 정도 분위기라면 무공천을 동력삼아 판을 키워볼 수 있겠다”며 안철수 의원과의 협상을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김 대표의 탁월한 전략가다운 판단이 작용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민주당에서는 우원식 최고위원이, 안철수 위원장 측에서는 송호창 의원이 물밑에서 대화 채널을 가동해 의견을 모아갔다. 야권 통합론을 공개적으로 펴왔던 우 최고위원이 송 의원에게 김 대표의 ‘무공천 결정’을 전하며 민주당과의 통합 의사를 타진했고, 송 의원도 “그것만 해결되면 통합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고 말해 처음으로 합의 가능성이 엿보였다고 한다. 김 대표는 바로 이날 밤 안 위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무공천 결심을 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튿날인 3월 1일 오전 8시 30분부터 두 시간 동안 배석자 없이 안 의원과 회동을 가지며 신당 창당에 합의하고 기본적인 밑그림이 그려졌다.


▎金-安 통합이 선언된 뒤 새정치연합을 찾은 김상곤 전 교육감. 안철수 의원의 영입을 끝까지 거절해 안 의원의 통합 결심을 앞당긴 주인공이 됐다는 후문이다.




▎막후협상 채널을 맡은 최재천 민주당 의원(오른쪽)과 송호창 새정치연합 의원. 통합 합의는 4시간의 마라톤회의 끝에 성사된 난산이었다.
안철수 결심 앞당긴 것은 김상곤?

김 대표와 안 위원장은 3월 1일 오후 8시30분께 서울 모처에서 다시 협상테이블에 다시 마주앉았다. 이 자리에는 구체적으로 협상을 대리할 ‘선수’들도 함께 자리했다.

민주당 쪽에서는 최재천 전략홍보본부장과 민병두 의원이, 안철수 의원 측에서는 송호창 의원과 조광희 변호사 등이 배석했다. 4시간 동안 밀고 당기는 밤샘 마라톤 협상이 이어졌다. 그리고 3월 2일 자정 무렵에야 최종 합의문이 완성됐다.

김 대표는 새벽 2시께 최고위원들에게 “중요한 일이 있으니 꼭 참석해달라”는 문자를 보냈고, 오전 9시 긴급 최고위원회의가 소집됐다.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 쪽도 오전 9시 공동위원장단 회의가 소집돼 전격적인 통합신당 창당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안철수 의원이 신당창당에 합의한 셈법은 무엇이었을까? 안철수 의원도 김 대표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었다고 한다. 우선 막후에서 안 의원을 민주당에 합류시키려는 다양한 채널이 가동됐다. 안 의원과 가까운 고김근태 상임고문 계열의 민평련은 지난해 연말에 안 위원장과 모임을 갖고 민주당과의 통합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주당의 뿌리로 동교동계 좌장격인 권노갑 고문의 강한 권유도 있었다.

하지만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해온 안 의원이 새정치 이미지의 훼손이라는 부정적 여론을 무릅쓰고 민주당과 통합하기로 한 것은 ‘현실정치’의 벽을 피부로 실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무리하게 지방선거와 독자신당 창당을 동시에 준비하면서 인물 영입과 자금문제 부담에 시달렸다고 한다.

30억 원 규모로 책정된 창당 자금을 안 의원 개인출자에만 의존해온 점도 민주당과의 통합을 결심하게 만든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친분관계가 두터운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나 곽수종 새정치연합 총무팀장 등과 상의한다는 소문이 있어왔는데 이번에도 이들의 조언이 있었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안 의원의 결심을 앞당긴 것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무소속 야권단일후보’ 요구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한다. 특히 안 의원은 김상곤 경기교육감과 관련된 해법마련 문제에서 벽에 부딪혔다. 안 의원이 김 전 교육감을 찾아가 독자 신당인 새정치연합 경기지사 후보로 삼고초려 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하지만 김 전 교육감은 민주당과 안철수신당 측의 단일후보를 끝까지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고 한다. 안 의원은 고심을 거듭하다 자신의 ‘멘토’인 김한길 대표와 의논하게 됐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양측간에 논의가 진전되면서 결국 통합문제에 까지 합의가 이뤄지게 됐다는 후문이다. 이 과정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대화를 포장하는 명분에 불과했다는 분석도 있다.

통합신당 창당 합의는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힌 게 사실이다. 새누리당은 두 사람의 통합신당 선언 뒤 “안철수 현상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안철수 의원에게 자신의 지역구를 양보한 노회찬 전 의원은 기자에게 “창업(신당 창당)하겠다며 뛰쳐나가더니 다시 대기업(민주당)에 취업했다. 그것이 안철수의 새정치인가?”라며 독설을 날렸다. 전국의 대학가를 돌며 ‘청춘콘서트’를 통해 청년들에게 창업과 도전정신을 설파하던 그가 정작 독자신당 창당을 포기하고 제1야당의 공동대표 자리를 낚아챈 데 대한 비판이었다.

비판여론을 의식한 듯 안철수 의원도 과거와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본래 싸움이나 언쟁에 서툰 스타일이다. “안철수는 너무 심하게 예의 바르고 너무 과도하게 겸손하다. 늘 양보하고 순응한다.” 언론인 C씨가 안철수 의원이 정치에 뛰어들기 전인 2011년에 안철수 의원에 대해 통찰한 한 대목이다. 하지만 ‘샤이보이’로 알려진 안 의원은 요즘은 “통합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싸움을 마다하지 않겠다”며 파이팅을 외친다.

그는 새정치연합 홈페이지 등에 게재한 ‘신당 창당과 관련한 국민들께 드리는 편지글’에서 “민생을 위한 분투를 계속하겠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당내에서라도 치열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안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과 스킨십 행보로 친밀감도 높여가고 있다.

밥을 먹으며 반주 한잔씩 먹는 자리에서 안 의원이 “새정치”라고 건배사를 선창하면 민주당 의원들이 “책임져”라고 화답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기왕에 한 식구가 되기로 한 만큼 민주당 의원들과 친분을 깊게 하는 동시에 당내 지분을 고려해 우호세력인 친안(親安) 의원들을 만들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김한길-안철수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멘토와 멘티의 관계였다.



달라진 안철수 스타일

안철수 의원의 정치력도 늘었다는 평가다. 통합 추진 과정에서 ‘아군’의 이탈을 최소화하는 소통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출신인 김성식 공동위원장과 이태규 새정치기획팀장이 안 의원을 떠난 것 외에는 아직까지 이탈자가 없는 상태다. 특히 민주당과의 전격적인 통합선언에 대해 강한 배신감을 토로하며 “이 자(안철수 의원)가 나한테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야겠다. 연기력이 많이 늘었다. 아카데미상을 줘야 한다”며 반발했던 윤여준 새정치연합 의장을 주저앉힌 것에 대해서는 놀라는 이가 많다.

초기에 윤 의장의 반발이 컸던 것은 안철수 의원이 자신에게도 알리지 않고 통합추진을 결정한 데 대한 서운함도 있었지만 과거에 ‘최규선게이트’라는 고리로 악연이 있는 설훈 민주당 의원이 신당추진단장을 맡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이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눈치 챈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에 요구해 설훈 의원이 빠지게 되면서 윤 의장이 계속 통합신당 추진과정에 역할을 이어가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통합 과정에서 안 의원의 배짱도 제법 두둑해졌다고 한다. 안 의원의 참모들에 따르면, 통합신당의 당명과 관련해 박지원 의원 등 민주당 중진과 486의원들이 반드시 ‘민주’를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안철수 의원이 과감하게 밀고 나갈 것을 협상팀에 주문했다고 한다. 막판에 ‘60년 역사의 정통 야당’이라는 여론에 밀려 고집을 꺾기는 했지만 과거의 ‘얌전한 안철수’와는 달랐다는 게 민주당 쪽 의원들의 평가였다.

정치권에서는 金-安 두 세력의 통합선언이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는 서로에게 윈-윈(Win-Win)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60%에 이를 정도로 공고한 가운데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경쟁하는 구도로는 새누리당 독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김한길 대표는 신당 창당 카드를 통해 리더십을 재확립하는 동시에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과 양자구도를 형성해 민주당이 해 볼만한 선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당 주류인 친노와 일부 초선의원들로부터 사퇴압력에 시달렸던 김 대표로서는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한 셈이다. 안철수 의원과의 협상을 통해 통합신당의 공동대표를 약속받아 당권도 계속 연장할 수 있게 됐다. 김 대표는 “안 의원도 중요하지만 민주당에 새 정치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야권의 재구성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새정치연합’이라는 독자신당을 창당해 홀로서기에 나섰던 안철수 의원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창당 작업에 속을 태우다 김한길 대표가 내민 손을 덥석 잡고 위기 탈출에 성공하는 실속을 챙겼다는 평가다. 제1야당의 공동대표라는 울타리 안에서 숨을 돌리면서 2017년 대권도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다는 것이다.

金-安의 도박, 대박 되나

두 사람이 제법 호흡이 잘 맞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안 의원(52)은 1990년대 중반에 김 대표(61)가 토크쇼 ‘김한길과 사람들’ 진행자로 있을 때 게스트로 처음 만났다. 김 대표가 DJ정부의 정책기획수석으로 일할 때 안 의원은 DJ정부의 최연소 자문위원을 맡으며 계속 관계를 이어갔다. 2012년 대선 선거일에 미국으로 떠나던 날 안 의원은 김 대표에게 전화해 “실패한 원인을 새겨보고 귀국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멘토와 멘티였던 두 사람의 오랜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태풍이 유지되려면 바다의 따뜻한 수증기가 계속 공급돼야 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소멸한다. 통합신당 태풍도 마찬가지다. 야권 지지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벤트가 계속 연출돼야 한다. 국민들의 관심이 시들해지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쳐버린다. 그런 점에서 ‘기획력’ 있고 아이디어가 많은 김한길 대표가 안 의원에게는 적격일 수 있다.

물론 통합신당 창당이라는 두 사람의 ‘도박’이 실패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창당 전문가’라는 말을 듣는 김한길 대표이지만 상품성이 큰 정치권 스타인 안철수 의원을 간판으로 내세워 치르는 6·4지방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당내 친노계의 거센 도전으로 당권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 야권진영 일각에서는 金-安이 명분에 얽매이느라 기초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하면서 새누리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수도권과 비호남 지역의 기초단체장 선거를 싹쓸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현실정치의 벽을 실감한 안철수 의원이 멘토인 김한길 대표가 내민 손을 잡아 민주당과 한 배를 타긴 했지만, 두 사람 간에는 언제든 ‘동상이몽’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지금은 두 사람이 서로를 추켜세우며 웃고 있지만 지방선거 이후 두 사람이 권력다툼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실정치의 본질은 권력투쟁이고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게 생리이기 때문이다.

201404호 (2014.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