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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갈수록 꼬이는 KB금융 내분사태 - 이건호 행장 믿는 구석 있나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로 임영록 회장에 정면 도전 … 임 회장 리더십 실종 

박상주 이코노미스트 기자

▎갈등을 빚고 있는 임영록 KB금융그룹 회장(왼쪽)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처음에는 전산시스템 교체에 대한 의견 차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특별 조사와 이사회 결정 정지 가처분 신청 등이 이어지면서 KB금융 전반으로 문제가 확산됐다. 특히 임영록 KB금융그룹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 간 대립으로 비화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김재열 KB금융그룹 전무(CIO, 최고정보책임자)와 정병기 국민은행 감사가 전산 사업을 명분으로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와자회사(은행)에 대한 간섭에 나선것은 관료 출신인 임 회장보다 현 정권과 가까운 이 행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국민은행 이사회는 5월 23일 오전 이사진 간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이사회를 열었지만 별다른 소득없이 27일 감사위원회와 이사회를 다시 열기로 했다.

갈등 봉합할 이사회 소득 없이 끝나

국민은행 이사회는 4월 24일 은행 주전산기를 IBM이 독점 운영하는 ‘메인프레임’에서 여러 전산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 유닉스로 변경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하지만 한국IBM으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정병기 감사와 이건호 행장이 이사회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정 감사는 전산시스템 변경 결정 과정에서 리스크의 의도적 배제, 시스템 전환 과정상의 불공정, 시스템 교체로 인한 비용 절감, 보안상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문제로 삼았다. 또 이사회 추산 비용 2000억원이 애초 예상치를 훌쩍 넘는데 대해 리베이트 가능성도 염두에 뒀다.

5월 19일 열린 KB국민은행 이사회는 이 행장과 정 감사가 제기한 이견을 재논의 했으나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정 감사는 이에 불복, 이사회 결정 내용을 금감원에 보고했다. 금감원이 정 감사 보고에 따라 특별 검사에 착수하면서 KB 내분 사태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병기 감사는 경영진의 보고서 오류를 문제 삼고 있다. 경영진에 최초 보고된 교체 관련 비용은 2050억 원이었지만, 여기에 외부 컨설팅 문건에 포함됐던 교체 리스크 비용 1000억원이 누락됐다는 것이다. 교체비용이 도합 3000억원이 넘어가면 가격을 이유로 유닉스로 교체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보고서에 오류가 생긴 원인도 ‘지주사에서 IT실무자에 보고서를 조작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금감원은 이사회 결정 과정에서 조직적 서류조작이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특히 전산시스템 거래 과정에서의 거액의 리베이트가 오갔는지, KB금융 내부 인사의 이권개입이 있었는지 등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금감원은 KB국민은행에 대한 특별검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KB금융지주도 조사할 계획이다. 대규모 검사인력을 보내 대대적인 정밀 검사를 벌인다고 밝혔다. 이번 내홍이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를 넘어 지주사와 은행 간의 파워게임이나 인사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김재열 전무는 임영록 회장이 영입한 인사이고, 이건호 행장이 정병기 감사와 입장을 같이 하면서 분쟁이 금융그룹 회장과 은행장으로 번진 것이다. 논란의 한 가운데 선 사람은 김재열 전무다. 지난해까지 KB금융그룹에는 CIO가 없었다. 국민은행 CIO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국민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CIO 역할을 하던 국민은행 IT 본부장이 시스템 교체에 반대하다 해임됐다.

그 뒤로 지주사에서 CIO 자리를 만들어 ‘우리나라 해커 1호’로 특채된 이력의 김재열씨를 전무에 앉혔다. 이외에도 임 회장은 정치인 출신인 김용수씨를 부사장에 앉히는 등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이 때문에 국민은행 내부에서는 임 회장이 KB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는 불만이 잠재돼 있었다. 또 지주사 낙하산 인사가 최근 국민은행에서 일어난 각종 금융사고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금융권에서는 이건호 행장이 임 회장의 권력 독점에 불만을 품고 주전산기 문제를 명분 삼아 헤게모니 싸움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행장이 정 감사로 하여금 김재열 전무를 공격하고 이를 통해 임 회장에게 타격을 가하려 한다는 얘기다.

한 금융권 고위 간부는 “통상 지주사는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은행 경영에 미주알고주알 참견을 한다. 임 회장이 은행의 사외이사를 임명하고 사장 자리를 없애 경영권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임 회장과 아무런 라인이 없는 이건호 행장도 이런 식으로 끌려 다니다간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만 져야 할 입장이다. 그걸 우려해 적극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다. 이 행장 쪽에선 ‘지주에서 은행 경영에 직접 간섭한 증거가 있다’ ‘이길 자신 있다’는 말도 했다”고 귀띔했다.

KB국민은행 노조도 낙하산 경영진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노조는 “지난 16년 간 계속된 ‘낙하산’이 전산기기 교체 등을 통해 가장 많은 예산을 일거에 투입해 수천 억원의 고객 손실을 초래했다”면서 내부갈등을 일으킨 임 회장과 이 행장의 동반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이 이 행장에게 유리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금융지주 회장의 ‘황제 경영’을 금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이 비공식적인 구두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금융지주사가 그룹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은행의 사외이사를 임명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KB 내분이 격화된 5월 21일 지난해 11월 발표한 금융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따른 후속 조치로 이 같은 내용의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안을 6월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이 행장이 힘을 얻게 된다.

금융당국은 이건호 행장 손 들어줘?

금융당국이 이건호 행장을 도와주는 배경에 현 정권의 힘이 작용했다는 설도 있다. 이 행장 부친은 이정순 예비역 준장이다. 5·16 쿠데타를 주도한 육사 5기 출신으로 쿠데타 성공 직후 민심 수습책의 일환으로 조직한 부정축재처리위원회 조사단장을 맡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이 행장이 국민은행장에 올라서게 됐다는 설이 돌았다. 또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와의 친분설도 있다. 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행장이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시절 막역하게 지내던 지인과 박지만씨가 상당히 가까워 함께 보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정통 관료 출신인 임영록 회장은 전형적인 ‘모피아(재무부 계열 관료집단)’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인 2008년 2월 재경부 제2차관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난 뒤 금융연구원 초빙 연구위원을 지냈다. 2010년부터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위원으로 이명박 정부와 인연을 맺은 뒤 어윤대 KB금융그룹 회장 시절 사장에 발탁됐다.

국민은행 사정에 밝은 금융권 관계자는 “임 회장과 이 행장은 전혀 다른 배경으로 KB금융에 들어와 각자 자리를 잡았다. ‘물과 기름’같은 관계여서 언제든 파워게임이 벌어질 수 있는 구도였다”며 “금융당국 발표가 임 회장을 겨냥한 것이라서 조사결과가 나오면 임 회장이 리더십에 더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1239호 (201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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