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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오른 ‘워터노믹스(Water+ Economics)’ 시대 - 900조원 ‘블루골드’ 시장 열린다 

생수·수처리·담수화 등 관련 산업 급성장 … 한국 시장점유율은 고작 0.3% 

장원석



마시고 쓸 물이 넘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식수마저 구하기 어려운 나라도 많다. 인구 증가와 지구온난화로 물 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물이 돈이 되고 물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이유다. 이미 석유 못지 않은 대접도 받는다. 2025년엔 약 900조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각국이 수처리·담수화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생수시장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세기가 석유의 시대(블랙골드)였다면 21세기는 물의 시대(블루골드)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외 정부와 기업의 움직임, 물산업의 미래 등을 짚어봤다.

“우리는 지금 물 통제권을 잡기 위한 전투를 목격 중이다. 물은 이라크에 있는 모든 세력의 전략적 목표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다. 물을 통제하면 바그다드(이라크 수도)를 장악할 수 있고, 그러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안보싱크탱크인 합동군사연구소(RUSI) 카타르 지부 마이클 스티븐 부국장이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얼마 전 이슬람 급진 수니파 반군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라크 내전을 ‘물 전쟁’에 비교한 것이다. 실제로 바그다드 북서쪽 팔루자를 장악한 반군은 누아이미야댐(유프라테스강이 바그다드로 흘러가는 중간 요충지)을 점령한 뒤 물길을 돌려버렸다. 그러자 이라크 중남부지역 시아파 거주지에 생활용수 공급이 끊겼다.

현재 반군은 시리아·터키에서 이라크로 흘러가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상류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여름의 이라크에서 수자원은 원유정제시설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반군이 행할 ‘물 장난’에 따라 수백만명의 이라크 주민이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기름이 넘치는 나라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물 부족의 시대를 외치지만 엄밀히 말하면 물은 넘친다. 석유엔 한계가 있어도 물은 한계가 없다. 지구에 있는 물의 총량은 14억㎦에 달한다. 이 물의 97.4%는 해수다. 빙하 등 얼어 있는 극지방의 담수가 약 1.8%, 지하수가 0.6% 정도다. 그러므로 실제로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물은 지하수를 포함해도 1%에 못 미친다. 그중에서 접근 가능성이 좋은 호수와 강 등 지표수는 4만㎦ 밖에 안 된다. 사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온다. 하지만 이 1%는 지금의 인류가 필요한 곳에 쓰고, 생태계를 보존하는데 충분한 양이다. 재활용까지 가능하니 이론적으로 물의 절대량이 부족할 리는 없다.

문제는 담수 자원이 전 세계에 고르게 분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흔히 물 부족을 말할 때 담수의 양을 인구 수로 나눈 지표를 사용하는데 브라질(1인당 연간 4만5000㎥)·노르웨이(8만3000㎥)처럼 물이 충분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사우디아라비아(1인당 연간 95㎥)나 몰디브(98㎥)처럼 가용할 물의 양이 턱없이 부족한 나라도 있다. 앞으로는 이 불평등뿐만 아니라 희귀성과도 싸워야 한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 때문이다. 2011년 전 세계 인구는 70억명을 돌파했고, 2050년에는 90억명에 도달한다. 여기에 지구온난화에 따른 잦은 홍수와 가뭄은 국가별 물 수급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급격한 산업화·도시화가 이뤄지고 있는 점도 물 부족을 부추긴다. 많이 쓰고, 많이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물 부족의 본질은 담수 자원의 불평등성

이 불평등성과 희귀성이 시장을 만든다. 물이 많은 나라에선 문제될 게 없지만 물이 부족한 나라에선 물이 곧 돈이다. 산유국이 아닌 나라일수록 석유가 비싼 것처럼. 어느 새 물은 산업이 됐다. 그것도 시간이 갈수록 돈이 되는 미래 산업이다. 영국 조사기관 GWI(Global Water Intelligence)에 따르면 전 세계 물산업 규모는 2010년 4828억 달러(약 500조원) 정도다. 전 세계 반도체산업과 조선산업 규모를 합한 것보다 크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1070억 달러로 시장이 가장 크고, 한국은 100억 달러 정도로 세계 10위권이다. 세계 시장은 연 평균 4.9% 성장해 2025년 8650억 달러(880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물산업은 용도에 따라 개발과 이용, 보전으로 나눌 수 있다. 댐 건설, 지하수 개발, 하·폐수 재생, 해수담수화 등은 개발에 생수 등은 이용에, 하·폐수 처리는 보전에 속한다. 물산업 중 비중이 가장 큰 분야는 상·하수 수처리다. 전 세계 어디에도 수처리를 하지 않는 나라가 없는데다 중동·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엔 지능형 물 생산·공급 시스템이 각광을 받고 있다. IT기술을 접목해 상·하수의 공급과 사용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건설부터 프로그램까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중이다. 프랑스·스페인 등 유럽 기업이 앞서가고 미국·중국 등이 추격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의 세계 물 시장 점유율은 0.3%에 불과하다.

1분기 생수 판매액은 45.3% 증가

국내 기업의 수출 실적은 아직 미미하다. 2010년 16억 달러 정도 수준인데, 이 중 해수담수화가 14조6000억 달러를 차지한다. 그것도 건설 분야에 집중돼 있다. 영업이익률이 높은 운영 관리 분야로 영역을 넓혀야 할 시점이다. 수처리 분야에서 수출이 저조한 것은 시스템과 건설, 운영 등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처리 분야 세계 1위인 프랑스 ‘베올리아’는 전체물 순환 과정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을 보유한 대표적인 회사다. 160년의 역사를 가진 장수 기업으로 연 매출이 294억 유로(약 42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수처리 기업이다. 해외 사업 비중이 80%를 넘는 글로벌 기업이기도 하다. 국내 기업 중에는 코오롱이 거의 유일하게 소재(코오롱FM), 여과분리장치(코오롱 인더스트리), 수처리제(코오롱 생명과학), 건설(코오롱 건설), 운영(환경시설관리공사) 등 수직계열화로 통합 체제를 구축했다.

‘물=안전’이란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먹는 물(생수) 시장도 달아오르고 있다. 사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물은 상품으로 취급 받지 못했다. 어딜 가든 물 한잔 얻어 먹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아버지와 함께 뒷산 약수터를 오르내리던 모습도 흔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제 추억이 됐다. 집 밖에서 마시는 물에 대한 불신이 커진 때문이다. 집집마다 정수기가 주방의 한 자리를 차지했고, 대형마트에서 페트병에 담긴 생수는 장보기 1번 품목이 됐다.

생수는 지난해 음료시장에서 두유를 제치고 처음으로 매출 2위에 올라섰다. 2000년 1562억원에 불과했던 시장 규모는 4배 가까이로 커졌다. 1분기 생수 판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45.3% 증가해 올해 처음 60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생수를 판매하는 회사만 국내에 100곳(외국 기업 포함)이 넘는다. 농심 등은 국내를 너머 해외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목표로 뛰고 있다.

물 산업의 가파른 성장에 각국 정부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베올리아 등 세계적인 수처리 기업을 보유한 프랑스는 자국 기업의 해외 진출에 중점을 두고 국제 표준화 작업을 선도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싱가포르 등은 물 부족 국가임에도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육성 정책으로 단기간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정부의 대규모 연구 예산 지원과 해외 기술 유치 등이 양국의 공통점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해외 수출이 크게 늘어 2020년 20조원의 수출 목표를 세울 만큼 빠르게 중심국으로 발돋움했다.

한국판 ‘베올리아’ 나오려면 …

우리나라도 노무현 정부에서 물산업 육성 5개년 추진계획을 세운 데 이어 2010년 10월 물산업 육성 전략을 수립해 지원을 강화했다. 하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민영화 논란 등으로 추진 동력이 약했고, 기업의 해외 진출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현 정부 들어서는 창조경제, 규제개혁 등이 부각되면서 녹색산업으로 분류된 물은 뒤로 밀렸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수처리 기업은 대부분 공공기관으로 출발했거나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한 공통점이 있다. 최근 삼성·LG·두산 등은 국내외 물 관련 기업과 단체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다.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IT 기술력과 플랜트 건설 능력을 함께 보유한 만큼 정부가 조금만 뒤를 받쳐주면 충분히 세계 무대를 공략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우리 기업이 상대적 우위를 점한 해수담수화 분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다. 업계 관계자는 “수처리 분야는 이미 일부 글로벌 기업이 자리를 잡은데다 연구개발비가 많이 들어 추격이 쉽지 않다”며 “해수담수화 등에 선택적 집중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1247호 (201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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