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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노믹스’ 처방전 통할까 - 지도에 없는 길 가겠다 

새 경제정책 방향은 ‘소득 주도형 성장’ ‘개인 소득↑ → 내수↑ → 기업 투자↑ → 일자리↑ → 개인 소득↑' 

장원석·함승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박근혜정부 2기 경제팀이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7월 24일 “거시정책 기조를 과감하고 공격적으로 전환해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확장적으로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내수 진작을 위해 41조원을 쏟아 붓겠다는 계획이다. 가계의 근로소득을 늘리고, 규제 개혁 속도를 높이는 내용도 담았다. 뜨거운 여름 날씨만큼 한국 경제도 달아오를까.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고 코스피 지수도 역사적인 박스권을 탈출할 수 있을까. 그럴 조짐은 보인다. 경제는 결국 심리다. ‘침체를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형성되고 있는 게 무엇보다 반갑다.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낸다면 집권 중반기를 넘어가는 박근혜 정부는 큰 동력을 얻는다. 막 오른 ‘최경환노믹스’의 방향과 과제를 짚었다.


“진단은 같더라. 결과는 달랐으면 좋겠다.” 7월 16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취임식 직후 기획재쟁부 직원이 한 말이다. 최 부총리는 취임사를 통해 “한국 경제가 저성장과 축소 균형(수출과 내수, 가계와 기업이 모두 위축된 상황), 성과 부재라는 세 가지 함정에 빠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취임사에서 내린 그의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은 생각보다 톤이 강했다. 최 부총리는 “경제 회복의 모멘텀 자체가 사라지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가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는 이후 일주일 동안 이 말을 3번 더 했다.

지난해 3월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의 취임사가 떠오른다. 그는 ‘중산층이 줄어들면서 국민은 행복하지 않고, 경제는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상황’ ‘성장과 분배의 연결고리가 약화되고, 일자리 창출능력이 감소하는데 문제 제기와 정책만 무성’ ‘내 주머니는 얇아지는데 나라가 부강해지는 건 정상적인 성장이 아니다’ 등의 지적을 했다. 최 부총리가 내린 진단과 흡사하다. 두 사람의 진단이 정확하다면 1년 4개월 동안 나아진 게 거의 없었다는 의미다.

같은 진단, 다른 결과?

현 전 부총리는 재임 기간 내내 힘든 시기를 보냈다. 출발부터 부동산 대책이 오락가락하더니 여름엔 근로소득세 부담을 늘리는 세제 개편안을 내놨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결국 나흘 만에 수정했다. 무엇보다 국회와의 심리적 거리를 못 좁혔다. 1년이 채 안돼 여당에서조차 교체론이 나올 만큼 인기관리를 못했다. 반복된 실언으로 수 차례 구설수에 오르더니 세월호 참사 여파에 결국 물러나야 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2기 경제팀 수장으로 정치인을 선택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모 경제학과 교수는 “능력이 부족했다기보다 정부 초기다 보니 창조경제, 부동산 살리기, 세제 개편, 규제 개혁 등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며 “이것 저것 다 하려다 보니 결국 눈에 띄는 성과 하나 보여주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고 말했다.

직전 장수의 단점을 파악한 것일까? 최 부총리는 일단 우선 순위부터 정한 것 같다. 적어도 내수만은 살려놓고 보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읽힌다. 그는 부총리에 내정된 6월 15일 “현재 부동산 규제는 겨울에 여름 옷을 입은 격”이라는 발언으로 LTV(주택담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등 부동산 규제를 대폭 손질할 뜻을 나타냈다. LTV·DTI는 가계부채와 직결돼 매우 예민한 문제다. 내정자 신분으로 다소 공격적인 발언을 하자 비난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취임식에서도 “한 겨울에 한 여름의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부동산 시장의 낡은 규제들을 혁파해야 한다”며 또 ‘여름옷론’을 꺼냈다. 그리고 결국 완화를 결정했다. 약간의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지금은 내수를 살리는 게 급하고 그러려면 부동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 편성을 포기한 것도 맥을 같이 한다. 재정 투입을 빨리 늘려야 하는데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추경의 특성상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정치인다운 추진력이 돋보였다. 최 부총리는 “지금 추경을 해도 연말에나 집행할 수 있어 너무 늦다”며 “올해는 (기금이나 정책금융 등으로) 재정을 확대하고, 내년에는 좀 더 확장적으로 예산을 편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금은 국회의 동의 없이도 정부 재량으로 20%(금융성 기금은 30%) 내에서 지출 규모를 증액할 수 있어 결단만 하면 바로 돈을 풀 수 있다. 내수 진작을 위해 약 40조원을 쏟아 붓겠다는 계획이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가계가 저축을 하고, 기업이 그 돈을 활용해 (이익을) 가계에 돌려주는 게 시장경제의 정상적 구조다. 그러나 지금은 가계가 돈을 빌려 쓰고, 기업이 저축하는 상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배당성향이나 투자 성향 등을 고려하면 사내유보가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 아닌가 생각한다. 과세나 인센티브 등을 통해 기업에서 창출된 소득이 가계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구상하겠다.”

좌파 경제학자의 말이 아니다. 최 부총리가 취임사를 통해 던진 또 다른 화두다. 기업이 쌓아둔 비상금에 손을 대겠다는 건데 친기업·친시장주의자로 꼽히던 그의 의외의 일격에 재계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불과 8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야당(대표발의 이인영 의원)에서 발의하자 최 부총리(당시 새누리당 원대대표)는 “(과세를 한다고) 투자를 할 거라고 생각하면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재계 입장에선 역습도 이런 역습이 없다.





사내유보금 과세 카드로 재계 압박

실제로 2009년 270조원 가량이던 10대 그룹 상장계열사의 사내유보금은 지난해 말 약 527조원으로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이익을 내도 투자·배당을 하지 않고 돈을 쌓아뒀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상장사의 배당수익률은 1.1%(2013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08년 법인세 감세를 했고, 이로 인해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높아졌는데 근로자 소득공제 축소까지 감내하며 국민이 기대한 것은 기업의 투자 확대와 고용 활성화였다”며 “그러나 기업은 혜택만 누리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를 다시 되돌리는 차원에서도 유보금 과세는 정당하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의 발언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예고 없이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사내유보금 과세는 부적절하다’는 뜻을 밝혔다. 형식은 건의문이었으나 내용은 거의 토로 수준이었다.

전경련 관계자는 “사내유보금은 이익 중 배당되지 않고 회사에 남은 돈인데 이는 공장·설비·토지 등에 투자하는데 이미 사용된 돈”이라고 말했다. 10대 그룹 상장계열사의 사내유보금 527조원 중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77조4000억원으로 비중은 14.7%다. 명백한 ‘이중과세’라는 주장과 함께 국부 유출 우려도 제기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외국인은 우리나라 상장사 지분의 32.9%를 보유하고 있다”며 “일반법인(24.1%)·개인(23.6%)이 뒤를 잇는데 기업이 유보율을 줄이려 배당을 늘리면 외국인 투자자만 득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에서 말한 개인에는 오너 등 대주주가 포함돼 있다. 배당을 늘려도 낙수효과가 크지 않다는 의미다.

화두는 던졌지만 사내유보금 과세를 강하게 추진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어느 정도를 적절한 유보금으로 볼 것인지 애매한데다 이미 쌓여있는 유보금에 과세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다. 7월 24일 발표한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사실상 과세보다는 인센티브에 무게를 실었다. 최 부총리는 “과도한 유보금이 배당과 임금 등의 방식으로 가계로 흘러가게 할 경우 전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도록 (과세 체계를) 디자인할 것”이라며 “기업의 의사를 강제한다든지 사업 의욕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쨌든 최 부총리의 압박은 주춤했던 기업의 투자 의지를 고양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크든 작든 배당이 늘면 단기적으로 주주들에게 현금이 돌아가고 정부도 배당소득세 수입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이 돈이 소비와 새로운 투자에 쓰이면 빙하기에 접어든 내수 시장에 마중물 역할을 할 수도 있다.

3선 정치인 출신 실세 부총리 추진력 발휘할까?

종합해보면 최경환노믹스는 큰 틀에서 ‘소득 주도 성장’으로 요약된다. 대략 이렇다. ‘소득이 늘어야 소비가 늘고, 내수가 살아난다. 장기적으로 규제 개혁 등을 통해 기업의 일거리가 늘어나야 일자리도 더 많이 생긴다. 서비스산업 관련 규제를 풀고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이것이 또 소득으로 연결되는 한국형 선순환 성장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용한 정책을 모두 쓰겠다는 게 최 부총리의 의지다.

그는 7월 18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처음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 경제의 회복세가 애초 예상보다 훨씬 미약한데다 이런 어려움은 겹겹이 쌓인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가 표출된 결과”라면서 “(이런 난제를 해결하려면) 새 경제팀은 아마도 지도에 없는 길을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가 봉착한 복합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문적·이념적 틀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실제로 이번 경제정책 방향에는 부동산 등 각종 규제를 푸는 우파식 정책과 기업을 압박해 임금 인상과 일자리 확충을 이끌어내는 좌파식 정책이 혼재돼 있다.

사내유보금 과세 카드는 그가 말한 ‘지도에 없는 길’ 1호 정책일 수 있다. 기업이 다소 반발하더라도 일단 가계에 돈이 돌아야 내수를 살릴 수 있고, 그러려면 기업이 임금 인상이나 배당 확대 등으로 돈을 좀 풀어야 한다는 취지다. 일자리 확충 문제를 놓고 기업과 전선을 구축할 때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일자리 늘리기가 중요한데 대기업이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니 유보금 문제를 먼저 던진 뒤 하나(일자리)를 양보 받으려는 전략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단 최 부총리는 단기적으로 경제심리 회복과 규제 개혁이란 두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는 “지금은 실행 속도를 높이고 속도감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도록 기대심리를 높이고, 각 경제 주체가 자신감을 되찾을 방안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만약 올해 내로 그런 시그널을 주지 못하면 가뜩이나 약화된 박근혜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이 더욱 약해진다는 판단에서다.

규제 개혁도 급하다. 특히 서비스산업 분야는 관련 법안과 청원 등이 쌓여 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규제가 있다는 얘기는 반대하는 저항세력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걸 뚫는 게 쉬울 리 없다. 하지만 기대는 크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실세 경제부총리로서 여러 면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다 3선 정치인으로서 이제껏 뛰어난 협상력을 보여준 점을 볼 때 추진력면에서 전보다 훨씬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7월 21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만났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상황이어서 두 사람의 만남이 큰 관심을 끌었다. 만약 최 부총리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금리 인하까지 이끌어낸다면 ‘최경환노믹스’는 초반부터 힘을 더할 전망이다.

사내유보금: 기업이 벌어들인 당기 이익금 중에서 세금과 배당 등을 제외한 이익잉여금에 자본잉여금을 합한 돈이다. 쉽게 말해 장기간 누적된 기업의 여윳돈이라보면 된다. 기업들은 주로 이 돈을 투자나 인수합병 등에 쓴다.

배당수익률: 1주당 지급되는 배당금을 현재 주가로 나눈 비율. 배당금이 현재 주가에서 어느 정도 비중인지를 나타낸다. 가령 현재 1만원짜리 주식을 가지고 있는데 100원의 배당금을 받았다면 배당수익률은 1%다.

1248호 (201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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