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Issue | 한국가스공사 국부 유출 논란 

당장 성과 내려는 근시안적 정책에 ‘눈 앞의 위기만…’ 보신주의 합작품 

정부의 공기업 부채 감축 압박 … 알짜 해외 자원 사업까지 매각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가스공사 직원들이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 경영정상화 방안의 문제는 지나치게 부채 감축에만 몰두한다는 겁니다.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해 자원 수급은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지켜야 할 가스전까지 매각하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가스공사 임원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해외 알짜 자산을 매각해 부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을 그는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박근혜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첫 번째 목표로 ‘공공 부문 정상화 개혁’을 내세웠다.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과도한 성과급, 복리후생비, 불필요한 사업 추진, 그리고 무분별한 해외 투자가 개혁 대상이다. 정부는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 대상 공기업 41곳의 부채비율을 2017년까지 200%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올 들어 공기업을 겨냥해 고강도 경영쇄신을 주문한 배경이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한국가스공사·한국석유공사를 비롯해 11개 에너지 공기업 사장을 만나 강도 높은 경영개선안을 요구했다. 그는 “공공기관장들은 직을 걸고서라도 부채 감축에 매진해야 한다”며 “올해 중 자산을 매각해서라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라”고 압박했다.


“직을 걸고서라도 부채 줄여라”

한국가스공사도 부채비율을 낮춰야 하는 공기업 중 하나다.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현재 393%로 부채가 35조2956억원에 달한다. 산업통산자원부는 지난 한 해 내내 이 회사에 자구책을 요구했다. 지난 1월 이 회사는 2017년까지 부채비율을 249%로 감축하기 위한 연도별 실행 목표와 실천방안을 마련했다. 1월 29일에는 경영정상화 실천 결의서도 만들었다.

‘국민의 뜻을 절실히 느끼고 있고, 빠른 시일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것이며 목표를 달성 못하면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이다. 장석효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직을 걸고 연도별 부채 감축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결의서에는 장 사장을 포함한 가스공사 주요 임원 10여명의 서명이 담겨 있었다.

문제는 부채 감축 방식이다. 한국가스공사는 향후 수익성이 보장되는 해외 자원 광구 매각에 들어갔다. 많은 공을 들여 확보한 알짜 사업을 헐값에 넘기는 모습에 국부 유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가스공사의 자구안에는 공사 최초의 운영 사업인 이라크 아카스 가스전을 비롯해 캐나다와 우즈베키스탄의 CNG·실린더 사업, 모잠비크 가스전 매각 내용과 일정이 들어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지분 100%를 보유 중인 아카스 가스전에는 4500만t의 가스가 매장돼 있다. 이 회사는 2015년까지 아카스 가스전의 지분 49%를 매각할 계획이다. 우즈베키스탄 CNG·실린더 사업에서도 보유 지분 19%를 2015년까지 매각할 계획이다. 수익성은 높지만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사업 철수 이유다. 캐다나 셰일가스전 개발에도 제동이 걸렸다. 캐나다 혼리버 가스전은 규모를 축소했고, 우미악과 웨스트뱅크의 가스전 개발은 보류됐다.

지분 20%를 보유 중인 캐나다 LNG 가스전은 지분 10%를 민간자본에 넘겨 자본을 유치해 개발을 진행할 계획이다. 부채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개발에 성공한 가스전의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도 경영정상화 방안에 있다. 모잠비크 광구에는 약 20억t의 가스부존이 있다. 가스공사 지분은 10%인 2억t으로 국내 소비량의 약 5년 7개월 분에 달하는 매장량이다.

한국가스공사 실무진은 답답해했다. 막대한 자금을 앞세운 중국·일본 기업과의 경쟁을 뚫고 확보한 가스전을 매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 사업은 비전통가스 개발 및 운영 사업에 대한 노하우가 전무하던 한국가스공사가 수 년 간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자원개발은 일반적인 제조업과 달리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하고 손익분기점에 이르는 회수기간이 길게 마련이다. 한국가스공사가 이라크 아카스 가스전을 매물로 내놓은 이유는 결국 비용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380억원이 들어갔고 향후 20년 간 약 3조원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7년부터 20여 년 간 이라크에서 매년 발생하는 순수익은 최대 3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2018년이면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데 왜 헐값에 매물로 내놓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기업 부채 감축에만 몰두해 어렵게 확보한 에너지 자원의 소중함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지난 연말 부채가 많은 공공기관장을 은행연합회관에 불러 질책했다. 고정식 광물자원공사 사장, 서문규 석유공사 사장, 장석효 가스공사 사장,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 이재영 토지주택공사 사장(왼쪽부터)이 현 부총리를 기다리고 있다.
캐나다에서 중국은 투자 늘리는데 가스공사는 사업축소

매각 시점과 방식도 문제다. 지금 글로벌 에너지 자원 가격은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가격이 떨어지는 시기임에도 정부의 요구에 따라 해외 자산 매각에 나서야 한다. 자원 가격이 떨어진 상태라 해외 자산의 시장 가치가 매수 당시보다도 낮다. 더욱이 개발을 앞둔 탐사 광구는 매각 조차 어렵다. 초기 투자 비용을 감수할 매수자를 찾기 어려워 헐값으로 매물을 내놓아야 한다. 해외 판매가 어렵자 국내 대기업에 지분을 넘기는 방안도 검토했다. 하지만 가격차가 큰 탓에 협상 자체가 어렵다. 기업 요구 수준에 가격을 맞추면 특혜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한국가스공사가 원하는 가격엔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을 찾기 어렵다.

시한을 정해 놓고 지분 매각을 진행하는 점도 무리수로 꼽힌다. 인수·합병(M&A)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부채 감축 시일에 쫓기는 가스공사의 상황을 업계가 모두 알고 있다. 불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벌여야 하기에 한국가스공사가 가스전 지분을 제값 받고 팔기 어렵다. 산업부 담당자에게 상황을 묻자 그는 “정부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가스공사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방안”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에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정부의 입장이 단호하기 때문에 이 정도 자구안까지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해외 자원개발 기본 계획 수립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는 자칫 수익성 높은 광구를 헐값으로 넘길 수 있다”며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과 눈 앞의 위기만 넘기려는 공기업의 본능이 맞물려 이런 상황에 직면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국가스공사가 보유한 가스전의 지분 일부를 넘기면 해외자원 개발의 경제적 효과가 줄어든다는 지적도 있다. 가스전 개발은 건설·플랜트·철강·금융 기업이 함께 벌이는 사업이다. 예컨대 캐나다 셰일가스전 지분 일부를 해외 기업에 넘길 경우 전체 프로젝트에서 한국가스공사의 영향력이 줄어든다. 덩달아 셰일가스전 개발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캐나다 가스전 개발에 참여했던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가스 시추공은 지하 6000m까지 내려간다”며 “시추공을 100개만 뚫어도 60만m의 철강 파이프가 필요한데 이를 우리 철강업체가 생산한다면 커다란 경제적 파급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엔지니어링 기업의 플랜트 건설 참여를 지원하고 건설사가 토목공사를 맡기 위해서는 공사 보유 지분이 높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가스공사가 지분을 줄이고, 사업 참여를 보류하는 동안 중국과 일본 기업들은 캐나다와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은 자체 셰일가스 매장량이 세계 최대 수준임에도 캐나다 자원을 탐내고 있다. 중국과 일본 기업들이 북미지역 셰일가스 개발에 투자한 돈은 한국가스공사의 30~50배에 달한다.

이들은 단기적으로 손실이 나더라도 장기적인 에너지 확보가 국가에 유리하다는 전략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여기엔 기술 확보 목적도 있다. 미국은 중국 에너지 기업이 관련 기술 확보하는 것을 견제한다. 하지만 자금이 아쉬운 캐나다는 기술 이전 과정이 미국에 비해 수월하다. 그래서 중국은 캐나다 에너지 산업에 진출해 기술을 확보하려 한다. 이런 와중에 한국 정부는 오히려 사업을 축소한 것이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재고해야” 주장도

가스전을 개발하지 않고 수입하면 좀 더 낮은 가격에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에너지의 90%를 수입하는 국가다. 강대국과 글로벌 에너지 기업의 이해관계가 촘촘히 얽혀 있는 세상에서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이 자원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자원 매각은 우리의 미래를 매각하는 것이자 자원 기술 강국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를 매각하는 일”이라며 비판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해외에 투자했던 자원을 매각했던 아픈 사례가 있다. 10여년 만에 다시 해외 자원을 확보해 자원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매각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김 교수는 “정부의 공기업 부채 감축안에 밀려 우량 가스전을 매각하는 일은 에너지 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근시안적인 대책”이라며 “자원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1233호 (20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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