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CEO 에세이 - 잡담과 괴담의 경제학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



사람의 언어가 고도로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료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서, 사냥할 때 협력하기 위해서, 아니면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진화심리학자인 로빈 던바는 잡담하기 위해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잡담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목적이다.

현생 인류는 구석기 이전 최대 70~80명의 집단을 이루었고, 문명시대 이후 점차 150명으로 커졌다. 집단이 커질수록 사냥도 잘 되고, 맹수에 대항하기도 쉬워지는 분업의 장점도 커진다. 그러나 집단이 커지면 구성원 간에 갈등도 동시에 커진다. 80명 이내의 집단에서는 사람들끼리 서로 직접 알고 지낸다. 하지만 150명 정도가 되면, 사람들 모두가 직접 알고 지내기는 어렵다. 이는 동일 집단 내에서 직접 대해보지 못한 다른 구성원에게 속을 수 있는 위험이 생긴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은 이 때부터 서로의 평판·신뢰성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생겼고, 이것이 언어가 발달하게 된 배경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평판·신뢰성 정보를 계속 교환하는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계속 만나고 서로 잡담한다. 끊임없는 잡담 속에서 얻어가는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이해관계를 가진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이다. 만약 갑이 잘 모르는 사람인 을에게 동업 제안을 받았다면, 갑은 먼저 을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부터 알아 볼 것이다. 만약 갑이 을의 정체를 도저히 알아낼 수 없으면, 을은 갑을 속일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은 부정적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돼 왔다. 동굴에 살던 원시인에게, ‘사냥에 성공했으니 고기 먹으러 모이라’는 긍정적 정보를 늦게 들으면 남들이 먹다 남은 뼈다귀만 바라보아야 한다. 이와 달리 ‘적들이 동굴을 습격했으니 피하라’는 부정적 정보를 늦게 들으면 목숨이 위태롭다. 이런 본능에 기반해 현대인들의 잡담도 은근하고 교묘하게 타인에 대한 비난과 험담이 확대 재생산되는 경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잡담과 험담의 이중주라는 본능은 인터넷과 SNS라는 문명의 이기를 만나서 증폭되는 양상이다. 무기명의 가면 뒤에 숨어 근거 없는 모략과 비난, 비열한 인신공격이 난무한다. 나아가 정치·언론 등의 공적 영역조차 단기적 이익을 위해 SNS를 빙자하여 괴담을 유포시키고 건전한 공론의 장을 왜곡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온 나라를 슬픔에 젖게 만든 세월호 참사도 예외는 아니다. 탑승자의 안전을 걱정하고,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면서 구조작업을 성원하는 차원이 아니라 무분별한 괴담을 생산하고 유포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회 일각의 무분별한 행태와 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편승은 그야말로 잡담과 괴담의 합주라는 인간 집단생활의 막장드라마를 연출했다.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고 유포되는 유언비어는 인간의 본능적 측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적 영역까지 물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과거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괴담으로 우리 사회가 겪은 혼란과 지불했던 막대한 비용을 돌이켜 보면서 잡담과 괴담의 경제학을 생각해 본다.

1236호 (20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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