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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산업혁명기 영국 자본가의 편견 비판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 맬서스의 차가운 ‘인구론’에 반기

▎어린 시절 나치수용소를 경험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



‘끼니 때면 아줌마들이 붉은 죽을 퍼서, 아이 한 명당 딱 한 사발씩 주었다. 특별한 날이라야 조그만 빵 한 조각을 더 줄 뿐이었다. 그릇은 닦을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은 숟가락으로 그릇이 반들거리며 윤이 날 때까지 닦아 먹었다. 그리고 나서 아이들이 얼마나 간절히 솥단지를 쳐다보는 지 단지를 받친 벽돌을 삼킬 듯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중)굶주림을 참을 수 없던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대표해서 구빈원장에게 갔다. 그리고 말했다. “원장님 조금 더 주세요.” 이 한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아이는 죽도록 맞고는 1주일 넘게 독방에 갇힌다. 그 아이의 이름은 올리버 트위스트다.


▎찰스 디킨스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반박하기 위해 『올리버 트위스트』와 『크리스마스 캐럴』을 썼다.
『올리버 트위스트』 는 아동도서로 국내에 소개됐지만 실은 19세기를 날카롭게 풍자한 성인소설이다. 저자 찰스 디킨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모질게 다루던 신구빈법(新救貧法)에 맞서 이 소설을 썼다. 1834년 신구빈법이 발효된 지 4년 뒤인 1838년 소설이 출간됐다. 촌철살인의 디킨스 소설을 영국 자본가들은 결코 환영하지 않았지만 서민들은 열광했다.

극빈층의 혹독한 삶 생생히 그려

올리버 트위스트는 구빈원(20세기 이전 유행한 원내 구호 형태의 빈민시설)에서 고아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자 말자 운명했다. 그것으로 올리버의 미래는 결정됐고, 가난과 역경이 평생 따라다닌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는 지는 미궁에 빠진다. 고아원에서 나온 올리버는 장의사에서 일한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아이들이 올리버 어머니에 대한 모욕적인 말을 하자 참지 못한다.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끝에 그는 영국 런던으로 도망간다. 하지만 대도시 런던에는 악당들이 판을 친다. 장물아비 페이긴, 사기꾼 사익스, 소매치기 아이들, 그리고 창녀들에게 붙잡혀 올리버의 인생은 꼬인다. 하지만 불운만 있지 않다. 친절한 노신사 브라운로, 인정 많은 메일리 부인, 그의 조카 로즈 등은 올리버를 돕는다.

올리버에게는 숨겨진 출생의 비밀이 있다. 아버지의 재산을 노린 계모와 이복형이 아버지를 살해했다. 두 사람은 막대한 재산이 올리브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을 사주했다. 진실을 캐기 위해 나서는 사람이 브라운로다. 알고 보니 브라운로는 올리버 아버지의 친구였다. 또 로즈는 엄마의 동생 즉 이모였다. 올리버를 괴롭힌 인물들은 옥상에서 떨어져 죽거나 교수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찰스 디킨스는 세익스피어와 함께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다. 그는 열두 살 때 구두약 공장에서 일하며 열악한 아동노동의 현장을 체험했다. 이 작품은 당시 경험이 큰 기반이 됐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은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스크루지 영감은 구두쇠를 나타내는 불멸의 캐릭터다. 크리스마스 캐럴 역시 즐거운 크리스마스 동화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혹독했던 당시 영국 사회를 비꼰다. 디킨스는 소설 한편이 정치 팸플릿 수십만 장보다 더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1838년 나온 『올리버 트위스트』와 1843년 나온 『크리스마스 캐럴』의 연원 된 경제학이론이 있다. 경제학자인 맬서스가 주장한 ‘인구론’이다. 찰스 디킨스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반박하기 위해 이 두 책을 썼다. 『인구론』은 1798년 첫 출판돼 1834년까지 다섯차례 출판됐다. 인구론은 인구의 증가 속도가 식량 공급의 증가 속도보다 빨라 언제나 빈곤한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고, 빈곤한 사람들은 더욱 못살게 된다는 이론이다.

맬서스는 인류의 90%가 참담한 가난과 고된 노동을 겪을 것이라는 침울한 미래를 예언했다. 인구 폭증의 원인은 ‘섹스’였다. 식량이 풍부하면 성욕을 이기지 못한 남녀가 자주 관계를 갖고, 그러면 아이들이 크게 늘어난다. 하지만 식량은 단기간에 늘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점차 모자라게 되고 결국 식량 부족을 겪게 된다는 얘기다. 식량 가격은 폭등한 반면 노동력이 넘쳐 임금이 떨어지면 가난이 심각해진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당대 지식인들에게 큰 감명을 줬다. 1700년대 초 도시빈민 구제에 대한 강한 지지 여론이 있었던 영국 사회의 반작용이기도 했다. 빈민들을 아무리 구제하려 한들 상황이 나아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맬서스의 의심도 여기서 시작됐다. 맬서스의 아버지도 빈민 구제를 지지했지만 아들의 이론을 접한 뒤 생각을 바꿨다.

‘앞으로 닥칠 뻔한 미래’를 믿은 칼라일은 아예 ‘경제학은 암울한 학문’이라고 외치고 다녔다. 때문에 빈민에 대한 맬서스의 접근은 차가웠다. 그는 자선을 반대했다. 자선은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들 수 있다고 봤다.

자선을 베풀어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켜주더라도 이들이 성욕을 참지 못하고 아이를 더 나아 다시 빈곤의 늪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올리버가 런던으로 도망가면서 지나친 한 마을은 구걸도 금지했다. 구빈원에 들어가서 관리를 받지 않는 한 구걸은 허용되지 않았다.

장의사 집에서 올리버가 반항하자 하급 교구관인 범블이 “이 아이를 너무 잘 먹인 탓이다. 이놈이 제 처지에 맞지 않는 억지 근력과 기운을 내도록 한 거다. 극빈자 녀석들은 근력이나 기운과는 상관이 없지 않은가. 살아있는 몸뚱이만 있으면 충분한데 아이한테 죽이나 먹였으면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맬서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맬서스의 구상은 구빈원으로 현실화됐다. 1834년 통과된 새구빈법은 거의 반대표가 없었다. 새 구빈법은 교구 구빈원에 수용되는 사람들만 공공 구제를 해주기로 했다. 구빈원에서의 생활은 『올리버 트위스트』에 잘 묘사돼 있다.

찰스 디킨스는 분노했다. 실비아 나사르가 지은 『사람을 위한 경제학』을 보면 찰스 디킨스는 새 구빈법을 도덕적으로 혐오스런 법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여행은 그의 생각에 힘을 실어줬다. 아메리카 대륙은 경작을 기다리는 드넓은 땅이 있었고 풀밭 위에는 엄청난 수의 소가 풀을 뜯고 있었다. 사람이 살아갈 땅은 넉넉했다. 인구론은 영국에만 적용된다고 믿게 됐다.

인구론은 자본가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성욕을 참지 못한 나머지 너무 많은 아이들을 낳아 가난을 자초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공장주들은 임금 착취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지자 환호했다. 인구 증가에 대한 공포는 1801년 영국이 근대적인 인구조사를 최초로 실시하는 계기가 됐다.

따뜻한 경제학 만들려던 디킨스의 열망

인구론은 진화론 탄생의 밑받침이 됐다. 찰스 다윈은 1838년 어느 날 머리를 식힐 참으로 『인구론』을 읽었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식량을 쉽게 구하기 힘든 사회적 약자(극빈층)부터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을 보면서 생존을 위한 경쟁 개념을 떠올렸다. 다윈은 『종의 기원』 서문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모든 동식물에 적용한 것이 나의 이론”라고 실토했다.

찰스 디킨스는 경제학을 지지했다. 경제학이 없다면 세계가 굴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때문에 경제학을 ‘암울한 학문’으로 방치할 게 아니라 ‘따뜻한 학문’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쁜 아이로 불린 구빈원의 고아 올리브가 실은 따뜻한 아이였던 것처럼 경제학도 어두운 학문이 아니라 희망찬 학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해 따뜻한 경제학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열망이 빚은 작품이 『올리브 트위스트』였다.

1583호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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