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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노믹스에 분주한 기업들 - M&A·합작투자·수직계열화로 물사업에 풍덩 

코오롱·GS·삼성 등 성장성에 주목 … 거래처 확보 어렵고 기술 진입장벽 높아 


▎코오롱그룹은 7월 8일 노르웨이의 플랜트 기자재 업체인 아커솔루션과의 조인트벤처(JV) 설립을 발표했다. 이수영 코오롱워터앤에너지 대표(왼쪽)와 데이비드 메를 아커솔루션 사장이 양해각서 체결 후 악수를 하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일찌감치 물사업을 시작하면서 워터노믹스 시대를 준비한 대표적 기업이다. 이야기는 8년 전인 2006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에 출장을 가 있던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하·폐수 처리장을 운영하는 환경시설관리공사의 매각 최종 입찰일 새벽에 이수영 당시 코오롱그룹 전략기획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인수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상의 끝에 인수가 꼭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드시 인수합시다. 금액도 이 팀장이 알아서 써내도록 해요.” 세계 1위의 프랑스 물기업인 베올리아를 제치고 인수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환경시설관리공사는 코오롱워터앤에너지가 됐다. 현재 국내에 50개 사업소와 650여 환경시설처리장을 갖춰 수처리 운영 부문 국내 1위인 회사다.

이때 전략기획팀을 이끌었던 이수영 상무는 현재 코오롱워터앤에너지 대표로 그룹의 물사업 전반을 주도하고 있다. 이 대표는 ‘환경시설관리공사를 반드시 인수해서 물사업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었다. 7월 8일 그는 새 포부를 밝혔다. “단순 수처리 기업을 넘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핵심 기술을 가진 세계 10대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겠습니다.” 기존 수처리 시설 운영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고부가가치 분야로 물사업을 키우겠다는 뜻이다.

이날 코오롱워터앤에너지는 노르웨이의 플랜트 기자재 업체인 아커솔루션과 50대 50 지분의 합작법인 ‘코오롱-아커솔루션(가칭)’ 출범을 발표했다. 코오롱워터앤에너지 등이 보유한 석유·가스 고도정제 패키지 업체 코오롱프로세스시스템 지분 50%를 유상증자를 통해 아커솔루션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고도정제 합작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고도정제 패키지는 원유를 시추할 때 석유와 가스를 얻기 위해 물을 분리하는 데 사용되는 기자재다. 그동안 국내 업체들은 해외에서 해양플랜트 사업을 전개할 때 매년 2조원 규모의 고도 정제 패키지를 구매했지만 대부분 해외 업체 장비에만 의존했다. 기술 장벽이 워낙 높아 미국과 유럽 쪽 기업들이 장악한 시장이었다. 코오롱으로서는 이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인 아커솔루션의 투자를 받아 사업을 더 공격적으로 벌이겠다는 의미다. 회사 측은 지난해 170억원에 그쳤던 코오롱프로세스시스템의 매출 규모를 합작 이후 3년 안에 2000억원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미 코오롱그룹은 물사업의 수직계열화를 구축해 그룹의 새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코오롱워터앤에너지뿐만 아니라 시공을 맡는 코오롱글로벌, 수처리 공법과 기자재 등을 담당하는 코오롱이엔지니어링, 시설 운영을 전담하는 코오롱환경서비스 등의 계열사를 두고 역할 분담과 효율적인 사업 체계의 구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섰다.


▎GS그룹은 GS건설 자회사인 GS이니마를 통해 2011년부터 알제리의 모스타가넴에서 하루 20만t 규모로 담수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이재수 코오롱 차장은 “고도정제 패키지 사업의 확장은 안정적인 수처리 시설 위탁운영 사업과 더불어 성장성과 수익성을 두루 갖춘 신사업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수직계열화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기반 속에서 기술력을 강화해나갈 수 있도록 (물사업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코오롱그룹, 노르웨이 기업과 손 잡아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수직계열화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라는 비판론도 제기하지만, 아직 열악한 국내 물 관련 산업에서는 기초를 탄탄히 하면서 지속가능한 고부가가치 사업을 모색하도록 하는 순기능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코오롱환경서비스는 지난해 전체 매출의 35%인 284억원을 코오롱그룹 계열사를 통해 기록했다. 이런 기반이 있었기에 지난해 이 회사의 전체 매출(813억원)도 전년보다 15.4% 증가하면서 영업이익 흑자(22억원)를 낼 수 있었다. 기업으로서는 사업의 지속성과 안정성, 확장성을 계속 갖출 수 있게 하는 요소다.

물이 곧 돈이 되는 워터노믹스 시대를 미리 준비한 기업들은 이처럼 M&A, 해외 전문 업체와의 합작 투자, 수직계열화 등 최선책으로 판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분야도 무궁무진하다. GS그룹 역시 최근 물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GS그룹 계열사인 GS건설은 자회사인 GS이니마가 올 6월 튀니지에서 1000억원 규모로 제르바섬 해수담수화 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스페인 수처리 업체인 아쿠아리아와 50대 50 컨소시엄으로 수주해 사실상 500억원 규모 수주액이란 성과를 얻었다.

앞서 GS이니마는 올 3월 모로코에서도 360억원 규모 정수처리장 시설을 수주하는 등 투자에 따른 결실을 하나 둘씩 거두고 있다. 도재승 GS건설 상무는 “GS이니마의 강점인 담수·운영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라며 “수처리 사업 분야에서 꾸준히 실적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GS건설은 2011년에 스페인의 수처리 업체로 역삼투압방식(RO) 담수플랜트 세계 10위권 업체였던 이니마를 인수했다. 국내 건설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적 규모의 유럽 기업을 인수한 사례였다. 세계 RO 담수화 시장이 2016년경 140억 달러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성우 GS건설 과장은 “RO 담수화로 생산 단가를 줄이는 연구를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며 “그간 쌓아온 풍부한 경험과 기술력을 갖춘 이니마를 인수해 물사업에 탄력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북 포항에 있는 한 폐수처리장의 모습.



뿌린 만큼 못 거두는 기업도 많아

우리나라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그룹도 빼놓을 수 없다.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올 6월 쉐이크 칼리파 바레인 수상과 만나 “앞으로 바레인을 비롯한 중동과 북아프리카 시장에서 수처리 사업을 전개하는 데 확고한 입지를 다지겠다”고 밝혔다. 삼성엔지니어링이 바레인에서 수주했던 무하락 하수처리 시설의 완공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무하락 하수처리 시설은 바레인 최초 민자 방식으로 발주된 사업으로 하루 10만t 규모 하수를 처리한다. 기본 하수처리장 외에 슬러지(하수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침전물) 소각로, 중계 펌프장, 하수관로 등 기술력이 집약된 시설이다.

앞서 삼성엔지니어링은 2011년 5억5000만 달러 규모의 무하락 하수처리 시설 공사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투자공사, 영국의 유나이티드유틸리티스와 공동으로 사업권을 획득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이 시설을 앞으로 27년 간 유나이티드유틸리티스와 공동으로 운영한다. 그러나 지난 3년 간의 플랜트건설에서 설계-조달-시공-시운전의 모든 과정을 일괄 수주(Lump-Sum Turn Key) 방식으로 계약해 단독 수행, 완료할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회사 측은 바레인에서 다른 수처리 프로젝트를 연계 수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물사업으로 성과를 내는 기업들이 늘고 있지만 진행이 순조롭다거나 장밋빛 전망인 것만은 아니다. 국내 1위 도시가스업체인 삼천리는 2010년 대양바이오테크라는 하·폐수처리 운영 업체를 인수하면서 물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대양바이오테크는 당시 국내외 200여 하·폐수처리 시설의 시운전 경험이 있을 만큼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종합에너지 기업으로의 성장을 꾸준히 모색한 삼천리로서는 그간 쌓아온 도시가스배관 기술 노하우를 물배관에 접목해 사업을 키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은 별다른 성과 없이 삼천리엔바이오를 통해 경북 포항 등 16개 지자체의 위탁으로 공공하수관리 대행업을 하는 선에 머물고 있다. 회사 측은 현재까지 물사업에서 이렇다 할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으며, 당분간 새로운 수주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도 LG전자가 2010년 ‘글로벌 선두 종합 수처리 전문기업으로 도약’을 목표로 내세우며 물사업을 새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 했지만 회사 규모에 비해 현재 사업은 미미한 수준이다. LG전자는 2012년 초에 일본의 히타치플랜트테크놀로지와 합작해 수처리 설계시공 업체인 LG-히타치워터솔루션을 출범시켰다.

이 회사는 장기적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준비한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그룹 내 계열사에서 주로 매출이 발생하는 등 국내에만 거래처가 한정됐다. LG전자 관계자는 “사업 초기라 돈을 벌기보다는 돈이 들어가는 단계이며 투자 방향도 확실히 정해진 바가 없다”면서 “장기적으로 보고 경험을 충분히 쌓는 단계로 인식 중”이라고 말했다.

신기술이 진입장벽 뚫는 열쇠

이에 대해 업계 한 전문가는 “물사업은 수 십 년 간 쌓인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사업”이라며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의욕만 앞선 채 사업에 뛰어들면 시작조차 제대로 못해보고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른 전문가도 “수처리 쪽은 아무리 이름 있는 기업이 들어와도 사업 경험이 적다는 이유로 거래처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잖다”고 전했다.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M&A나 합작 투자 등으로 국내외 우수한 기술력을 확보,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수월하지만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GS건설 관계자는 “해수담수화 플랜트 시장은 선진 기술을 갖춘 일부 기업들이 사실상 독과점하는 구조로 진입장벽이 높아 쉽지 않다”며 “신기술개발 등으로 후발주자의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 시장에서 외국 기업과 경쟁하는 경우가 많은 기업들일수록 이런 고민은 크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워터노믹스 시대 우리 기업들의 과제로 떠올랐다.

일괄 수주(Lump-Sum Turn Key) 방식 개발도상국에 대한 플랜트 수출이나 건설 공사 때 주로 이뤄지는 계약 형태. 시공자가 조사와 설계부터 기기 조달, 건설, 시운전 등 모든 과정을 도맡는 방식이다. 열쇠(Key)를 돌려(Turn) 바로 설비가 가동하는 상태로 인도한다는 뜻에서 턴키 방식이란 용어가 됐다.




1247호 (201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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