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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 전환이 최선 사전 증여-실물 투자도 

금융실명법 개정안 11월 29일 시행 가족 간 차명 거래도 탈세 목적이면 처벌 


차명 거래 금지 파장

#1. 대기업 고위 임원 출신인 A씨는 약 20억원가량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세금을 줄이려고 아내와 자녀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해 분산 투자해 왔는데 차명 금융거래가 금지된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PB(프라이빗뱅커)를 찾았다.

일부 자산을 가족에게 미리 증여하고, 나머지는 실명으로 전환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들은 A씨는 8월에 자산 정리를 마쳤다.

#2.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B씨는 얼마 전 딸의 통장에 넣어뒀던 4억원을 빼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샀다. 가뜩이나 금융자산 비중이 큰데다 가족 간 차명 거래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다. 금에 투자할까 생각도 했지만 부동산 시장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판단해 아파트로 눈을 돌렸다.

요즘 돈 깨나 있다는 자산가들은 고민이 많다. 사실상 마지막 절세 수단이었던 차명 금융거래가 오는 11월 29일부터 금지되기 때문이다. 이전 법은 타인 명의를 빌린 금융거래를 막지않았다. 이 때문에 금융소득종합과세(2000만원 이상의 금융소득 대상) 등을 피하기 위해 가족이나 지인의 통장에 돈을 분산해 넣어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편법을 쓸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현금을 많이 보유한 자영업자나 전문직 종사자는 물론 차명 계좌를 비자금 마련 창구로 활용해왔던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다. 금융권 PB센터에는 최근 관련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차명 금융거래는 예전부터 금지돼 있었다. 해석이 명확하지 않고 처벌 규정이 없었을 뿐이다. ‘금융실명거래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실명법)’ 제3조 1항은 ‘금융회사 등은 거래자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실‘ 명’이란 개인의 경우 성명이나 주민등록번호, 법인의 경우 법인명과 등록번호를 의미한다. 그러니 1항의 정확한 의미는 가명을 쓰면 안 된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만약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거래하더라도 그 이름이 실명이면 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타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명의를 위임 받아 실명만 확인하면 문제가 될게 없었다. 차명 거래가 적발돼도 그간 내지 않은 세금만 납부하면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금융실명법 개정안에는 ‘불법 행위를 목적으로 타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삽입됐다. 차명 거래가 적발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벌칙 규정도 신설했다. 차명 거래를 중개한 금융회사 직원은 3000만원 이하(종전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까지 내야 한다. 명의를 빌린 사람, 빌려준 사람, 차명 거래를 중개한 사람 모두 처벌한다는 의미다. 이제까지 사업을 하다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가족이나 지인의 이름으로 남은 자산을 숨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이런 경우도 처벌을 받게 된다.




차명 거래 중개한 금융회사 직원도 처벌

‘차명 계좌의 금융 자산은 명의자 소유로 추정한다’는 내용도 새로 담겼다.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자신의 돈이라 주장하면 실 소유주가 재산을 환수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소유권 다툼에 생겼을 때 실소유주가 자신의 자산이라 주장하면 차명 금융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돼서다. 별 생각없이 차명 거래를 했다가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단, 불법적이지 않은 차명 금융거래는 처벌하지 않는다. 이번 법 개정은 범죄수익 은닉, 비자금 조성, 자금 세탁, 조세 포탈 등 불법 행위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따라서 불법을 저지를 목적이 아닌 차명 금융거래는 예외로 둔다. 동창회나 동호회 회비를 특정인 명의로 보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내나 자녀 명의의 통장에 돈을 넣어두는 가족 간 거래의 경우는 불법 여부를 따진다. 어차피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아닌 사람이라면 자녀 명문에 처벌받지 않는다. 탈세 목적이 아니면 허용한다는 뜻이다.

‘설마 들킬까?’ ‘괜찮겠지’라는 생각도 버리는 게 좋다. 이번 금융실명법 개정과 함께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정보분석원법)’도 개정됐다. 금융정보분석원법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차명 거래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의심되는 경우 이를 반드시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해야 한다. 이런 보고가 합당하다고 판단하면 FIU는 거래 정보를 국세청에 제공한다. 차명 거래를 차단할 법망이 더욱 촘촘해졌다는 뜻이다.

1~2년 전부터 법 개정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자산가들은 최근 본인 명의로 돈을 옮겨놓거나 부동산 등 실물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 PB센터 관계자는 “아예 자녀에게 증여하기로 마음 먹은 고객도 있다”며 “증여세를 내면 종합소득세가 줄고, 일단 증여를 해두면 나중에 내야할 상속세 부담도 작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행 세법상10년에 걸쳐 배우자에게 6억원, 자녀에게 5000만원(미성년자 2000만원)까지 증여세 없이 증여할 수 있다. 일단 이 한도 내에서는 미리 증여를 해놓은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증여세의 경우 자진 신고하면 10%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버티기에 들어간 고액 자산가도 있다. 법망의 빈틈을 이용해서다. 대부분 액수가 큰 경우다. 이번 금융실명법 개정안은 재산 은닉이나 자금 세탁 등 불법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절세 목적의 가족 간 차명 거래는 금융실명법의 규제 대상이라기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적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들어 A씨가 2012년 1월 자녀 명의의 통장에 5억원을 넣어뒀다고 하자. 만약 A씨의 차명 계좌가 2015년 1월 적발됐다면 세무당국은 증여세(약 9000만원)를 부과할 것이다.

그러나 증여세를 부과해도 피할 길이 있다. A씨가 증여가 아니라 차명 계좌였다고 주장하는 방법이다. A씨 입장에선 차명계좌라고 주장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 5억원을 넣어두고 3년 동안 내는 소득세라고 해봐야 1000만원이 채 안 된다. 증여세 9000만원을 내는 것보다 훨씬 낫다. A씨가 계좌를 직접 개설했고, 자녀가 그 계좌에서 나온 이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적발되면 내지 않은 소득세만 내고, 그때 가서 자신의 이름으로 전환하면 된다. 개정안 시행일 이전에 개설한 통장이므로 바뀐 금융실명법상 형사처벌 대상도 아니다.

버티기 돌입한 고액 자산가도

이와 달리 A씨가 본인 명의로 전환하면 그간 누렸던 절세 효과가 당장 사라진다. 차명 계좌가 적발되면 그때 가서 미신고한 세금을 내면 되니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만약 자녀 명의 통장을 개설한 지 오래됐다면 버티려 할 이유가 또 생긴다. 증여세의 제척기간은 15년이다. 15년이 지나면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차명으로 넣어둔 지 10년 정도 됐다면 4~5년만 버티면 증여세를 피할 수 있다.

적발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것인데 FIU와 국세청이 탈세 차단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어서 얼마나 피해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실제로 올 들어 소득이 높은 사업가나 자영업자 상당수가 세무조사를 받았거나 대상자로 꼽혔다.

전문가들이 “여러 면에서 볼 때 이 참에 실명으로 전환하는 게 낫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1253호 (20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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