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자본시장의 리더-교보증권 신탁팀 

중소형사 한계(자본금에 따른 위탁금 제한) 깨고 신탁 1위 등극 

2년 만에 신탁 잔액 1조→15조, 여성 중용 정책도 눈길

▎안효진 교보증권 신탁팀장(가운데)와 신탁팀원들.



증권 업계에 이변이 일어났다. 교보증권의 신탁 잔액 규모가 업계 1위로 올라선 것이다. 중소형 증권사로는 처음이다. 특히 업계 순위의 변동이 거의 없는 시장에서의 급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또 이 성장을 이끈 팀이 증권가에서는 이례적으로 여성 인력이 대다수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교보증권은 최근 차별화된 사업 영역을 발굴해 성과를 내고 있다. 교보증권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26% 늘어난 100억8366만원이다. 같은 기간 매출은 5764억원으로 53.7% 감소했지만 당기순이익은 113억원으로 6.5% 증가했다.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업계 8위다.

신탁 부문, 영업이익의 15% 차지

증권업계가 혹한기를 맞으면서 대형사들도 적자를 기록하는 가운데 교보증권의 이 같은 실적은 이례적이다. 특히 교보증권의 전년도 실적이 부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실적 개선은 더욱 눈 여겨 볼 만하다. 교보증권의 2012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9.1% 감소한 19억원에 그쳤다.

매출도 같은 기간보다 61.3% 줄어든 1조2436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 또한 51.2% 감소한 105억원으로 집계됐다. 주식시장 거래 대금 감소로 수수료 수익과 주식워런트증권(ELW) 수수료 수익이 감소한 것이 주요 요인이었다. 꾸준히 문제가 제기된 증권사의 천수답식 사업구조가 부른 결과다.

교보증권은 사업구조의 다각화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FICC(채권·통화·원자재 파생상품)와 투자은행(IB)이 두각을 나타냈다. 이 와중에 한쪽에서 조용하게 실적을 끌어올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낸 게 고객자산운용본부의 신탁 사업이다. 교보증권의 3월 말 기준 신탁 잔액은 15조6426억원이다. 21개 증권사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성장세도 가파르다.

해당 시장에 뛰어든 2012년 이 회사의 신탁 잔액은 1조원, 업계 17위에 불과했다. 이후 급성장해 1년 만인 지난해 신탁 잔액 규모 3위로 껑충 뛰었고 올해 1위에 올랐다. 이를 통한 신탁 부분 수익도 꾸준히 늘어 지난해 교보증권 전체 영업이익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특히 교보증권 신탁 부문의 성과는 업계의 두 가지 통념을 깼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먼저 중소형 증권사의 한계를 극복했다. 그동안 국내 신탁 시장에서 중소형 증권사들은 소외돼 왔다. 주요 고객인 법인과 기관 등이 거래 증권사를 선정할 때 신탁 운용의 성과와는 관계 없이 해당 증권사의 자본금과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을 기준으로 삼는 관행 탓이다.

교보증권의 자본금은 5700억원 정도로 업계 20위다. NCR도 비슷한 수준이다. 자본금과 NCR을 기준으로 한 정량 평가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업계 1위인 교보증권도 당시 정량 평가에서 20위에 그치기도 했다.

안효진 교보증권 신탁팀장은 “회사가 클수록 잘 할거라는 통념 때문에 사업 초기에는 법인과 기관으로부터 문전박대 당하는 등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설령 몇몇 기회가 오더라도 신탁 금액은 200억원 정도의 소액에 불과했다. 채권 구매도 쉽지 않다. 투자은행(IB)들이 대량으로 구매가 가능한 대형사 위주로 채권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이에 교보증권 신탁팀은 소액의 신탁금이라도 조금씩 모아 잔액 규모를 먼저 키우는 데 집중했다. 규모를 보여줄 수 있어야 중소형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100억원씩 차곡차곡 신탁 잔액을 늘려갔다. 안 팀장은 “신탁 잔액이 3조원을 넘어서면서부터 인식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며 “트렉레코드가 쌓이고 수익률로 보답을 하자 신탁 잔액의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현재 교보증권 채권형 신탁의 수익률은 대형사 대비 5~10bp(0.005~0.01%) 높다. 2012년 5월 단 200억원만을 맡기던 한 기관의 신탁 잔액이 지금은 3조원을 넘는다. 자본금에 따른 위탁금 제한이 법인과 기관에 남아 있어 여전히 불리한 형편이지만, 고객 수를 늘리면서 대응하고 있다.

교보증권이 깬 또 하나의 통념은 여성 운용 인력의 저평가다. 증권업계에는 업무직을 제외하면 대체로 남성 직원이 대부분이다. 특히 채권 분야에서는 여성 운용 인력을 찾기 힘들다. ‘일이 험하고 고되다’는 인식과 결혼·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이 많아서다. 그런데 교보증권 신탁팀은 10명 중 7명이 여성이다. 여성 7명 중 6명은 기혼, 그중 3명은 자녀가 있다. ‘여자는 힘들다’는

인식을 깨고 탁월한 성과를 낸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2012년 신탁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 교보증권에 합류했다. 이기헌 교보증권 고객자산운용본부장은 “능력이 검증된 남성들이 대형사에서 움직이지 않는데 반해, 여성들은 편견으로 인해 대형사에서 능력에 맞는 역할을 부여 받지 못해 떠나는 경우가 많다”며 “새 사업에 진출하면서 이런 인재의 틈새시장을 노렸고, 이게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안 팀장도 이전 회사에서 출산 후 리테일 마케팅 부서로 발령 받는 등 간접적인 경력 단절 위기를 겪던 중 교보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사례다. 여성 운용력의 장점도 살렸다. 이 본부장은 “여성의 꼼꼼한 성격 덕분에 가이드라인에 벗어난 자산 편입 등 남자운용력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들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패 줄이는 균형 베팅 주효

교보증권 신탁팀의 기본 운용 전략은 ‘정답 확률을 높이기보다 오답 확률을 줄인다’에 맞춰져 있다. 이에 따라 ‘30:30:30’ 운용을 원칙으로 한다. 금리 상승에 30%, 하락에 30%, 중립에 30%를 베팅해 균형을 맞추는 전략이다. 나머지 10%는 시장의 흐름과 상황에 따라 조정한다.

안 팀장은 “금리 상승·하락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쏠릴 때도 원칙에 맞게 운영한다”고 말했다. 향후 해외 상품 개발과 인식의 틈을 이용한 운용도 계획 중이다. 이 본부장은 “가령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우리나라 시선과 브라질의 시선이 다르기 때문에 채권의 할인률도 크게 달라지곤 한다”며 “이 같은 인식의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낼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두 가지 통념을 깬 교보증권의 방식이 ‘금융 한류’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굴지의 해외 금융사에게 밀려 국내 금융사 해외 진출이 지지부진한 이 때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의 비결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인재 선발에 대한 재고도 시작됐다. 이 본부장은 “교보증권의 실험이 여성의 역할과 인재의 선발 기준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1234호 (2014.04.28)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