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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취재 - 얼굴은 내 운명! 관상성형 신드롬 

 

박지현 월간중앙 인턴기자
젊은이들 사이에 때아닌 ‘관상’ 열풍이 분다. 취직이나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관상성형’이 유행처럼 번진다



영화 <관상>이 관객 수 900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허영만의 만화 <꼴>이 각광을 받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사주·관상을 보는 풍토가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불황의 시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 얼굴까지 뜯어고쳐야 하는 눈물겨운 세태다.

“얼굴 어디를 고치면 좋을지 상담하러 왔어요.” 9월의 어느 날, 취업 준비생인 윤지영(29·여) 씨를 만난 곳은 젊은이들 사이에 꽤 유명한 홍대앞의 한 사주카페였다. 카페에는 윤씨 말고도 사주·관상을 보러온 사람들로 북적댔다. 역술인은 윤씨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마가 둥그러니 배우자 복도 좋고, 얼굴 색이 좋아 전반적인 운이 좋긴 한데… 코가 살짝 휘고 콧구멍이 약간 들려 재물이 새나갈 수 있겠네요.” 결론적으로 역술인은 조심스럽게 윤씨에게 코 성형을 권유했다.

그렇지 않아도 윤씨는 자신의 코에 별로 자신이 없었던 터였다. “사실 10년 전에 미용 목적으로 코 성형을 했는데 콧대가 비뚤어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되는 일이 없었나 싶었거든요.” 스무 살에 콧대를 높이는 시술을 받고 큰 기대를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뒤로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도 못하고 식당·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고 한다.

“어쩔 때는 코 수술을 잘못해서 그런가 싶었어요. 주변 사람들도 자꾸 코가 휘었다고 하니까 제 팔자에 액운이 낀 건가 자신감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윤씨의 표정이 한결 편해진 듯했다. “안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성형을 고민했는데 막상 관상가의 말을 듣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해진 느낌이 들었어요. 재수술을 받을 거예요.”

이런 일은 비단 나이가 젊은 윤씨 같은 이들의 얘기만은 아니다. 40대 주부인 노희숙(가명) 씨는 얼마 전 한의사가 직접 관상을 보고 성형까지 해준다는 경기도 용인의 한 한의원을 찾았다. 원장이 “미간이 돌출돼 있고 팔자주름이 심하면 평소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적다”며 노씨에게 주름을 제거하는 리프팅 시술을 권했다.

상담이 끝나고 나자 웬일인지 노씨가 눈물을 쏟았다. 그는 남편의 사법고시 뒷바라지를 수년 동안 했는데 막상 변호사가 된 남편에게 홀대 받는 자신의 처지가 떠올랐다고 했다. 결국 리프팅 시술을 받고 난 뒤 그는 나중에 한의원에 연락해 “남편이 제 달라진 모습에 예전보다 잘해준다”며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장 폴 사르트르의 “인간사회는 얼굴이 지배한다”는 말이 꼭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설명해주는 듯하다. 요즘 윤씨나 노씨처럼 성형수술을 앞두고 얼굴 관상을 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 JTBC <신의 한 수>에 출연하면서 관상전문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역술인 조규문 경기대 동양철학과 대우교수는 “사업·결혼·취업 등을 앞두고 관상성형을 상담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며 “하루에 전화문의를 열 통 이상 받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러한 추세를 타고 일부 성형외과는 ‘관상성형’을 키워드로 내세우기도 한다. 서울 강남에 있는 그랜드성형외과 임영민 원장은 “역술가들에게 관상을 보고 찾아온 환자가 그 부위의 시술을 상담하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한의원도 예외는 아니다. 강남에 있는 청정선한의원 임태정 원장은 관상을 봐주고 성형 시술까지 하는 관상성형 전문의다. 그는 “8년 전부터 ‘관상성형’을 내걸었는데 1주일에 한두 명씩 상담을 하러 오던 것이 최근에는 하루 두세 명 꼴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영화 <관상>의 폭발적인 인기는 서점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올해 9월에 개봉한 <관상>의 한 장면. 왼쪽은 2010년 웹툰으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가 최근 서점가에서 다시 인기를 끄는 허영만의 만화 <꼴>.
‘복사성형’에서 ‘관상성형’으로 진화

한동안 관상을 미신으로 여기던 풍조가 차츰 변하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관상의 범주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조규문 교수는 “일반인들이 흔히 말하는 얼굴 관상을 보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인상’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상에는 관상·인상·면상·수상 등이 있는데 관상이란 얼굴 외형을 통해 그에 포함된 심상까지 봐주는 운명 예측학”이라고 설명했다.

젊은이들의 관상 신드롬은 최근 화제를 몰고 온 영화 <관상>의 인기로 인해 불이 붙은 듯하다. 지난 9월 개봉 5일만에 250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한 <관상>은 10월 14일 현재 900만 명 관객 수를 넘어서며 역대 한국영화 흥행 10위를 기록했다. 덩달아 출판계에서도 관상이 화두가 됐다.

2010년 웹툰으로 소개된 허영만의 <꼴> 10권 세트가 다시 인기몰이를 한다. 출판사 측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한 달에 300부씩 판매되던 것이 <관상> 영화가 개봉된 이후 9월까지 3주 동안 1500세트가 팔려나갔다. 세트판매량으로 봐서는 5배 이상 늘어난 판매량이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관상 열풍이 불고있다. 스마트폰에 등록된 관상 관련 애플리케이션은 총 74개에 이른다. 안드로이드 폰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애플리케이션 ‘영화 <관상>과 함께하는 포토관상’의 다운로드 횟수는 100만 건을 넘어섰고, 리뷰 수도 5000건에 육박한다. 다양한 정보와 오락 콘텐트를 제공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dcinside)’에서도 ‘관상 갤러리’라는 카테고리가 북적댄다.

회원들이 직접 사진을 올려 서로의 관상을 평가해주는 게시판에는 수많은 사진이 올라 있다. 이 커뮤니티 회원인 아이디 ‘무지방우유’는 “관상 때문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자신의 체험담을 소개했다. 그는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친구의 관상이 안 좋다고 판단해 결국 헤어졌다”며 “코 끝이 내려온 남자는 집착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정말 딱 맞았다”고 털어놨다.

온라인 관상 프로그램인 ‘바파(BA PA: Balanced Angular and Proportional Analysis)’는 가상으로 얼굴 매력도와 얼굴분석을 통해 관상을 봐주는데 네티즌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린다. 본인의 정면 사진과 측면사진을 찍어 등록하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관상을 분석해 직관력·자신감·재물운·가족운 등을 확률로 알려준다. 이러한 관상분석은 현재까지 누적된 결과를 통계에 따라 예측하는 것이다.

바파 사용자 ‘울랄라젼’은 “사진을 통해 관상을 통계적으로 분석해주니 믿음이 간다”며 “처음에는 실제 얼굴 사진을 올리고, 나중에 다시 포토샵을 이용해 눈과 코를 가상 성형한 사진을 올려봤는데 수정한 사진의 관상에서 재물운과 가족운이 30%가량 올라간 걸 확인한 뒤 성형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관상학에 대한 인기가 성형이라는 과학과 만나 더 큰 관심을 이끌게 된 것이다. ‘강남 성형녀’, ‘강남 도플갱어’ 등으로 불리며 누구나 똑같은 성형 코드를 적용했던 ‘복사 성형’에서 이제는 ‘자신의 복에 맞는 관상성형’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관상이라는 소재에 이토록 뜨겁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한 영화의 성공에 따른 영향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 9월 한 언론은 “경기침체로 인해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관상을 바꿔 앞날을 개척하려는 청년들이 늘어난다”고 보도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팍팍해진 구직난을 반영하는 말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경기불황에 적은 인력으로 효율성을 제고해야 할 기업들은 똑똑한 인재에 목말라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 몇 십분 안에 사람을 판단해야 하는 신입사원 채용 면접관들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직종에 맞는 관상은 따로 있다?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기업 인사담당자 2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84.2%에 해당하는 응답자가 “지원자의 겉모습이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스펙이 조금 부족해도 인상이 좋은 지원자에게는 가산점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 D그룹 대리 박아름(30·여) 씨는 “회사 측에서 신입사원의 인상을 더욱 중요시하는 추세”라며 “입사 이후에도 면접 때의 인상, 말투나 태도가 화제가 된다”고 귀띔했다.

역술가인 조규문 교수는 최근 대기업들의 초청으로 ‘인생의 성공열쇠, 사람을 잘 봐라’는 주제로 관상학 강연을 했다고 한다. 대상은 인사과 및 영업파트 등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이다. 지난 9월 말 한 기업에서 “동양철학의 인간정보학, 성공을 위한 실용학이 바로 관상이다”라고 시작된 강연은 100분 동안 이어졌다.

그의 강의에 대한 임직원들의 반응은 뜨거운 편이다. 강의 내용을 일일이 필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조 교수는 “관상학은 상대적으로 간편하고 효율적이라 기업들에서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며 “이는 직원들을 뽑는 데 면접의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부 회사 중에는 신입사원 채용과정에서 아예 응시원서에 붙은 사진을 이용해 관상을 봐달라고 의뢰하는 곳도 생겨났다. 디자인업체인 B사는 사장의 방침에 따라 유명 역술인에게 원서의 사진을 건네주고 관상을 봐달라고 부탁한다. 아예 서류전형 과정에서 응시자의 관상을 보고 면접대상자를 걸러내는 것이다. 이 회사의 관계자는 “솔직히 면접만으로 전체적인 성격을 파악하기 어려워서 관상 전문가의 판단을 구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장을 구하려는 구직자들은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요즘 기업들이 직종별로 얼굴형을 구분해 뽑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이른바 ‘지도자형, 사업가형, 군인이나 경찰형, 운동 선수형, 행정직형, 영업직형, 연구직형, 기술직형, 실직자형’ 등의 구분이다.

취업 과정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다 보니 취직을 앞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관상 가꾸기’가 붐을 탄다. 그들 중에는 자신이 희망하는 직업과 자신의 얼굴을 맞추고자 관상성형을 감행(?)하기도 한다.

취업 준비생인 유성희(가명·27·여) 씨는 “대기업인 S그룹은 눈이 또렷하고 선한 인상을 좋아하고, H그룹은 진취적인 인상을 좋아한다는 말을 건네들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기업은 면접 중에 관상가들이 옆에 한 명씩 앉아서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영화 <관상>에서 관상쟁이 내경(송강호 역)이 인재를 발탁하는 데 옆에서 자문을 하는 장면이 현실에서도 이뤄지는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이러한 풍문에 대해 유력 대기업 홍보팀 대리 김정빈(가명·30·여) 씨는 “인사과에서 관상가를 불러들인다는 이야기는 일부 취업 컨설팅 회사나 구직자들이 만들어 낸 헛소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런데도 이런 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실제로 관상성형 이후 취업에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박선희(가명·28·여) 씨는 지난해 초부터 이직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자 사주·관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관상을 봤는데 역술인은 “눈꺼풀이 처진 경우 게으르고 나약해 돈을 모으는 일에 서툴러 빈곤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눈수술을 권유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는 결국 3월께 눈매 교정술을 받은 뒤 7월께 관련 업계 마케팅 부서로 이직에 성공했다. 박씨는 “면접 과정에서 인상이 좋게 작용해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관상학과 성형이 만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관상성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



천생연분 찾으러 관상을 바꾼다

젊은 시절 사랑의 결실이자 인생의 새 출발로 인식되는 결혼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더없이 중요한 통과의례다. 누구를 만나 어떤 가정을 꾸릴 것인가를 두고 예비 신랑신부 사이에서도 관상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유지빈(32·회사원·여) 씨는 지난해 1월 한 사주카페에서 관상을 보았는데 관상가로부터 “푹 패인 이마를 보니 배우자가 부인(유씨 본인)을 힘들게 만들 수 있다”는 유쾌하지 못한 말을 듣고 왔다. 유씨는 그 말을 듣고 난 뒤 결국 찜찜한 마음을 털어버리기 위해 이마에 지방이식을 시술했다. 다행히 그해 4월 그는 신랑감을 소개받아 현재 혼사가 진행 중이다.

오랫동안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해온 차일호(70) 방배결혼정보회사 대표는 “중매 과정에서 예비신랑신부의 30%가량이 관상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7년간 관상중매로 성사시킨 커플이 수천 쌍에 이른다”고도 말했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나중에 이혼으로 이어지면 도루묵이기때문에 서로 헤어지지 않을 관상의 조합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차 대표는 회원을 받아들일 때도 사진을 보고 관상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살인기가 있는 관상, 싸움을 잘하는 관상, 도벽이 있을 법한 관상을 가진 사람은 아예 회원 접수를 거절한다.” 부모들이 직접 나서서 자녀의 짝을 찾는 경우에는 상대의 관상에 대한 문의가 더욱 많은 편이다.

차 대표가 말하는 관상론은 이렇다. “관상은 사람들이 각자 살아온 인생과 인격을 뜻하는 것이라 흔히 일반인들이 처음 보고 판단하는 인상과는 구별해야 한다. 본래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처럼 관상성형으로 운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도 회원들에게 관상성형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 가벼운 수술에 한해서다.

“지나치게 사나워 보여서 인상이 온화해 보일 수 있는 쌍꺼풀 수술 같은 것은 가끔 권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결국 두 사람의 짝을 지어줘야 하는 입장에서도 일반 사람들이 갖는 첫인상의 중요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심리적인 효과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관상가에게 어떤 얼굴은 배우자에게 복이 따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마음에 걸려 사느니 수술을 해서 좀 더 나은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안도감을 갖고 사는 게 더 행복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관상을 바꿔 직장 운이나, 배우자 운 등에 변화를 주려는 노력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관상학에서는 얼굴 부위에 따라 사람의 운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마는 배우자나 직장 복을, 눈은 심상과 성격, 입술은 대인관계, 인중은 건강과 질병 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관상성형을 통해 자신의 운명에서 가장 바꾸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울 노원구의 A성형외과 장순정 상담실장은 “관상성형을 문의하는 사람 중에는 재물에 해당한다는 코 성형수술이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조규문 교수는 “코는 재물을 보는 곳으로 휘지 않고 두툼하면서 힘이 있게 내려오면서 마르지 않고 구멍이 보이지 않아야 좋다”고 설명했다.

재물 복을 위한 시술은 중년 남성들에게도 인기를 끈다. 이강석(가명·60·남) 씨는 3년 전에 관상을 본 후 ‘복코’ 수술을 감행했다. 그는 “수술 후 좋은 일이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고 실제로 조금만 상황이 나아지면 코가 재복을 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전체적인 얼굴형(관상에서의 상학)에 변화를 줘서 재물운을 꾀하기도 한다.

한운기(가명·56·남) 씨는 퇴직 후 사업을 벌였지만 잘 풀리지 않자 사주·관상을 보았다가 역술인으로부터 “얼굴 살이 없어 이마가 꺼져 보이고 광대가 도드라져 보여 물질적 이익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한씨는 그 후 주저하지 않고 주름 리프팅과 얼굴 지방이식 시술을 했다.

한씨의 얼굴은 한결 둥글어졌고 편안한 인상을 갖게 됐다. 그는 “나이든 남자가 성형을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생소하고 부끄럽게 여겨졌지만, 수술 후에는 자신감이 생겨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형수술 이후 인생의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관상은 미의 기준과는 다르다”고 관상가들은 말한다.


성형수술로 가장 바꾸고 싶은 건 ‘재물운’

최근 일반 성형외과에서 인기를 끄는 양악 수술이 대표적이다. 일반 여성들은 ‘V’라인의 얼굴형을 미인의 조건으로 선호하지만 관상전문가는 “노년의 복을 관장하는 턱이나 광대뼈를 깎는 행위는 좋지 않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관상가들은 오히려 “관상학적으로 턱은 ‘U’자형인 게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갸름한 얼굴형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보니 관상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이들이 많은 편이다.

직장인 최시은(가명·29·여) 씨는 “관상적으로 좋다고 해도 예뻐지지 않는데다 현재 재물 복과 곧바로 연관되는 것도 아니니까 굳이 신경 쓰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성형을 통해 관상이 바뀌면 자신의 운명도 바뀌게 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관상성형만으로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홍대앞에 있는 사주카페 ‘재미난 조각가’의 역술인 해광(53) 씨는 “관상은 ‘타고난’ 마음의 운세로 길흉화복을 예측할 수 있다.

반면 딴 사람이 보는 시각적 이미지가 인상이다. 성형으로 고칠 수 있는 건 인상이다”고 말했다. 관상과 인상은 다르다는 것이다.

<얼굴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 최창석 명지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는 “관상성형은 아주 제한적인 효과만 가져온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사람은 뇌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운명은 뇌와 외부환경에 의해 달라진다”며 “얼굴 성형을 해도 뇌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인생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관상성형에 의해 운명이 바뀐다고 믿는 사람이 늘어나는 걸까? 전문가들은 “성형 이후 자신감이 생기며 태도에도 변화가 오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결국 태도와 심리문제라고 주장한다.

“‘목이 마르니 물을 마신다’는 논리와 같다. 사회의 불안정한 구조와 경제불황이 심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관상과 같은 역술의 신비로움도 높아지게 된다. 사회의 불안수준이 높아질 때에는 이런 걸 낮추려는 행위가 뚜렷이 드러나는데 이것이 얼굴에 변화를 주는 관상성형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임태정 청정선 한의원 원장은 “재물운에 대한 욕구는 시대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경기불황이 심해지면 체감 강도가 높아져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용현 블룸클리닉 원장은 저서 <의사는 성형하지 않는다>에서 “성형을 하면 크게 자기 인식의 차이가 생겨 자존감을 회복하고 대외활동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삶에 큰 변화가 오게 된다”고 주장했다.

관상성형으로 내 운명이 바뀔지 아닐지에 대한 논란은 어쩌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의 관상성형 추세가 ‘자신의 내면과 어울리는’ 독특한 개성 찾기라는 의견도 나온다.

임영민 그랜드 성형외과 원장은 “관상성형의 유행은 외모가 ‘마음의 창’과 연관된다는 믿음에서 생겨난 것”이라며 “우리사회가 지향하던 서양중심의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 차츰 내면을 드러내는 좀 더 넓은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규문 교수는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을 들어 최근의 관상신드롬을 설명했다.

“김내경이 ‘나는 파도만 봤지, 바람은 보지 못했소’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파도를 관상으로, 바람은 심상으로 비유할 수 있다. 관상불여심상이라 관상이 심상보다 못하다.” 즉, 심상(心像)을 드러내는 관상으로 현대 미의 기준은 “예쁘면 성공한다”가 아니라 “복이 있으면 성공한다”로 변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흔히 사람의 얼굴을 지나온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20∼30대 여성들 사이에 붐을 이루는 성형은 이제 모든 연령과 성별을 아우르며 ‘멋지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내가 쌓아갈 운과 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나이가 들며 풍기는 느낌과 관록, 내면의 성품까지도 겉모습에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다. 관상성형은 어쩌면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201311호 (20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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