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그들만의 리그’를 깨뜨려라 

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담합’ … 조직에선 ‘인적 담합’ 방지해야 


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한 장면.

Management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아주 오래된 영화, 필자 연배라면 ‘주말의 영화’를 통해 족히 열 번은 봤을 법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허름한 카우보이 모자, 먼지 투성이 망토, 두툼한 시가를 입에 문 우수에찬 표정. 그렇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서부영화의 대명사로 만든 바로 그 영화,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ugly)>이다. 마치 거대한 풍경화를 그리듯 와이드 스크린으로 표현된 서부시대 장면들과 전통적인 오케스트라 연주에 전자기타를 조화시킨 엔니오 모리코네의 비장한 주제곡. 1966년 개봉한 이래 5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전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영화사의 전설이다.

무엇이 최적의 행동인가

때는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0년대 미국. 착한 놈(The good)블론디(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멕시칸 현상 수배범인 추한 놈(The ugly) 투코(엘리 웰라치)와 동업 중이다. 우선 블론디가 투코를 붙잡아 보안관에게 넘기고 현상금 2000달러를 받아 챙긴다.

재판이고 뭐고 할 것 없이 투코는 즉시 교수형. 그런데 교수형이 집행되는 그 순간 어디선가 총성이 울리며 투코의 목에 걸린 밧줄이 끊어진다. 유유히 도망친 투코는 블론디와 현상금을 나눈다. 블론디의 사격 솜씨가 녹슬지 않는 한 꽤 괜찮은 동업구도이다(자해공갈 보험 사기단의 원조 모델인 듯). 어느 날 블론디와 투코는 남군의 군자금 20만 달러가 어느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는 정보를 듣고 보물찾기에 나선다. 이때 그들 앞에 독사처럼 찢어진 눈을 가진 나쁜 놈(The bad)인 엔젤아이스(리반 클리프)가 나타난다.

이제 영화는 세 명 중 누가 보물을 차지할 것인가의 게임이 된다. 천신만고 끝에 문제의 공동묘지에 도착한 그들 세 명은 태양이 작열하는 대지 위에서 최후의 결투를 벌인다. 박진감 넘치는 배경 음악이 깔리고 세 총잡이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클로즈업된다.

독일인 세 명이 모이면 전쟁을 일으키고, 프랑스인 세 명이 모이면 혁명을 일으킨다는 말이 있다. 그럼 한국인 세 명이 모이면? 아마도 누가 회장이 될 것인지를 놓고 내분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두 명까지는 그저 일대일(one-on-one)의 관계이지만 세 명부터는 얘기가 복잡해지고 게임의 균형을 찾기도 어려워진다.

게임이론에 나오는 총잡이 게임을 보자. 세명의 총잡이 A·B·C가 있는데 명중률이 각각 10%, 50%,100%이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명중률이 제일 낮은 A에게 먼저 방아쇠를 당길 기회를 준다고 하자. 그럼 A는 누구를 겨냥하는게 가장 좋을까? 슬슬 머리가 아파질 독자들을 위해 정답부터 얘기하자면 A는 허공에 총을 쏘는 것이 답이다.

왜냐고? 빗맞아도 한방이라고 공연히 B나 C 중에 한 명을 죽이게 되면 그 다음에 A는 거의 죽은 목숨이다. 그보다는 일단 고래들(B와 C)끼리 먼저 싸우게 놔두고 둘 중 한 명이 죽으면 그때 가서 일격을 노려보는 게 확률적으로 더 유리하게 된다. 이처럼 3인 이상의 게임에서는 직관에만 의지해서는 안되고 경우의 수를 꼼꼼히 따져 최적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인 게임의 또 한가지 묘미는 세 명 중 두 명이 연합체를 결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누가 누구와 손을 잡을지,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어떤 전략을 구사할지에 따라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면서 게임의 최종 균형을 예측하기가 한층 더 복잡해진다.

과거 우리나라 대선을 보더라도 1987년(노태우·김영삼·김대중), 1992년(김영삼·김대중·정주영), 1997년(김대중·이회창·이인제), 2007년(이명박·정동영·이회창)에는 세 명의 후보가 끝까지 맞붙었다. 하지만 2002년(노무현·이회창·정몽준), 2012년(박근혜·문재인·안철수)에는 노무현-정몽준, 문재인-안철수 후보 간에 막판 연합이 형성됐다.



기업 내부에서도 임직원들간 학연(學緣)·지연(地緣)·직연(職緣)을 이유로 모종의 담합이 발생한다. 애초의 취지가 아무리 순수했을지라도 결국 회사 내 담합은 이너 서클(Inner circle)의 이득에 치중하게 되어 서클 밖 직원들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준다.

이렇게 되면 단지 두 후보의 표가 합쳐지는 것 이상으로 득실의 화학작용이 일어나 판세 예측이 급격히 어려워진다(관전의 재미는 배가된다). 미국 대선에서도 부동층(浮動層) 숫자가 많은 스윙 스테이트(Swingstate)(위스콘신·오하이오·플로리다·버지니아 등)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곤 한다.

비즈니스에서도 게임 플레이어가 여럿인 경우가 흔하다. 이때 일부 업체들은 연합체 결성, 즉 담합의 유혹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문제는 담합이 해당 업체들에게는 달콤한 과실을 가져다 주지만 국가적으로는 경쟁 환경을 어지럽히고 결국 소비자에게 해를 끼친다는 점이다. 각국 정부는 담합을 적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게임이론적 관점에서는 기업체 스스로 담합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답이다. 리니언시(Leniency) 제도가 그 일환이다.

리니언시는 ‘담합 자진 신고자 감면제도’인데 담합 사실을 처음으로 자진 신고한 업체에게는 과징금 100%를 면제해주고, 2순위 신고자에게는 50%를 면제해주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담합 참가자 간의 불신을 자극해 담합이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물론 적발시 과징금은 매출에 비례하기 때문에 담합을 통해 가장 이득을 많이 본 기업이 자진신고를 해서 처벌을 면하게 된다는 한계도 있다.

기업 내부에서도 임직원들간 학연(學緣)·지연(地緣)·직연(職緣)을 이유로 모종의 담합이 발생한다. 애초의 취지가 아무리 순수했을지라도 결국 회사 내 담합은 이너 서클(Inner circle) 의 이득에 치중하게 되어 결국 서클 밖 직원들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준다.

모 대학 출신들이 요직을 독차지하는 것을 보며 울분을 터뜨리다가도 자기 고향 선배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은근한 미소를 보내는 식이다. 임직원 개개인의 공정경쟁 마인드 제고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사규 개정을 통해 ‘인적 담합’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손바닥 만한 한국 내에서도 끼리끼리 챙기는데 몰두한다면 얼굴색 다르고 언어도 다른 외국인들과 어떻게 글로벌 경영을 할 수 있겠는가.

담합 포기 유도하는 리니언시 제도

자 다시 영화 이야기. 서부시대에 ‘으리’ 따위는 없다. 그저 죽느냐 사느냐의 원초적 질문만 남는다. 블론디는 투코의 총에서 미리 총알을 빼두었고 따라서 엔젤아이스 한 사람만 쏘면 된다.

총알이 없는 투코는 누구를 쏘던 대세에 영향을 못 미친다. 엔젤아이스는 머리가 복잡하다.

결국 게임은 블론디가 엔젤아이스를 쏘아 쓰러뜨리는 걸로 끝난다.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네. 장전된 총을 가진 자와 땅을 파는 자.” 결투가 끝난 뒤울 듯한 표정으로 금화가 묻힌 땅을 파는 투코를 내려다보며 블론디가 무표정하게 내뱉는 말이다. 서부개척과 남북전쟁이라는 혼란기에 선악추(善惡醜)의 경계는 흐려진다.


좋든 나쁘든 추하든 간에 결국은 그 놈이 그 놈이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지금, 이 영화가 낯설지 않은 이유이다. 공동묘지에서 세 명이 마주서서 벌이는 결투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이 모방되고 패러디된 장면 중 하나이다. 이 영화를 모티브로 2008년에 한국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만들어졌다

1254호 (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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