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분명히 증세인데 증세라 부르지 못하니… 

‘저성장·저출산·고령화 시대’ 세금 인상 불가피 … 과도한 비과세·감면 혜택 축소부터 

정부의 재정수지가 2008년 이후 계속 적자다. 덜 들어오고, 더 나가니 당연하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저성장·저출산·고령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어서다. 저성장으로 세수 확보 전망은 어둡다.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은 더 늘어난다. 나라살림을 꾸려가려면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의 속성상 표심을 잃기 쉬운 증세를 과감하게 시도하긴 어렵다. 담뱃값에 이어 주민세·자동차세도 올리려는 정부가 증세는 아니라고 우기는 배경이다. 이러니 ‘꼼수 증세’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이 참에 정부가 국민에게 증세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빗장 열린 증세 시대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세금이 무슨 홍길동인가? 세수는 늘었는데 증세는 아니라니 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왜 증세를 증세라 못 부르나?” 모 대학 경제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증세’ 논란에 불이 붙었다. 정부가 연이어 세금 인상안을 발표하면서다.

정부는 9월 11일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할 것 이라고 발표했다. ‘종합 금연대책’으로 포장했지만, 내용은 ‘세수증대 대책’이었다. 비판을 예상해서인지 발표도 ‘어떻게 흡연율을 낮출 것인지’보다 ‘세금이 얼만큼 늘어나는지’ 설명하는 데 중점을 뒀다. 정부의 예상대로라면 담뱃값이 2000원 오를 경우 전체 세수는 2조8300억원가량 는다. 1조600억원 규모의 개별소비세(국세)도 신설된다. 정부는 가격 인상으로 담배 소비가 34% 가량 줄 것으로 전망했지만 예상보다 소비 감소가 덜할 경우 세수는 더 많이 늘어난다.

담뱃값 인상은 시작이었다. 안전행정부는 9월 15일 ‘2014년 지방세제 개편방안’을 담은 지방세기본법·지방세법·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을 입법 예고했다. 주민세와 자동차세 등 지방세를 대폭 인상하는 게 골자다. 이에 따라 현재 1인당 2000원~1만원 선에서 부과되는 주민세는 1만~2만원으로 100%가량 오른다. 자동차세도 2017년까지 100% 인상하기로 했다. 발전용수 및 지하수, 원자력 발전시설 등에 부과하는 지역자원시설세도 인상할 예정이다.

깃털 뽑아 비명 나오는데 증세 아니라는 정부

그런데 정부의 태도가 영 마뜩찮다. 논의 절차도 없이 갑작스럽게 담뱃값 인상을 발표하더니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인상하지 못해 조정하는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다. 국민에게 큰 부담을 초래하는 중요한 정책이라는 걸 알면서도 8월 발표한 세법개정안에서는 언급도 않다가 추석 연휴 직후에 전격 발표한 것도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

증세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입장 정리가 안 됐다. 문창용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담뱃값과 주민세 인상이 증세가 아니냐는 질문에 “증세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사실상 정부가 증세를 인정한 모양새가 되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진화에 나섰다. 최 부총리는 9월 16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정책 방향을 증세로 전환한 것이 아니며 증세는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담배세 인상에 대해서도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이지 세수 증대 목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세수가 어느 정도 늘어나는 건 맞지만 정부 정책의 방향의 증세로 돌아선 건 아니라는 뜻으로 읽힌다.

내년 재정수지적자 33조원에 달할 듯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재무장관인 콜베르는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도록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리하게 ‘깃털(세금)’을 뽑다간 ‘거위(국민)’가 저항한다는 의미로 쓴 말이다. 최 부총리의 말을 이 비유에 대입시키면 깃털을 뽑고, 비명도 지르는데 증세는 아니라는 주장처럼 들린다.

일반 국민 입장에선 쉬 받아들이기 어렵다. 야당도 즉각 반발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명백한 서민 증세”라며 “서민 주머니에서 세금을 빼낼 것이 아니라 부자 감세를 철회해 곳간을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세수 인상의 목적은 주로 지방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담뱃값에 포함된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 등은 지방세다. 주민세와 자동차세 역시 지방세다. 재정 상황이 어려운 지방자치 단체를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디폴트 위기설’이 제기될 정도로 많은 지자체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 무상급식·기초연금 등 복지 지출은 크게 늘었는데 세수는 제자리 걸음을하고 있어서다.

9월 3일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공동성명서를 내고 지자체의 과중한 복지비 부담 완화를 위해 중앙정부가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 측은“최근 고령화 및 저출산 대책에 따른 복지정책의 확대로 지자체의 최근 7년간 사회복지비 연 평균 증가율이 11.0%로 지방 예산 증가율 4.7%의 2배 수준”이라며 “기초연금 전액을 국비로 지원하거나 국고 보조율을 90% 이상으로 확대하고, 보육사업 국고 보조율 역시 70%(서울 40%)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에선 돈이 없다고 아우성인데 중앙 정부도 딱히 묘수는 없다.

정부의 곳간도 2008년 이후 계속 적자다. 적자폭도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 관리 재정수지(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에서 발생한 흑자를 제외한 실질 재정수지) 적자는 약 26조 원이다.


내년은 상황이 더 나쁘다. 약 33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2.1%로 늘어날 전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6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첫해 목표로 잡았던 균형재정은 사실상 임기 내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정건전성을 제때 돌보지 못하면 국가 부채가 늘어난다. 자연히 그 부담은 다음 세대가 떠안아야 한다. 이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지만 지출을 줄이긴 어렵다. 단기적으로는 경제활성화가 급하다. 정부나 기업이나 어떻게든 돈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9월 18일 발표한 내년 예산은 약 376조 원이다.

올해보다 20조2000억 원(5.7%) 늘어난 액수다.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크게 늘었다. 성장과 복지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현 정부의 절박한 시도다. 장기적으로도 정부 지출을 줄이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저출산·고령화가 이미 현실이된 상황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줄고, 복지 혜택을 받을 사람은 는다. 복지 수요는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커진다.이와 달리 세입 여건은 좋지 않다. 지난해 8조5000억 원 가량 구멍난 세수 실적은 올해도 예상치 대비 8조~9조 원 가량 부족할 전망이다.

원화 강세로 관세 수입이 타격을 받은 데다 내수부진으로 법인세도 충분히 걷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힘을 실었던 지하경제 양성화로 추가 수입이 있었지만 세수 부족을 메울 정도는 아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내놓은 ‘2013년도 총수입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으로 3조1200억 원의 세금을 걷었다. 애초 목표액이었던 2조7000억 원보다 15.6% 많다. 대기업·대자산가의 세금 탈루(6900억 원),역외탈세 적발(5500억 원), 은닉재산 추적(3300억 원) 등이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리한 조세 집행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지난해 조세심판원에 접수된 조세불복신청은 전년대비 22.7%나 증가했다. 2008∼2012년연 평균 증가율은 5.2%였다. 심판 결과에 따라 국세·관세청이 돌려준 환급액도 2012년 상반기 3605억 원에서 지난해 상반기에 8121억 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목표를 달성하려 세무조사를 남발한 탓에 구멍가게 주머니까지 턴다는 불만도 많다.

정부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박 대통령이 ‘임기 중 증세는 없다’고 못 박은 마당에 이제와 증세를 하겠다고 말하기엔 부담이 크다. 세금은 경제 영역이지만 세율 결정은 정치의 영역이다. 정치권에서 ‘증세는 죄악’이란 구호가 통용되는 것은 유권자들이 세금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는 만국공통이다. 미국에

서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2011년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 하나로 증세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버핏 회장은 “자신보다 직원들의 소득세율이 더 높다”며 “부유층 소득에 매기는 실효세율을 적어도 중산층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힘을 받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부유층 증세를 골자로 한 재정 감축안을 발표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표 떨어지는 소리’에 증세 말도 못 꺼내는 정치인

우리나라에서도 정권에 따라 세율을 조정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대놓고 ‘증세’라 명명한 적은 없었다. 정치인이 이런 소리를 했다간 ‘표 떨어지는 소리 말라’며 면박을 당하기 일쑤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증세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데 침묵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조세부담률 또는 국민부담률을 어느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인지, 간접증세와 직접증세는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 보편증세와 부자증세의 갈등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등에 대해 국민적 논의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굳이 세금을 안 올려도 된다면 인상을 안 하는 게 맞다. 그러나 돈 쓸 곳이 많아졌으면 확실하게 더 걷어, 제대로 쓰면 된다.

증세 논의에 앞서야 할 것도 바로 이 점이다. 확실하게 걷어야한다.

그러려면 일단 과도한 비과세·감면 혜택부터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행정대학원 교수는 “비과세 정상화가 투명한 세금 체계의 첫 걸음”이라며 “증세를 논의하는 마당에 각종 감면 혜택을 줄이는 걸 망설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도하게 소액주주 세부담을 완화해


주거나 가업 승계 때 1000억 원까지 상속세를 면제해주는 것 등을 예로 들었다. 김 교수는 “걷을 수 있는 것부터 제대로 걷은 다음 증세를 논의하자”고 전제하면서 “만약 정부도 증세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정식 테이블에 올려놓고,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세금 인상은 모두 소득과 무관하게 내는 간접세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소득세를 포함한 직접세의 비중이 낮다. 소득 불평등 개선 효과가 작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증세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결국 소득과 연결된 직접세를 건드려야 한다. 다행히 타이밍은 괜찮다.

오래 전부터 소득세와 법인세율 인상을 주장해 온 야당이나 좌파 경제학자들 뿐만 아니라 우파 진영에서도 ‘차라리 떳떳하게 증세하라’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역시 “증세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불과 한 달 전 일이다. 김 대표는 8월 20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낮은 조세부담률을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됐다”면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국민복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이 옳았는지 회의가 든다’는 말까지했다.

박 대통령 역시 “복지와 조세의 수준은 국민대타협위원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해 결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증세 않겠다’는 말도 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미리 길도 텄다. 이대로 하면 된다.

납세자도 일정 부담 감내해야

차제에 세금 체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는 기회로 삼자는 지적도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이 2579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3%는 ‘세금을 빼앗기는 기분으로 낸다’고 답했다. 흔쾌히 낸다고 답한 사람은 7%에 불과했다. ‘세금이 낭비 없이 잘사용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매우 낭비’라고 답변한사람이 85.3%에 달했다. 국민 상당수가 세금 체계에 불만이 있다는 의미다. 김대환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잡한 세금 체계 때문에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이 매우 크다”며 “난해한 세금제도부터 간단히 고쳐 비효율을 줄이고, 국민에게 세무 행정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세금 내는 게 기쁠 리 없지만 납세자들도 생각을 바꿀 때가 됐다. 세금은 경제적 측면에서 부담인 동시에 사회적 연대를 형성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복지 확대가 시대적 과제라면 그 부담 역시 일부분 감내해야 한다. 김우창 교수는 “국민도 막다른 골목에 처한 정부에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며 “정부는 필요한 재원의 규모를 솔직히 제시하고, 국민이 감당해야 할 부담의 적정수준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1254호 (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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