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CEO 에세이 - 허술한 재난 시스템, 빈약한 사회안전망 

 

진재욱 하나UBS자산운용 대표



온 나라가 애통함과 울분에 힘겨워 한다. 눈 뜨고 아직 꽃 피우지도 못한 앳된 학생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어른들의 잘못이고, 이 사회의 죄다.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가. 명확한 사건 규명이 이어지겠지만, 세월호 침몰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재난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재임이 분명하다.

어디 재난 시스템뿐인가. 세계 십위권 경제대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사회 안전망은 어떤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조금씩 잊혀져가는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을 보자.

당뇨와 고혈압으로 투병 중이던 큰딸, 카드빚에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한 둘째 딸, 식당일을 하다 팔이 부러져 일을 못하던 어머니. 세 모녀는 빈곤의 벼랑에서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흰 봉투를 남기고 세상과 작별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세 모녀가 남긴 유서였다.

필자는 이 뉴스를 접하며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왜 그들은 삶을 포기해야만 했을까. 500만원이라는 보증금이 있는데도 그런 점을 보아 세 모녀는 희망을 잃으신 분들이었다. 희망은 마치 땅 위에 있는 길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다. 누군가 먼저 가고, 많은 사람이 뒤를 따르면 길이 생긴다.

세 모녀가 만약 희망의 길을 봤다면, 그렇게 비극적인 선택을 했을까. 이제라도 우리 사회는 빈곤의 아픔과 소외감으로 희망을 잃어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와 서글픔을 공감해야 한다.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그렇게 만들어 가야 한다.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개인의 노력과 근면만으로는 회생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의료보험, 기초생활 보장 등 복지의 사각지대를 여실히 드러냈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우리의 허술한 사회안전망에 경종을 울렸다. 생활고와 질병으로 빈곤의 나락에 빠진 이들을 국가와 사회가 먼저 찾아내 보호하는 복지 시스템이 왜 시급한 지 비극적으로 보여줬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선진국 또는 그 문턱을 넘고 있다. 문화와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럼에도, 이런 아픈 뉴스는 끊이지 않는다. 온 나라가 감성적 슬픔에 빠지다 이내 잊어버려서는 곤란하다. 정부만 책임질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이웃을 돌아보고 배려하며 도울 수 있는 그런 문화와 시스템을 민간 차원에서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서로 협력하며 이뤄 내야 한다.

조선시대 경주 최부자 집은 근처 사방 백리 안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가훈을 세우고, 흉년 때에는 소작인들에게 소작료를 반만 받는 등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상으로 칭송 받았다. 이런 나눔정신을 복원하고 선진국의 기부문화를 적극 받아 들여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베풀어야 한다.

특히 정부와 정치권은 전시행정이나 정쟁보단 민생을 살피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연말에 집중되는 불우이웃돕기 활동이 일회성·전시성 행사로만 그치지 않아야 한다. 항상 가진 자가 손을 펴고 베풀어서 어려운 이웃과 사회에 대한 봉사 등을 통해 함께 최소한의 존엄성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1234호 (201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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