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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NESS & LEADERSHIP - “나는 외계인일지도 몰라” 

 

최은경 포브스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국내 벤처기업 1호로 꼽히는 비트컴퓨터를 창업한 조현정 회장은 넘치는 엔도르핀과 남다른 집중력으로 30여년 간 꾸준한 경영성과를 냈다.

▎조현정 회장은 촬영소품으로 가져간 구형 모니터를 직접 분해한 뒤 완벽하게 원상복구했다. 그의 손가락 곳곳에 과거 전자제품을 수리하다 생긴 상처가 남아 있다.



“제가 똘아이는 아닌데요. (웃음) 집중력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습니다.” 조현정(57) 비트컴퓨터 회장은 몰입의 대가라 부를 만하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저서 『자기대로 삽시다』에서 조 회장이 삼매(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에 올랐다고 썼다. 뛰어난 집중력은 천재적 광기의 소유자와 성공한 경영자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다.

조 회장은 1983년 8월 국내 1호 소프트웨어 회사인 비트컴퓨터를 창업했다. 당시 인하대 전자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는 국내 최초 pc용 상용 소프트웨어로 의료보험 청구 프로그램을 개발해 회사를 의료정보 소프트웨어 전문업체로 키웠다. 벤처, 소프트웨어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때 왜 전공인 컴퓨터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분야에 뛰어들었을까? “하드웨어에서는 1인자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서”라고 답하는 그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조 회장은 남다른 집중력과 돌파력을 자랑한다.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사와 서로 좋은 자극을 주고받겠다는 의미입니다. 경쟁사가 있어야 더 성장할 수 있어요. 삼성과 애플처럼요.” 그는 과거 경영이 어려워진 경쟁사를 도와준적도 있다. 특히 업무 집중력에 관한 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조 회장은 사무실이 아닌 호텔에 회사를 차렸다. 지금의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자리에 있던 맘모스호텔에서다.

“경영 경험이 없던 제가 남과 같이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자본금도 현금 450만원이 전부였으니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무실에서는 아무리 길어도 업무 시간이 하루 12시간이지만 호텔에서는 숙박과 냉난방 문제를 해결하면서 17시간 일할 수 있었습니다.” 오피스텔이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전에 그는 호텔 장기 투숙자로 머물며 업무에 몰두했다.

이듬해 6월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누굴 만나기로 해서 밖에 나갔는데 땀이 너무 많이 나는 거예요. 상대방이 깜짝 놀라며 왜 여름에 겨울 코트를 입었느냐고 하더군요. 일하느라 계절이 바뀐 줄도 몰랐던 거죠.” 이렇게 2년 반을 일에 미쳐 살았다.

1985년에는 사업이 자리를 잡아 현재 비트컴퓨터 본사가 있는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에 사무실을 내고 치과의사인 신현미씨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그의 못 말리는 ‘일 사랑’은 계속됐다. “아내가 버스정류장에서 저를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랍니다. 자정이 훨씬 넘어 나타난 제가 ‘결혼한 걸 깜박했다’고 말했다더군요. 전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웃음)

일하느라 결혼한 것도 잊어

그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집중력을 보였다. “어렸을 때는 집이 유복했어요. 다른 애들이 집밖에서 딱지치기나 구슬치기할 때 저는 집에서 괘종시계를 분해했다 조립했다를 반복했지요. 성격이 내성적인데다 집에 갖고 놀 게 많아서 밖에 잘 안 나갔어요. 그게 몰입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네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조 회장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 충무로 전자상가에서 일을 배우며 기술자를 꿈꿨다. “업계에서 일류라는 말을 들을 때쯤 더 멋진 기술자가 되고 싶었어요.” 1973년 일을 그만두고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여기서도 그의 ‘미친 몰입력’을 엿볼 수 있다.

“6월 6일 현충일부터 시작해 83일 동안 공부하고 8월에 시험에 합격했어요. 예전에는 검정고시가 꽤 어려웠거든요.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알파벳 순서도 까먹은 상태였으니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아시겠지요?” 그는 바람이 들지 않는 방에서 선풍기도 없이 조금이라도 더위를 이겨보려 삼베 홑이불을 뒤집어쓴 채 공부했다.

“엉덩이에 종기가 났는데 베개를 사타구니에 끼워 바닥과 엉덩이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공부를 계속했어요.” 짧은 시간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한 약속을 꼭 지킨다는 신념 덕분이었다. “공부하는 동안 매주 토요일 장학퀴즈 녹화를 보러 간 것 외에는 집 밖에 나가지 말고 공부만 하자고 마음먹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집 앞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어린 마음에 싸움 구경이 정말 보고 싶은데 집 밖에 나가지 말자고 나 자신과 약속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굴렀죠(이럴 때는 영락없는 아이였다고). 쇠창살 때문에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 수도 없고 한참을 고민하다 발을 마당에 딛고 얼굴만 대문 밖으로 빼꼼히 내밀어 싸움구경을 했어요.” 담배를 태우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젊었을 때 평생 금연하자고 스스로 약속했으니까요. 순수하고 건전한 젊은 시절에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나를 강하게 해줍니다.”

요즘도 저녁 약속이 없는 날에는 사무실에서 늦도록 일을 한다는 그다.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는 모두 없앤다. 10년 전에는 휴대전화를 발신용으로만 쓰고 호출기로 수신을 했다. 전화를 받는 시간이 아까워서다. 카카오톡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일하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을까? “하하, 사람들은 저더러 일에 미쳤다고 하는데 일이 정말 재미있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언제나 엔도르핀이 넘치죠.”

그는 스스로 외계인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거든요. 어릴 때 처절한 바닥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수용 범위가 넓어 웬만해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웬만한 추위나 더위에도 끄떡없다. 다시 말해 업계 환경이든 날씨든 주변 ‘온도’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조 회장은 자녀들에게도 이런 기질을 물려줬다. 그의 두 아들 재석(27), 재영(25)씨는 미국 영주권자인데도 자진해서 군복무를 마쳐 언론에 여러 번 소개됐다. 시력이 나쁜 재영씨는 렌즈 삽입술까지 받아가며 현역에 자원 입대했다. 지금도 왼쪽 청력이 매우 약한 조 회장 역시 수술을 하고서 입대한 사연이 있다. “군대에서 똥물을 먹을 수도 있겠죠. 아이들 생각보다 불합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사회라고 다를까요? 불합리한 일도 다 받아들인다는 각오로 임하면 못할 게 없습니다.”

창업자의 확고한 경영 마인드로 비트컴퓨터는 31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왔다. 최근에는 해외 진출과 U-헬스케어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제시했다. 비트컴퓨터는 카자흐스탄, 몽골, 태국에 HIS(병원정보시스템)을 공급하고 U-헬스케어 프로그램으로 미국, 콜롬비아, 이라크 등에 진출했다.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회사가 돈 벌기 참 어렵습니다. B2B(기업 간 거래) 업체는 더 그렇지요.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세계로 나갈 수밖에 없어요.” 부침이 심한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조 회장이 현역으로 뛸 수 있는 것은 싸움구경을 하고 싶어도 스스로 한 약속을 깨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고집 즉, 초심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408호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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