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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JEON - 대전 신흥부촌 도룡동 

석·박사 연구원이 만든 상류층 동네 

조득진 포브스 차장 사진 김성태 객원기자
대전의 신흥 부촌은 움직인다. 대덕연구단지 연구원과 벤처기업 CEO들의 거주지 이동에 따라서다. 요즘은 유성구 도룡동 일대에 새로운 부촌이 형성됐다. 하지만 상권은 활발하지 않다. 수도권 ‘빨대효과’에 따른 지역경제 침체 탓이다. 대전의 산업구조를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대전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유성구 도룡동 도룡삼거리 일대 고급주택가와 아파트 모습. 우수한 학군과 자연환경까지 더해져 최적의 주거지로 부상했다.



지난 5월 30일 오후 호남고속도로 북대전IC에서 나와 엑스포과학공원으로 향하는 길. 화암동고개를 넘어 대덕컨벤션타운 앞 도룡삼거리에 이르자 고급 단독주택 단지가 나타났다. 우성이산 아래 대덕고등학교·대덕초등학교 앞 이면도로를 따라 정갈하게 지어진 200여 채의 단독주택은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1983년 수자원공사가 대덕연구단지 연구원의 주거지로 개발한 곳이다. 당시 택지분양가는 3.3㎡(1평)당 10만~15만원선. 하지만 지금은 1000만원을 호가하며 평균 집값을 10억원 이상으로 올려놓았다. 바로 대전지역 최고의 부촌으로 꼽히는 유성구 도룡동 고급주택가다.

이곳은 서울 강남 빌라촌이나 경기도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의 고급 단독주택가 모습을 연상시킨다. 대로변으로 이탈리아 가구 등 수입가구점이 띄엄띄엄 자리하고, 골목 사이사이로 고풍스런 카페도 들어섰다. 골목에 주차된 자동차들은 절반 가까이 수입차 브랜드다. 특히 골프, 티구안 등 폴크스바겐 차가 눈에 띄었다. 대전, 세종 등 충청권에서 폴크스바겐의 인기가 높다는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보고서가 생각났다.

6차선 도로 건너편으로는 고급 아파트가 도로를 따라 나란히 들어섰다. 대전에서 매매가가 세 번째로 비싼 로덴하우스다. 10층 건물 2개동 68세대로 형성된 이 아파트의 최고 매매가는 3.3㎡당 1468만원으로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지난 1월 기준 1551만원)와 비슷하다. 주변엔 LG화학아파트, 한전원자력연료사원아파트, 연구원현대아파트, 과기원교수아파트 등 연구원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

연구원 따라 이동하는 신흥 부촌

도룡동 대덕공인중개사 사무소 장상호 대표는 “도룡동, 특히 도룡삼거리 주변 단독주택과 아파트엔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 카이스트 교수들이 모여 산다”며 “슈퍼에서 ‘박사님’ 하고 부르면 10명 중 6~7명이 뒤돌아보고, 미용실에서 ‘사모님’ 하면 모두가 뒤돌아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덕연구단지가 위치한 유성구는 전국에서 석·박사 비율이 가장 높은 동네로 꼽힌다. 생명공학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은 물론 쌍용기술연구소, LG화학기술연구원 같은 민간연구원까지 합해 현재 유성구에 자리 잡은 연구소만 250개가 넘는다. 연구단지를 기반으로 한 벤처기업도 1000개에 이른다.

도룡동은 대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곳이기도 하다. 지난 5월 21일 국민은행이 밝힌 ‘대전지역 가장 비싼 아파트’순위표에 따르면 도룡동 아파트가 수위를 차지했다. 3.3㎡당 평균 매매가가 1468만원인 도룡동 스마트시티가 1위, 1425만원의 도룡동 주공타운하우스가 2위, 1349만원의 도룡동 로덴하우스가 그 뒤를 이었다. 사실 도룡동은 대전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맥을 이어온 부촌은 아니다. 하지만 고학력자, 안정된 직장인이 모여 살면서 상류층 동네가 됐다.

거주자의 상당수가 중산층 이상인 대덕특구 연구원과 기업인·전문직·공무원 등이다. 거주환경과 교육여건도 신흥 부촌의 입지에 걸맞는다. 배후에는 언제든지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아담한 야산을 끼고 있는데다 걸어서 5분 거리에 명문 초·중·고교가 있다. 대덕초등학교 앞 한 카페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사는 사람들의 수준이 높고 동네 또한 유럽의 고급 타운하우스를 닮아 거주자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며 “퇴직 후에도 고향이나 연고지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둥지를 튼 연구원들이 주변에 많다”고 했다.

대전의 부촌은 짧은 기간 수차례 자리 이동을 해왔다. 특징은 대덕연구단지 연구원과 벤처기업 CEO들의 거주지 이동과 궤를 같이 한다. 1990년대엔 유성구 전민동이 부촌이었다. 1993년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건설된 신도시로, 카이스트와 대덕연구단지에 바로 붙어 있어서 연구원과 교수들이 모여 살기 좋았다. 또 그들의 자녀들이 명문 학군을 만들면서 대전 최고의 주거지로 꼽혔다. 엑스포 직후 전민동 엑스포아파트에 사업가와 의사 등 전문직, 자영업자들이 모여들어 부촌 이미지를 강화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서구 둔산동이 주목받았다. 고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전민동의 수요를 끌어들였다. 특히 대형 평형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어은동, 도룡동, 신성동 지역의 오래된 아파트에 살던 연구원 가족 상당수가 이쪽으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인 도룡동 스마트시티(왼쪽)와 원도심에 조성된 상가 스카이로드 전경. 대전의 주거 환경은 나아지고 있으나 상권은 침체를 겪고 있다.
최근엔 유성구 노은지구가 뜨고 있다. 정부세종청사와 자동차로 20분 거리여서 출퇴근이 가능한 곳이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전세가가 매매가와 비슷해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아직 기반시설이 부족한 세종시보다 이곳이 선호도가 높다. 지하철과 간선급행버스체계(BRT), 고속도로 등이 단지와 가까운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서울에 흡수된 지역상권 고전

같은 날 중구 은행동 으능정이거리의 스카이로드. 이곳은 대전과 충청, 세종지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이다. 올해 초 국토교통부 공시에 따르면 스카이로드 입구의 이안경원 부지는 3.3㎡당 3975만원으로 조사됐다. 원도심 한복판에 설치된 스카이로드는 충남도청의 내포신도시(홍성·예산) 이전 등으로 공동화된 원도심을 활성화 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성한 상가다. 길이 215m, 너비 13.3m, 높이 23m의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영상시설이 특징으로, 국비 82억원과 시비 83억원 등 모두 165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현란한 현대식 겉모습과 달리 상가는 금요일 오후인데도 손님이 많지 않았다. 입구의 한 화장품 매장 주인은 “매출이 늘기는커녕 월세 내기도 빠듯하다”며 “시에서 돈을 많이 투자했지만 상권 활성화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장 이후 으능정이거리 방문객과 주변 상점 매출이 각각 20% 정도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는 시의 발표와 온도차가 극명했다.

으능정이상점가상인회 관계자는 “스카이로드 개장 이후 방문객이 조금 늘어났지만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며 “일부 업종은 오히려 매출이 반토막났다”고 주장했다. 상인회 조사에 따르면 햄버거, 커피숍, 분식집의 매출은 20% 정도 증가했지만 화장품·속옷 판매점의 매출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란주점과 주류 판매 음식점의 매출은 이전보다 오히려 줄었다. 상인회는 스카이로드 개장 이후 으능정이거리 방문객 층이 직장인에서 가족 단위로 바뀌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대전시가 설립한 대전발전연구원은 당초 스카이로드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지난해 5월 발표한 스카이로드 운영 관련 보고서에서 “연간 광고수입이 21억원에 이르고, 운영비를 제외한 순수입은 5억원”으로 예상했다. 또 스카이로드가 대전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으면서 489억원의 생산효과와 208억원의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경제적 효과는 고사하고 문화적으로도 시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지난 3월 우송대 관광산업연구소의 ‘스카이로드 모니터링 결과 보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우송대 조사 결과 스카이로드는 시민으로부터 7점 만점에 3.87점의 낮은 점수를 받았다. 한상헌 충남대 시민사회연구소 박사(언론학)는 “높아진 임대료 탓에 건물주 주머니만 채웠다는 불만과 함께 2∼3년 뒤에는 구조물이 노후돼 전면 교체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했다. “스카이로드의 활성화를 위해 주변 노점상을 단속하면서 상인들과 마찰까지 빚고 있다. 현재 광고대행사가 전담하는 스카이로드의 운영을 대전시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수도권의 ‘빨대 효과’에 의한 전반적인 지역 경기 침체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KTX 개통, 고속도로망 확충으로 대전은 통근이 가능한 제2의 수도권으로 떠올랐다. 수도권으로의 유입인구는 감소하고, 대전으로 유입인구는 증가하는 선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소비 측면에서는 수도권이 대전의 소비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전지역엔 특급호텔도, 명품 매장도 생존이 어렵다. 백화점 또한 다른 광역시에 비해 매출이 떨어진다.

딱히 대규모 개발 호재가 없는 대전 경제계에서는 경기 침체 장기화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 5월 한 지역언론이 지역 경제계 리더 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오는 2020년까지 대전지역의 중·단기 경기 전망에는 명보다 암이 뚜렷하다.

먼저 부정적인 요인으로는 고용창출 부진에 따른 내수부진, 향토기업들의 타 지역 이전, 생산 가능 인구 감소에 따른 인력난과 신·구도심 간 격차 심화 등이 거론됐다. 또 취약한 제조업 기반, 실업률 증대 및 고용률 악화, 환율 불안에 따른 원자재 가격 불안정 등도 부정적 요소로 꼽혔다.

세종시와 연계해 도시 인프라 키워야

긍정적 요인으로는 대전도시철도2호선, 과학벨트, 원도심 개발 등 대형 투자 사업에 따른 경기 활성화가 눈에 띈다. 이들 3건의 대형 사업은 오랜 숙원사업이자 국가 단위 개발프로젝트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하루빨리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도시철도2호선 건설사업은 약 1조3617억원(1단계)이 투입돼 총연장 28.6㎞ 규모의 철도를 신설하는 것이다. 지역 재계에서는 2호선이 들어서면 지역 교통망은 물론 지역경제 지도도 새롭게 그려질 것으로 보고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과 원도심 개발사업도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재계에서는 ‘세종시의 활성화’에 기대반, 우려반의 시선을 보낸다. 세종시 발전이 대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지만 세종시가 자생력을 갖출수록 대전의 입지가 위축될 것이라는 위기감도 존재한다. 일각에선 대전의 ‘세종시 흡수론’, 보다 발전한 ‘메트로 도시로의 성장론’ 등 논쟁이 활발하다.

201407호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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