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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머니’의 수퍼 파워 - 돈 되는 곳엔 어디나 왕서방 나타나 

세계 M&A 시장서 중국은 이미 ‘큰 손’ 에너지→IT·식품 등으로 영역 확대 


▎올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GSMA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4’에 마련된 레노버 부스. IBM·모토로라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덩치를 키운 레노버는 IT업계 글로벌 기업으로 고속성장 중이다.



파나마운하가 없던 시절,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를 오가는 화물선은 육로를 이용하거나 남미 끝을 돌아야 했다. 파나마운하가 개통한 이후 운항거리는 크게 단축됐고, 물류 비용도 낮아졌다. 올해 개통 100년을 맞는데 그동안 경쟁상대가 없었다. 하지만 곧 이런 구도가 깨질 전망이다. 운항거리를 800㎞나 단축하는 니카라과운하가 건설되기 때문이다. 파나마운하보다 수심도 깊고, 폭도 넓다.

이름은 니카라과운하지만 짓는 곳도, 운영하는 곳도 중국계 회사다. 개발사인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HKND)은 중국 통신 장비기업 신웨이그룹이 만든 회사다. HKND는 무려 40조원을 투자해 길이 278㎞의 운하를 건설할 계획이다. 올해 말 착공해 2020년 완공이 목표다.


중남미 최빈국 중 하나인 니카라과로서는 이 막대한 투자(니카라과 GDP의 약 3.7배)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대신 니카라과정부는 HKND에 ‘50년 운영권+50년 재계약’이란 선물을 안겨줬다. 실제로 얼마나 돈이 될 진 두고 봐야겠지만 차이나 머니의 가공할 스케일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2013년 중국 기업 M&A 규모 아시아 1위

전 세계적으로 차이나 머니의 공습이 거세다. 과거 투자가 아프리카나 남미 등에 몰렸던 것과 달리 이제는 선진국과 신흥국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돈을 뿌린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선진국이 투자를 적극적으로 요청할 정도로 힘이 세졌다.

지난 6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처음으로 중국의 해외 직접투자(FDI)가 순유출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국 자본이 중국에 투자한 돈보다 중국이 해외에 투자하는 돈이 더 많아질 것이란 의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 자본의 주 타깃은 부동산과 자원·인프라 개발에 집중됐지만 최근엔 기업을 직접 사들이는데도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지난해 중국 기업의 M&A 규모는 약 385억 달러로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국가 1위에 올라섰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주로 에너지 분야 국영기업이 전면에 나섰다. 지난 15년 간 중국 에너지 관련 국영기업이 사들인 해외 자산은 1990억 달러(약 200조원)에 달하는데 전체 M&A 시장에서 에너지 관련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30%에서 2012년 24%로 낮아지는 추세다.

대신 민영기업·사모펀드의 해외 진출이 늘고 있다. 특히 IT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인수 대상을 찾고 있다. 레노버가 앞장섰다. 레노버는 2005년 IBM의 PC사업을 인수한 데 이어 브라질 1위 컴퓨터 제조업체 CCE를 인수했다. 다들 사양산업이라 했지만 레노버의 판단은 달랐다. 그 판단은 맞았고, 레노버는 세계 컴퓨터 업체 중 가장 이윤을 많이 남기는 회사로 자리잡았다.

컴퓨터가 끝이 아니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가전업체 메디온을 인수했고, 올 초에는 IBM 서버 사업의 일부를 23억 달러(약 2조3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대박은 모토로라였다. 구글이 인수했지만 레노버가 다시 샀다. 구글은 13조원에 인수했지만 레노버는 딱 3조원으로 모토로라의 기술을 흡수했다.

레노버뿐만 아니다. 미국 주식시장 상장을 앞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미국 전자 상거래 업체 숍런너와 독일 오토나비의 지분을 취득한 데 이어 모바일 브라우저 업체 UC웹의 지분 일부를 인수하기로 했다. 이는 중국 IT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M&A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두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업체 91와이어리스를 인수한 19억 달러(약 1조9000억원)를 웃돌 전망이다.

식음료 분야의 M&A도 활발하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올해 이뤄진 중국 기업 M&A 중 17%가 해외 식음료 분야였다. 최근 중국 육류가공업체 솽후이는 미국 동종업체인 스미스필드를 71억 달러(약 7조1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인수가 확정되면 솽후이는 이 분야 세계 1위로 발돋움한다. 유제품 기업인 광밍은 이스라엘 트누바푸드의 지분 56%를 인수했다.

7월에는 중국 사모펀드 호니캐피탈이 영국 피자 프랜차이즈 ‘피자익스프레스’를 9억 파운드(약 1조6000억원)에 인수했다. 호니캐피탈은 레노버 계열 사모펀드다. 이번 M&A는 지난 5년 간 유럽 외식산업에서 이뤄진 거래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제조업에 의한 수출 경제를 탈피해 소비재를 중심으로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한다는 의도다. 역사와 기술력이 있으면 시장 가격보다 더 얹어주고라도 사들이는 게 특징이다. 최근 들어 독일과 일본의 중견 장수기업을 연이어 사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부동산 침체로 남는 돈 해외로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시작은 부동산이었다. 중국 정부가 해외 부동산 투자를 허용한 게 기폭제 역할을 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투자에 목마른 세계 각국이 외국인 투자 규제 완화에 나선 것도 한 몫 했다. 중국 자본을 끌어들이려 외국인 투자이민제를 실시한 제주도가 대표적이다. 분마그룹, 녹지그룹, 홍콩 란딩그룹 등 대표적인 중국 부동산 기업이 호텔·콘도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업뿐만 아니라 거주나 투자 목적으로 개인이 땅을 사는 경우도 많다.

서울과 부산에서도 중국인 투자 바람이 거세다. 녹지그룹은 서울 강남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한전 부지를 노리고 있다. 국영건설사인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EC)는 부산 엘시티 프로젝트의 시공사로 선정됐다. 지상 101층 규모의 초고층 호텔과 레지던스를 짓는 사업이다. 최근엔 서울 홍대 인근에서도 중국인들의 파워가 두드러진다. 화교타운이 있는 연남동을 중심으로 점차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데 중국인 부동산 투자를 중개하는 브로커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주식시장에서도 차이나 머니 비중이 커지고 있다. 전체 비중에선 아직 미국과 일본에 크게 뒤쳐지지만 최근 3~4년 새 투자액이 급증하는 추세다. M&A 등 직접 투자도 활발하다. 특히 중국 자본은 우리나라 게임·모바일 업계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카카오의 2대 주주로 잘 알려진 텐센트가 가장 적극적이다.

텐센트가 2012년 720억원을 투자해 인수한 카카오 지분은 현재 가치로 약 9000억원에 달한다. 한때 한국 온라인게임 배급사 역할을 했던 텐센트였지만 불과 몇 년 새 시가총액 125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게임 업체로 성장했다. 텐센트는 지난해 NSE엔터테인먼트, 리로디드스튜디오, 레드덕 등 한국 중소형 게임업체에 투자했다.

최근에는 CJ E&M의 자회사인 CJ게임즈에 5억 달러(약 53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CJ E&M은 게임사업 부문인 넷마블을 물적 분할해 CJ게임즈와 새 통합법인을 출범시킬 계획인데 작업이 완료되면 텐센트는 통합법인의 3대 주주가 된다. 중국의 샨다 또한 국내 게임업체 액토즈 소프트를 인수했다.

산업구조 개편, 중국의 부동산 침체 장기화 등과 맞물리면서 차이나 머니의 해외 이동은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아직까지 주로 게임이나 IT 등 특정 업계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도 적극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투자가 부족한 마당에 돈이 몰려드는 걸 피할 이유는 없지만 중국 경제 의존도 확대와 기술 유출 등에 대한 우려도 큰 상황이다.

202404호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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