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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트 레크만 독일 머크 화학·전자소재 CEO - 끝없는 M&A ... 첨단 전자소재 회사로 

한국 기업도 M&A 리스트에 포함 ... “300년 가족경영은 전략적 M&A에 강점” 

김태진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



독일 머크는 설립 역사가 346년 된 장수 기업이다. 30년 전만 해도 이 회사는 항암제 같은 신약을 개발하는 중견 제약회사에 불과했다. 지난해 매출은 약 111억 유로(약 16조5000억원)다. 거대 기업은 아니지만 제약뿐 아니라 세계 전자소재 분야를 리드하는 첨단 전자소재 기업으로 변신했다. 끝없는 혁신을 위한 전략적 인수합병(M&A)의 결과다. 특히 첨단 디스플레이는 머크가 없으면 아예 제품을 만들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원천 특허물질을 갖고 있다.

이 회사가 최근 개발한 전자소재 신물질은 신체나 옷에 모바일 기기를 장착할 수 있게 해주는 ‘웨어러블 디스플레이’를 가능하게 해준다.

베른트 레크만(59) 머크 본사 화학·전자소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월 한국 지사의 사업부 통합을 위해 방한했다. 머크가 올해 상반기 인수한 첨단 전자소재 회사인 AZ일렉트로닉머티리얼즈(이하 AZ)의 한국 지사를 한국머크와 합병하기 위해서다.

이코노미스트 창간 30주년을 기념해 서울 신라호텔에서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사업구조 개혁을 목표에 두고 전략적 M&A에 나서 첨단 전자소재 회사로 변신했다”며“올해 인수한 AZ도 OLED 분야의 첨단 물질특허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전략적 M&A가 머크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강조한다.

“2000년 이후 수조원을 들여 여러 건의 대형 M&A를 했다. 수익성과 성장성이 더욱 높은 구조로 가기 위해서다. 한계를 보인 전자물류 사업은 매각하고 대신 2006년 바이오 제약사인 세로노를 인수했다. 비슷한 시기에 이익률이 낮고 혁신과 거리가 먼 제네릭 사업을 매각했다.


이후 바이오·제약 분야에서 머크의 연구개발 성장을 가속화하고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밀리포아를 인수했다. 올해에는 AZ을 인수했다. 이들 분야는 모두 혁신에 기반한 특수한 사업으로 수익성이 우수하다. 지난 10년 간 인수합병의 변화도 이런 방향에서 이뤄졌다. 이제 머크는 전자소재와 화학·제약시장에서 매력적인 분야를 주도한다.”

첨단 디스플레이 소재 분야 최강자

M&A를 할 때 기준에 대해 물었다. 레크만 회장은 ‘혁신 기반, 높은 영업이익률, 시장 확대’란 세 가지를 꼽았다. 이어 “경제적·재무적 타당성을 충족시켜야 한다. 4조원이 넘는 비용이 든 쉐링 인수 철회는 재무적 타당성이 떨어져 중간에 포기했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머크가 한국의 제약 또는 화학기업을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국 기업 가운데 M&A를 검토한 적이 있는가에 대해 그는 “머크의 M&A 기준에 맞는 기업이라면 모두 검토 대상이라 당연히 한국 기업도 포함된다”며 “M&A 속성상 공개적으로 어떤 기업인지 말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수행해 온 M&A를 통해 행간을 읽었으면 좋겠다”며 우회적으로 답변했다.

1668년 설립된 머크는 유럽에서 독특한 지배구조로 유명하다. 350년 가까이 머크 일가의 가족 소유 기업으로 성장했다. 머크 일가의 철학은 ‘기업이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회사 지분의 70%가 머크 일가 소유하고 나머지 30%는 주식시장에서 거래된다. 일상적인 경영은 전문 경영진이 담당한다. 레크만 회장은 “머크 일가는 경영감시 역할을 위해 가족위원회(Family Board)에만 참가한다”며 “가족위원회는 대규모 투자나 M&A에 의견을 내고 승인을 해줘 머크가 전자재료 회사로 변신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머크 본사에서 한국의 위상은 대단히 높다. 2000년 이후 삼성전자 같은 대형 IT 기업의 매출이 쑥쑥 늘면서다. 레크만 회장도 한국머크 사장 출신이다. 그는 “한국에서 지사장을 한 경험이 머크에서 보드 멤버가 되는 데 큰 힘이 됐다”며 “한국 IT기업과 머크는 함께 성장하는 동반성장 관계”라고 말했다.

한국에 추가 투자 계획에 대해선 “현 시점에서는 한국머크가 AZ코리아를 신속히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맞춰져 있다”며 “한국 시장의 추가 성장 여력이 충분해 중장기 투자 계획은 있다”고 설명한다.

머크는 연간 2만6000개의 특허를 신청한다. 신기술 특허 건수에서 독일에서 선두를 다투는 기업이다. 레크만 회장은 “특허는 경쟁력을 따지는 데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액정 같은 신사업 분야와 미래 신기술에 대한 장기적 연구개발 투자가 머크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끈다”고 언급했다.

“한국은 머크의 전략 거점”

요즘 한국 경제는 지나치게 대기업 의존도가 높아 체력에 문제가 있다고 거론된다. 특히 소재기업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종종 나온다. 이에 대해 레크만 회장은 이렇게 조언한다.

“한국 기업은 많은 분야에서 짧은 시간에 세계 시장에서 리더에 올랐다.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자동차·조선·전자·화학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 수준이다. 50~60년 전 만해도 화학은 한국의 주력 분야가 아니었다. 화학산업은 경험이 중요해 긴 시간의 역사가 필요하다.

기반 자체가 독일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다. 화학 분야는 독일처럼 강한 중소기업이 많아야 하는데 한국은 대기업에 의존한다. 대신 대기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 진출이라는 데는 장점이 있다. 유럽의 경우 작은 화학기업이 직접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한국에서 선진국 수준의 화학소재 기업이 나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독일 보트롭 태생인 레크만 회장은 하노버 라이프니츠대 생화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1986년 머크 연구소로 입사했다. 이후 마케팅·영업을 거쳤고 1998년 생명과학 제품을 총괄했다. 2005년부터 2년 간 한국머크 사장을 경험했다. 2007년 머크 보드 멤버로 승진했다. 그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올해 KOTRA가 임명한 ‘투자진흥 명예대사’도 맡았다. 한국에 투자할 독일 기업을 소개하는 역할이다.

1247호 (201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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