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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라면 벌벌 떠는 증세부터 고쳐야 

직접세 증세 여론 확산 … 누진세 원칙 아래 비과세·감면제도 개선 필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증세 필요성을 역설했고, 최 부총리는 증세는 없다고 못 박았다.



정부가 손 안 대고 코를 풀게 됐다. 여·야, 좌우 진영할 것 없이 소득세·법인세 등 직접세 인상을 ‘직접’ 거론하기 시작했다. 담뱃값 인상처럼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높은 세 부담을 지는 역진성 강한 간접세를 올리는 대신 누진성이 강한 직접세를 올리자는 것이다. 정부는 경기 침체 등을 이유로 ‘증세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속으론 웃고 있을지 모른다. 세수를 늘리려고 지난해 8월 근로소득세 인상을 추진했다가 호된 조세저항에 부딪힌 경험이 있는 정부로선 정치적 부담을 덜면서 증세 공론화를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조세 대비 직접세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비과세 대상이 많아 인상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때마침 소득세·법인세 증세론에 힘을 실어주는 통계가 잇따라 발표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9월 1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 비중은 4.0%다. 28개 회원국 중 25위다. 소득세 비중이 가장 큰 나라는 덴마크로 24.2%였다. 대표적 복지국가인 핀란드는 13.0%,스웨덴은 12.5%였다. 다음은 영국(9.8%)·독일(9.6%)·미국(9.0%) 순이었다. 우리나라와 조세 체계가 비슷하다는 일본 역시 5.4%로 높았다.




GDP 대비 소득세 비중 OECD 국가 중 25위

이와 달리 법인세 비중은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GDP대비 법인세 비중은 한국이 4.0%로 OECD 회원국 중 4위였다.

한국보다 순위가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10.4%)·룩셈부르크(5.1%)·뉴질랜드(4.4%)다. 일본은 3.4%, 미국은 2.6%, 독일은 1.8%다. 우리나라 법인세가 외국에 비해 높아 더 내려야 한다는 재계와 일부 학계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하지만 다른 통계는 법인세 역시 증세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같은 날 미국 세금재단(Tax Foundation)이 발표한 ‘2014년 국제조세경쟁력지수(ITCI)’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세체계의 경쟁력은 OECD 회원국 중 13위, GDP가 1조 달러를 넘는 12개 회원국 중에서 3위였다. 조세경쟁력이 높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세율이 낮고 감면 혜택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이 조사에서 한국의 법인세 경쟁력은 2위, 소득세는 3위였다. 상대적으로 증세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실제로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은 22%로 OECD 평균(23.5%)보다 낮다. 28개 회원국중 20번째로 낮다. 그럼에도 GDP·조세 대비 법인세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것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가계 소득 대비기업 소득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세 전문가들은 소득세·법인세 과표구간과 법정 명목세율만 보면 두 세금 수준이 그리 낮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더 많이 버는 사람(법인)이 더 많이 내는’ 누진성이 약한 것도 아니라고 평가한다. 우리나라 소득세 과표구간은 5개(표 참조)다. 과표 1200만 원 이하는 6%의 세금을 내고, 1억 5000만 원 초과자는 38%를 낸다. 선진국과 비교해도 최저세율과 최고세율간 차이가 큰 편이다. 법인세 과세 구간은 3단계로 이익 2억 원이하는 10%, 2억 원 초과~200억 원 이하는 20%, 200억 원 초과는 22%다. 과표가 단일화이거나 두 단계인 선진국과 비교하면 누진성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세금 내는 실효세율 지나치게 낮아

문제는 유효세율이다. 세금을 내지 않는 소득자나 법인이 많고,실제 세율(유효세율)도 낮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자 1570만 명 중 510만 명은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법인세 실효세율 역시 낮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세를 낸 법인은 51만 7800곳이다. 이들 법인이 실제 내는 세율은 17.1%였다. 특히 과표가 5000억 원을 넘는 대기업의 실효세율은 18.5%로 중견기업보다 낮았다. 자산 상위 10대 기업의 실효세율은 13%대에 불과했다. 조세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비과세·감면제도 역시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한국조세재정 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 감면액(잠정)은 33조6000억 원이다. 전체 국세 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1%다. 2000년 13조 원, 2005년 20조 원 규모에서 대폭 늘었다. 국세 감면의 수혜를 받는 대상은 서민·중산층이 12조 원(60.7%)이고 고소득층은 8조5000억 원(39.3%)다. 기업에서는 중소기업이 5조8000억 원(53.6%), 상호출자제한기업이 3조4000억 원(31.6%), 중견기업 및 일반기업이 1조6000억 원(14.8%)다. 비과세·감면제도는 사회적 약자나 빈곤층을 지원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에까지 지나친 수혜를 준다는 비판이 많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의 선심성 법안 남발로 조세 특례는 갈수록 늘고 있다. 조세 감면과 관련된 의원 입법은 2010년 119건, 2011년 174건, 2012년 135건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소득세는 누진성은 강하지만 세율 자체가 낮은 편이다. 법인세는 각종 감세 혜택으로 인해 대기업이 세금을 덜 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뜯어고치자는 것이 최근 직접세 인상론의 주요 골자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세에 손을 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직접세 성격상 조세저항이 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세법개정안 파동이 좋은예다. 당시 정부는 소득세율을 인상하거나 세목을 신설하는 대신, 연말정산 공제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꿔 사실상 근로소득세 인상을 추진했다. 총급여가 3450만 원 넘는근로자 434만 명이 연간 16만 원 정도, 8000만 원 초과자는 98만~865만 원 정도 추가 부담을 하는 내용이었다. 이와 달리 연 소득 4000만 원 이하 가구는 소득세가 2만~18만 원 줄도록 설계했다. 하지만 이 개편안은 ‘월급쟁이 털기’라는 국민적 반감을 사며 결국 대통령이 나서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부자·대기업 증세 후 보편적 증세 추진해야

조세 저항 말고도 정부가 직접세 인상을 추진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전 구간에 걸쳐 소득세·법인세를 올리면 소비와 투자가 줄어 경기 침체를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특히 저소득층·중산층·중소기업이 입는 타격이 크다. 정부 당국자들이 일제히 소‘ 득세·법인세 인상은 없다’고 선을 긋는 이유다.


하지만 세수 부족과 복지 확대 요구, 저성장 기조와 인구 구조 등을 감안할 때 증세는 불가피하다. 정부가 담뱃값을 올려 서민 주머니를 터는 ‘꼼수 증세’로 일관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직접세를 올릴 방도는 없을까.

우선 재계나 고소득층은 반발하겠지만, 이명박 정부 때 시행한 부자 감세, 법인세 인하를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법인세 경감이나 부자 감세 효과가 크지 않았고, 오히려 불평등 구조가 악화됐다는 여러 연구와 통계는 차치하더라도 국민 정서를 감안해 정부가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에 세금을 더 내게 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중산층·중소기업을 설득하며 보편적 증세에 나설수 있다.

조세전문가들은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는 저소득·중산층에 비해 경기 억제 효과가 더 작다고 말한다. 갈수록 심화되는 소득양극화와 불평등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동국대 경제학과 김낙년 교수팀이 최근 국세청 납세자료를 활용해 발표한 ‘한국의 고소득층’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 한국의 4인 가족 기준 근로소득에서 조세부담이 차지하는 비중은 저소득층은 16.6%, 고소득층은 23.7%다. OECD 평균은 각각 6.5%, 38.6%다. 우리나라 고소득층이 상대적으로 세금을 덜 낸다는 얘기다.

법인세의 경우 현재 17%인 최저한 세율을 다소 높일 필요가있다. 최저한 세율만 1% 올려도 2800억 원 정도의 세수를 늘릴 수 있다. 상위 대기업에 쏠려 있는 공제·감면제도 역시 축소해야 한다. 상위 10대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중견기업보다 낮은 상황에서 중소·중견기업에 법인세 인상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또한 비과세·감면제도를 축소하면서, 동시에 소득세율이나 법인세율 인상을 사회적 논의에 부치는 절차가 필요하다.

번번이 금융업계 반발에 부딪혀 흐지부지됐던 상장주식·파생상품 양도차익 과세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소득세법상 금융소득은 금융상품에서 발생하는 이자·배당소득에만 한정돼 있고, 상장주식과 파생상품의 양도 차익은 비과세된다. 아무리 큰 돈을 벌어도 세금을 한 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입법조사처는 지난 8월 ‘세법 개정의 주요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서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기 위해 상장주식 양도차익의 과세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장주식 양도차익과세 도입 검토해야

물론 박근혜정부가 부자·대기업 증세를 단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당 지지기반은 물론, 경제에 미칠 악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 중산층·저소득층에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증세 논의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이 참에 증세(增稅)하자고 하면 손사래부터 먼저 치는 증세(症勢)도 바꿀 필요가 있다. ‘복지는 늘려야 하지만, 세금을 더 내기는 싫다’는 생각은 ‘증세 없는 복지’만큼 모순이다.

직접세·간접세

직접세는 조세법상 납세 의무자와 실제 조세 부담자가 일치하는 조세를 말한다. 간접세는 조세 부담이 납세 의무자로부터 다른 곳으로 전가되는 세금이다. 직접세에는 소득세와 법인세·상속세·증여세 등이 포함된다. 부가가치세나 특별소비세·주세·증권거래세 등이 간접세다. 최근 논란이 되는 소득세는 종합소득(근로·사업·연금·이자·배당·부동산임대 소득을 합산한 것)과 퇴직·양도소득으로 구분한다.

1254호 (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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