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CEO 에세이 - 얼치기 ‘인문학 연예인’ 유감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



인문학 열풍이 여전히 뜨겁다. 대학들이 최고위 과정에 앞다퉈 관련 강좌를 개설하고, 각종 포럼에서 인문학 강사 초대하기 바쁘다.

사내 교육에도 인문학이 배정되고 입사시험에서 인문학 소양을 참고하겠다는 소식에 관련 서적의 매출도 급격히 늘었다는 소식이다. 2006년 일단의 대학교수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하면서 호들갑을 떤 것을 무색하게 만드는 변화다. 개인적으로도 인문학을 좋아하기에 바람직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인문학이 일부 부유층의 교양강좌로 전락하고 있으며, 정작 대학 내 인문학과는 통폐합되는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견 그럴 듯하지만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기업 입장에서 혁신·마케팅·리더십 등은 영원한 과제이지만 이제는 일정 수준 숙달됐다.

창의력이 중요해지는 융합시대에 기업인들이 역사·철학·문화·예술을 접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접근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덧붙여 학창시절의 막연한 로망이었던 인문학 고전들을 접하려는 허영심이 설사 있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랴. 또한 사막화라는 대학 인문학과의 축소는 그들이 사회의 수요를 못 따라갔을 뿐이고, 인문학과 졸업생들의 어려운 취직은 우리 사회 청년 세대 전체에 공통적이다.

과거 빈곤한 시절에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급했지만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어 기본생활이 충족되면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최근 힐링·감정을 테마로 내세운 일단의 대중적 인문 강연자들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문제 덩어리로 간주하는 건 어떤가? 이런 시스템을 벗어나 진정한 삶을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논지를 듣노라면 이들이 얼마나 시장경제와 근대세계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걱정스럽다.

시장경제는 인류의 경제활동이 시작된 이래 늘 존재했고 분업과 교환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증대하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시장의 교환은 자연발생적이고 개방적이며 가치의 이동을 전제로 한다. 시장은 근본적으로 상호이익에 기반하는 공생의 플랫폼이다. 시장의 폐해는 대부분 시장을 인위적으로 규제하려는 인간으로부터 기인한다. 그토록 시장경제를 저주하고 없애버리려 했던 20세기 공산주의는 자체 모순으로 소멸했다. 심지어 수령 독재의 북한에서도 장마당 시장은 자생적으로 생겨나서 닫힌 체제의 생명선으로 기능한다.

자신은 시장에서 강연과 책을 팔아 돈을 벌면서 정작 시장과 기업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얼치기 인문학 연예인들. 이들이 설파하는 이른바 인문학이란 오히려 사회적 분업과 인간의 삶에 대한 진실을 왜곡시킨다.

최근 기업인들에게 사회적 부채의식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기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행복한 삶의 조건을 만들어 주는 건 시장과 기업이다. 최근 인문학 열풍도 기업가인 스티브 잡스로부터 비롯됐다. 미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은 ‘어떤 체제나 사상의 형성은 이론가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갈등하는 현실 속에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의 손에서 나온다’고 갈파했다. 현실에서 행동하는 기업인들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1228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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