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RT TOY - ‘억’ 소리 나는 어른의 장난감 

 

아이들의 동심을 간직한 어른들 ‘키덜트(Kidult, kid+adult)’. 이들의 최근 트렌드는 ‘아트 토이’로 요약된다. 장난감이 디자이너를 만나 예술품으로 거듭나거나, 명품 브랜드와 협업해 마케팅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예술성과 희소성으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아트 토이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미국의 아트 토이 디렉터 크리스 릭스가 디자인한 더니. 가격이 50만 달러(약 5억원)를 호가한다.



“이거 정말 890만원 맞아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킨키로봇 매장. 곰돌이 인형이 1000만원을 호가한다. 카리모쿠 ‘베어브릭(Be@rbrick)’이라 불리는 이 인형은 일본 메디콤 토이가 디자인한 블럭 타입 피규어(인간·동물 형상의 장난감)다. 2001년 첫 발매된 베어브릭은 ‘곰(bear)’과 ‘벽돌(brick)’의 합성어로 전 세계 수집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기본 디자인은 유지하면서 아티스트나 명품 브랜드와 협업해 다양한 베어브릭을 만든다.

킨키로봇이 판매하는 카리모쿠 베어브릭은 일본 가구회사 카리모쿠와 협업으로 극소수량만 제작한다. 높이는 70㎝ 남짓이며 무게는 30㎏이다. 일본 장인이 호두나무를 깎아 손수 만들어 주문 후 4개월이 지나야 받아볼 수 있다. 어른들이 소장 가치가 있는 고가의 장난감에 열광하는 이유는 ‘예술성’과 ‘희소성’ 때문이다. 개성 있고 구하기 힘들수록 갖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일본 메디콤 토이가 만든 아트 토이 베어브릭의 모습은 변화무쌍하다. (왼쪽부터) 명품 브랜드 샤넬, 펜디와 협업해 만든 샤넬 베어브릭과 펜디 베어브릭. 일본 가구업체 카리모쿠사와 협업해 만든 카리모쿠 베어브릭.
키덜트[Kidult, 아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 동심을 간직한 어른이란뜻] 시장도 이에 맞춰 변하고 있다.카리모쿠 베어브릭은 처 선보인 5개가 한 달 만에 모두 팔렸다. 890만원이라는 가격이 무색할 정도다. 카리모쿠 베어브릭의 국내 판매를 담당하는 킨키로봇 신사점 장은진 매니저는 “제품 수량이 한정돼 구매자가 늘어날수록 가격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예술적 가치에 따라 수천만~수억원 호가

고가 키덜트 시장의 중심에는 ‘아트 토이(Art Toy)’가 있다. 기존의 장난감에 각양각색의 디자인과 개성을 입힌다. 1990년대 생활고에 시달리던 홍콩의 예술가들이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던 플라스틱 곰 인형 ‘퀴(Qee)’에 자신들의 디자인을 가미해 팔기 시작한 것이 유래다.

퀴의 뒤를 이어 일본의 베어브릭과 큐브릭, 미국의 더니와 어글리돌 등 아트 토이가 연이어 히트하면서 아트토이 시장은 일본 6조원, 미국 14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국내에선 박상배 커피빈코리아 대표가 세운 킨키로봇이 이 분야 선두주자다. 시장 규모는 연간 7000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매년 20% 정도로 성장할 만큼 반응이 좋다.

아트 토이의 가장 큰 특징은 소재와 디자인을 바꿔 원하는 만큼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 이유다. 예컨대 베어브릭도 유명 작가와 만나면 ‘억’ 소리나는 가격이 된다.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베어브릭은 중국 현대미술작가 4대 천왕으로 손꼽히는 웨민쥔의 작품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웃는 인물 캐릭터로 유명하다. 이 모습을 담은 베어브릭 ‘죄수들’은 2008년 자선 경매를 통해 120만 위안(약 1억9600만원)에 낙찰됐다. 수익은 중국 난치병 어린이를 돕는 데 쓰였다.

아트 토이를 만드는 세계적인 피규어 작가도 있다. 아트 토이의 창시자로 불리는 홍콩 출신의 마이클 라우는 어릴 적부터 장난감 만들기가 취미였다. 화가, 쇼윈도 디스플레이 디자이너, 광고대행사 직원 등을 거치며 예술적 감각을 키웠다. 그는 1998년 홍콩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이스트 터치’에 ‘가드너(Gardener)’란 제목의 만화를 연재했다. 그 만화가 인기를 끌자 캐릭터를 피규어로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라우의 장난감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다. 세계 주요 도시를 다니며 전시회를 열 때마다 관람객이 10만 명이 넘는다. 지난해 2월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라우의 아트 토이 전시회가 열렸다. 방문자 중 30대 남성 관객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는 “아트 토이가 소수의 마니아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장르가 되길 바란다”며 전시회 소감을 전했다.

라우는 2008년 포브스가 선정한 ‘유행을 선도하는 세계 20인(20 Trends Sweeping the Globe)’에 들었다. 나이키, 소니, 디젤, 맥도날드, 에어워크 등과 협업도 진행한다. 그의 대표적인 아트 토이 가드너는 개당 가격이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지난 6월 온라 경매사이트 이베이에서 거래된 가드너 중 최고 낙찰가는 3만4950달러(약 3550만원)였다.

명품 브랜드와 만나 몸값을 높인 아트 토이도 있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2006년 디자인한 ‘샤넬 베어브릭’이 대표적이다. 코코 샤넬의 옷과 카멜리아 머리 장식, 그리고 샤넬의 상징인 진주목걸이와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베어브릭은 1000개 한정판으로 비매품이다. 일련 번호까지 매겼다. 샤넬은 이 베어브릭을 매장에 비치하거나 패션쇼에 등장시키고 지인에게 선물했다. 국내에서는 가수 지드래곤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해화제를 모았다.

명품 브랜드 펜디도 2008년 ‘바게트백’ 출시 10주년을 맞아 베어브릭을 내놓았다. 10가지 색상으로 제작된 몸통에는 1998~2008년까지 연도가 새겨졌다. 샤넬과 마찬가지로 1000세트 한정 생산해 바게트백 구매자에게 선착순 지급했다.


▎카리모쿠 베어브릭. 일본 장인이 손수 호두나무를 깎아 소량만 제작한다.
인기를 끄는 또 다른 아트 토이로 ‘더니(Dunny)’를 들 수 있다. 미국의 아트 토이 생산업체 키드로봇에서 만든 제품으로 아트 토이 디렉터 크리스 릭스가 제작했다. 전세계에 단 한 개 뿐인 이 아트 토이는 이베이에서 50만 달러에 낙찰됐다.

아트 토이 가격은 ‘희소성’과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생산량을 제한하는 한정판은 공급과 수요 불균형을 이끌어 마니아들의 소유욕망을 자극한다. 홍콩의 대표적 아트 토이 회사 핫 토이스는 수공으로 소량 제작하는 슈퍼히어로 시리즈로 잘 알려졌다. 제작기간 이 1년이 넘는다. 이베이에서 요즘 가장 고가로 거래되는 핫 토이스 제품은 영화 ‘록키’의 두 주인공 록키 발보아와 클러버 랭의 피규어다. 경매예상가는 5999달러다.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소는 크기다. 베어 브릭의 기본 사이즈는 7㎝. 이를 기준으로 200%(14㎝), 400%(28㎝), 1000%(70㎝) 순으로 커진다. 크기가 클수록 비싸다. 최근 400%와 1000% 베어브릭의 인기가 높아져서다. 리모쿠 베어브릭도 400%크기는 400만원 대지만 1000%는 890만원이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아트 토이가 주식 못지 않은 투자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나오고 있다. 하지만 소유만으로 행복을 느낀다는 사람이 많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1408호 (2014.07.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