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나라마다 정치적 합의에 ‘진땀’ 

미·일·EU 소득세·소비세 인상 … 일본은 정공법 성공, 프랑스는 실패 

돈이 궁한 정부는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미국·일본·프랑스 등 해외 주요국 정부 역시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재정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지출을 줄이자니 긴축정책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거세다. 쓰는 돈을 줄이지 못하면 버는 돈을 줄여야 하는데, 정부에게 돈 들어올 곳은 결국 세금이다.

이에 따라 각국에서 증세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납세자 반발이 심해 정치적 합의에 난항을 겪는 나라들이 많다. 기업이 내는 세금(법인세), 근로자가 버는 돈에 내는 세금(소득세),쓴 돈에 내는 세금(소비세·부가가치세) 등에 따라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다. 증세 정책은 비어 가는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양날의 검’이어서 논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증세가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 곳은 일본이다. 일본은 올해4월 기존 5%였던 소비세율을 8%로 인상했다. 2015년 10월에는 10%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선택한 고육지책이다. 세율 인상을 결정한 2012년, 당시 집권당이던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수십 년 동안 해묵은 숙제였던 소비세 인상안을 중의원에서 통과시키면서 정치적으로는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고질적인 만성적자 문제를 푸는 해법으로는 정곡을 찔렀지만, 소비세는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계층에게 동일한 비율의 세율이 적용되는 만큼 세부담이 느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여론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세 인상은 ‘당분간 소비세율을 올리지 않겠다’던 선거 공약을 번복한 것이어서 민주당 입장에선 정치적 부담이 컸다. 자민당과의 합의 과정에서 복지 공약의 일부도 포기해야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도 반발이 일었고, 취임 초기 50%를 넘던 노다 총리의 지지율은 30% 초반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런 부담을 감수한 덕에 일본은 결과적으로 필요한 걸 얻었다. 1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애초 계획은 선거와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크게 후퇴해 8%로 합의됐지만 어쨌든 정책 시행은 성공한 것이다. 특히 늘어나는 세수를 사회보장에만 쓰도록 법제화해 소비세 인상분을 고령층의 복지재원과 연계시킨 것이 주효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표를 얻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증세 카드를 정치권이 직접 꺼내 국민을 설득한 점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새로 집권한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리도 지난해 소득세 최고세율을 40%에서 45%로 인상한 데 이어 상속세 과세 대상도 확대하기로 하는 등 증세 논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여론의 반대에도 증세를 시도한 노다 전 일본 총리

美 20년 만에 소득세율 인상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왼쪽부터).
미국에서는 복지정책과 증세를 두고 백악관과 의회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돈이 필요하다는 민주당과 증세는 안 된다는 공화당의 힘겨루기다. 이 긴장감은 지난해 초 극으로 치달았다.

재정절벽(예산 자동삭감으로 인한 재정 축소)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앞두고 극적으로 증세안이 도출된 것이다. 당시 공화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부부 합산 연 소득 45만 달러 이상, 개인소득 40만 달러 이상 고소득층에게 소득세율을 35%에서 39.6%까지 올리는 이른바 ‘부자 증세’에 합의했다. 4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의 자본이득세와 배당세 역시 15%에서 20%로 인상했다.

핵심 쟁점이었던 부자 증세의 기준은 오바마 대통령이 요구한 20만 달러(부부 합산 25만 달러)와 공화당 소속 존베이너 하원의장이 주장한 100만 달러의 중간인 40만 달러(부부 합산 45만 달러)에서 타협했다. 공화당 입장에서는 증세 대상을 최대한 줄였고, 민주당은 재정절벽을 뒤로 미루면서 최소한의 증세를 이끌어냈다. 다만, 미국은 지난해 말 예산안을 합의하면서는 세금 인상 없이 재정수입을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항공 운임 수수료 인상, 공무원 연금 본인부담금 인상,퇴직군인 연금 축소 등을 통해서 세율을 높이지 않는 이른바 ‘증세 없는 세수 확대’를 꾀한 것이다. 공화당이 반대하는 세금인상, 민주당이 거부하고 있는 예산삭감을 모두 피해가면서 절충점을 찾은 모습이다.

이와 달리 프랑스 정부의 증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과는 달리 정공법이 실패한 사례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몇년동안 과감한 증세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2012년 좌파정권이 집권한 후다. 일본과 미국처럼 정치적 부담이 덜한 부자증세로 가닥을 잡았지만 그 강도는 더 세다. 프랑수아 올랑드대통령은 취임한 해 100만 유로 이상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율을 기존의 45%에서 75%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 밖에도 대기업에 대한 특별법인세와 대기업 배당금과 스톡옵션에 대한 세금 신설도 추진했다. 프랑스 정부는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다.

투자이득세 인상에 대해 기업가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정부가 벌주고 있다”며 연일 비난을 퍼부었다. 일부 대기업은 “이 세금을 낼 바엔 다른 나라로 가겠다”며 공공연한 위협을 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루이비통 브랜드로 잘 알려진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벨기에 시민권을 신청하면서 세금 도피라는 비난을 받았고, 서민적이미지로 프랑스 국민 배우로 꼽혀온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소득세 13%만 내는 러시아로 국적을 갈아타면서 프랑스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프랑스 하원은 이런 논란에도 예산안을 통과시켰지만, 헌법재판소와 국가평의회(대법원)이 위법 판결을 내면서 제동이 걸렸다.

한편 각국의 증세 동향을 보면 대부분의 국가들이 부가세(소비세)나 소득세 위주의 증세에서 해답을 찾은 모습이다. 특히부가세율 인상이 활발하다. 최근 국가 재정이 어려운 이탈리아와 스페인·그리스 등 유럽 국가 가운데 상당수가 금융위기 이후 부가세율을 높였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 부가세율을 끌어올린 상황이다.

소득세·부가세 올리고 법인세는 내려

직장인이나 자영업자가 내는 소득세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하면서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40%→50%)과 주류세 및 자동차소비세 인상 등의 카드를 동시에 꺼냈다.

이밖에도 핀란드·그리스·아이슬란드·이스라엘·이탈리아·룩셈부르크·멕시코·포르투갈·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스페인·미국 등이 2008년 이후 소득세율을 올렸다.

이는 비교적 적은 정치적 부담으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경제적 논리를 충실히 따랐다. 기존 세금 감면 혜택을 축소하거나 미국·유럽국가들이 최근 조세회피처에 강경 대응하는 것도 이와 같은 논리다. 그러나 방의 수에 따라 주택 지원금을 줄이는 영국의 ‘베드룸 택스’ 등 서민의 부담과 직접 연결되는 세목에 대해서는 국내 담뱃세 논란처럼 많은 반발을 사는 경우도 있다.

법인세는 오히려 각국의 인하 경쟁이 뜨겁다. 자국 내 대기업의 반발을 줄이고 다른 나라로 ‘망명’할 수도 있는 기업을 붙잡기 위한 목적이다. 캐나다를 비롯해 체코·이스라엘·일본·네덜란드·뉴질랜드·슬로베니아 등이 2008년 이후 법인세를 모두내렸다. 영국 역시 선진국 최저 수준인 23%의 법인세를 내년부터 20%로 더 낮추고 해외에서 발생한 매출에 대해선 세금을 매기지 않기로 했다. 기업들이 살아나 경기를 활성화하고, 투자유치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254호 (2014.09.22)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