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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한번 고객을 영원히 붙들어라 

영화 <쇼생크 탈출>의 ‘락인(Lock-in) 전략’ … 소비자 길들여 충성도 높여 

박용삼 KAIST 경영공학 박사

▎영화 <쇼생크 탈출>의 두 주인공인 모건 프리먼(왼쪽)과 팀 로빈슨.



1994년 개봉한 영화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촉망 받던 은행 간부 앤디(팀 로빈슨)는 아내와 그녀의 정부(情夫)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그가 수감된 곳은 쇼생크 교도소(‘쇼생크’라는 이름은 원작자가 지어낸 가상의 지명). 이곳은 탈옥이 불가능한 것으로 유명한 생지옥이다. 더구나 동료 죄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도소장과 간수들조차 그야말로 인간 말종들이다. 앤디에게 유일한 위안은 평생의 친구가 되는 레드(모건 프리먼)를 만난 것 정도.

어느 날 앤디는 수감되기 전 은행에서 쌓은 실력을 발휘하여 간수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수완을 발휘하고 덕분에 일약 교도소의 비공식 회계사로 등극한다. 그 후 해마다 교도소장과 간수들의 세금 관리는 물론 재정 상담, 급기야 교도소장이 죄수들을 이리저리 착취하여 긁어 모은 검은 돈을 세탁하고 불려주는 역할까지 한다.

그러던 중에 갓 입소한 신참 죄수에게서 아내의 진짜 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입수한 앤디는 소장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하지만 소장은 앤디를 계속 붙잡아 두기 위해 이를 묵살하고 그 신참 죄수를 살해해 버린다. 분노가 폭발한 앤디, 이제 남은 건 탈옥뿐이다. 그런데 철옹성 같은 쇼생크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앤디는 감방 벽에 굴을 파는 고전적인(?) 방법을 택한다. 그런데 이런 구식 방법이 먹히려면 전제 조건이 하나 있어야 하는데 바로 간수들의 방심이다. 간수들이 매일 이 잡듯이 감방을 뒤지기라도 한다면 끝장이다. 간수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앤디는 락인(Lock-in) 즉, 한번 고객을 영원히 묶어놓는 전략을 택한다(락인은 족쇄를 채운다는 뜻).

앤디의 절세(節稅) 기술에 한번 맛을 들인 교도소장과 간수들은 사실상 앤디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되고 앤디를 의심하거나 방을 수색할 생각도 못한다. 순진하다 못해 약간 맹~해 보이기까지 한 앤디에게 어떻게 이런 전략가(家) 마인드가 숨어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캡슐 커피로 빅히트 기록한 네슬레

비즈니스에서 락인 전략이 먹히는 이유는 소비자들은 한 번 구매한 제품에 길들여지면 굳이 다른 제품으로 전환하려는 수고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갤럭시 시리즈와 아이폰 시리즈는 모양과 기능은 거기서 거기인 것 같지만 막상 메뉴의 종류와 구성, 위치 등에 익숙해지려면 성가신 숙달 과정이 필수다. 솔직히 평상시에도 스마트폰 기능의 10~20%도 채 이용하지 못하는 처지에 굳이 기종을 바꿔 새로운 매뉴얼을 ‘공부’할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락인이 작동하는 것이다.

정보통신 산업에서는 락인이 표준으로까지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한번 굳어진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이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이 된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쿼티(QWERTY)형 키보드. 과거 타자기 시절에 자판이 엉키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타자 속도가 느려지도록 배열된 키보드 자판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쓰고 있는 것이다. 1982년에 미국표준협회가 타이핑 속도가 훨씬 빠른 드보락(Dvorak) 자판을 표준으로 채택하기도 했지만 한번 쿼티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습성을 바꾸지는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힘도 락인에서 나온다. MS 윈도우와 오피스 프로그램, 익스플로러에 익숙한(즉 락인된) 고객들은 차기 버전에서도 계속 MS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학생 버전으로 매우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는 것도 이들이 자라면서 MS의 정식 고객으로 락인돼 고가의 일반용 제품을 구매할 것이기 때문이다.

락인은 비단 IT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150년 역사의 세계 최대 식품기업 네슬레는 1986년 기존 식품사업의 범주를 벗어난 이상한 신제품을 하나 내놓았다. ‘네스프레소’라는 이름의 가정용 커피 머신이었다. 네슬레는 동시에 네스프레소 전용의 캡슐 커피를 출시했는데 이것이 바로 네슬레의 노림수였다.

일단 커피 머신을 구입한 소비자들은 좋든 싫든 끝없이 캡슐 커피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소비 자를 오래 붙잡아두는 락인 전략이다. 네스프레소는 지난해 커피 머신과 캡슐 커피로 전 세계에서 5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캡슐 커피 가격은 개당 800~900원인데 하루 한 잔만 마신다고 해도 1인당 연간 구매비용은 30만원에 달한다. 같은 양의 인스턴트 커피 구매비용의 8배 수준!

결국 비즈니스는 가치사슬상의 공급자와 구매자 간의 락인 게임의 연속이다. 낚는 쪽과 낚이는 쪽의 팽팽한 밀고 당기기라고 할까. 공급자 입장에서는 고객이 변심했을 때 부담해야 하는 전환비용(Switching cost)을 높여 한번 고객을 영원히 잡아놔야 한다.

가격과 품질 외에 차별화된 서비스, 맞춤형 옵션, 구매이력 관리, 마일리지 제공 등 고객이 이탈했을 때 포기해야 하는 가치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고객을 만드는 것은 기존 고객을 붙잡아 두는 것에 비해 몇 배의 비용이 든다(통신 업계에서는 통상 5배에 달한다는 추정도 있다). 최대한 기존고객을 락인시키는 것이 무조건 답이다.

한편 구매자 입장에서는 특정 공급자에게 매이게 되면 나중에 공급자가 가격을 올리거나 거래 조건을 불리하게 해도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미리 빠져 나갈 대비를 해야 한다. 교토삼굴(狡兎三窟, 영리한 토끼는 세개의 굴을 준비해 놓는다)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평시에 공급처를 다변화하거나 유사시 활용할 수 있는 제2의 공급처(Second vendor)를 확보해 놓을 필요가 있다. 시장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비싸더라도 유사시에 대비하여 자체 원료나 부품 생산설비를 유지하는 것도 언제 있을지 모를 공급자의 횡포를 견제하는 효과가 있다.

자,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앤디는 소장의 검은 돈을 몰래 자신의 비밀계좌로 옮겨 놓고 교도소의 비리를 낱낱이 폭로한 서류를 신문사에 보낸다(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락인 전략의 힘이다). 경찰과 기자들이 들이닥친 혼란의 와중에 드디어 앤디는 유유히 탈옥에 성공한다.

앤디는 탈출 통로의 입구를 대담하게도 당대 최고의 글래머 여배우였던 리타 헤이워드의 포스터 한 장으로 가려 놓는데 뒤늦게 이를 발견한 소장과 간수들의 표정이 압권이다(이 영화의 원작 제목이 그래서 ‘리타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다). 장면이 바뀌면서 태평양 해안의조용한 마을.

해변에 잘 어울리는 헐렁한 옷차림의 앤디가 열심히 자신의 요트를 손질하는 중이다. 그리고 저 멀리서 허름한 양복을 걸친 흑인 노인 한 명이 해안을 따라 걸어 온다. 40년의 복역을 마치고 가석방된 앤디의 절친 레드이다.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의 얼굴에 어색하지만 자유로운 미소가 번진다.

이 영화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여러 명대사로도 유명한데 그 중 하나를 인용한다. ‘선택은 간단하다. 바쁘게 살던가 바쁘게 죽던(Get busy living or get busy dying)’.

1240호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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