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증시는 열탕, 경제는 냉탕 

넘치는 돈에 글로벌 증시 최고치 행진 선진·신흥국 실물경제는 ‘동반 부진’ 


천장 뚫린 증시, 바닥 기는 경제. 요즘 세계 경제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자본시장에는 돈이 넘치는데, 막상 실물경제는 좀처럼 회복을 못 한다. 미국을 제외하면 중국·유럽연합(EU)·일본·신흥국이 대부분 어렵다. 그나마 잘나가던 미국도 장기 침체 논란에 휩싸였다. 초저금리와 통화 팽창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는데도 세계 경제가 회복은커녕 다시 급랭할 조짐이 보인다. 더 이상 쓸 재정·통화정책 여력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대침체 그 이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가위 사흘 전인 9월 5일 미국 S&P500 지수는 사상 최고치(2007.7)를 기록했다. 올 들어서만 33번째 기록 갱신이다. 미국 다우존스지수 역시 지난 7월 초 사상 처음으로 1만7000포인트를 돌파한 후 최고치를 갈아 치우는 중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월 최저점(6547)과 비교하면 5년 새 140%나 올랐다. 미국뿐 아니다. 일본·독일·브라질·인도 증시도 상승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2000포인트 초반 박스권에 있는 우리나라 코스피 지수 역시 올해 안에 사상 최고치(2011년 5월 2일, 2228포인트)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코스닥 시가총액은 9월 3일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선진국·신흥국 증시가 동시에 오르면서 대표적인 글로벌 증시 지표인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전 세계 지수는 올 상반기에만 5% 올랐다. 최근엔 지수 430선을 넘어 최고치에 근접했다. 글로벌 증시만 보면 세계 경제는 초호황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음울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8월 말 올리베이 블량샤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IMF 간행물인 에 ‘세계 경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생각보다 더 가깝고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그는 지난 7월에도 로런스 서머스 전미국 재무장관이 제기한 ‘세계 경제 장기 침체론’에 동조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지난해 말 서머스 전 장관은 IMF 강연에서 미국과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 가능성을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노동력과 생산성 감소 등 구조적인 요인으로 장기 침체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이후 서구 경제학계와 금융가에서는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8월 초에는 미 연방준비제도(Fed) 2인자인 스탠리 피셔 부의장이 “서머스가 제기한 장기 침체론이 옳을지도 모른다”며 “어쩌면 전 세계가 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미국 버클리대학의 브래드포드 들롱 교수는 지금의 세계 경제를 ‘더 큰 대공황(The Greater Depression)’이라고 규정하기도했다. 1929년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보다 더 심각할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 경제 장기 침체론 ‘솔솔’

올 상반기 내내 글로벌 증시가 유동성 잔치를 벌이는 동안 세계경제지표는 회복 불능 또는 장기 침체의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세계 주요 71 개국의 수입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하는데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2010~2014) 상반기 연 평균 증가율10.1%에 크게 못 미쳤다. 수출은 독일과 미국·인도 등이 선전했지만, 대부분의 선진국과 신흥국이 고전했다. 특히 일본과 EU 국가 대부분은 수출 실적이 여전히 2008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시중에 돈은 넘치는데, 물가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이상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OECD 회원국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1%에 머물렀다. 특히 유로존이 심각하다. EU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3%상승하는데 그쳤다. 전월 대비로는 0.1%포인트 하락했다. 4년10개월 만에 최저치다. 2012년 2.5%였던 유로존 물가는 지난해 4분기 이후 0%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유로존이 물가상승 속도가 떨어지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을 넘어 지속적으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가계 수요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국 소매판매도 신통치가 않다. 미국의 5~7월 소매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0%대 증가해 제자리를 걸었다. 중국은 올 2월 12%대로 하락한 후, 좀처럼 오르지 못한다. 7월 중국 소매판매 증가율은 12.2%에 그쳤다.

올 들어 최저치다. 같은 달 일본은 전월 대비 0.5% 감소했다. 전 년 동기 대비로는 0.5% 증가한 것이지만, 시장 예상보다는 저조한 수치다. 지난 6월 전년 대비 소매판매가 1.9% 증가하며 기대를 모았던 유로존은 7월 전월 대비 마이너스 0.4%를 기록하며

다시 주저앉는 모습이다.


1. 8월 30일 열린 유럽연합(EU) 정상 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EU는 디플레이션 우려에 휩싸였다. 2. 8월 21일 열린 잭슨홀 미팅에서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3. 일본은 소비세 인상 여파로 경제 성장률이 급락했다. 아베노믹스 실패가 우려된다. 4.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미국·EU의 러시아 제재가 강화될 조짐이다. 5. 중국은 잠재 리스크였던 부동산 시장 침체가 본격 시작됐다. 6. 브라질을 비롯한 신흥국은 허약한 경제 체질을 드러내며 고전하고 있다.



국제 자원 시장 역시 수요 부진에 시달리는 세계 경제를 그대로 반영한다. 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유가는 바닥을 긴다. 9월 10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91.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올 1월 9일 이후 최저치다. 북해산 브랜트유도 지난 6월 말 대비 15%나 가격이 빠졌다. 전 세계적인 수요 감소 우려가 원인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가 이어지며 구리·니켈·유연탄·우라늄 가격도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수요 감소 우려로 원유·원자재 가격 약세

특히 8월 말~9월 초 일제히 발표된 주요국의 경제 성장률은 세계 경제가 다시 가라앉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기름을 부었다.

그나마 미국은 선방했다. 미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연율 기준 4.2%(수정치)로 큰 폭으로 올랐다. 하지만 1분기 성장률 -2.9%(확정치)를 감안하면 올 상반기 1%대 성장에 그친 셈이다. 실업률이 다소 낮아지기는 했지만, 질 좋은 일자리가 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미국 경제지표는 여전히 혼조세다. 서머스전 장관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의 경기 회복세는 ‘가짜 새벽’일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 후폭풍이 예상보다 심각하다. 8일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2분기 경제성장률 확정치는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1.8%다. 연율로 환산하면 마이너스 7.1%다.

2009년 1분기 이후 최대로 감소한 수치다. 소비세율 인상 영향으로 소비는 위축되고, 산업생산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EU는 갈수록 태산이다. 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18개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를 기록했다. 제로 성장이다. 같은 기간 EU 28개국 회원국 전체의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2% 오르는데 그쳤다. 유로존 경제의 28%를 차지하는 독일의 하락세가 유독 크게 느껴진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1분기 0.7% 성장했던 독일 경제는 2분기에는 마이너스 0.2%로 급락했다. 프랑스는 전기 대비 0%, 이탈리아는 마이너스 0.2%를 기록했다.

중국의 2분기 경제 성장률은 7.5%로 전분기(7.4%)보다 소폭 올랐다. 하지만 올해 중국 경제 성장률은 중국 정부의 목표치(7.5%)보다 낮은 7.4%로 24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신흥국 역시 ‘이머징(emerging)’이란 표현이 무색하게 성장 엔진이 식고 있다. 브라질은 올해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러시아와 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 사정도 나쁘다. 무디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주요 20개 신흥국의 경제성장률이 2.1%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전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어두운 쪽으로 쏠린다. 주요 경제전망 기관들은 일제히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잠재 리스크는 세계 경제 불확실성을 고조시킨다. 경기 회복은커녕, 역사상 가장 길고 어두운 장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들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많은 나라가 통화·재정 여력을 소진한 탓에, 금융·외환위기가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빠르게 통화완화 기조를 취하면서 당분간 자본 시장엔 돈이 넘쳐나겠지만, 세계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한 그 결과는 뻔하다.




올 2분기 0.5%(잠정치) 성장에 그친 한국 경제 역시 글로벌 잠재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단, 미국이 관건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지난 8월 21일 잭슨홀 미팅(캔자스시티 연방은행 주최 경제 심포지엄)에서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은 향후 금리 정책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게 시장에 더 큰 혼란을 줬다. 미국은 오는 10월 양적완화를 종료할 예정이다. 다음은 금리 인상 여부인데, 미국 IB(투자은행)들은 늦어도 2015년 상반기에 연준이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본다.

그러면신흥국으로 몰렸던 투기·투자 자금이 유출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일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 자금이 몰리고 있는 국내 주식·채권 시장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 연준이 금리를 못 올려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금리 인상은 경기 회복과 고용 증가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요즘 미국경제지표는 연준의 결정을 주저하게 한다. 이는 미국 경기의 더딘 회복을 뜻하고, 세계 경제의 장기 하강을 의미한다.

중국의 경기 둔화도 우려된다. 중국은 2분기 경제성장률이 다소 회복됐지만 7~8월 지표가 다시 부진한 모습이다. 생산·소비 지표는 하락하고, 부동산 시장 역시 침체 조짐이 뚜렷하다. 지정학 리스크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스라엘·하마스 간무력 충돌은 잦아졌지만 언제 다시 터질지 알 수 없다. 미국과 EU의 대 러시아 경제 제재는 이미 러시아·중앙아시아·유럽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주변국으로 옮겨 가는 중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습과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움직임, 동남아시아 정치적 불안 등도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리스크다. 신흥국은취약한 경제 구조를 드러내며 허덕이는 중이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7월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졌고, 브라질은 고물가와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린다. 금융감독원은 9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글로벌 시장의 잠재 리스크 요인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전망이지만, 잠재 리스크 요인들이 당초 예상을 벗어나 현실화되거나, 동시다발로 발생할 경우 국내외 금융시장의 충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세계 경제 회복 전망 어두워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 세계 경제는 회복될 수 있을까. 최근 출간된 를 인용하면 최선의 시나리오는 ‘저금리 유지-경기 회복’이고, 최악은 ‘금리 인상-경기 침체’다. 세계 경제가 동반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미국과 유럽이 뚜렷한 경기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두 경제 블럭의 고용시장이 질적으로 좋아지고, 소비를 늘려줘야 한다. 그래서 중국과 신흥국의 수출이 회복돼야 한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도 성공을 해야 한다. 중국발 리스크는 사전에 차단돼야 한다. 누구든 나서 정치·외교 리더십을 발휘해 지정학적 불안도 해소해야 한다. 이래야만 세계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인 부채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자본의 급격한 변동을 막으면서 세계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 이게 가능할까. 불행히도 요즘 세계 경제는 그 반대의 시나리오를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째깍 째깍, 글로벌 디플레이션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1253호 (20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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