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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2000 | 삼성·현대차 뜨고 롯데 제자리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기업이 선전하고 있다. 순위권 내 기업 수가 11년새 82개에서 61개로 줄었지만 순위는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제조업 중심을 넘어 서비스업 강화가 과제다.

▎울산 현대차 수출 부두는 늘 선적을 기다리는 차들로 붐빈다. 국내 기업은 수출 증대를 기반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명암이 크게 엇갈렸다. 2004년 포브스 ‘글로벌 2000대 기업’ 선정 당시 82개에 달했던 기업 중 올해도 순위권에 든 기업은 29개다. 나머지 53개 기업은 그룹 내 사업분야 통폐합에 따라 상호가 사라지거나,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국내외 경기침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일부 대기업이 구조조정에 나섰거나 시장에서 퇴출당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순위권에 살아남은 기업 역시 부침을 거듭했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순위를 크게 끌어올리며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반면 LG와 한화그룹은 소속 기업들의 순위가 전체적으로 하락했다. SK와 롯데그룹은 전반적으로 제자리걸음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충격에 얼마나 잘 대응했는지에 따라 순위가 엇갈렸다. 이 밖에도 11년 동안 100여 개의 기업이 순위권 내에 들었다 빠졌다를 반복하며 격동하는 글로벌 경제를 실감케 했다.

LG그룹 전반적으로 부진

우선 삼성그룹과 LG그룹의 순위 엇갈림이 눈에 띈다. 11년 새 삼성그룹은 삼성전자(45→22위), 삼성화재(920→596위), 삼성중공업(1895→898위) 등의 순위가 크게 올랐다. 뒤늦게 순위권에 든 삼성생명과 삼성물산도 각각 300위, 800위권을 유지했다. 반면 LG그룹은 LG(1305→833위)와 LG화학(1050→547위)이 크게 상승한 반면 LG전자(232→766위), LG디스플레이(478→787위), LG유플러스(1411→1759위)는 뒤로 밀리면서 전반적으로 처지는 모양새다.

삼성과 LG 두 그룹의 대표기업인 전자회사는 상반되는 모습을 보였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거치며 삼성전자는 급성장했지만 LG전자는 상대적인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 회사의 시가총액도 점점 벌어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3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시가총액은 각각 68조원, 8조원으로 60조원 차이였다. 하지만 지난 6월 13일 기준 각각 201조원, 12조원으로 격차는 190조원으로 더 벌어졌다.

10년 전에 비해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3배가량 증가했지만 LG전자는 4조원 느는 데 그쳤다. 증권가에서는 그룹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부문의 유무, 시장변화에 대한 대처 방식 차이 때문이라고 분석한다(54쪽 참조).

현대차그룹의 성장은 눈부시다. 올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건설, 현대글로비스, 현대하이스코, 현대위아 등 모두 8개 기업이 순위에 올랐다. 국내 그룹 중 최다 진입이다. 현대차가 글로벌 5대 자동차기업에 오른 것은 자동차 제조를 중심으로 부품, 강판, 운송 등 수직계열화에 성공한 덕분이다(56쪽 참조).

SK그룹은 제자리걸음이다.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활황에 힘입어 11년새 1280위에서 439위로 껑충 뛰어 올랐지만 SK텔레콤과 SK홀딩스는 답보상태다. SK이노베이션과 SK네트웍스는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외에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지 못한 결과다.

2009년 각각 1325위, 1604위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던 STX조선해양과 STX는 2013년 순위권에서 자취를 감췄다. 한때 국내 재계 13위였던 STX그룹이 조선과 해운업 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해체됐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명맥을 잇던 대우증권, 대우엔지니어링, 대우인터내셔널도 순위권에서 사라진 이름이다. 동양메이저와 동양증권도 2012년 이후 순위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황인학 박사는 “한국의 산업 구조가 성숙기에 접어든 21세기는 기업이 새로운 산업 트렌드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적응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리더십과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순위는 물론이고 생사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2000 순위에 오른 기업은 대부분 수출을 중심으로 매출을 키운 제조업 분야다. 1990년대까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수출 물량을 늘렸다가 2000년 대 들어 기술력까지 확보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나섰다. 하지만 최근 수출 정체라는 파도를 만났다. 산업 전 분야에서 중국 기업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휴대전화, 자동차 같은 한국의 대표 제조업이 성장 둔화, 경쟁 심화, 미래 선도제품 부재라는 삼중고에 직면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최근 글로벌 산업 환경은 한국 산업의 강점이 발휘되기 어려운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기업을 키운 ‘달러박스 산업’ 중 절반이 5년 뒤에는 제 역할을 못할 수 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4월 국내 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의 3분의 2 이상이 10년 후에는 현재의 주력산업이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비스업·내수 키워야 지속성장

이 때문에 한국 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5월 컨설팅업체 매킨지는 ‘제2차 한국보고서-신(新)성장 공식’에서 “지금 한국경제는 뜨거워지는 물 속에 있는 개구리 같다”며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는 추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전통적인 효자 산업을 업그레이드해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새로운 먹을거리를 발굴·육성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성장사업으로는 서비스업이 꼽힌다. 국내 산업구조에서 제조업 비중은 2005년 45.2%에서 2010년 49.0%로 늘었다. OECD 상위 21개국 중 1위다. 반면 서비스업 비중은 42.3%에서 40.3%로 떨어졌다. OECD 상위 21개국 중 최하위이며, OECD 평균인 9.4%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서비스업종을 키워 내수를 살리고, 이를 통해 수출 환경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국내 기업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이창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나 인도, 동남아 등과 경쟁해야하는 제조업종이 국내에 만들 수 있는 일자리엔 한계가 있다”며 “결국 서비스업에서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407호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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