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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 연출 김한민 감독 - “이순신, 통합·화합의 아이콘으로 부활하길”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심리학과 교수·영화평론가
죽음 대면한 장수의 운명 그려 ... 명량해전에 초월적 생사관 잘 드러나



영화 <명량>이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명량 속의 이순신을 현실로 불러낸 김한민 감독을 찌는 듯한 무더위가 몰려오는 한 여름 오후, 서울 삼청동의 어느 카페에서 만났다. 유난히 커다란 눈을 가진, 그리고 무게중심이 잘 잡혀 보이는 사내. 김한민 감독을 만나 영화 <명량>과 이순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 정도의 흥행을 예상했나?

“명량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봤다. 절대 실패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있었다. 좀 본능적인 것이었는데, 일단 전작 <활>에서 경험을 했고…. 내가 추구하는 장르적인 재미와 역사적인 의미가 같이 결합하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해상전이라는 재미와 스케일이 있고, 거기에 이순신이라는 실존인물이 가진 역사성, 이 두 가지가 잘만 결합하면 핵융합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난중일기> 말고 참조한 텍스트가 있었나? 예를 들면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읽었는지.

“읽은 적은 있다.”

참고가 좀 됐나?

“반대 의미에서 참고가 됐다(웃음). <칼의 노래>가 굉장히 수사적인 문체를 가진 작품이라고 봤다. 장군을 너무 고뇌하는 인물로 그렸고, 김훈이라는 인간이 느껴지는 이순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순신 장군은 담백한 분이었다. <난중일기>를 보면 강렬한 문체 속에서 이순신 장군이 가진 것이 엿보인다. 무인 특유의 심플하면서 간결한 결정들이다. 누구누구를 곤장을 쳐서 보냈다, 누구를 참했다 등등. 어떤 현상에 대해서 어떤 편견도 갖지 않는 분 같다.”

김 감독의 이순신은 <칼의 노래> 속 이순신, <불멸의 이순신>이나 김명민 배우가 분했던 이순신 등 그 모든 이순신과 어떻게 차별화되는 건가?

“<난중일기>를 참조했다고는 하지만 김한민이라는 한 인간을 통해서 무언가 필터링된 건 사실일 테니까…. 아까 말했던 담백한 무인으로서의 지점이다. 그리고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바른 안목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원칙과 신뢰를 지키는 사람. 바른 안목은 결국 그의 생사관에서 나오는 게 컸던 것 같다. ‘대의를 위해서 무인으로서 지켜야 할,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고 그러다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거다’라고 생각하니 담백한 거다.”

이순신의 가장 유명한 해전은 한산도·명량·노량해전이다. 한산은 순서상 앞서고, 노량해전 역시 이야기 거리가 많고 비장한데, 그럼에도 명량을 가장 먼저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이순신의 정신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게 명량이다. 혹자는 우스갯소리로 배를 좀 적게 만들 수 있어서 그랬느냐고 물었다(웃음). 너무나 통렬한 역전극이 있었고 너무 극적이어서 명량을 먼저 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전반부의 이순신은 약간 햄릿같이 보이는 부분이 있다. 꿈속에 나타난 유령들에게 ‘술도 한잔 안 받고 가냐’고 붙잡으면서 봉두난발 한 노인으로 나왔다. 그런데 후반부에서는 그 유명한 장계인 ‘상유십이척’이라는 내용이 담긴 장계를 낸 이순신은 대단한 자신감과 자기 극복의 정신이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순신에게 가해졌던 외적, 내적 압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적 압력이라고 한다면 엄청난 수의 왜구가 오고 있다는 것이고, 내적 압력은 수하 장수들이 분열하고 뭔가 전쟁 수행에 대해서 동조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리고 장군이 나중에 해전에서 보여주는 지점에서 무인으로서의 분연의, 불굴의 의지를 그냥 그때 가서 보여주자, 그것만 달성해도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해전을 끝까지 보면, 오히려 이순신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거라고 확신했나?

“맞다. 그리고 ‘이순신의 정신적인 것을, 정신의 요체를 마지막 해전을 통해서 알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목에서 세련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이순신과 무장으로서 당당한 이순신에 이질감이 있다고 한다면…. 그 연결 부분을 사실 못 찾았다.”

해전 장면은 61분이나 계속된다. 해전이 어떻게 보여지기를 원했나?

“마지막 장면에서 이름 없는 격군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중에 우리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것을 알까?’ ‘모르면 호로자식들이지!’라고 대화하는 장면. 그게 이 영화를 만든 의미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 대사가 나왔을 때, 관객들이 ‘아 그래, 우리 선조들이 정말 고생을 했어’라는 생각이 들어야. 그렇게 하려면 당시 해전의 리얼리티를 구축하기 위한 모든 것들, 민초의 모습, 장수, 장졸의 모습, 배, 그리고 당시 조류의 상황 뿐 아니라 리얼리티를 채우기 위해서 마땅히 그럴 것 같은 개연성의 확보가 중요해 지는 것이다. 그런 것을 최대한 현실감 있게 그리면서 이순신 장군의 정신적 요체를 녹여내면 어떨까…. 그러다 보니 후반작업에 1년이라는 시간이 후딱 가버렸다.”

1969년에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고, 연세대 상경대 졸업 후 영화 배급사에 2년 있다가 동국대 영화과 대학원에 들어갔다. 김 감독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였나?

“6남매 중 막내다. 인생의, 삶의, 성장의, 어떤 업이라고 할까? 다른 걸 선택할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 지방 소도시 출신의 학생이 서울에 올라와서 특별하게 예체능 교육도 받지 않고, 영화를 해보지 않은 젊은 친구가 영화를 접했을 때 갖는 감흥이란….”

‘내 인생의 영화’는 무엇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를 정말 좋아했다. 일곱 살 때쯤 처음 <신상>을 봤을 때만큼 놀랐던 영화가 <천공의 성 라퓨타>였다. 나중에 찾아보니까 내가 중학교 때 정말 좋아했던 <미래 소년 코난>을 감독했던 양반이더라. 그리고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나 <7인의 사무라이> 같은 영화도 좋아했다.”

모두 자국의 색깔이 있는 일본 영화, 그렇지만 서구적 화법을 구사하는 영화들이다.

“에너지가 세다. 고베 영화제에서 <활>을 보고 몇몇 사람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냄새가 강하게 난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번에 누가 또 <명량> 보고 그런 말을 했다.”

최민식은 “나는 이순신 흉내만 냈다”고 자평하고, 감독은 운명적으로 최민식씨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민식씨가 정극에 맞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에너지가 있는 배우다. 이와 달리 배우는 배우가 갖는 연기적 갈증이 있는 것 같다. 이 대단한 인물을 표현하는 데에 본인이 갖는 겸손함과 그 인물을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표현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작년에 영화 <변호인>과 노무현 신드롬이 있었다. 이제는 <명량>의 흥행으로 이순신 신드롬이 불고 있는 것 같다.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은 딱 화석화된 이순신이다. 하지만 광화문 한복판에 이순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들 마음의 중심에 이순신이 있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어떤 구심점을 주고 통합과 화합의 아이콘으로서 장군이 있다. 416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지금 다시 부활해야 할 타이밍인 것 같다.”

1251호 (20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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