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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이통사 유통점 인증제 실효성 논란 

휴대전화 팔려면 ‘인증명패’ 받아야 

박상주 이코노미스트 기자
판매점당 45만원, 판매원당 6만원 들어 … 소상공인 지원, 규제완화 흐름에 역행

▎이동통신 3사 영업정지로 문을 닫은 서울 용산구의 한 휴대전화 매장. 유통사 인증제로 판매점주의 인증비용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휴대전화 상품을 팔려면 돈을 내고 인증을 받아라? 전국 5만여개에 달하는 휴대전화 매장에 황당한 이동통신3사 지침이 내려왔다. 휴대전화·통신상품 판매 시장 정화를 목적으로 5월 본격 시행되는 ‘유통점 인증제’에 참여하라는 이야기다.

이에 관련된 인증비용도 각 매장 점주가 내야 해서 판매점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인증제는 실효성 논란에다 시장에 진입해 경쟁할 자유와 판매할 권리 등을 정부와 통신사업자가 돈을 받고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박근혜정부가 소상공인 지원과 규제완화라는 정책 흐름을 스스로 거슬러 ‘새로운 악성규제’를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장 혼탁한 게 우리 책임이냐?”

유통점 인증제는 통신판매사 자격과 인증유통점·우수인증유통점 등 두 가지로 구성된다. 판매원과 유통점주 등을 교육시켜 불법보조금, 개인정보 유출, 허위·과장광고 등으로 혼탁해진 휴대전화 시장을 건전하게 만들자는 취지다. 통신3사인 SK텔레콤·KT·LG유플러스와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법정법인인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등이 이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2010년 처음 제안된 제도로 4월 19일 첫 ‘통신판매사’ 자격검정이 전국 6개 시험장에서 실시된다.

KAIT는 올해 이동통신 분야에 인증제를 적용하고, 내년에는 유선인터넷·유료방송 등 유선통신 분야로 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2016년 이후에는 한국의 모든 통신상품 분야로 인증제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KAIT에 따르면, 4월 1일 현재 대리점·판매점 1200여 곳이 교육서비스에 등록했고 550여명이 3월 17일부터 시작한 통신판매사 온라인 교육을 받고 있다.

KAIT 유통망인증팀 전대국 책임연구원은 인증제에 대해 “통신판매 유통점의 불법·편법 행위와 문제점을 없애 공정한 거래 관행을 만드는 방법”이라며 “인증제가 정착되면 가계 통신비가 절감되고 통신서비스 판매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어 정부의 ‘창조경제’에 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통점 인증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통신판매사 자격이나 유통점 인증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통신상품을 팔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KAIT와 통신3사는 인증을 받지 않은 사람과 유통점에 통신상품을 제공하지 않을 계획이다. 따라서 인증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판매업이 불가능하다.

상품을 공급하는 통신사도 각 대리점에 유통점 인증제를 강제하고 있다. 실제 한 통신사는 자사 대리점 전체에 ‘2015년 말까지 전속 유통인증점을 100% 달성하고 유통인증점 사업에 적극 지원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일선 대리점과 판매점은 유통점 인증제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누구나 강의를 들으면 받을 수 있는 형식적인 검정을 위해 판매원당 6만원씩, 점포당 45만원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매년 검정을 위해 실사를 받아야 하고 직원들이 수험료를 내가며 형식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도 불만이다. 통신사판매사 시험에 나올 예제도 ‘이동통신 서비스 계약 중 기기변경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이거나 ‘정보통신망법에서 보호 대상이 되는 개인 정보 요건에 해당하는 것은?’ 등 판매에 반드시 필요한 고급 지식이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서울 종로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점주는 “시키니까 하긴 해야 하는데, 대략만 합산해 봐도 판매점별로 인증비, 직원들 검정비를 합하면 70만원이 넘는다”며 “지금은 통신3사 영업정지 기간으로 매출이 거의 없는 때인데, 인증명판하나 당 수십 만원씩 돈을 내라는 건 갑(정부·통신3사)의 횡포이자 협박”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부산 해운대에서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정부에서는 소상공인을 지원하고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연일 떠들지만 실제로는 우리 자영업자들을 잠재적인 부당영업 행위자로 본다”며 “자영업자를 감시하고 싶으면 비용을 정부나 통신사가 내야지 왜 감시를 받는 자영업자가 대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강남의 한 대리점주는 “통신판매 시장이 혼탁해진 것은 대기업인 제조사와 통신사가 만든 한국의 독특한 휴대전화 판매구조 때문”이라며 “문제는 정부·제조사·통신사가 만들어 놓고, 마치 판매자들이 무식하고 비도덕적이어서 문제가 생긴 걸로 보고 그런 시장 정화 비용을 판매자들에게 떠넘기는 건 후안무치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정부와 통신3사는 판매자 반대에도 유통점 인증제를 강행하고 있다. 판매점 관리 때문이다. KAIT는 매월 운영위원회를 열어 부당영업행위를 한 인증점의 인증을 취소하거나 판매자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실제 인증제의 본래 의도도 판매자나 판매점의 관리에 있다.

전국의 휴대전화 대리점·판매점 수는 4만6573개(KAIT 추산)다. 하지만 정부와 통신사 어느 쪽도 이와 관련한 정확한 통계가 없는 실정이다. 어디에서 누가 부당한 영업행위를 했는지, 불완전 판매를 했는지 알 수 없다. 또 부당영업 행위를 한 업체와 업자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기준도 모호한 상태다. 정부는 이 때문에 이동통신 시장이 혼탁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교육·심사를 거쳐 자격증과 인증명패를 나눠주는 방식으로 통신상품의 실제 거래선을 파악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인증을 받지 않은 나머지 모든 판매자는 자연 소멸된다. 이를 통해 일명 ‘폰팔이’라 불리며 음지에서 활동하는 부당영업 행위자를 없애 시장을 건전화시킨다는 복안이다. 인증제가 정착되면 KAIT와 통신사 등이 관련 위원회를 열어 인증을 받은 판매점과 판매자에게 소비자들로부터 들어오는 불만이나 부당영업 행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영업정지로 가뜩이나 파리 날리는데…

판매점과 판매자들은 유통점 인증제가 시장 건전화와는 상관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부당영업 행위나 개인정보 유출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KAIT 정범석 유통망인증팀장은 이런 지적을 인정하면서도 “인증을 위한 사전 교육을 통해 부당영업 행위와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한 예방적 효과는 분명 있을 것”이라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판매점이 검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실비를 부담하는 대신 더 건전한 시장형성을 위해 지식을 습득하는 기회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리점·판매점 업자들이 결성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등은 통신판매사 검정시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4만6000여 휴대전화 판매점 등이 올해 우수인증유통점이 되려면 모두 321억원이 든다. 모두 대리점주나 판매점주 부담이다.




1233호 (20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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