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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국회 통과 시급하다는 19개 경제 법안 들여다 보니 - 크루즈선 카지노 허용이 뭐 그리 급하다고 … 

경제 활성화 실효성 의문인 법안 많아 ... 시급한 법안 구분해 여야 절충점 찾아야 

청와대와 정부·새누리당이 한목소리로 19개 경제 법안의 국회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꺼져가는 경제의 불씨를 살릴 시급한 경제 현안’이라는 게 당·정·청의 주장이다. 많은 언론은 국회의 직무유기를 질타하면서 이 중 몇 개 법안을 야당이 반대하고, 그래서 몇 개 법안이 처리 가능한지에 초점을 맞춘다. 정작 19개 법안이 정말 경제 활성화와 민생 안정에 도움이 되는지, 시급한 현안인지, 문제와 쟁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당장 국회를 통과하기엔 문제가 많은 법안도 적지 않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크루즈선에서 카지노 영업을 허용하고 학교 근처에 호텔을 짓게 하는 게 국민 가슴이 시커멓게 타 들어갈 만큼 급하고 절실한 일인가요? 19개 경제 법안에는 야당이 아니라 여당이 반대했거나, 정부 내에서 이견이 큰 법안도 포함돼 있어요. 문제 있는 법안도 많습니다. 이걸 패키지로 묶어 통과시키라고 압박하고,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듯한 인상을 주면 협의가 되겠습니까?”

야당 인사 얘기가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를 도왔던 한 대학 교수의 말이다. 그는 “서비스산업발전법처럼 정말 중요한 법안 하나만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켜도 성공인데, 별로 급하지도 않고 이견도 많은 법안을 포함해 논란만 키웠다”며 “19개 경제 법안 대부분이 국회는 물론 공론의 장에서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국회 통과가 시급하다고 꼽은 19개 경제 법안(표 참조) 중 6건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나머지 13건은 모두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했다. 13개 법안 중에는 정부가 만들고 의원이 대신 발의하는 ‘청부 입법’ 의혹을 받는 것도 많다. 이런 법안 19개를 추린 것은 청와대다.

8월 1일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총대를 메고 국회 통과를 요청했다. 이후 정홍원 국무총리, 최경환 경제부총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여당 중진 인사들이 힘을 실었다. 8월 11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19개 법안을 일일이 열거하며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모든 사람들의 가슴이 시커멓게 탄다”고도 했다. 19일 청와대 서별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의 핵심 의제 역시 ‘19개 경제 법안의 총력 처리’였다.

정부가 만들어 ‘청부 입법’ 의혹 받는 법안도

19대 국회는 5월 30일 이후 100일 넘게 단 한 건의 법안도 국회를 통과시키지 못했다. 입법 기관으로서 직무유기다. 19개 법안 역시 8월 21일 현재 평균 390일 동안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19개 법안이 모두 경제 활성화와 민생 안정에 효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쟁점 법안이 대부분이고, 독소조항을 교묘히 삽입한 법안도 있다.

19개 법안 중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은 3건뿐이다. 16건은 국회 상임위 법안소위를 통과 못 했거나 상정도 되지 않았다. 새누리당과 새정연에 따르면 19개 법안 중 현재 여야 이견이 없는 법안은 1~2개에 불과하다.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이 “19개 법안이 일시에 처리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배경이다.

야당 반대가 심한 탓이 크다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산‘ 업재해보상보헙법 개정안’은 새누리당이 반대해 국회에 묶여 있던 법안이다.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6개 특수형태 근로자(보험설계사·학습지 교사·골프장 캐디·레미콘 기사·택배 기사·퀵서비스 기사)의 산업재해 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은 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하지만 제동이 걸렸다. 법률안의 체계와 자구를 심사하는 법사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사실상 이 법안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법안 처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환노위 소속 여야의원들은 법사위 의원들이 특정 보험업체의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봉홍 의원은 “(새누리당 법사위 의원들이) 보험협회 대변인처럼 발언을 했다”고까지 했다.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크루즈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과 ‘마리나항만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 역시 논란거리다. 두 법안이 정부가 말하는 ‘꺼져가는 경제 불씨를 살릴 시급한 현안’인가도 의문이지만, 법안 자체에 문제가 있다. ‘크루즈법’은 지난해 7월 정부의 육성책 발표와 동시에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이 법안은 2만t급 이상 크루즈선에 외국인 전용 선상 카지노 영업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 11일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19개 경제 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크루즈 육성법 ‘해피아’ 양산 논란

크루즈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법안에는 독소조항이 숨어 있다. 법안 16조는 ‘해양수산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크루즈산업협회를 설립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또한 이 협회에 해수부 장관의 권한을 일부 위임하는 조항도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불거진 ‘해피아(해수부+마피아)’가 양산될 수 있는 전형적인 독소조항이다. 야당 반대가 심한 이유다.

‘마리나항만법’은 마리나항만시설 내에 주거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해 민간 투자를 끌어들인다는 게 골자다. 정부(해양수산부)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2017년까지 8000여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법안은 해안가 난개발 우려와 특정 대기업 특혜 논란이 여전하다.

또한 정부 셈법대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인지에 대해선 관련 학계에서도 이견이 팽배하다. 이와 관련, 국회 법사위원장인 이상민 새정연 의원은 “두 법으로 수천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데 과연 정부 말대로 그만한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근처에 호텔을 짓도록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교육환경 저해 논란은 차치하고, 일자리 창출이나 외국인 관광객 유치 효과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 법안은 정부가 2012년 10월 제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지난 4년 간 90여개 호텔이 학교 환경위생정화위원회 심의에 걸려 투자가 중단됐다”며 “규제가 풀리면 40개 호텔 건립이 추진돼 4만7000여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학교 정화구역 내에 건립 허가를 받은 호텔은 이미 158개에 이른다. 이 중 65%가 착공조차 안 했다. 규제가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가 작성한 서‘ 울 관광호텔 수급 분석’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 7월까지 서울에서 사업계획이 승인된 호텔은 179개(객실 2만6464실)다. 이 중 현재 건립 중인 110개 호텔이 완공되면 굳이 ‘학교 옆 호텔’을 허용하지 않아도 외국인 관광객의 호텔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게 야권의 주장이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허가 방식을 대폭 완화하는 ‘경제자유구역특별법’ 역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카지노 업계에 따르면 국내 투자를 고려하는 외국 카지노 자본이 눈독을 들이는 지역은 서울이다. 하지만 서울은 특별법에서 예외다. 또한 영종도에 3개의 카지노가 개발될 예정이고, 경제자유구역 대부분은 개발 자체가 지지부진하다. 투자활성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야권 “학교 옆에 호텔 짓지 않아도 공급 충분”

창업벤처기업이 다수의 소액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크라우드 펀딩을 허용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오히려 규제가 너무 강해 정책 실효성이 없다는 게 관련 업계의 주장이다. 정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이 온라인 상에서 쉽게 자금을 조달하는 채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벤처업계 생각은 다르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법안의 규제 성격이 강해 크라우드 펀딩 활성화라는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와 달리 야권은 이 법안에 개인투자자 보호장치가 부족하다며 반대한다.

민생안정 법안으로 분류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여야 계산법이 완전히 다르다.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며 의원 발의 형태로 만든 이 법안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맞춤형 개별 급여체계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법안이 통과되면 수급자가 40만명 늘고 가구당 평균 수급액도 증가해 저소득층 생계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이 법안이 “예산맞춤형 개악”이라고 주장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지원 대상은 늘겠지만 현재 수급자 중 약 30만명은 수급 자격을 잃거나 법 개정 전보다 적은 금액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관련 시민단체의 반대도 거세다.

최대 쟁점 법안인 서‘ 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국회 통과가 절실한 대표적 법안으로 꼽힌다. 2011년 말 제정해 국회에 제출된 이 법안은 18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가, 2012년 7월 재상정 됐다. 정부와 여당은 물론 재계와 경제 전문가들이 가장 강조하는 투자활성화 법안이다. 서비스산업의 전반적인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이 법안은 해외에서도 입법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포괄적인 내용을 담았다. 경제 파급 효과도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의료 영리화 논란의 덫에 걸려 2년 넘게 표류 중이다. 정부는 “의료 영리화와는 무관하다”고 항변하지만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는 이 법안에 의료 영리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새정연은 서비스산업법에서 의료 분야를 별도로 떼어내 다른 법률로 다룬다면 수정 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여당은 의료서비스 부문을 빼면 의미가 없다고 본다. 어느 쪽이든 특단의 양보가 없거나 절충점을 찾지 못하면, 또 다시 폐기 수순을 밟을지 모른다.

모든 주택에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분양가 상한제를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 적용하도록 하는 ‘주택법 개정안’과 재건축 개발이익의 최고 50%를 부담금을 환수하는 법을 없애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법 폐지법률안’도 쟁점이다.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시장 과열기에 도입해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야권은 분양가 급등과 서울 강남 3구 등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여야가 어느 정도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밀억제권역 소재 재건축 조합원이 소유한 주택 수만큼 주택공급을 받도록 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투기를 조장할 우려가 크다. 정부는 “투기우려 지역은 투기과열지구 지정으로 억제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사실상 투기과열지구가 모두 해제된 상황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택 수와 상관없이 2000만원 이하인 주택 임대수입에 소득세를 3년간 비과세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은 임대차 시장 활성화라는 정부논리와 다주택자 특혜라는 야당 입장이 맞선다.

서비스산업발전법 2년째 표류

보험사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야당 내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법안이다. 야당 일부에서는 이 법안이 의료 공공성을 해친다며 법안 상정 자체를 반대하지만, 유치 대상자가 외국인 환자기 때문에 무리한 주장이라는 견해도 있다.

정부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연간 약 6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개인정보 유출사고 때 징벌적 과징금을 매기고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신‘ 용정보보호법 개정안’과 주가 조작 사범에 대해 징계 수위를 높이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쟁점이 별로 없고, 여야 간 이견도 크지 않다.

1251호 (20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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