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고배당의 정치경제학 

 

김광기 포브스코리아 편집인



주요 선진국 증시의 주가가 사상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글로벌 경제가 여전히 저성장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과 딴판이다. 월드컵 우승국 독일의 DAX 지수는 7월초 대망의 1만 선을 넘어 전인미답의 땅을 밟았다.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1만7000선을 넘어 계속 진군 중이다. 영국 FTSE100지수도 7000선을 사상 처음으로 노크하고 있다.

이들 선진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체질개선에 모범을 보여 상대적으로 빨리 회복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구글·BMW 등 국가대표급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구가하고 있다.

기업들이 돈벌이에 신이나니 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실적에 비해 주가가 너무 앞질러 갔다는 버블 경고도 최근 부쩍 커지고 있다. 주식투자 잣대인 주가수익비율(PER)이 올라가 과거 평균 추세를 상회하고 있다는 게 주요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버블은 쓸데없는 걱정이고 주가는 탄탄히 더 오를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낙관론자들이 제시하는 비밀병기가 바로 고배당이다. 독일 증시의 평균 배당수익률(배당금÷시가총액)은 현재 3%선을 오르내린다. 주가가 많이 올라 시가총액이 사상 최대로 커졌는데도 그렇다. 요즘 같은 초저금리상황에서 연 3%의 안정적 배당은 놀라운 수익이다.

독일의 10년물 국채수익률은 현재 연 1.3%에 불과하다. 독일 기업들은 돈벌이가 좋아진 가운데 그중 배당으로 돌리는 몫(배당성향)까지 크게 늘리고 있다. 독일 상장기업의 평균 배당성향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 37%이던 것이 현재 48%로 올라갔다. 순익의 절반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셈이다.

상황은 미국도 비슷하다. 미국 증시의 배당수익률은 현재 2.3%, 배당성향은 35%선을 나타내고 있다. 독일에 못미친다고 할 수 있지만 미국 기업들은 또 다른 주주보상 수단을 가동한다. 자사주 매입이다. 올 1분기까지 최근 1년 간 미국 상장사들의 자사주 매입은 무려 5000억 달러(500조원)를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30%나 늘어난 규모다. 배당에 자사주 매입 효과까지 감안하면 미국 주식투자자들은 매년 5% 정도의 안정적 수익을 보장받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교 대상인 미국 10년물 국채수익률은 연 2.5%선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노릇이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한국 증시의 배당수익률은 올해 1.25%에 그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지난해(1.18%)보다 올라간 게 그렇다. 선진국과 신흥국을 통틀어 전 세계에서 꼴찌권이다. 중국(3.6%)·인도네시아(2.0%)·인도(1.6%)는 물론 필리핀(2.1%)에도 뒤진다. 한국 상장사들의 배당성향은 더욱 초라하다. 지난해 15%에 불과했다. 올해 잘해야 20%선에 도달할 전망이다.

순익의 5분의 1 정도만 주주들에게 돌려준다는 얘기다. ‘주주를 봉으로 안다’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한국 증시의 코스피지수가 몇 년째 1700~2000포인트 박스권에 갖혀 옴짝달싹 못한 이유 중 하나다. 기업들이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배당에 인색하면 ‘그림의 떡’이다. 현재 국내 10대 그룹 계열사들의 사내 유보금은 500조원을 넘는다. 최근 5년 새 90%나 늘어났다. 정부가 법인세를 낮춰주고 고환율정책으로 수출을 지원했는데도 투자는 물론 배당까지 않고 돈을 쌓아둔 결과다.

물론 배당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기업 성장의 관점에서 배당은 썩 내키는 게 아니다”고 했다. 저성장과 고배당이 동전의 양면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도 “기업들이 배당보다는 미래 가치창출을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한 바 있다. 그러나 투자도 안하면서 현금만 움켜쥐고 있는 건 문제다.

최경환 신임 경제부총리가 기업들이 배당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바람직하고 시의적절한 조치다. 증권업계에선 벌써 올해 코스피지수 상한선을 2400으로 올리는 곳까지 나왔다. 경제는 심리라고 했다. 증시의 투자심리가 살아나고 소비도 회복하는 단비가 되길 기대해 본다.

201408호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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