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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다시 친환경·안전 붐 - 불신 불식해야 돈 번다 

친환경 제품, 비주류에서 주류로 소비재→산업재, 선진국→신흥국으로 확산 




많이 만들어봐야 팔 곳이 없으면 소용없다. 저성장 흐름에 소비 감소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이젠 적게 팔아도 남는 장사를 해야 유리하다. 소비자의 성향도 변했다. 안전하지 않으면 아무리 싸도 안 산다. 반대로 몸에 덜 해로운 것, 자연친화적인 제품에는 비싸도 지갑을 연다. 친환경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한 기업이 있는 반면 비용을 조금 아끼려다 시장에서 쫓겨나는 기업도 있다.

‘친환경·안전’은 디자인·스토리 등과 더불어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밝힐 주요 키워드다. 특히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 제조업을 따돌릴 기본기이자 비밀병기다. ‘친환경 건축 자재’를 앞세워 건설업계 불황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 중인 LG하우시스의 성장 비결을 분석했다. 비싼 가격에도 지갑 열기에 성공한 친환경 제품의 면면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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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올해부터 ‘한 자녀 정책’을 완화해 ‘단독 두 자녀 정책’을 시행 중이다. 분유 업계에서 이 정책의 의미는 크다. 지난해 중국 분유시장 규모는 600억 위안(약 10조원)에 달하고, 연 평균 10% 이상 고속 성장하고 있다. 곧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마저 추월한다. 두 자녀 정책이 자리를 잡아 갈수록 성장세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시장은 이렇게 크는데 정작 중국 분유 업체들은 맥을 못 춘다.

자국 기업들이 대부분의 소비재 시장을 점령한 중국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2008년 멜라민 분유 파동 이후 소비자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수입 브랜드가 중국 분유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미드 존슨·와이어스 등과 같은 미국 업체가 1, 2위를 달린다.

아직까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중국 정부가 강도 높은 규제로 분유 업계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지난해까지 중국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던 프랑스 분유 브랜드 듀멕스는 이미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8월 독성 박테리아 검출로 곤혹을 치른 뒤 12%에 육박했던 시장점유율은 6%로 추락했다. 지금도 소비자에게 외면 받고 있다. 중국 소비자가 식품 안전에 얼마나 민감해졌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때 ‘안전 불감증의 나라’로 불렸던 중국의 변신이다.


말고기 파동 이후 유럽엔 친환경·유기농 바람

비교적 ‘안전지대’로 꼽혔던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다. 싸다고 대충 팔았다간 혼쭐나기 십상이다. 중국에서 분유 파동이 있었다면 유럽에선 지난해 초 말고기 파동이 있었다. 유통업체들이 판매하는 소고기 가공식품에서 말고기 성분이 검출된 사건이다. 출발은 말고기였지만 통조림에서 인체에 유해한 화학 성분(페닐부타존)까지 검출되면서 논란은 유럽 전 지역으로 퍼졌다.

이는 일반 식품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계기가 됐고, 한동안 침체를 겪었던 친환경·유기농 제품이 다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시작했다. 웨이트로즈·모리슨스 등 영국 대형 슈퍼 체인은 자사 PB 상품 판매 코너로 바꿨던 유기농 코너를 다시 되살렸다. 미국에서 불고 있는 ‘탈 글루텐’ 열풍도 이와 관련이 깊다. 밀가루에 들어 있는 글루텐이 자가면역질환·천식·비염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후부터다. 미국 내 글루텐 프리 식품시장은 올해 처음으로 100억 달러 고지를 넘어선 뒤 2016년에 156억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식품발 친환경 열풍은 세제·의류·청소용품 등 다른 소비재로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친환경 세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친환경 세제 소비가 전년 대비 28.5% 증가했는데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이 없는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세제는 시장은 2016년까지 연 5%씩 꾸준히 성장해 규모가 825억 달러(약 85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세제 시장에선 전통적 강자인 P&G의 시장점유율이 여전히 20%에 육박하지만 친환경 기저귀로 잘 알려진 세븐스제너레이션 등이 무자극성 세제를 앞세워 P&G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의류도 예외가 아니다. 합성 섬유 대신 천연 섬유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데 미국의 한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이 ‘100% 순면’이라는 표시가 의류를 구매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51%는 천연 섬유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답변했다. 가격보다 건강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는 소비자의 성향이 단순히 자연에 더 가까운 옷을 선택하는 단계를 너머 제품이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것인지 따지는 단계’까지 진입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유기농 직물 인증인 ‘GOTS’를 받은 제조시설 수는 2011년 2714개에서 2013년 3085개로 크게 늘었다.

친환경의 대명사인 전기자동차 역시 어느새 ‘미래’에서 ‘현재’로 진입했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차의 성공을 회의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전기차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자동차 시장에 침투하는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IHS오토모티브에 따르면 2010년 7000대에 불과했던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처음으로 10만대를 넘어섰고, 올해는 약 40만대에 달할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클린디젤,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판매가 전체 자동차 판매의 5%를 넘어섰다. 전기차 불모지였던 중국은 변신 속도가 가장 빠르다. 올해 전기차 판매량이 5만대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전년 대비 183.4% 증가한 수치다. 올 상반기 중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48% 늘어난 2만477대를 기록했다. 하반기엔 신에너지차량 소비세 10% 면제 등의 정책이 효과를 나타낼 전망이어서 목표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의 판매 호조는 주행거리 증가와 충전소 확대, 정부 지원금 등 장점이 많아진 덕분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BMW코리아가 ‘i3’을 출시했고 ‘SM3 ZE’, ‘쏘울EV’, ‘스파크 EV’ 등이 이미 시장에 선을 보였다. 전기차의 성장세는 배터리 가격 하락 속도에 달려있는데 배터리 가격은 2020년에 현재 가격의 50% 수준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친환경으로 위기 돌파한 타벡스·존슨앤존슨

소비재뿐만 아니라 산업재 분야에서도 친환경 바람이 거세다. 요즘 중국에서는 친환경 페인트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중국 정부의 환경 법규 강화와 소비자의 생활 수준 향상이 맞물린 결과다. 일반 유성 페인트와 달리 벤젠·포름알데히드와 같은 유독물질을 함유하지 않은 수성페인트 사용이 늘고 있다.

수성 페인트 사용비율은 아직 10%에 못 미치지만 현재 급증세로 봤을 때 5년 뒤 30%에 이를 전망이다. 생산량도 해마다 40~50%씩 증가하고 있다. 일본·유럽 등 선진국의 수성페인트 사용비율이 80%에 이르는 것을 볼 때 성장세는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불연·단열·차음 성능이 좋고 공사비가 저렴한 석고보드나 목재가 건축 자재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친환경’이 변방에서 주류로 떠오르면서 이를 무기로 위기를 극복한 기업들도 눈에 띈다. 스페인 타벡스(Tavex)는 데님 원단(두꺼운 면직물의 일종으로 진과 유사함) 분야 점유율 세계 1위 기업이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나 회복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른바 ‘건강한’ 원단이라 불리는 품질 덕분이었다. 타벡스는 원단 공정에서 물 소비를 최소화하는 기술로 잘 알려져 있다. 원단을 염색하려면 물을 여러 번 교체해야 하지만 타벡스는 물이 염료로 변색되는 걸 막아 딱 한번만 물을 사용한다.

금속산화물로 구성된 바이오세라믹스를 첨가해 인체가 원적외선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원단을 출시하고, 원단 마감에 쓰는 화학용품을 천연 마감재로 대체한 것도 효과를 봤다. 가격 경쟁을 피하는 대신, 혁신적인 기술과 친환경으로 승부한 것이다. 2009년 급락했던 매출과 영업이익은 불과 1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고, 2011년에는 4억7446만 유로(약 65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미국 생활용품 업체 존슨앤존슨 역시 부진을 ‘친환경’으로 뚫었다. 금융위기 이후 출생률 저하로 수요 부진이 계속돼 위기를 겪었지만 유아·아동 용품의 경우 먹거리만큼은 소비자가 안전에 민감하다는 데 집중했다. 유기농 성분이 70% 이상 포함된 별도의 유기농 제품 라인(Aveeno Baby Organic Harvest)을 편성했는데 이 전략이 먹혀 들었다. 덕분에 2007~2008년 16%에 묶여 있던 미국 유아·아동 용품 시장점유율도 18%로 끌어올렸다.

국내 기업 중에는 LG하우시스가 눈에 띈다. 건축 자재 사업 비중이 큰 LG하우시스는 전반적인 건설 경기 침체에도 오히려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었다. 주력 제품군을 철저히 친환경 콘셉트에 맞춘 결과다. 기업 대신 일반 소비자로, 국내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린 전략도 주효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친환경’은 추상적인 키워드에 머물렀다. 농업이나 식품 등 일부 영역에 적용되거나, 먼 미래에 찾아올 변화로 인식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친환경이 제조업의 트렌드를 바꾸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이미 곳곳에서 매출을 늘리고, 수익을 창출하는 효자 역할을 한다. 저성장 시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급격히 떠오르고 있다.

1250호 (201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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