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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 마음을 담으세요 사진이 달라져요 

 

렌즈 교환식 카메라(DSLR)처럼 좋은 사진기를 들고도 찍은 사진이 마음에 안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기중 포토저널리스트가 쓴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에 그 방법이 나와 있다.

▎‘송광사의 새벽’ 노스님은 오늘도 예불을 하기 위해 새벽의 정적을 깬다. 수십년 간 해오다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깜깜한 밤을 밝히는 법당의 불빛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는 주기중 포토저널리스트가 강조하는 사진 철학이 잘 담겨 있다. 평생을 카메라와 여행한 저자는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을 통해 사진의 본질을 바라본다. 사진 찍을 때 마치 ‘이름을 부르듯’ 피사체와 교감하라는 것. 그러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듯’ 자신만의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쉽게 말해 사진을 찍는 대상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떠오르는 느낌을 사진으로 표현하란 주문이다.


▎나무판자에서 발견한 뭉크의 ‘절규’. 일본식 주택에서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을까. 일제강점기 민초들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주기중 포토저널리스트는 중앙일보의 사진부장, 영상에디터, 뉴스방송팀장 등을 거쳐 현재 중앙일보시사미디어 포토디렉터로 재직한다. 이 책은 30년 가까이 사진기자로 현장을 종횡무진하며 품었던 고민과 그에 대한 해답이다.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러왔다면 책장을 들춰보라. 거창한 사진 이론이 아닌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따라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사진은 거창하지 않다. 책에 담긴 사진들이 그의 생각을 잘 말해준다. 대자연의 풍경도 좋지만 때론 담벼락의 거미를 찍고 어떤 때는 일본식 주택의 나무판자를 담기도 한다. 중요한 건 피사체에 자신만의 의미를 담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담벼락 거미의 배경이 붉은 콘크리트 벽이 되는 순간 강렬한 유혹이 떠오른다. 나무판자의 못에서 나온 녹물과 곰팡이 자국

은 화가 뭉크의 ‘절규’를 닮았다(위 사진 참조). 피사체와 교감하며 의미를 발견하고 담을 때 비로소 사진은 가치를 얻는다.


▎전라남도 구례군 산수유마을에서 찍은 노란 산수유꽃. 꽃 위로 햇볕이 쏟아지자 봄 아지랑이처럼 춤추듯 타오른다.
초보자에겐 그마저도 어려울 터, 자신만의 사진을 찾는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바라보기, 마음 담기, 그리고 빛 이 세 가지다. 바라보는 것은 무질서한 이미지들 속에서 의미있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사물을 바라볼 때의 습관을 강조했다.

사진가는 날마다 새롭게 눈을 뜨고 다양한 각도로 사물을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사진을 찍기 전에 피사

체를 한 바퀴 돌아보아야 합니다. 앉아서도 보고 누워서도 봐야 합니다. (52쪽)


바라볼 때 중요한 점은 ‘뺄셈의 미학’이다. 실제와 똑같이 찍는 것이 아니라 부분을 강조해 전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노란 산수유를 찍으러 갔을 때를 예로 들어 보자(위 사진 참조). 모두를 담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시야를 좁히자 컴컴한 대나무 숲 뒤로 산수유꽃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마음담기의 첫 걸음은 ‘느리게 걷기’다. 천천히 걷다 멈춰 살피고, 또 걷다가 잠시 멈춰 살피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감성을 담아 세상을 바라본다. 마음에 따라 다르게 떠오르는 세상을 사진에 진솔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주기중 지음 I 소울메이트 펴냄 346쪽 I 가격 1만8000원
특히 풍부한 표현을 위해 시각을 공감각으로 확장시키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사진은 시각예술이지만 시각에만 의존하면 표현의 한계에 부닥친다. 시각을 청각·후각·촉각·미각과 만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저자는 ‘사진은 빛을 보는 것이 반’이라며 빛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초년 사진기자 시절,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암실에 들어갔다가 빛을 알게 됐다.

암실에서의 깨달음은 ‘어두워야 빛이 잘 보인다’라는 것입니다. 사진에서 빛을 강조할 때는 반드시 어두운 부분이 받쳐주어야 그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175쪽)

시·음악·문학·과학과 사진을 연관시킨 저자의 이야기는 독자의 흥미를 더욱 불러일으킨다. 색감정을 이야기할 때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등장한다. 베르테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할 때 입은 푸른 연미복과 노란 조끼를 빗대 설명한다. 파랑은 차가움·냉정·우울을 뜻하고 노랑은 따스함·희망·기쁨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파랑과 노랑이 교차하는 색감정은 절망과 희망의 공존이다. 사진도 다양한 색감정을 품고 있다.

사진 초보자도 이 책이 술술 읽히는 이유는 한 장 걸러 등장하는 사진 덕분이다. 저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 이야기 전후로 그와 어울리는 사진들을 충분히 담았다. 혹 이해가 가지 않는 설명이 있더라도 사진을 함께 보고 있으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하늘에 점점이 떠 있는 구름들이 창문을 두드리며 아침을 깨웁니다. 아침 뉴스라도 듣고 있는 것일까요? 동그란 안테나가 귀를 쫑긋 세웁니다. (22쪽)

저자가 유럽여행 첫날 찍었던 사진 이야기다. 파아란 하늘과 흰 뭉게 구름, 첫날 묵었던 시골 마을 풍경이 담겨 있다. 사진 속 집의 창문은 하늘을 고스란히 비춘다. 마치 여행자의 눈처럼 말이다. 집에 달린 안테나는 하늘을 향해 있다. 타지의 소리를 담으려 쫑긋 세운 여행자의 귀 같다. 언뜻 보면 그냥 풍경사진이지만 뭔지 모르게 설레인다. 저자가 강조하는 ‘마음 담기’다. 사진에는 ‘굿모닝’이란 이름을 붙였다. 김춘수 시인이 꽃을 향해 이름을 부른 것처럼.

201408호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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